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북한인권사무소의 본질: 인도주의와 보호책임이라는 위선
 

2014년, 북한인권 문제에 관해 유엔에서 전개된 논의에 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가 발표되었고 유엔 총회는 보고서 내용을 반영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보고서와 결의안은 ‘북한에서 인도에 반한 죄가 자행되었다’, 그리고 ‘북한 당국은 자국 주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른바 보호책임, RtoP)을 이행하지 못했다’, ‘따라서 국제사회가 보호책임을 이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여기에는 심대한 현실정치적 함의가 담겨 있다. 그에 따라 ‘안보이사회는 인도에 반한 죄의 책임성을 규명해야 한다’, 즉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거나 표적 제재를 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권고가 자연히 동반되기 때문이다.
또한 보고서의 권고사항에 따라 2015년 6월 23일 유엔 북한인권사무소가 서울 종로구에서 문을 열었다. 사무소는 북한인권 관련 정보를 수집하여 책임성을 규명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보호책임, 강대국의 선택적 수단인가?

그렇다면 보호책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간단히 말해 주권국이 자국의 국민을 보호할 의사가 없거나 보호할 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국제공동체가 2차적 보호책임을 지며 마지막 수단으로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보호책임이 적용되는 네 가지 범주는 집단살해, 전쟁범죄, 인종청소, 인도에 반한 죄다.
보호책임에 관한 유엔의 논의는 이른바 ‘인도주의적 개입’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출현했다. 2000년에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발표한 <새천년 보고서>는 유엔의 인도주의적 개입(예를 들어 르완다, 구 유고연방에 대한 개입)이 민족주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면 인권에 대한 체계적, 조직적 폭력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에 따라 유엔에서 새로 등장한 논리가 보호책임이다. 2009년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역시 보호책임의 ‘세 기둥’을 언급했다. 즉 해당국가의 보호책임, 국제사회의 지원책임, 국제사회의 대응책임이다.
특히 2011년 리비아 사태에 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는 보호책임이 무력사용의 근거로 최초로 활용된 사례다. 결의안에서 언급된 ‘모든 필요한 수단’은 곧 무력사용을 의미했다. 그런데 유엔 결의문에서 제시된 군사작전의 목적은 리비아 시민 보호였지 결코 정권교체가 아니었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카다피 축출을 실제 작전목표로 설정했다. 따라서 중국과 브라질은 ‘국민보호라는 위장막을 이용하여 내전에 개입하고 정권교체를 시도했다’고 비난했다. 이는 현재 보호책임에 대한 국제적 지지 여론을 약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보호책임을 지지하는 논자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서방의 군사적 일방주의와 유엔의 보호책임을 명확히 구분하고자 하지만, 그 경계선이 모호한 것은 분명하다. 유엔의 보호책임 적용 여부는 오직 서방 강대국만 결정할 수 있다. 안보리는 보호책임에 관한 제재를 가할 재량을 갖지만 반드시 모든 경우에 제재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유엔 안보리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권한도 있다. 또한 보호책임의 명문화가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같은 군사적 일방주의를 제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유엔이 미국에 제재를 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서방 강대국이 상황에 따라 군사적 일방주의를 가동할 수도 있고, 보호책임을 활용하여 정권을 무너뜨리길 바라는 국가를 공격할 수 있는 권리를 향유할 수도 있고, 때로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북한에 대해 보호책임이 언급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국제사회의 대응책임’이라는 명분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한에 직접 개입하기 위한 논리적 기반이 구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런 개입이 당장 이뤄지리라 예상할 수는 없다. 우선 앞서 언급한 것처럼 리비아 사태를 계기로 보호책임을 명분으로 한 무력개입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해졌다. 또한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북한에 대한 무력개입은 한반도에서 전면전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보호책임’ 논리는 지속적으로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용도로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우선 언급되는 것이 국제형사재판소 기소나 표적 제재다. 하지만 국제형사재판소 역시 강대국의 이중 잣대가 적용된다. 이는 자국 주권에 대한 침해라며 미국이 여전히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을 위한 로마규정을 비준하지 않고 있는 사실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북한인권운동, 미 국무부 ‘인권외교’의 창인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기금’(NED)은 1999년부터 2010년까지 670만~1190만 달러를 북한인권 단체에 할당했다. 북한정부를 반대하는 민간 라디오, 남한에 있는 북한 출신 인사를 대상으로 미래 북한지도자를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이 대표적 사례다.
NED는 비정부기구(NGO)인 듯 외양을 띠고 있으나 미 국무부에 의존적이다. NED는 비정부적 구조 내에서 활동하지만, 미국 정부가 재정을 제공한다. NED는 의회와 국무부 기금을 네 개의 ‘핵심 수령자’에 분배한다. 자유노동조합기관(미국노총 기구), 국제민간기업센터(미국상공회의소 관련 조직), 민주당의 국제재단, 공화당의 국제재단. 또한 NED 기금의 30%는 재량에 따라 해외 조직에 분배된다.
냉전 말기부터 NED는 사회주의 국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북한에 대한 NED의 광범위한 의제는 ‘독재 체제의 개방’이었다. NED는 외부로부터 “2차 문화”를 형성한다는 목표로 기금을 투여했다. 여기서 2차 문화란 주류 문화와 구별되는 자율적 문화 공간을 의미하는데, 사실상 반정부 운동을 의미한다.
NED가 발간하는 <민주주의 저널>의 1998년 특별판은 ‘북한 굴락에서 나온 목소리’였다. (굴락의 사전적 의미는 과거 소련에서 노동 수용소를 담당하던 정부기관이다.) 2004년 미국 의회는 북한인권법을 통과시켰다. 그 후 <북한인권시민연합>을 지원했고, 북한의 인권침해에 관한 국제회의를 조직하기 위한 대규모 자금을 지원했다.
NED는 네 개의 대북 라디오방송을 지원했다. 열린북한방송, NK 커뮤니케이션스, 자유조선방송, 자유북한방송. 자유북한방송의 설립자에 따르면, “NED의 기금과 지원이 없었다면 자유북한방송은 현재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자유조선방송의 설립자도 “방송을 가능하게 한 것이 NED”라고 말했다. 방송은 북한 시스템과 지도자를 비판하면서 청취자들이 정부에 대항해 봉기하라는 직간접적 호소를 담는다. NED는 자신이 비정부기구라고 선전하지만 결국 미국 ‘인권외교’의 예봉으로 기능한다.

현실 사회주의와 인권 이슈

물론 현재 북한뿐만 아니라 과거 소련과 동유럽 사회에서 인권 이슈가 오히려 ‘약한 고리’가 되어 서방의 지속적인 공격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최근에도 자주 언급되는 헬싱키 조약(1975년)의 사례를 보자. 헬싱키 조약은 미국을 포함한 서유럽 국가와 소련을 포함한 동유럽 국가 등 35개국이 서명했다. 조약이 제시한 국가 간 관계의 10개 원칙은 ① 동등한 주권, ② 무력 사용과 위협 자제, ③ 영토 불가침, ④ 영토 보전, ⑤ 분쟁의 평화적 해결, ⑥ 내정 불간섭, ⑦ 사상, 양심, 종교, 신앙 등 인권과 기본적 자유 존중, ⑧ 인간의 평등과 자결권 보장, ⑨ 국가 간 협력, ⑩ 국제법상 의무 이행이었다.
애초 소련은 헬싱키 조약이 소련 외교의 승리라고 보았다. 영토 불가침과 영토 보전이라는 원칙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유럽에서 소련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 바로 이러한 이유로 미국 내에서는 보수파의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그런데 원칙 중 인권 보장은 참여국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 초점이 점차 소련과 바르샤바조약기구 가입 국가에 맞추어졌다. 훗날 키신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목적은 국제협정에 의하여 소련이, 1968년의 체코 및 1956년의 헝가리 봉기나 시위 같은 것을 앞으로는 탄압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벨이나 바웬사 같은 비전과 용기의 지도자들은 헬싱키 선언에 들어 있는 이 조항을 이용하여 공산 전체주의를 반대하는 근거로 삼았으며 마침내 동구유럽의 해방을 가져왔다.”
따라서 기존 사회주의 사회에서 오히려 국가의 억압적 기능이 존속되거나 강화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인권 이슈가 사회주의 사회의 강점이 아니라 오히려 약점으로 전환되었는지 분명히 해명해야 한다. 사회주의를 자신의 이념으로 정립한 노동자운동이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인권 이슈의 질적 도약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현실 사회주의의 역사는 심대한 역설이다.

북한인권사무소, 갈등 유발이 목표인가?

서울에 개소한 유엔 북한인권사무소의 궁극적 역할은 인도에 반한 죄를 자행한 책임자를 규명하는 데 있다. 따라서 북한인권사무소의 존재 그 자체가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인권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 상당수는 북한인권사무소 개소를 환영하고 있다. 이는 북한 정부와의 갈등 그 자체가 그들의 목표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는다.
또한 한국 내에서 북한인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동아일보는 “유엔은 北인권사무소 여는데 한국은 북인권법도 없으니”라는 제목의 사설을 발표했고 중앙일보도 “북한인권사무소 개설을 계기로 여야는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엔 북한인권사무소의 역할이 처벌을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책임성 규명에 초점을 맞춘 이상, 이에 즈음해 북한인권법안을 제정하자는 주장도 유엔 사무소의 기능을 지원하는 데 방점을 찍을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북한인권 이슈는 점점 더 파고가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북한인권사무소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점점 더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유엔의 인도주의적 개입이나 보호책임론이 강대국의 현실정치를 위한 선택적 수단이고, 북한인권운동의 상당 부분이 미 국무부가 지원하는 인권외교의 예봉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본질을 인식하는 출발점이다.

 
2015년 7월 16일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