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서비스 직고용 합의, 성과와 남은 과제
지난 11월 2일 금속노조와 삼성전자서비스가 직접고용 정규직화 범위와 임금, 처우를 합의했다. 총 7,800여명의 수리직, 지원직 노동자들이 2019년 1월 1일자로 삼성전자서비스에 직접고용된다. 900여명의 콜센터 상담직 노동자들은 11월 5일자로 삼성전자서비스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CS에 고용되었다. 백여 개 지역서비스센터들의 수리기사들이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조합을 세우고 투쟁한 지 5년하고도 3개월만의 일이다.
이번 정규직화는 무엇보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모진 탄압 속에서도 노조를 지켜낸 성과다. 지난 5년간 삼성은 참으로 악랄했다.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매년 센터들을 위장 폐업시켰고,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조합원 탈퇴 공작도 폈다. 삼성은 노조탄압을 위해 경찰을 매수했고, 고용노동부 관계자들까지 포섭했다. 하지만 이런 탄압 속에서도 지회는 삼성 최초의 임금 및 단체협약을 쟁취했고 위험의 외주화에 맞서 싸웠으며, 간접고용 철폐, 재벌책임 확장을 걸고 서초동에서 광화문 촛불집회까지 매년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지회는 단결과 연대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했고, 무엇보다 “삼성에서도 노조할 수 있다!”는 희망을 다른 노동자들에게 전했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이번 정규직화 합의에는 몇 가지 큰 구멍들도 있다. 올해 새로 조직된 콜센터 조합원들이 삼성전자서비스가 아니라 자회사로 채용된 것과, 해고된 조합원의 복직을 얻어내지 못한 것이 대표적이다. 삼성은 애초 약속과 달리 교섭과정에서 900여 명의 콜센터 노동자들을 삼성전자서비스CS로 고용하겠다며 정규직화 교섭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지회 요구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조합원들을 흔들고 갈라 치는 뻔한 속내였다. 해고자 조합원의 복직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삼성 측은 이 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완강하게 고집하여 교섭 장기화에 대한 불안을 비집고 들어왔다. 콜센터 자회사 설립일을 못 박고 폭력적으로 채용절차를 강행해 고용을 볼모로 자회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밀어붙였다. 조합원들의 이해관계가 갈리는 지점을 공격하는 사측의 의도를 격파하는 것이 투쟁의 정방향이겠으나, 갑작스레 조직이 불어나 조직정비에 어려움을 겪었던 지회는 결국 이 문제들을 돌파하지 못했다. 금속노조 중앙집행위원회가 의견접근안을 승인하며 단서를 달았듯이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이후 계획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아쉬움은 아쉬움이고, 나가야할 것은 나가야 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역할이다. 직고용 전보다 세 배 규모로 확대된 조직을 정비하며 나아갈 방향을 수립할 때다. 남은 과제가 적지 않다.
첫째, 이번 합의의 후속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두 개 회사로 나누어진 조합원들을 단결시킬 수 있는 임단협 시스템 개발이 최우선 과제다. 두 회사 사용자를 집단교섭으로 묶고, 공동의 임금단체교섭을 진행할 수 있으면 임금, 고용, 노조활동과 관련한 격차를 최소화할 수 있다. 사측의 분열책동 역시 상당 부분 희석될 것이다. 노동조합 본연의 의무는 사용자와 관계없이 노동자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것이다. 사실 지회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수십 개의 서비스센터 사장들을 집단교섭으로 묶어 지회의 단결력을 유지했던 경험도 있다. 다음으로, 해고자 조합원 문제를 이후 임단협에서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해고된 조합원을 책임지지 않는 노조는 사측 탄압에 매우 취약해진다.
둘째, 대기업 정규직노조의 현대화된 노조활동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조합들이 정규직화 이후 활동력이 약화되고, 기득권에 안주했던 모습을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다. 선 자리가 다르면 보이는 풍경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를 부정하기보다는 전체 노동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바를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 최근의 한국사회 변화를 보면 사회적 연대와 기술변화에 대한 노동자의 대응이 화두다. 이런 정세에 착안해, 예를 들면 상당한 규모의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해 비정규직 조직화와 지역연대에 사용하고, 단체협약으로 조합원의 기술숙련 및 사회교육 시간을 획기적으로 늘려보는 것 등을 시도해보자. 정세와 조건에 맞춰 노조를 활성화할 수 있는 새로운 투쟁들이 필요할 것이다.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는 것이 더 모질었다.” 장편소설 남한산성에 나오는 주인공의 대사다. 아마도 정규직화 이후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상황이 이렇지 않을까 한다. 외부에서 거대한 적으로 맞섰던 삼성보다 내부에서 교묘한 사용자로 맞서야 할 삼성이 더 모질 수 있다. 지금까지 잘 싸워왔던 것처럼, 냉철한 전략과 뜨거운 단결로, 정규직화 이후의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더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18.11.7.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