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22일 김대중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언론은 이 회담이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여는 의미있는 회담이었다고 추켜세우고 있지만, 회담의 면면을 살펴볼 때 과연 그러한가 의문을 가지게 된다. 한일투자협정의 공식 서명, 한일자유무역협정 추진을 위한 계획 합의에서부터, 성과라고 떠들어대는 대화를 통한 대북문제 해결의 원칙까지 그 내용을 아무리 살펴봐도 어느 하나 이 땅 민중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것은 없다. 민중들의 요구에 귀 닫고, 눈 감은 정상회담의 성과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철저하게 양국의 자본과 지배계급의 이해에만 그 초점이 맞춰져 있고, 진정 노동자민중의 삶의 권리와 요구는 외면하는 이번 회담의 합의를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이에 김대중 대통령을 강력히 규탄한다.
2. 이번 회담에서 공식 서명된 한일투자협정은 그 동안 노동, 사회, 시민 단체들이 표명했던 우려를 그대로 담고 있다. 투자협정은 투자보장 대상을 주식투자, 기업 인수 및 합병 등의 포트폴리오 투자까지로 확대함으로써 투기성 자본의 단기 이익을 보장해주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현재 금융, 투기 자본을 중심으로 한 자본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투자협정에서는 정부가 선전해왔던 고용창출 등의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자본의 투기성이 극대화 될 것이며, 이에 종속되는 한국 경제의 불안정성만이 심화될 것이다. 내국인 대우, 최혜국 대우 등의 조항으로 초국적 자본의 지위를 보장해주고 내국산 자재 사용, 내국인 고용, 기술 이전 등의 강제적 이행 의무는 부과하지 못하게 하는 한일투자협정의 내용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는 초국적 자본의 무제한적 자유와 이윤추구를 위해 노동자 민중의 고통과 피해는 무시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이미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투자협정, 자유무역협정이 초국적 자본의 이윤 보장을 위해 국가 기간 산업의 민영화, 해외매각을 부추기고, 한국 민중의 노동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며 농업을 파탄내는 등 민중들의 기본적인 삶의 권리를 파괴하는 행위라 누차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을 무시하고 한일투자협정을 체결하고 이후 한일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추진하고자 하는 김대중 대통령은 과연 누구를 위한 대통령인가?.
3. 정부와 언론은 이번 회담에서 그 동안 긴장관계를 유지해왔던 북일 관계의 진전을 예상할 수 있는 대화의 원칙에 합의한 것이 커다란 성과 중 하나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북일 관계에 있어서 가장 큰 쟁점은 일본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북한을 교전국으로 인정하여 전쟁배상금을 지급하는 문제이다.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침략하고 식민지배를 해온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따라서 일본과의 관계에서 침략국-교전국의 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본은 계속해서 이를 묵살, 회피하는 주장을 해왔으며, 현재 북일 국교수교협상이 단절 상태에 놓인 것은 바로 이러한 일본의 태도에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논의된 대북문제에 대한 한일 양국의 입장에는 이러한 내용을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저 북한의 태도를 문제삼으며 조속한 시일 내에 대화에 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양국 정상이 말하는 '북한의 태도 변화'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회담에서 확인한 한-미-일 3국의 공조체제의 강화 원칙에 합의라도 해야한단 말인가? 북일 관계 진전에 핵심적인 문제는 봉합한 채,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한일 공조체제의 강화만을 되뇌이는 지금의 대북정책은 동아시아의 건설적 관계 수립에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다. 일본은 응당 과거 청산-배상 문제를 북한의 요구대로 수용해야 할 것이며, 김대중 정부 또한 이를 봉합하거나 우회하고 있는 지금의 작태를 즉각 시정해야 한다.
2002. 3. 26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