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8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국에 온다. 방한 기간 동안 한미정상회담과 국회 연설을 할 예정이다. 트럼프의 방한은 아시아 순방의 일환으로 일본, 중국, 베트남, 필리핀 방문도 함께 이뤄진다.
한반도 전쟁 위기가 가라앉을 줄 모르고 있다. 트럼프가 지금껏 보여 온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행태를 고려했을 때, 방한은 경제, 군사 등 다방면에서 이를 동아시아에 관철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동아시아 평화와 민중의 권리를 침해하게 될 트럼프의 방한을 우리는 절대 환영할 수 없다.
전쟁위기 부추기는 트럼프
북한이 6차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강행하는 동안 트럼프는 막말과 군사행동 엄포를 번갈아가며 써댔다. 이미 한반도는 미국의 선제군사옵션 실험장이 된지 오래다. 9월 19일 트럼프는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밖에 없다”고 발언했고 사흘 뒤 9월 23일 미국의 전략폭격기가 북한 동해 국제공역까지 날아갔다. ‘최강의 전투기’니 ‘북한을 몇 번이나 초토화시킬 수 있는 항공모함’이 한반도에 찾아온다는 소식은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다.
갤럽의 9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58%가 북한에 대해 “평화적인 수단에 의한 목표 달성에 실패할 경우 군사 개입을 지지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트럼프의 호전적 노선 속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 등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해온 최근 정세가 여론에 미친 영향이다. 물론 미국의 공식 외교 채널은 여전히 평화적, 외교적 수단을 우선시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대북 공격이 그저 ‘공갈’이 아닌 ‘실제 쓸 수 있는 옵션’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대화와 협상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10월 13일, 연설을 통해 이란 핵협정 인증을 거부했다. 이란 핵협정은 2015년 미국 등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주도로 이란 핵무기 개발 중단과 경제제재 해제를 교환한 협정이다. 트럼프는 이 협정이 중동 지역에서 이란의 불법 미사일 프로그램 대처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협정을 만든 다른 정부들과 국제원자력기구는 트럼프를 비판하고 나섰다. 더욱이 트럼프는 이란과 북한을 한데 묶어 ‘불량국가’로 지목했고 근거 없이 양국의 핵무기 거래 의혹까지 제기했다. 이는 북한에 협상의 적신호를 준 것이다. 북핵·미사일 시험도 물론 문제지만 이를 빌미로 사드를 배치하고 군사압박과 대북제재를 강화하고 전쟁위협을 해대며 또 한편으로 전쟁무기를 팔아먹는 트럼프의 정책에 불안과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군사긴장 고조를 반대하고 평화국면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트럼프 정부를 강력하게 규탄해 나가야 한다.
한미FTA 재협상 강요, 인종차별 반이민정책
트럼프정부는 한미FTA 등 자유무역협정이 미국에 불리하다며 대대적인 무역 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미국 중심의 초국적자본, 세계은행이나 IMF같은 국제금융기구, 각국의 지배엘리트들이 추진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실패했음을 외면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자본의 자유와 이윤, 부자들의 재산만 늘려주고 노동자 민중의 삶은 황폐하게 만들었는데 트럼프는 미국 제조업이 해외 이전하고 무역적자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타국이 이익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왜곡하여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실패와 구조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내외부의 적을 설정하여 지지층을 동원해내는 우익 포퓰리즘이다.
트럼프 정부는 자국 내 많은 반대 여론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적 반이민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인의 일자리를 이민자들이 빼앗아간다는 것이다. 무슬림 국가 출신들의 입국을 제한하는가 하면, 멕시코와의 국경에 높은 장벽을 쌓고 서류미비 청소년 추방유예 프로그램(DACA)마저 폐지하기로 했다. 또, 난민 쿼터를 대폭 축소하는 등 이민자들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강화하고 있다. 백인우월주의 세력의 폭력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스포츠 선수들에 대해 ‘해고하라’는 막말을 일삼는 등 인종적 대립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니 미국 내 유색인·이민자 집단과 반인종주의 운동진영의 거센 반발을 너무도 타당하다. 미국의 이러한 반이민 정책, 소수자 차별 정책은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고 세계와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크다.
정부는 트럼프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때 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에 앉겠다”고 자임했으며, “(남북) 대화의 필요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며 문재인 식 햇볕정책인 ‘달빛정책’을 본격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을 막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미 간 대결이 격화될수록 독자적인 행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지난 9월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며 강경 대응으로 무게추를 급격히 기울이기도 했다. 트럼프 방한에 맞춰서 한국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안을 준비한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군사적 압박과 경제제재를 강화하는 미국의 정책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코리안 패싱’ 논란뿐이다. 9월 25일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대북특사는 “몇 시간 안에 미국과 북한이 군사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며 “(한국의 승인을 얻을)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꺼냈다. 정작 전쟁의 당사자가 될 한국이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소리다. 국빈으로 모실 예정이라는 트럼프 본인은 “전쟁 나도 저쪽(한반도)서, 수천 명 죽어도 이쪽(미국)아닌 저쪽”이라는 막말까지 했다. 그런데도 트럼프의 부당한 정책을 비판하지 않고 문재인대통령은 지난 10월 10일 “안보 위기에 대해 우리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다”고도 했다. 문재인정부가 호전적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나 추종이 아니라 평화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미국의 군사압박과 제재 일변도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평화의 의지를 보여주자
일부 보수언론과 정치권에서는 트럼프의 방한 일정이 일본과 중국보다 짧다며 아우성을 쳤다. 뼛속까지 친미인 그들다운 호들갑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내와 국외에서 전쟁과도 같은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사갈등과 대립을 부추기고 차별과 배제를 양산하는 트럼프는 미국 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다.
우리는 미국과 남북한 모두 한반도 군사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체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한미일 군사동맹이 아니라 한미일 민중의 평화의 연대를 실현해야 한다. 따라서 트럼프의 방한을 계기로 그 파괴적인 정책을 규탄하고 민중이 트럼프를 반대하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한국의 사회운동 진영은 ‘NO 트럼프 공동행동’을 출범하여 트럼프 방한 규탄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11월 4일에는 대규모 규탄대회가 개최된다. 트럼프에게 평화를 염원하는 한반도 민중의 의지를 보여주자.
2017. 10. 25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