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월 5일 새벽 북한이 대포동 2호 1기를 포함, 노동 및 스커드급 중장거리 미사일 수발을 동해상에 발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지난달 북한이 대포동 2호로 보이는 미사일 일부를 이미 발사대에 설치한 상태라고 알려진 이후 강력한 대북 제재를 경고해온 한미일 3국은 즉각 공식 입장을 발표하고 나섰다. 미국은 북한이 독립기념일 및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 발사에 맞춰 시험 발사를 강행했음을 지적하며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도발"로 규정하고 즉각 UN 안보리 상정, 6자회담국 방문, 대공감시태세 격상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일본도 미국의 미사일 발사를 ‘평양선언’ 위반으로 간주하고 UN 안보리 상정에 동참하는 한편 만경봉호 입항 6개월 금지 등 대북 경제제재에 돌입할 태세다. 남한 정부도 이번 사태를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고 남북한 관계를 악화시키는 현명치 못한 행위’라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하며 북한을 비난하고 있다.
2. 그러나 한미일 3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비난하는 것은 자가당착일 따름이다. 3각동맹의 대북 위협이야말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자극한 핵심 원인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부시 행정부의 등장 이후 북한을 악의적으로 무시하며 대북 선제 핵공격 옵션을 유지한 채 ‘정권 교체’ 운운하며 대북 적대 정책을 강행했다. 제네바 합의를 고의적으로 파탄낸 뒤 북한과의 양자협상에 임하기보다는 6자회담 등을 활용하여 북한에 대한 다자간 압력틀을 강화했다. 그리고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역내 주둔 미군 전력 증강을 시도하고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각종 무력시위를 전개하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왔다. 또 미국은 또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을 통해 북한에 대한 강력한 봉쇄에 돌입하는 한편 대규모 탈북-기획망명을 유도하는 법안을 기획하고 ‘작전계획 5030’을 발표하는 등 ‘전쟁 없는 체제 교체’라는 시나리오를 수립한 상태다. 남한과 일본은 이러한 미국의 대북 제재 조치에 적극 호응하면서 각각 ‘한미동맹 현대화’와 ‘보통국가화’를 병행 추진했다. 특히 2005년 9월 베이징 선언 이후 북한은 미국과 본격적으로 양자협상을 재개하려 했지만, 이것이 또다시 미국의 거부로 무산되자 이번에도 ‘벼랑끝 전술’로 돌아가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한미일 3각동맹의 압박으로 인해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협상의 지렛대로 내세우는 벼랑끝 전술의 유혹에 끊임없이 노출되었던 것이다.
3. 게다가 미국은 북한이 핵비확산조약(NPT) 체계를 탈퇴하고 미사일기술통제규약(MTCR)에 가입하지 않은 것을 비난하지만, 정작 자신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에 동의하지도 않았고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면서까지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에 매진했다. 즉 미국은 기존 국제협약을 무시․파기하면서 자신의 핵․미사일 공격능력과 요격능력을 강화한 것이다. 또 미국은 북한이 1999년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들어 협정 위반의 혐의를 찾고 있지만, 당시 선언은 어떤 외교협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북한 스스로 결정한 것이었다. 오히려 미국이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반테러 전쟁’을 경과하며 북한과의 협상을 일절 중단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유예선언은 사실상 전거를 상실한 상태였다. 마찬가지로 일본이 문제 삼고 있는 2002년 평양선언도 상대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하지 않고 이해 당사국들과 더불어 핵과 미사일을 포함한 동북아 안보문제들을 해결한다는 요지의 공동성명일 뿐 구속력을 지닌 협정은 아니었다. 도리어 일본은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줄곧 쟁점화시켜 북일수교를 교착상태에 빠뜨렸다. 따라서 한미일 삼각동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중대한 위반행위로 간주할 만한 어떠한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
4. 동시에 우리는 이번 미사일 발사와 같은 북한의 ‘벼랑끝 전술’이 한반도 평화를 심각히 위협한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지난 1994년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를 초래한 ‘핵위기’ 이후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이 난항에 빠질 때마다 미국을 모방하여 군사적 대결구도를 증폭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전쟁위협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는데 기여하는 한편 북한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경쟁구도에 휘말린다는 점에서 위험한 전략일 뿐이다. 지금도 미국은 짐짓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이를 계기로 주변국들이 자신의 대북 강경책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1998년 ‘광명성 1호’ 발사 이후 일본․남한․대만 등에서 미국의 MD 전략이 관철되었다는 사실, 특히 일본의 경우 독자적으로 군사위성을 도입함으로써 우주의 군사적 활용을 강화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사태는 역내 무력 증강의 가능성을 한층 높인 셈이다.
5. 이러한 상황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지역에서 냉전적 구도의 존속이라는 공포를 환기한다. 악무한적인 대결 구도가 창출하는 절멸의 현실적 위협과 그것이 낳는 상호 파괴적 군사주의는 반동적인 이데올로기와 결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에 우리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남한에서 대북 제재와 군사적 대응 강화 등 호전적 논리가 발호하게 될 것을 심각히 경계한다. 지배세력은 북한 위협론을 빌미 삼아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정당화하는 한편 북한에 대한 정치적 압박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는 사태의 원인과 본질을 호도하는 것으로서,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는커녕 한반도의 실질적인 평화를 위협할 뿐이다.
6. 결국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유연성으로 대표되는 주한미군 재편 전략에 반대하는 한편 일본의 보통국가화와 남한군의 국방비 증가와 전력 강화에 대한 반대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한미일 군사동맹을 해체하는 것이 결정적이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반전 평화 운동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군축을 일관되게 주장하며 미국의 호전성에 대한 반전평화의 정당성의 우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오늘부터 시작된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평화대행진은 바로 그 장도의 시작이며 우리도 그 길에 함께 나설 것이다. (2006.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