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14호 | 1999.11.16
첨부파일
social14.hwp

공기업화만으론 부족하다

채만수
GM에 매각하느니 마느니, 삼성과 이른바 역빅딜을 하느니 마느니 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대우자동차의 향방에 대해서 어떤 요구를 가져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물론 매각, 즉 재사유화를 전제하지 않은) 국유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가, '부르주아 국가의 기업'일 뿐이란 앙상한 관념에 충실한 일군의 논객(?)들로부터 경을 친 일이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제한된 상황 속에선 역시 '국유화만이 선택 가능하다'고 다시 말할 수 밖에 없다.
마침 현실은 노동자들의 요구 여하와 상관없이 적지 않은 수의 기업이 국유화 등 '공기업화'되어 가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프로그램에 따라 물론 차후 매각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말이다. 도산이 불러올 파국적인 사회적 파장을 두려워 하는 국가가 이번엔 이른바 '워크아웃'이란 이름의 자금살포정책을 통해서 벌이는 전래의 대기업 공황구제 정책이다.
그런데, 자금의 살포를 통해서 그 소유권만을 '공기업화'하고 그 경영과 운영은 사기업의 그것과 다름 없이 한다면? 그렇게 똑같이 이윤과 효율, 그리고 경쟁력의 원리에 따라서 경영된다면? 더구나 향후 국내외 독점자본에의 매각을 전제로 오로지 수익과 경쟁력을 위해서 대규모의 인원감축 등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허용한다면? 그렇다면, 그 공기업화는 자금의 살포를 통한 대중적 부담, 즉 인플레이션과 고율 조세의 부담만 가중시킬 뿐 어떤 친노동자적·친대중적 보람도 있을 수 없다. 자본주의적 국·공유기업이란 것이 원래 사적 자본의 연장선상에서 그 사적 자본 일반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을 그 기본적 성격이요 역할로 하긴 하지만, 공기업화의 결과가 이렇게 끝나고 만다면 그것은 정말 단지 자본을 위한 공기업화일 뿐이다.
대우 계열의 기업 등과 같은, 파산 위기의 대기업에 대해서 노동자가 국유화 등 공기업화를 요구하는 것은 결코 그렇게 자본의 구제를 위한 것이 물론 아니다. 비록 자본주의적 생산의 협소한 틀 내에서이긴 하지만 공기업이 그 고유의 소유형태로 인해서 가질 수 있는 제반의 공공성을 극대화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죽 쑤어 개 주는 꼴'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사실 공기업의 공공성은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하나의 자본으로서 자신의 증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공기업으로서의 기본적 성격과 역할에 걸맞게, 즉 사적 자본 '일반'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운영되는 데에서 발현된다. 즉, 이윤과 효율 그리고 경쟁력의 원리가 아니라 그것들을 희생으로 한 운영에서 발현된다. 최근엔 신자유주의적 이윤 극대화, 효율 우선 정책이 공기업에도 급속하고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긴 하지만, 그 확산 이전의 사회기반산업, 즉 철도, 전력, 통신, 항만·부두 등의 전통적 운영방식이 그것이다.
그 전통적 운영방식이란 그 자체의 이윤과 경쟁력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 저렴한 가격으로의 상품 및 용역의 제공이 우선 눈에 띄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 공기업이 허용하는 최대한에서의 고용의 확대와 거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의 보장, 상대적으로 덜 가혹한 노동강도·노동환경 등도 그 중요한 내용을 이루고 있거나 혹은 그 중요한 내용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그간 한국에서의 공기업도, 물론 후반의 것, 즉 고용 확대와 고용 노동자의 상대적 생활 안정 등등의 측면에서는 많은 한계를 가졌지만, 대개 그러한 운영방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사회기반사업을 이루는 부문에서는 말이다.
그러던 것이 최근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속에 경쟁력 이데올로기가 공기업에까지 확산되고, 그리하여 심각한 고용 불안과 저임금 등등이 공기업 노동자들의 삶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 지경에까지 오게 된 데에 노동 측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당연히 단결과 투쟁의 부족이다. 40년대 말과 50년대 파시즘에 의한 공기업 내부의 진보적 분자의 청소, 50년대 및 60년대 극심한 고용 부족 시대의 공기업 노동자들의 안주(安住) 등등 여러 요인이 상호작용하여, 소수의 예외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기업에서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은 거의 봉쇄되어 있었고, 부패한 관료주의의 이권사냥만이 판을 쳐왔던 것이 오늘날에도 아직 청산되지 못하고, 공기업 노동자들의 목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기업화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내부에서 그 공기업을 공공성의 원리에 따라 운영하도록 강제하는 노동자들의 '경영통제'가 작용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비타협적인 단결과 투쟁만이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임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참고로, 노동운동의 일부에서 최근 사민주의적 기만인 '노동자 경영참가'가 아니라 '노동자 조직에 의한 경영통제'로 논의를 발전시키고 있는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주제어
경제 노동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