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몸을 도구화하고 여성을 얕잡아 본 정부
정부가 의료인의 비도덕적 의료행위에 임신중절수술을 포함시키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이 비도덕적 의료행위를 한 경우 1개월 수준의 자격정치 처분을 받도록 되어있지만 그 유형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 개정령안은 비도덕적 의료행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처벌수준을 12개월 자격정지까지 강화했다. 이유는 최근 빈번하게 이슈가 된, 환자 진료 시 강제 성추행, 무허가 의료인 수술, 1회용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한 집단 C형간염 발발 등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여기에 보건복지부는 “모자보건법 제14조제1항을 위반하여 임신중절수술을 한 경우”를 포함시켰다.
정부가 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의료행위에 은근슬쩍 끼워 넣으면서 드러난 사실은 두 가지다. 여성의 몸에 대한 도구적 관점을 지녔다는 것과 낙태단속이 강화되더라도 여성들이 잠자코 있을 거라고 얕잡아 본 것이다. 역사적으로 정부는 경제성장을 위해 여성의 출산을 줄이거나 늘리라고 강요했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슬로건으로 상징되는 가족계획 사업시기에는 정부가 인구증가 억제를 위해 ‘월경조절술’이라는 이름으로 낙태 시술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반면 저출산 문제가 심화되자 경제성장을 위해 여성들이 출산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장하고 호시탐탐 낙태단속을 시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낙태단속의 명분으로 생명윤리를 운운하는데, 정부는 스스로가 경제성장에 따라 윤리를 취사선택해왔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여성들을 얕잡아 봤다. 아마도 낙태단속에 반발한다는 것은 여성들이 대외적으로 성관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모양새라 선뜻 나서지 못할 것이라고 여긴 듯하다. 하지만 여성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고 있다.
낙태처벌은 여성의 재생산권리 침해
낙태처벌은 단순하게 임신지속여부 결정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재생산의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다. 임신해서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길러야 한다! 그렇다면 누구와 함께 키울 것인지, 양육비용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여성은 인생일대의 변화를 감수해야 한다. 예정에 없던 결혼을 선택하거나 계획했던 학업을 중단하거나 살던 곳을 옮기고 직장을 바꿔야 하는 등의 결단이 필요한 문제다.
따라서 임신상태를 유지하느냐 마느냐의 결정으로 국한되어 봐서는 안 된다. 성관계에서부터 임신출산과 그 이후의 양육과정 전반을 여성의 재생산 과정으로 보고 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며, 이를 보장하기 위해 최소한의 조치로서 낙태가 있는 것이다. 성관계에서 평등하고 여성이 원하는 피임방식을 요구할 수 있는지, 학업이나 직업이 임신출산으로 중단되지 않을 수 있는지, 비혼 여성의 출산이 사회적으로 비난받지 않을 수 있는지, 양육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이 충분한지 등이 고려되는 것이 여성의 재생산의 권리에 대한 지표가 될 것이다. 낙태를 처벌하는 것은 이러한 요건들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낙태를 처벌한다고 낙태가 감소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여성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뿐이다. 출산을 택하지 않는 여성들은 낙태시술을 하기 위해 더욱 음성화된 경로를 찾아 위험한 시술을 감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루마니아에서는 낙태가 불법화되기 시작한 1965년부터 1984년까지 출산 10만 건 당 모성사망률이 21건에서 128건으로 증가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낙태가 합법화되면서 1970~76년 사이 낙태 5,000건 당 사망이 30건에서 5건으로 줄었다.
낙태단속은 정부의 꽃놀이패
시시때때로 정부가 낙태단속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는 정부의 무능을 감춰 여성에게 떠넘기기 위함이다. 저출산문제는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여성들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에 아이를 낳고 기를 여건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지금보다 나은 사회에서 살 것이라는 기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한 충분한 보육시설 및 지원, 경력단절을 축소시키고 여성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노력, 청년들이 안정적 수입과 고용이 보장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방안 모색 등에서 낙제점을 받고 있는 정부에게 손쉬운 방패막이가 낙태단속이다. 낙태가 쟁점이 되는 순간 국가의 책임과 여성의 현실은 지워지고 오로지 생명윤리를 저버린 매정한 여자, 몸을 함부로 굴리려는 뻔뻔한 여자들이자 잘난 척 하느라 애도 안 낳는 이기적인 여자들에 대한 비난만 부각된다.
동네북은 사양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동네북은 사양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일부 젊은 남성들이 사회적 좌절감을 애꿎은 여성에 대한 원망으로 쏟아내는 여성혐오에 대해 번지수를 잘못 찾았음을 일깨워줬던 것처럼, 아이를 낳고 기를만한 사회적 여건 마련에는 무능하면서 애 안 낳는 여자들을 단도리 하겠다는 정부를 좌시하지 않고 있다. 지금 여성혐오와 여성범죄에 맞서는 여성들이 확대되고 있고, 임신중절 처벌강화에 반대하여 즉각적인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또한 멀리 ‘검은 시위’로 낙태전면금지법안을 폐기한 폴란드 여성들의 운동이 한국 여성들에게는 용기를 주고 있다. 이러한 여세를 몰아 낙태 단속을 강화하려는 정부를 저지하자. 그리고 낙태를 죄로 간주하는 것에 반대하고 여성의 재생산의 권리가 보장되도록 요구하는 목소리를 더욱 높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