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한 시대가 끝났다' - 미투 운동과 사회운동의 과제

시작은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성폭력 피해 경험 폭로였다. 문화예술계, 종교계, 학계, 정계 등 분야를 막론한 성폭력 폭로가 이어졌다. 각 사건에 대한 법정 공방도 한창이지만 권력형 성폭력,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진전되고 있다. 미투 운동 이후의 한국 사회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변화를 만들 것인지, 얼마나 강력한 변화를 만들 것인지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미투 운동의 배경
 
알려졌다시피 미투 운동은 2017년 10월 미국에서 ‘ME TOO’라는 해시태그로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고 대응한 운동을 참고한 것이다. 성폭력 경험 폭로를 통해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것은 미투 운동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대학가 반성폭력 운동에서,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의 활동(2000년)에서, SNS에서 진행되었던 ‘#○○○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2016년)에서도 볼 수 있던 양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기’ 한국사회를 뒤흔든 미투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배경을 짚어봐야 한다. 
 
첫 번째 배경은 촛불 이후 높아진 사회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다. 2016년부터 2017년에 걸친 촛불 집회와 그에 이은 정권 교체는 한국 사회에 강렬한 경험으로 남았다. 노동조합 가입 상담이 늘어난 것에서 보듯이 불의한 일이 발생했을 때 ‘저항할 수 있다’, ‘저항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두 번째 배경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20~30대 여성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교육의 기회가 많아 학력에서는 동세대 남성 집단과 비슷하거나 약간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직장 등 한국의 조직 운영은 여전히 남성을 기준으로 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용인한다. 또한 여성은 결혼을 하는 순간 전통적인 성 역할 요구에 노출된다. 이러한 간극에 분노하는 젊은 여성들이 최근 2~3년 사이 페미니즘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강남역 10번 출구·낙태죄 폐지 검은 시위 등의 집단행동, 《82년생 김지영》 <며느라기> 등 여성의 경험을 다루는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으로 나타났다.
 
미투 운동의 이러한 배경은 피해 여성들의 성폭력 폭로가 단지 가해자 개개인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넘는 의미를 지니도록 한다. 여성들이 직장 등 공적 사회에서 활동하며 입은 성폭력 피해는 한국 사회 민주주의의 문제이자, 여성 권리의 문제인 것이다. 
 
폭로에 나선 여성들
 

미투 운동은 성폭력 피해 여성이 가해자를 지목하여 언론에 폭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폭로를 통한 사건의 해결은 위험성을 지닌다. 명확한 사실관계가 규명되기 전에 폭로 자체만으로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되기 때문이다. 문화인류학자 김현경의 말대로 이것은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근대 형법 정신과 충돌한다. 신상을 공개하고 폭로에 나선 피해 호소인 역시 곤란에 처하긴 마찬가지다. 미투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정도는 다르지만 대부분 루머와 인신공격, 의심 등에 노출되어 ‘2차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 여성들이 폭로라는 방식을 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투 운동에 동참한 여성들은 폭로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겪은 피해가 ‘없던 일’ 취급당하지 않기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자는 내가 속한 집단, 신고를 받은 경찰, 사법기관 등이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여성 검사도 자신의 피해를 공식적으로 다룰 엄두를 내지 못했다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특히나 권력을 지닌 인물이 가해자인 경우 집단을 지키기 위해 사건을 숨기거나 피해자가 추가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결국 폭로를 통한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에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적·문화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드러낸다.
 
미투 운동의 과정에서 폭로의 방식이 권력을 이용해 성폭력을 행한 가해자를 고립시키는 데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가해자가 사실을 부정하거나 미흡하게 사과할 때, 추가 피해자가 등장해 자신이 겪은 비슷한 피해를 증언하는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성폭력 사건은 특성 상 물리적 증거가 부족해 가해자가 발뺌할 여지가 많이 있다. 그러나 비슷한 추가 피해자의 등장은 가해 행위가 존재했다는 근거가 된다.
 
잇따른 폭로는 가해자로 지목된 개인에 대한 고발을 넘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고민하도록 강제하는 집단적 움직임이 되었다. 특히 이것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다’, ‘함께 싸우자’고 호소하는 효과가 있다.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이 극단적 폭력에 대한 공포를 어떻게 경험하는지 집단적 말하기가 진행되었다면, 지금은 직장·학교 등 조직 안에서 발생하는 성폭력과 차별의 경험을 공유하고 문제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성폭력 상담 기관에서는 미투 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평소의 2배 가까이 상담 건수가 늘었다고 한다.
 
‘직장 내 성폭력’이라는 문제
 
미투 운동을 계기로 특히 ‘직장 내 성폭력’의 특성과 해결책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성폭력이 낯선 사람으로부터 발생하는 범죄라는 잘못된 통념과는 반대로, 미투 운동으로 드러난 사건 중 대부분은 ‘같이 일을 하는’ 관계에서 발생했다. 
 
직장 내 성폭력의 피해자는 성폭력이 발생한 순간에 강력한 저항을 하는 데에 곤란함을 느낀다. 직장 내에서 권력을 갖고 있는 가해자와의 관계가 틀어지면 불이익을 받는 것은 본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급자 여성 직원으로부터 성희롱 발언이나 스킨십을 지적받자 상급자가 태도를 돌변해 그 직원을 괴롭히는 일은 현실에 너무나 빈번하다. 피해자는 사건 대응을 고민하는 과정에서도 주변 동료들의 반응, 생계 및 이후 자신의 진로 등을 다층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성폭력을 신고하고 공식적으로 해결할 엄두를 내기가 어렵다. 가해자는 이를 악용하여 성폭력을 반복하거나, 다수의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행하기도 한다. 
 
직장 내 성폭력의 발생에는 직장 내 권력관계가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조직일수록 성폭력에 취약하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노동환경과 성희롱 발생은 높은 상관관계가 있었다. 공식적으로 성과를 평가하고, 업무 처리 속도가 빠르고, 야근이 빈번하고, 고용 형태 차별이 만연한 환경일수록 성희롱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았다. 같은 연구에서 직장 내 노동조합의 존재는 성희롱 발생을 제어하는 확실한 요인으로 드러났다. 
 
노동조합은 직장 내 성폭력 문제를 대응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주체다. 직장 내 불균등한 권력관계에서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은 일반적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것뿐 아니라, 여성들이 일하면서 겪는 고유한 문제들(성희롱·성폭력·임신·출산 등)을 집단적으로 해결하는 역할을 해 왔다. 노동조합은 직장 내 성폭력에 대응하는 피해자에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야 한다. 
 
현실에서 직장 내 성폭력의 피해자는 많은 경우 여성이다. 직장 내에서의 권력관계 외에도 공적 조직에서 여성이 어떤 존재로 여겨지는가는 직장 내 성폭력 발생에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이제 대부분의 직장에 여성 직원이 존재하지만, 남성에 비해 여성들은 직장 내에서 ‘동료’로 인정받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입직 과정에서부터 확인하는 결혼 계획, 공공연한 외모 평가, 주요 업무로부터의 배제, 분위기 띄우는 역할의 강요 등 여전히 여성의 역할은 부차적이거나 성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조직 안에서 여성이 남성 성욕의 대상으로서 성폭력에 노출되는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다. 
 
‘펜스룰’을 넘어야 한다
 
미투 운동을 접한 남성들은 일차적으로 ‘조심해야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변화이다. 그러나 조심해야겠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심지어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최근 언론을 통해 조명 받고 있는 ‘펜스룰’은 남성이 성폭력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것이 어떻게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로 이어지는가를 보여준다. 펜스룰이란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가 2002년 언론을 통해 밝힌 자신의 철칙으로 ‘아내 외의 여성과 단둘이 식사를 하지 않는다’, ‘아내 없이는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는다’ 등의 내용이다. 스스로는 매너이자 도덕으로, 자랑스럽게 소개한 철칙이지만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다. 펜스룰은 ‘나는 여성을 동료이자 인간으로 대하는 법을 모른다’는 고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펜스룰은 공적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여성 노동자로부터 공식 회의 자리 외에서의 세밀한 업무 지시와 도움이 되는 조언, 업무 외적인 관계맺음에서 오는 긴장의 완화와 신뢰 구축 등의 기회를 박탈한다. 직장 내에서 여성의 성장은 더욱 지체되고 직장 생활을 지속하려는 동인은 떨어질 것이다. 
 
미투 운동 이후 개개인은 조심하는 것을 넘어, 성폭력의 방관자·동조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내가 서지현 검사가 성희롱 당할 때 같은 자리에 있던 동료라면, 또는 그 피해에 대해 전해들은 남편이나 친구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성폭력 방관자·동조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속한 집단(가족, 직장 등)을 적극적으로 진단하고 바꾸는 것을 포함한다. 소속 집단에서 여성들은 어떤 존재로 여겨지고 있는지, 근속이나 주요 직책을 맡는 비율은 어떠한지, 여성을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언행은 없는지를 주시하고 개입해야 한다. 직장 내에서 책임 있는 직급을 맡고 있다면, 또는 노동조합의 간부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미투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집단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 역시 존재한다. 첫 번째는 소속 집단이나 공간의 성폭력·성차별에 대해 진단하고 변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피해 경험을 공개 폭로하는 방식의 운동에 개개인이 참여하기란 쉽지만은 않다. 그렇다면 개별 사건을 폭로해서 법적 대응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속한 업계의 상황을 진단하고 요구를 만드는 운동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직종·업종의 특성에 따라 성폭력의 양상이나 필요한 조치들은 다르다. 또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실태 조사와 토론, 요구를 선정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경험이 된다. 
 
올해 3월에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시도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3월 1일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라는 상설기구가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계를 포함해 미투 운동에서 특히 부각되었던 문화예술계는 노동조건이 열악하기로 유명할 뿐 아니라 일반 직장에 비해 성폭력 예방 및 처리를 위한 제도 자체가 부재했다. 그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든든’은 성폭력 예방뿐 아니라 피해자 보호·지원, 영화계 교육·홍보, 나아가 성평등 환경을 위한 정책 입안을 목표로 한다. 
 
3월 7일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기자회견을 통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성폭력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1.2퍼센트가 학교에서 성폭력을 경험했으며, 31.9퍼센트는 목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전체 피해자의 50퍼센트 가량은 ‘불이익이나 주변 시선이 두려워 그냥 참고 넘어갔다’고 답했다. 결과를 바탕으로 노동조합은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또한 교육공무직본부는 서지현 검사의 폭로 직후에 성명서를 발표해 권력집단의 성폭력에 맞서 노동조합이 함께 싸우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현실을 진단하고 요구를 만드는 운동을 기획했다는 점에서 다른 단위에 귀감이 된다. 
 
3월 9일에는 이주여성인권센터, 이주여성쉼터협의회 등이 국회의원회관에서 간담회를 열어 이주 여성의 성폭력 피해 사례를 공유하고 요구안을 발표했다. 요구안에는 이주여성 전담상담소 요구, 이주여성 성폭력 실태조사, 모국어로 된 자료 제공, 체류 불안 없이 폭력 피해를 호소할 수 있는 지원 체계 마련, 성폭력 피해 신고 즉시 사업장 변경 보장, 이주여성노동자 채용 사업장의 성희롱 예방 교육, 선주민 배우자를 위한 인권 교육 등이 포함되었다. 이처럼 특정 집단의 성폭력 예방과 해결을 위해 필요한 요구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두 번째로 성폭력 관련 법제도의 개선 역시 필요하다. 미투 운동을 통해 성폭력을 해결하는 공적 제도의 미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표적으로 개정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기되는 것은 강간죄에 대한 형법인데, 최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UN CEDAW)가 한국 정부에 개정을 권고한 사안이기도 하다. 한국의 법에서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이 반항하기 어려울 정도로 존재했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 피해자가 강력하게 저항했음을 입증해야만 성립한다. 이러한 법은 ‘여성이 저항했다면 강간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통념에 기반을 둔 것이다. 따라서 법을 바꾸는 과정에서 성폭력을 저항의 유무가 아닌 동의의 유무로 판단해야 한다는 사회적 논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 외에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에서 ‘업무상 위력’에 대한 해석을 직접적 고용관계가 아니라 해도 폭넓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성폭력에 대한 법제도에 피해자 입장을 반영하기 위한 개정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자
 
미국 할리우드에서 미투 운동이 시작된 지 한 달 정도 지난 2017년 11월, 라틴계 여성 농장노동자 단체가 ‘자매들이여’로 시작되는 편지를 발표했다. 편지에는 “당신들의 산업에 만연한 문제를 알게 돼 충격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슬프게도 그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현실이어서 놀랍지 않다”, “그러나 생계에 대한 부담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다”, “당신들이 느끼는 상처와 혼란, 고립, 배신감을 이해한다. 우리는 당신들을 믿고 함께 할 것”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편지는 미국 내 여성 연대의 동력이 되었고 일터의 성폭력을 몰아내기 위한 ‘타임스 업(한 시대가 끝났다)’ 운동으로 이어졌다. 
 
미투 운동은 일터의 성폭력을 몰아내는 집단적 힘이자, 여성의 권리를 위한 싸움의 일부이다. 내가 참고 넘어가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성폭력 피해를 폭로할 용기를 낸 여성들에게 아낌없는 지지와 연대를 표하자. 더 큰 운동의 물결로 화답하여 한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자. 

*이 글은 월간<오늘보다> 4월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