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128호 | 2002.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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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운을 건 싸움, 범민중적 신자유주의 반대투쟁 전선으로 !

4·2 총파업 투쟁 불발과 투쟁전선 복구에 부쳐

사회화와노동 편집팀
통한(痛恨)의 종묘공원 회군

4월 2일 오후 1시 6분, 연합뉴스 속보는 "<긴급> 발전파업 노정협상 극적 타결"이라는 내용도 없고 제목만 있는 뉴스속보를 띄웠다. 이를 기해 모든 방송과 언론은 협상타결이라는 속보를 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민주노총은 "민주노총 가맹산하 각 조직은 파업 돌입 시간을 늦추고 대기할 것, 이미 파업 돌입한 사업장은 집회장에 대기, 아직 파업에 돌입하지 않은 사업장은 파업을 늦추고 현장에서 대기 할 것", "4월 2일 13시 현재 발전노조 협상이 급진전되어 발전노조에서 문구 검토/수정 중"이라는 지침을 전달한다. 그 시각 종묘공원, 훈련원 공원, 동대문운동장 등에서는 총파업 투쟁 승리 결의대회 참가를 위해 상경하고 있던 조합원들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파업에 참가하기 위해 버스까지 대절해 놓은 사업장은 현장에서 대기했고, 종묘, 훈련원공원 등지에 모여있던 조합원들은 해산하였다.
도대체 어떤 안이길래 파업이 돌입된 상태에서 대기명령까지 내면서 파업대오를 형성하지 않은 것일까? 그러나, "발전소 민영화 관련 교섭은 논의대상에서 제외", "적정한 수준에서 민·형사상 징계"를 골자로 하는 잠정합의안의 내용을 들으면서 발전조합원 뿐만 아니라 모든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만 5천여 명이 상경하는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가 예정된 4시 종묘공원 집회는 2천여 조합원의 혼란과 비통한 심경으로 축처진 분위기에서 약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정부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변명에 가까운 민주노총 지도부의 연설을 듣고 해산해 버렸다. 이처럼 발전노조의 38일간의 파업투쟁을 통해 형성된, 정부의 신자유주의 사유화 정책을 놓고 벌어졌던 대결에서 민주노총 조합원과 발전 조합원은 항복문서와 같은 잠정합의안을 김대중 정권에 의해 강요받으며 통한의 회군을 하게 되었다.


잠정합의안의 의미와 총파업 철회의 역사

"법과 원칙을 준수하고, 노사화합을 바탕으로 발전산업의 미래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약속"한다는 전문의 내용은 그 자체로 사유화 저지 공동투쟁을 깡그리 지배계급의 악법을 기준으로 삼아 불법으로 몰아가는 서술로, 그 알량한 법을 지키겠다는 준법서약서가 아닌가. 또한 복귀 후 현장탄압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적정수준의 징계를 받아들이라는 것은 다시금 투쟁을 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짓밟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 합의안의 진정한 의미는 사유화 수용이라는 점에 있다. 문안의 맥락이 무엇이건 간에 상호간 해석의 여지를 남겨 놓은 점, 그리고 그 상태에서 정부와의 합의라는 것은 정부의 입장이 일방적으로 관철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조간신문들은 "법대로 원칙, 모처럼 지켜져", "발전노조 사실상 항복선언"이라는 타이틀을 달았고, 김대중 정권은 공기업민영화추진위원회를 열기로 하는 등 즉각적인 공기업 사유화 일정을 제출하였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분노는 단지 발전노조가 38일간의 파업투쟁이 아무런 성과도 없이 현장으로 복귀하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분노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유화를 둘러싸고 정권과 일대 격돌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양보교섭에도 못 미치는 항복문서에 다름없는 합의안을 이유로 파업을 유보한 것은 전술적 오판 혹은 파업대오의 역량의 부족을 이유로 한다고 하더라도 지도부의 책임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4월 2일 하루밖에 안되고 예상 규모에 못미치더라도 아래로부터 역동적으로 조직된 14만의 파업대오의 총파업과 각계각층의 연대투쟁은 그 자체로 도덕적 지원·연대의 수준을 넘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사유화·해외매각에 대한 '범민중적 저항'으로 확장될 수 있는 국면을 창출할 수 있었는데, 그 지피기 시작한 불꽃에 찬물을 쏟아부은 격이기 때문이다. 파업대오의 정량적인 숫자가 아니라 그 대오가 창출할 수 있는 투쟁의 역동성과 새로운 국면 창출의 가능성을 주목해야하지 않았는가.
문제는 이러한 양보교섭, 물밑교섭을 통한 총파업 철회가 비단 오늘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IMF외환위기 이후 민주노총은 10여 차례 가까운 총파업 투쟁을 선언하였지만, 총파업을 목전에 두고 번번히 파업을 철회하였다. 98년 근로자 파견제와 정리해고제를 수용하였다. 그리고 IMF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제도를 둘러싼 최초의 격돌이라고 볼 수 있는 1998년 5월 현대자동차 정리해고반대 파업투쟁의 경우, 노동부와 사측 그리고 민주당으로 이어진 삼각편대는 압박전술을 구사하며 끊임없이 현자 노조와 민주노총을 상대로 물밑 교섭을 시도하였다. 결국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은 노사정 합의를 거치면서 무산되었고,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정리해고제를 수용하는 노정합의를 진행하여 277명의 정리해고자 절반이상을 식당 여성노동자들로 채우게 된다. 그 이후 총파업선언-양보교섭-총파업철회의 상황은 반복되었다. 1999년 4월, 공공연맹을 중심으로 한 총파업 투쟁이 전개되고, 서울지하철 파업을 통해 주요한 투쟁전선을 형성하지만 "구조조정 시 정부와 사전협의나 면담"을 합의하는 수준에서 파업을 정리하게 된다. 교섭전술과 투쟁전술을 배치하는데 있어서, 정리해고제 반대, 구조조정 철회투쟁에 이어 사유화 저지투쟁에까지 노동진영의 대응은 양보교섭을 통한 투쟁의 철회라는 양상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지도력 구축

이번 합의안을 이유로 민주노총 지도부는 총사퇴를 선언하고 나섰다.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으나, 이렇게 된 상황 역시 보다 분명히 살펴 볼 문제가 있다. 왜 번번히 총파업을 목전에 두고 파업을 철회하게 되는가 그리고, 양보교섭을 수용하게 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조합원들의 아래로부터의 의지로 민주노총 지도부가 사퇴하기도 하고(98년), 혁신을 강조하면서 시간엄수와 사업의 책임성 강화를 전 간부에게 요구하기도 하였지만(2000년) 문제의 핵심은 지도부 교체나 성실한 지도부가 아니라, 정치적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지도부를 어떻게 구축하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지도부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올바른 투쟁노선에 근거해 노동자 투쟁, 파업투쟁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다하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있다. 지도력의 구축은 아래로부터의 조직화에 근거하고 투쟁의 과정에서 검증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발전파업에 대하여 총파업 투쟁을 조직하려 분투하고 실제로 조직했던 현장의 많은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들은 올바르게 평가받아야 하며 지지되어야 한다. 동시에 그렇지 못한 활동가들에게는 지도부에 못지 않은 냉엄한 평가가 현장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사유화 저지투쟁에 대한 동조파업을 조직함으로써 보여주었던 많은 노조의 연대의 정신은 결코 훼손되어서는 안될 것이며, 지도력은 반드시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재구축 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라는 총체적이고 일방적인 공세 속에서 사유화·해외매각 저지투쟁은 그 자체로 정치투쟁이었지만, 정치적 지도력은 여기저기 분산된 측면이 있었다. 이는 우리 운동의 현실이자 모두의 책임이다. 통합적 지도력의 구축, 이것은 특히나 정권과 자본의 전방위적 압박과 탄압속에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벌여내는 노동운동의 중차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명운을 건 싸움, 신자유주의 반대 공동투쟁전선으로 나아가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근본적인 과제들로 현재의 긴급한 대응을 대치시키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또한 분노하고 흥분하여 지도부에 대한 비판에만 머물러서도 안된다. 지난 98년 2월 6일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법 법제화를 핵심으로 하는 노사정 합의를 수용 한 직후의 상황도 현재와 같은 대중적 공분 속에서 지도부가 사퇴하였으나 총파업은 조직되지 못했다. 당시 2월 9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가 소집되어 고함과 삿대질 속에서 지도부의 합의가 부결되고, 민주노총 1기 지도부 전원사퇴와 2월 13일 총파업을 결의하였으나, 현장은 조직되지 못했으며 비상대책위는 2월 12일 역량부족을 이유로 다시 파업을 철회했던 경험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상황에서 분노의 열기는 조직적 행동을 통한 투쟁의 재조직화로 이어져야 한다. 총파업은 유산되었지만 투쟁의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며 오히려 발전노조의 파업 과정에서 확인된 각계각층의 사유화 반대의 의지, 국민 80%가 넘는 발전소매각 반대여론 등 신자유주의 사유화 반대에 대중적 공감 역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긴급하게 조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3월 30일 2002년 제 1차 민중대회에서도 노동자뿐 아니라 빈민, 공무원, 학생, 장애인 등 그야말로 각급 계급대중이 결합하여 예상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투쟁이 진행되었고 그렇게 분출되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비단 발전노조 파업투쟁에 대한 연대를 넘어서 공동투쟁 전선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국가 기간산업 사유화와 해외매각이 현실화되고 각종 구조조정으로 인해 노동의 유연화와 불안정노동은 심화되어 노동자들은 피를 말리고 있고 민생파탄이 극에 달해 있으며, 최옥란 장애해방 열사와 싹쓸이식 철거에 투쟁하는 노점상 빈민들이 온몸으로 증명하듯 경쟁에서 배제된 이들에게 가혹하게 가해지는 생존권의 위협 상황, 더욱이 공무원 노조, 발전노조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저항이 정권의 무자비한 폭력적 탄압에 의해서 기본권 침탈 등의 상황이 이어지면서 대중투쟁의 확대가능성이 여전히 살아있다.
또한 정권 말기의 신자유주의 공세와 탄압은 지배계급 스스로의 위기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유화 반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확대되고, 김대중 정권의 지지율은 최악이며, 국민경선제로도 돌파하지 못하는 정치적 위기 상황이 반복되고, 금융비리는 끊임없이 확산되고 있다. 어떻게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강화하고 기간산업을 팔아치우려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저들 역시 명운을 건 승부를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유화·해외매각을 축으로 한 자본과 정권의 총공세에 직면하여 노동자 민중의 대응 역시 주저하거나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발전노조에 대한 지원과 연대투쟁을 넘어 사유화 저지투쟁의 전선을 확대 강화시켜 내기 위한 구체적 방침이 제출되고 공유되어 한다. 그것은 민주노총 차원에서는 "발전소 매각을 강행하거나, 현장에 대한 전면탄압이 진행될 경우"라는 꼬리표를 단 총파업투쟁이 아니라 구체적인 일정과 시기를 못 박는 총파업의 조직화이다. 지도부에 대한 책임있는 비판과 함께 총파업을 구체적으로, 실제로 조직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실행해 나가야 할 때이다. 동시에 민주노조운동의 시대적 과제를 아래로부터 제기하면서 노조운동의 혁신의 기운을 아로새겨 가야 할 것이다.
또한, 이미 이 투쟁이 전체 민중과 정권의 대결로 확산되고 있으며 지난 4년 동안의 전체 민중의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이 바로 발전노조의 파업투쟁을 계기로 신자유주의 사유화 저지투쟁으로 집약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각인하고 있는바, 따라서 신자유주의 사유화 저지투쟁을 전민중적 과제로 받아 안고 이를 확산시켜 나아가기 위한 계획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기간산업 사유화·해외매각 저지 범대위]를 중심으로 각급 대중조직 및 사회단체들이 확대 결합하여야 한다. 그것도 몇몇 단위의 제한된 결합이 아니라 전국적이고 전민중적인 의지를 모아 민주적 결정에 의해 이 투쟁의 민중적 지도구심을 형성해야 한다. 따라서 비상시국회의 등 전민중의 전국적 의지를 모아 나갈 수 있는 계기를 확보하고 투쟁의 지도력을 세워 전민중적 신자유주의 반대투쟁 전선으로 나아가야 한다.

비상한 시국에 민주노조 운동 나아가 노동자 민중운동은 명백히 기로에 서 있다. 노동자의 힘과 단결로 그리고 전 민중의 공동투쟁으로 신자유주의 사유화 저지투쟁전선을 다시 복구시키며 혁신할 것인가 아니면, 퇴각을 거듭할 것인가. 명운이 걸린 싸움에서 반드시 노동자 민중이 승리할 수 있도록 투쟁해 나가자. S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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