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없는 민주노총, 경사노위에 참여할 때가 아니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위한 안건을 정책대의원대회에 상정했다. 우리는 결론적으로, 민주노총이 총노동 차원의 정책요구와 투쟁에 대한 준비가 턱없이 부족한 지금 상황에서 경사노위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합의, 추진할 조건은 되는가?
민주노총 집행부는 경사노위 참여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시기 공약한 이른바 “노동존중” 정책, 즉 ILO 협약비준과 노동법 개정 등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경사노위에 복귀하면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다. 그런데 대통령 공약은 정부가 스스로 시행하면 되는 것이 당연한데, 왜 노사정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무리 대통령이 공약했다고 해도 그것이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사노위 협상장에서는 노동법 등 일부 노동자에게 유리한 제도개선이 추진된다고 해도, 반드시 그 반대로 자본 측이 요구하는 임금·노동시간 유연화, 단체교섭과 쟁의행위 제한 등을 교환하는 것이 전제조건이 된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서도 내부적 논의나 준비도 거의 없는 상태다.
그럼 공약만큼이라도 “노동존중” 정책이 추진될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미 올해 상반기에 최저임금법과 노동시간단축 제도가 개악된 바 있다. 최저임금법 추가 개악이 공공연히 언급되고 있고, 임금체계 개악도 추진되고 있다. 경사노위 전초전이라고 할 노사정대표자회의 “노사관계제도개선위원회”에서는 ILO 협약비준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노조법 개정에 턱없이 미달하는 내용이 제시되고 있다. 더구나 심각한 고용위기 상황을 맞아, 정부는 자본에 대한 규제 완화는 무엇이든 해준다는 기조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 규제”만 예외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하다. 정부의 노동정책은 명확히 경제정책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각 산별노조(연맹)도 경사노위에 참여하면 정부와 자본이 양보를 시작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는 접어야한다.
이미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어떤 방향인지가 드러난 셈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최저임금법 개악을 이유로 탈퇴했던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아무 조건없이 8월말 복귀한데 이어, 불과 한달여만에 역시 아무 조건없이 경사노위 참여까지 결정하는 안건을 상정하고 있다. 5월 최저임금법 개악 이후 노사정대표자회의에 탈퇴했던 당시와 달라진 것도, 정부가 자본측을 제어하는 가운데 “노동존중” 정책을 의지를 갖고 추진할 것으로 볼 수 있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경사노위부터 참여하자는 안건이 상정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사회적 합의, 민주노총은 준비가 되어 있는가?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서 협상하기 위한 정책요구에 대한 준비와 내부적 합의, 협의를 압박하기 위한 투쟁 양 측면에서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경사노위에 참여할 경우 민주노총은 정부와 자본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사업장 지부에서도 교섭을 하려면 몇 달간 치밀한 준비와 내부 토론을 거치는데, 총노동 과제를 다루는 협상이 이렇게 추진되어도 되는가.
민주노총은 총파업 7대 요구안 등을 경사노위를 통한 사회적 대화에서 다룰 의제로 제시하고 있다. 경사노위는 현재 노사정대표자회의 산하에 구성 중인 업종·의제별 위원회와 달리 총노동의 의제(전체 노동시장, 노사관계 제도)를 다루게된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기존에 여러 요구안을 분류하고 나열한 수준의 요구안을 제시하고 있을 뿐, 정책적 근거 마련, 우선 순위에 대한 내부합의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상황이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 4대 요구의 “노조할 권리 전면 쟁취” 항목을 보자. 전임자 임금, 필수유지업무, 창구단일화제도 등 모두 중요한 쟁점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요구에는 노조가 없는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는 잘 반영되어 있지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기존 노조에게 노조활동을 보장하는데 주력한 내용이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사회적 협의에서도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려면 요구의 우선 순위부터 현장까지 동의하는 확고한 합의를 만들어야한다.
투쟁도 마찬가지다. 하반기 민주노총 총파업이 11월을 목표로 준비되고 있으나 제대로 현장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지 않다. 투쟁 목표와 계획,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경로가 불투명하고, 전조직적으로 그 목표에 대한 동의도 부족한 탓이다. 그러나 경사노위 참가로 협의가 시작되면 곧바로 정부와 자본이 준비한 의제가 전면에 부각될 수밖에 없다. 실질적인 투쟁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재대로 된 대응도 못해보고 최저임금법 개악을 맞았던 상반기 경험을 되풀이할 우려도 크다.
“교섭을 위한 교섭”은 성공하기 힘들다
민주노총은 여러 요구 중에서도, 경사노위 참여를 통해 산별교섭(초기업교섭)을 실현하는 것을 가장 핵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전히 기업별 교섭을 넘어서지 못하고 기업별 격차가 커지고 있는 한국에서 산별교섭은 매우 중요한 과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어떤 교섭이든 “교섭을 위한 교섭”이란 없다. 교섭 방식 이전에 무엇을 쟁취할 것인가 혹은 협상할 것인가가 없으면 교섭틀도 유지될 수가 없다. 민주노총은 “중층적(다양한) 교섭 전략”을 사회적 대화의 핵심 목표로 제시하면서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경사노위 참여를 통해 산별교섭을 실현(제도화)할 수 있다는 기대도 과도하지만, 내용적 준비는 더욱 부족하다.
결국 사용자와 산별교섭보다 업종·의제별 위원회를 통해 모든 쟁점이 경사노위 산하에서 노사정이 협의하는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정작 각 산별노조(연맹)도 노사정 협의에 대해 제대로 준비가 없고, 이런 상황에서는 자칫 산업·업종별로 부문의 현안이 전체 총노동 의제에 대한 협상을 흔드는 결과를 낳을 우려가 크다.
경사노위 참여 논의는 중단, 조직적 토론과 투쟁준비부터
노사정위원회의 후신인 경사노위 참여가 민주노총 안에서 뜨거운 쟁점인 이유가 무엇인가. 이미 “사회적 합의”를 포장한 노동개악이 민주당 정권을 포함한 정부들에서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1998년 IMF 금융위기 당시 노사정합의는 결국 정리해고와 파견제를 도입하고 말았다. 한국노총만 참여한 2006년 노사정합의에서는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와 전임자임금지급 금지가 합의되었고, 2015년에는 쉬운해고·취업규칙 완화가 합의되었다. 이 중 98년과 2006년은 김대중-노무현 민주당 정부에서의 합의였다.
물론 과거에 노사정 협의가 모두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결과를 낳지 않으려면 적어도 요구와 투쟁에서 철저한 사전 준비, 민주노총의 내부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어야한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특히 첫 번째 노사정합의였던 1998년 당시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와 자본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노동유연화가 필요하다고 강요했고, 노동조합에 유리한 일부 항목은 양보하는 척했다. 민주노총은 전체 노동자에 해당되는 총노동 의제는 양보하고 조직노동자에 유리한 일부 현안을 교환했던 셈이다. 그 결과는 20년 간 파국이었다.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내지도 못하고 민주노총은 내부적으로 심각하게 분열되었다. 지금도 “고용위기” 상황에서 다양한 산하 의제·업종별 위원회에서 현안은 각자 논의되고 있고, 과연 무엇을 우선순위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 산업별, 고용형태별로 내부적 합의도 충분치 않은 것이 지금 조건이다.
결론적으로, 문재인 정부 정책기조와 민주노총의 준비 상태 등 주객관적 정세를 볼 때, 참가의 실효성은 낮고 오히려 민주노총 내부의 균열은 커질 우려가 크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참가할 때가 아니다. 산하 조직과 현장에서도 사회적 합의만 시작되면 어떤 실리적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접어야한다.
경사노위 참여 논란 이전에, 총노동의 단결을 도모할 수 있는 정책 요구를 수립하고, 조직적 단결을 실현할 수 있는 공동투쟁을 조직할 때다.
2018년 10월 15일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