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평화, ‘사드 철회’ 말고 ‘복안’은 없다
- 문재인-트럼프 첫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의 첫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극우정당과 보수언론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언제 ‘반미’ 본색을 드러내고 트럼프 미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안달복달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을 할 필요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우리나라를 정말로 미국의 속국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 이상 문정인 외교안보특보가 한 “사드 가지고 깨질 동맹이면 그게 동맹이냐” 같은 말에 펄펄 뛸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도 미국에서 반발이 있다고 하자 “청와대의 뜻이 아니다”라고 즉각 해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6월 26일, 강경화 신임 외교부장관은 중앙일보-미국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포럼에서 “문 대통령은 사드 배치 결정을 취소, 철회할 생각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 체계 배치와 관련해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이 확보되면 사드에 대한 한국민의 지지는 더 강력해질 것이고, 결과적으로 한·미 동맹의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라고 발언했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도 성주 롯데골프장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사드 배치를 취소하거나 철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미 반입되어 가동되고 있는 사드 레이더를 작동 중단하거나 철거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문재인 정권은 극우 세력이 걱정할 만한 부분을 알아서 풀어 주고 있다. 따라서 벌써부터 시작된 극우 세력의 ‘종북정권’ 운운은 애초에 철 지난 염불일 뿐 아니라, 그럴 만 한 거리도 없는 일이다.  
 
종합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사드 반대를 절대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 “대통령이 되면 사드 및 외교 문제를 해결할 ‘복안’이 있다”고 강조하던 그 복안이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사드를 배치하되 국내와 중국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절차적 정당성’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들어와 가동 중인 사드는 묵인하면서 절차적 정당성을 찾겠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는가. 사드 철회를 통해 동아시아 평화로 나아가자고 외쳐온 성주, 김천, 원불교 및 평화시민들의 염원은 외면당했다. 무엇보다도 문재인 대통령의 계획으로는 동아시아의 엄중한 정세를 헤쳐 나갈 수가 없다. 미중, 북미, 남북 갈등은 그런 절충주의적인 방법으로 해결될 수 없고, 사드 철회 없이 평화로 나아갈 묘수도 없다.   
미국 지배층의 동아시아 정책 구상은 어떠한가?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만난 CSIS는 미국의 대표적인 외교·안보 싱크탱크다. CSIS가 2017년 낸 정책 제안서 “아시아 해양에서의 강압 대응”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의 부상이 동아시아 지역에 위협이 되므로, ‘계산된 위험’ 즉 센가쿠 열도, 스프래틀리 군도 등에서의 국지적 충돌까지 감수하면서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이 강경해 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계열 대표 싱크탱크인 CNAS(신미국안보센터) 역시 올해 5월에 낸 정책보고서 “삼해를 넘어서”에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CNAS는 미국 지도자들이 중국의 해양 도전을 심각히 받아들이고, 미국 해군력을 증강시키고 미군의 아시아 전진배치를 강화하고 다각화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코리 가드너 상원 외교위 동아태소위원장을 포함한 미국 공화당, 민주당 양당의 상원의원 18명이 함께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완전한 사드 배치를 압박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공개했듯이, 여야를 막론하고 미국 지배층은 동아시아에서의 미중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 판단하고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할 것을 꾀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의 해군력을 증강하고 동아시아에 더 많이 전개할 뿐만 아니라, 일본의 재무장화를 포함한 동맹국들의 군비 증강, 한반도의 사드 배치와 미 전략자산의 전개, 동아시아에서의 국지적 충돌 등이 계획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국굴기’를 걸고 지속적인 군사력 강화와 영토 분쟁 등을 통한 동아시아에서의 지배력 확장을 꾀하는 중국 역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동아시아 정세가 더욱 엄중해지는 속에서 한반도 사드 배치는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드 배치는 미국 MD체계로의 편입이고, 볏짐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일이다.
 
한미정상회담의 대표 의제라고 하는 북핵 문제도 마찬가지다. ‘선-비핵화’를 대화의 선결조건으로 고집하는 미국 정부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소리와 같다. 그러나 작동되고 있는 사드를 내버려두는 한, ‘핵 동결 시작’을 대화의 조건으로 거는 것 역시 별 신통한 소리가 아니다. 청와대는 사드가 한미정상회담의 공식 의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사드 문제를 우회한 북핵 대안이라는 것을 중국과 북한이 듣기라도 하겠는가. 결국 한반도 사드 배치를 용인하는 한, 미국의 비위는 맞출 수 있더라도 동아시아 문제의 해답은 묘연해진다. 미국이 사드 강요를 단념하게 해야, 동아시아의 군비 경쟁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것을 막고 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더 많은 무기가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환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이미 동아시아는 가히 세계의 화약고다. 군사비가 지난 10년 간 무려 74%, 전 세계에서 가장 가파르게 상승한 지역이다. 그 중에서도 한반도는 미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얽혀있는 곳이다. 풀 수 없는 매듭은 끊어야 한다. 사드를 철회하는 것에서 시작해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미국 핵무기 및 전략자산의 반입 한반도 금지, 남과 북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 한반도와 전 세계의 비핵화로 나아가는 것만이 평화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2017년 6월 30일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