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에 부쳐
-혐오가 아닌 연대로, 다시 페미니즘 운동을 시작하자.
 
여성들이 입을 열었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강남에서 한 여성이 살해됐다. 가해 남성은 “여자들이 나를 무시했다”며 살해동기를 밝혔다. 아무런 원한도 없는 사람을, 오직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였다는 것에 모두가 큰 충격을 받았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 사건은 ‘여성혐오’에 의한 범죄이며, 일상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연장이라는 주장이 퍼져 나갔다.
누군가의 시작으로 강남역 10번 출구에 포스트잇이 붙기 시작했다. “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다”, “나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두려움과 알 수 없는 미안함이 담겼다. 또 다른 ‘자신’이었을 피해자를 애도하는 메시지였다. 강남역 10번 출구는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의 고단함을 이야기하고, 위로하는 공간이 되었다.
추모 물결이 확대되는 것을 본 경찰은 가해자가 조현병을 앓고 있고, 이에 따른 망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오히려 경찰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확대할 뿐이었다. 여성들의 시선은 분명히 달랐다.
 
여성혐오는 왜 생겨나는가
 
살인이라는 극단적 사건을 하나의 원인으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의 배경에 여성에 대한 비하와 멸시, 재생산의 필요와 성적 욕구 충족으로의 대상화라는 사회적 맥락이 존재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OO녀’로 대표되는 여성 집단에 대한 비하, 곳곳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몰카’가 오르내리는 소라넷 같은 사이트, 아버지·남편·연인으로부터의 폭력까지. 여성들은 어디에서도 안전할 수 없었다. 이미 다양한 방식의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고 있던 여성들이, 이번 사건으로 자신의 존재 자체가 위험해지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여기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더군다나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무차별적 비난과 공격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넘어 ‘혐오’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여성혐오는 차별을 해소한다는 이름하에 역차별을 만들고, 남성들의 희생 위에 이익을 챙기는 여성들이라는 관념에서 발생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 급격하게 변화하는 성별 관계에서 성차별의 희생양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되었다는 피해의식이 구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페미니즘, 정확히는 페미니즘으로 대표되는 각종 제도 및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대한 혐오가 자리 잡고 있다. 여성혐오는 온라인 공간에서 남성성을 인정받기 위한 손쉬운 방법일 뿐더러, 남성들이 느끼는 ‘박탈감’을 공유하며 여성에 대한 불안과 불만을 공유하기 위해 선택하는 소통의 방식이기도 하다.
나아가 여성혐오의 이면에는 여성에 대한 왜곡된 욕망도 있다. 여성을 소유하고 통제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여성을 멸시하고 혐오하는 뒤틀린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다. 여성이 자신의 성을 매개로 남성을 유혹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것, 또한 이를 통해 부당하게 이득을 챙기고 있다는 것 등의 비난이 대표적인 예다.
 
혐오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
 
여성혐오는 여성들에게도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OO녀’의 범주에 들지 않기 위해 다른 여성과 자신을 분리하는 가운데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으로서의 다양한 욕망을 스스로 규제하고 검열하게 되는 것이다. 여성들은 여성혐오를 자기혐오로 경험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때문에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 칭하는 것 자체에 과도하게 반응하며 일부 과격한 여성들의 ‘무리수’ 정도로 취급하는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
끝을 모르는 경쟁, 실업과 구조조정이 만연한 현실은 대중들에게 분노와 무력감을 동시에 준다. 착취가 강화되는 것에 비례하여 저절로 저항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가 이중 삼중의 구조로 파편화 되고, 열심히 일해도 궁핍해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분노는 지배계급을 향하기보다 ‘타자’에 대한 증오로 이어지기 쉽다. 역사적으로 ‘타자’는 여성, 이주민, 장애인, 특정 인종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배제되어야 할 대상들에게 혐오의 속성을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움직임인 것이다. 이는 개인 혹은 공동체의 경계를 공고히 하며 일종의 안정감을 부여하지만, 모순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여성의 현실에서부터, 다시 페미니즘을
 
강남역 10번 출구의 메시지는 점점 다양한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여성들이 ‘안전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동안 개인의 일로, 누군가의 일탈적 범죄로 여겨져 왔던 많은 사건들의 이면에 여성에 대한 차별 혹은 혐오가 내재되어 있었음을 여성들 스스로 당당하게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혐오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여성들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강요받으며 초단시간 노동시장에 투입되고, 어렵게 취직한 곳에서도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언제 어디서나 성폭력의 위험을 느끼며 살고 있다. 소위 ‘여성들만 살기 편한 세상’이라는 것은 환상인 것이다.
이러한 착시현상은 페미니즘 운동의 부재에서 비롯됐다. 지난 10여 년간 주류화 된 페미니즘은 현실 운동이 아닌 정부 정책과 제도 개선의 영역으로 축소되었다. 여성들을 위한다고 하는 ‘혜택들’은 눈에 띄었지만, 실제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배제의 경험은 공론화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페미니즘은 시효가 만료된 것처럼 여겨지고, 심지어는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강남역 10번 출구의 추모행동 뿐만 아니라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여성혐오 반대’를 외치며 형성된 여성들의 네트워크는 주류화 된 페미니즘이 실제 여성들의 삶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맞서기 위한 운동이자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주체로서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정치적 이념이다.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고 도덕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나, 잠재적 피해자로서의 공포를 여성들 내부에 확대하는 방식은 운동이 되기 어렵다. 여성과 남성이 혐오와 적대를 키워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윤리를 만들기 위한 소통의 장을 열어야 한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퍼져나가는 목소리들로부터 안전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여성들의 적극적인 운동, 남성들의 연대, 그리고 페미니즘 운동 재건의 가능성을 기대해본다. 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의 혁신을 위해 고군분투해온 사회진보연대도 이를 위한 실천적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