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번의 타협과 민주노조운동의 좌절! 이 한마다 외에 다른 어떤 말로 이번 사태를 설명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세상을 변혁하고자 하는 노동자가 자본이나 정권과 협상을 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변혁의 주체로서의 노동자가 떨쳐 일어나 "우리가 작정하면 모든 것을 바꿔낼 수 있다."는 굳은 의지로 자본, 정권과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고, 참 노동자, 민중 세상의 그날을 열어가는 중간과정에 현실적 성과물을 투쟁으로 얻어낼 뿐이다.
노동자운동이 변혁의 전망을 갖지 못한 채 자본과의 합의속에 노동자 투쟁을 관리한다면 이미 노동자운동은 자본주의 모순을 은폐하고 관리하는 자본주의 통치기구의 일부분을 형성하는 이해집단에 다름아닐 것이다. 지금 저 교활한 정권에게 노동자운동이 이기주의적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주장하며 정권, 자본과의 노사정 합의주의에 기울고 있는 현 민주노총 지도부의 오류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자본이나 정권과 어떻게 해서 그림좋은 뭔가를 하려 한다면 이미 그 순간부터 노동운동은 하나의 이해관계속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에 다름아닌 것이다. 노동자운동의 대의는 그 자체로서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므로 자본이나 정권과의 그 어떠한 타협이란 불필요한 것이다. 노동자운동이 정당한 요구를 갖고 자본, 정권과의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면, 그것을 탄압하는 자본이나 정권은 더욱 더 궁지에 몰릴 수 밖에 없고 결국은 노동자투쟁의 승리는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협상이나 타결은 그때 해도 늦지 않는 것이다.
오랜만에 민주노총 지도부가, 현 시기 가장 치열하게 대자본 투쟁을 전개해 온 비정규,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에 팔을 걷어부치고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6월 24일 최저임금위원회앞의 노동자대오는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최저임금 77만원 쟁취!"를 외치는 그들에게서 노동자연대의 희망을 찾기에 충분했다.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이 되는 여성노동자들의 절규는 누구보다도 처절했다. 우리 모두는 있는 힘을 다해 "최저임금 현실화! 노동자 평균 임금의 50% 제도화!"를 외쳤다. 그 대오속의 우리 모두는 투쟁 지도부의 진정성에 무한한 신뢰감을 보냈고, 우리들의 힘찬 투쟁의 함성에 힘을 얻으며, 우리를 대신해 협상하는 그 자리에서 그들 역시 힘차게 투쟁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아마도 민주노총 지도부에게 "최저임금 77만원"은 하나의 숫자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우리에게 "최저임금 77만원"은 "최저임금 현실화"의 숫자적 표현이었을 뿐이었는데, 협상 지도부는 단지 하나의 숫자로만 생각되었던 모양이다. 우리에게 77만원은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그야말로 최저한의 기준이었는데, 그들에게는 밀고 당기기식의 협상이 가능한 "정규직투쟁에서의 협상을 위한 하나의 요구안"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그들은 타협에 급급해 졸속으로 노동자 대중의 요구를 거스르며 졸속타결을 하고야 말았다.
그들은 타협을 위해 투쟁을 배치하고 노동동지들을 동원했다. 딴딴한 대오의 목적은 저들에게 뭔가를 전시적으로 보여주고 금전적인 성과물을 얻어내기 위한, 그래서 노동동지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전시적 성격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요구한 것은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였고, 그래서 너무나 정당한, 결국은 저들의 노동자 착취의 본질을 파헤치고 갈아엎어야 할 대상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투쟁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투쟁이었음에도, 그들은 너무도 쉽게 투쟁의 깃발을 내리고야 말았다. "교섭과 투쟁의 병행" 이라는 전략이 지닌 허구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전형이었다고 할 것이다.
아무리 투쟁을 열심히 한들 그것이 결국은 협상을 위한 보여주기식이라면 우리는 그 어떤 성과물도 얻을 수 없다. 한치앞이 뻔히 내다 보이는데 어떤 어리석은 자본과 정권이 그 투쟁을 두려워 하겠는가! 단기적인 성과물에 급급하지 않고 노동해방의 긴 여정속에 단결된 투쟁을 전개할 때만 저들은 하나씩 하나씩 우리에게 무릅꿇을 것이고, 그럴 때에만 현실적인 투쟁의 성과물도 획득할 수 있을 뿐임을 우리는 한시도 잊으면 안된다. 노동자계급의 단결된 투쟁으로만이 어떤 성과물도 얻을 수 있음이지, 상층부 몇 사람의 능숙한 교섭과 협상으로 마치 그럴듯한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다는 착각을 이제 걷어버리자. 이번 최저임금 투쟁의 유일한 교훈은 바로 이것이리라. 우리가 협상 지도부의 졸속과 무능을 규탄하는 이유도 다름아닌 바로 이러한 이유임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