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매일노동뉴스)
[입장] 노동개악과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 자신있게 하자!
20대 총선 결과와 변함없는 ‘노동개혁’ 의지
총선이 끝났고 여소야대 정국이 열렸다. 새누리당의 과반 확보와 더민주당의 참패로 예측했던 여론조사와는 완전히 다른 결과였다. 보수언론도, 노동자운동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이다. ‘옥새투쟁’까지 벌어진 새누리당의 공천파동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여당의 자기분열과 이를 둘러싼 쟁투가 새누리당에 대한 불신과 反박근혜 정서를 키우면서 기존 지지자들과 부동층을 돌아서게 한 것이다. 한편, 불평등과 실업이 만연해 있는 현실에 불만을 가진 청년들의 이른바 ‘흙수저론’이 새누리당 심판론으로 이어지며 20~30대의 투표율 상승을 불러온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이번 총선 결과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은 급속하게 진행될 것이고, 새누리당 안에서의 지도력도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러나 노동자운동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노동개악과 구조조정은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관련하여 행정 관료들의 연이은 입장 발표가 있었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정해진 일정에 따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고용노동부 장관도 “19대 국회가 종료하기 전 3당 지도부에게 노동개혁 입법안 처리를 간곡히 요청하겠다”고 했다. 보수 언론들도 거들기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국제 신용평가회사 무디스의 평가를 인용, "20대 총선에서 여당 의석이 40%에 그쳐 한국이 구조개혁을 이행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개혁이 지연되면 한국의 잠재성장률도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앙일보는 “19대 국회는 민생법안 처리하고 문 닫아라” 라며 민심의 무서움을 알아야 한다는 말로 야당을 압박하고 있다. 정부와 보수 언론들이 이토록 ‘노동개혁’을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이유는 경제위기에 따른 구조조정을 쉽게 하기 위해서다. 더 정확하게는 재벌들이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구조조정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구조조정을 위한 포석, 노동개악
사실 모두가 선거 판세에 관심이 쏠려있던 동안에도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은 차근차근 이루어지고 있었다. 노동개악 입법 통과가 순탄치 않자 정부 지침으로 현장을 흔들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양대 지침(‘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과 2016년 『노동개혁 현장실천을 위한 임금·단체교섭 지도방향』이 그것이다.
노동부의 임단협 지도지침은 ●상생고용을 위한 임금교섭 지도 ●공정하고 합리적인 노동시장 질서 확립 상생의 ●노사관계 구축 공공부문 지도방향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 자체로는 좋아 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인 부담을 지우는 것들뿐이다. 이 지침서는 더 쉬운 해고, 더 적은 임금을 가능하게 할 구조 마련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취업규칙 개악이나 해고를 하려는 기업의 입장에서 부딪힐만한 법적 제재를 피해갈 수 있는 힌트도 준다. 이에 따라 임금 부분에 있어서는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임금피크제 확산, 임금인상 자제를, 고용 부분에 있어서는 저성과자 해고와 장시간(최대 60시간)노동 확대, 노동시간 유연화 등을 통해 저임금·고강도·불안정노동을 제도화하려 한다. 무엇보다 노동개악에 반대하고 나설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하기 위해 ‘위법 불합리한 단체협약 시정지도’라는 이름으로 사용자의 인사권과 통제권을 확대 강화한다.
사용자의 일방적인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허용한 ‘취업규칙 지침’과 통상임금 산입범위를 정부가 자의적으로 재단하는 ‘통상임금 지침’, 업무능력 결여와 근무성적 부진을 통상해고 사유로 규정하여 노동유연화와 임금체계개편을 강요하는 ‘공정인사지침’ 등 그간 정부가 추진해온 노동개악 구상의 총합인 것이다.
민주노총은 "노동부의 임단협 지도지침은 사용자를 위한 노동개악 종합해설서"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3월부터 본격화된 임단투에서 불법적인 양대 지침이 현장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투쟁을 조직하는 한편, 사업장별 파편화된 대응이 아닌 민주노총 차원의 총노동 전선 구축을 위하여 통일적으로 대응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①단협상 통상해고 사유에 ‘업무능력 부족·저성과’를 포함하는 것을 저지, ②임금체계 개편시 ‘노동조합 사전 합의 조항’ 명시, ③불이익 변경 여부와 상관없이 취업규칙 제·개정시 노동조합 합의 조항 명시 혹은 개별동의, 노사협의회를 통한 변경 금지 조항 명시, ④ 실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창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및 상시지속업무 정규직 고용원칙 수립·차별해소라는 공세적 대응 기조 유지가 주된 내용이다. 조직적인 대응의 힘을 모아 정부의 노동개악 프레임을 역전시키고 노동개악 지침을 폐기하고 입법을 저지하다는 계획이다.
노동자 전체에 대한 공격, 노동개악·구조조정에 맞서 경제위기의 책임을 재벌에게!
한편, 경총은 4월 17일 ‘양대 지침 경영계 가이드북’을 발표했다. 공정인사 지침의 목적이 저성과자를 쉽게 해고하는 것이 아니라 직무능력과 성과중심의 인력운영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징계해고·경영상해고·희망퇴직 등 해고·퇴직 관련 조치들은 과거와 동일하게 적용하라고 했다. 노동자 과반수를 차지한 노조가 있는 사업장과 관련해서는 “취업규칙 변경을 이유로 한 파업은 불법”이라며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적용하고 민·형사상 소송을 하라고 제시했다. 법적 근거가 불분명한 이러한 주장은 위법적인 양대 지침을 적극 활용하여 조직된 노동자들의 대응 뿐 아니라 미조직 노동자들의 반발에 대해서도 밀리지 말고 거침없이 노동개악을 추진하라는 주문으로 볼 수 있다.
이에 앞선 4월 9일에는 경제 5단체(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가 모여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성과·직무급으로의 임금체계 개편을 강하게 밀어붙일 것임을 결의하기도 했다. 노동계 반발을 고려해 신입사원부터 초임을 삭감하거나 별도 임금체계를 적용하도록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겠다는 얘기까지 오갔다. 고용을 늘리겠다는 명목으로 기존 노동자와 신규 노동자 모두의 노동조건을 하락시키겠다는 얘기다. 결국 자본과 정부는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총선 이후 일사천리로 통과시키려 했던 노동개악 법안 처리가 야당의 손에 의해 자연스레 없던 일이 될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개별 현장에 적용되는 정부 지침과 재벌들의 공격적인 구조조정에 대비하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
더민주당은 노동개악에 반대한다며 당선되었지만, 당선 이후에는 태도를 바꾸고 있다. 김종인 더민주당 비대위 대표는 “적극적인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발언했고, 최운열 더민주당 경제상황실장은 “과거 소수 야당이었을 때는 약자 편에 선다는 것만 생각했는데, 이제 제1당의 입장에서는 책임이 더 크다”며 “일부의 반발이 예상된다며 구조조정 필요성을 언급하지 않는 건 책임있는 정당의 모습은 아니다”라고 했다. 국민의당은 큰 쟁점이 없는 노동3법(고용보험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근로기준법)을 먼저 처리하고 파견법은 노사정위원회에서 다루자고 제안했다. 국민의당 같은 경우 새누리당과의 연합을 택할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국회가 법안 처리로 씨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와중에, 개별 현장에서 구조조정의 물살이 몰아칠 우려가 크다. 조선·철강·해운·석유화학 등 중공업분야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미 현대중공업은 3,000여명의 인원을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개악에 맞서는 투쟁이 단순히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한 압력행사 정도로 여겨져서는 안 될 일이다.
자본과 정부는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와 미조직된 노동자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노동자 내부의 희생을 통해서만 지금의 경제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호도한다.
총선에서 나타난 정권 심판의 기류를 급진화 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민중의 운동뿐이다. 노동개악 법안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투쟁과 동시에 위법적인 정부의 ‘양대 지침’을 현장에서부터 분쇄하는 단결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새누리당으로부터 돌아선 민심이 대선까지 지속될 것인지, 일시적인 분노의 표출인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정권 심판의 정서가 반영된 결과가 조금 더 열린 공간을 만든 것은 사실이다. 노동자운동이 노동개악을 원점으로 돌려놓을 투쟁을 자신감 있게 펼쳐야 할 때다. 위원장 구속 등 여러 모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민주노총이 다시 한 번 힘을 모으고,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번 총선, 진보정당의 성적표는 좋지 않았지만 울산과 창원에서 민주노총 전략후보가 당선되었다. 최근 구조조정 압력이 있는 중공업 분야의 노동자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상시적인 구조조정과 임금삭감을 강요받는 노동자들의 걱정과 기대가 함께 모인 결과인 것이다. 노동개악과 구조조정을 멈추는 운동으로 화답해야 하는 이유다. 당장 이번 노동절 투쟁부터 규모 있게 조직해보자. 경제위기 때마다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에게 가해졌던 가혹한 해고와 저임금·고강도 노동을 거부하고, 재벌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흐름을 만들어보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