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130호 | 2002.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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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건 후퇴없는 주5일제 쟁취 투쟁]의 문제점

[사회화와노동]편집팀


2년을 끌어온 노사정위의 [주5일제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노사정위는 이번 주말에 한국노총과의 합의를 통해 노사정위 주5일제 안을 확정짓는다는 계획이다. 물론 아직 한국노총과의 최종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합의안이 국회 입법절차를 밟은 것도 아니다. 주5일제 도입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온 재계 측의 볼 맨 소리도 그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주5일제 도입문제는 이제 지난해 9월 이후로 한고비를 완전히 넘겨 몇 가지 세부적 안 조정만을 남긴 채 실제적인 단계적 도입-시행 수순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대선이 끼어 있고, 재계와 한국노총 내외간의 몇가지 논란거리들이 남아있지만, 그것이 큰 쟁점은 아니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총은 생리휴가, 연월차 휴가 등 노동조건의 후퇴 없는 제도 도입 쟁취를 위한 파업투쟁 의지를 천명한 가운데, 4월17일에는 노사정위 사무실을 점거함으로써 기만적인 노사정위 주5일제안 철회투쟁을 벌이고 나섰다. 점거에 나선 민주노총은 '노동조건 후퇴없는 주5일제',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 희생없는 주5일제'를 요구하면서, 노사정위안 철회와 전산업에 대한 동시적인 주5일제 시행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안 철회 투쟁의 목표와 성격이 '노동조건 후퇴 저지'가 아니라 '노동조건 후퇴없는 주5일제 쟁취'로 왜곡되어 있음을 확인하면서, 그동안 수차례 밝혀온 우리의 주5일제 투쟁 반대 입장과 그에 관한 우리의 문제의식이 주장하고자하는 바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하고자 한다.


주5일제[안] 철회투쟁의 문제점


노사정위가 내놓은 주5일제안이(이하 안) 저임금·장시간노동의 제거가 아니라 임금·노동시간제도의 탄력화에 그 방향이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안]은 휴일휴가를 큰 폭으로 줄이고, 탄력근로제를 6개월∼1년 단위로 확대하고, 생리휴가와 주휴를 무급화하며, 초과근로 할증률을 깎는 등 노동조건을 크게 후퇴시키는 노동법 개악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안]은 노동자 국민 삶의 질 향상이라는 기본취지와는 전혀 무관하고, 국제경쟁력 강화와 휴일·휴가제에 대한 국제기준 적용이라는 또 다른 기본취지를 쫓을 뿐이다. 이점에 관해 민주노총의 [안]철회투쟁은 정당하고 긴급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삶의 질향상을 위한 주5일제와 노동조건 후퇴를 가져올 주5일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안]의 불충분함을 문제삼는 민주노총의 태도이다.
즉 민주노총은 주5일제 자체는 노동자 삶의 질 향상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것'이지만, 이에 부가되는 노동조건 후퇴와 단계적 차별적 시행이 '나쁜 것'이라는 역사적 착각속에서, 현행 법정근로시간의 단축은 어떤 형태로든 언젠가는 전체노동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실현불가능한 바램을 가지고, 온전한 주5일제 쟁취와 이의 전면적이고 동시적인 도입-시행을 [안]철회투쟁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온전한 의미의 주5일제는 실현가능한가 아니면 시대착각인가


'나쁜 주5일제'와 '좋은 주5일제'가 구분될 수 없음은 경제위기가 진행중인 가운데 추진되는 노동신축화 전략의 일환인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정책이 이전시기 (구)케인즈주의적 노동타협정책이였던 노동시간단축정책이 가졌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새케인즈주의적(신자유주의적) 노동신축화 정책이 기존의 노동정책과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완전고용을 정책적 목표로 상정하지 않고 완전포기(혹은 거부)한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적 정책당국은 오히려 효율성 임금을 통해 상당한 규모의 비자발적 실업을 용인(혹은 부추기는)하는 가운데, 노동시간 단축에 의한 '일자리 나누기'를 시도한다. (여기에서 효율성임금이란 예컨대 보너스임금, 연봉제, 스톡옵션을 말하는 것으로, 집합노동자의 평균생산성을 기준으로 임금을 결정짓는 생산성 임금체계와 달리 임금의 크기에 따라 생산성이 결정된다고 보는 임금체계이다. 결국 임금은 개별 노동자들간에 엄청난 편차를 가질 수 밖에 없고 자연히 노동자들간의 경쟁이 심해지고 임금결정과정에서 여타의 제도적 조직적 개입은 봉쇄되어 임금의 신축성이 노동, 고용의 신축화를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비정규직의 비중을 증가시키고 고용구조를 탄력화함으로써 (실업의 조직화를 통한 간접적 방법으로) 노동의 신축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전시기 노동정책이 (실제적인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완전고용 실현이라는 거짓간판을 내건 가운데, 중심부 국가내 노동자들을 포섭하고 개량화함을 통해 혁명적 노동운동세력을 탄압하고 축출하는데 그 목표를 두었다면, (이제 더 이상의 성장과 고용확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구조적 불황기인) 신자유주의 시대 노동시간단축 정책의 의도는 경제위기극복이나 경쟁력 강화 혹은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극히 불분명한 공문구를 정책목표로 내건 가운데 (고용의 불안정화와 노동통제강화를 양축으로 하는) 노동시장의 신축화를 위한 법제도적 개혁을 통해 전방위적인 노동의 분할과 배제를 의도한다.
때문에 약 10%내외의 노동자들이 노사정위[안]으로 받게될 혜택의 본질은 이후 전노동자에게 확산되고 되어야할 혜택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분할을 영구화하고 90% 노동자들의 배제를 확정짓는 수단일 뿐이다. 전후 호황기 미국경제에서 이루어졌던 노동시간단축을 불황기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이 지배적인 현시기 노동운동의 과제로 오인한 착각은 이제 [노동조건 후퇴없는 주5일제], [비정규직 희생없는 주5일제]라는 실현불가능하고 형용모순적인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건 후퇴 저지·불안정 노동철폐는 주5일제 쟁취투쟁의 들러리가 아니다


불안정화된 일자리를 가진 절대다수의 노동대중들에게 법정노동시간의 단축은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이미 현행 법상 주44 노동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자들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처하게된 이유는 법정노동시간이 길어서가 아니라 이들을 법적 보호로부터 몰아낸 노동의 불안정화 때문이다. 때문에 장시간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인 주5일제 도입을 장시간 저임금노동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해야한다는 주장은 앞뒤가 바뀐 꼴이다. 더군다나 노동환경과 고용조건을 더욱더 불안정하게 악화시킬 뿐인 노동법개악조항이 그 본성상 주5일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현실이라면, 우리는 주5일제 투쟁의 진의마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인 것이다.
애초에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안정'이란 주장은 정리해고 반대투쟁이 반대일변도의 과도한 투쟁이라는 이유로 정리해고 분쇄투쟁을 노동시간 단축 쟁취라는 현실적인 정책대안요구투쟁으로 대체하면서 등장하였다. 그후 이같은 주장은 [실질임금 삭감없는 주40시간 쟁취]를 거쳐 [노동조건 후퇴없는 주5일제] 요구로 끊임없이 그 요구수위를 낮추어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요구수위를 낮추어 대중적 결집도와 현실성을 높이려는 애초의 의도는 실패하거나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오히려 이제와서 노동법개악으로 나타난 주5일제 도입을 일면 주5일제 도입자체를 대세화시킨 민주노총 투쟁의 성과임과 동시에 한계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다. 4.2사태 이후 날로 심각해진 민주노총의 불분명한 입지는 이번 주5일제 논란을 통해 더욱 첨예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주5일제를 빌미 삼아 이루어지고 있는 노동조건 후퇴와 고용의 불안정화, 노동통제강화 책동에 맞선 현재의 투쟁을 보다 온전한 주5일제 쟁취투쟁으로 제한하는 것은 민주노총의 불분명해진 입지를 더욱 더 어려운 지경으로 몰고 갈 뿐이다. S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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