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민중운동을 ‘신자유주의세력인 민주당-주류 시민운동의 들러리’로 전락시키는 민주노총-진보정당의 ‘묻지마 야권연대’ 선거방침을 비판한다.
박원순 야권단일 후보, 과연 민주노총이 전면적으로 지지해야 하는가?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노총은 박원순 야권단일 후보를 지지하고 선거운동에 전면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민주노총(서울본부와 산하 산별노조․연맹)은 지난 10월 3일 야권후보 단일화 경선 선거인단 모집에 적극 참여한 데 이어 17일에는 박원순 후보 지지를 위해 <노동희망특별위원회>를 결성(상임위원장 이수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했다. 현재 노동희망특위는 ‘10만 노동희망 지킴이, 30만 노동가족 조직화운동’과 ‘희망의 씨앗 5억 정치후원금 모금운동’, 투표참여 운동 등을 전개 중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비롯해 공공운수노조․연맹, 보건의료노조 등 각 산별노조․연맹에서 간부를 파견하고 선거운동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고, 각 산별노조․연맹들은 박원순 후보 측과 <정책협약>을 체결했거나 추진하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물론 진보신당을 탈당한 정치인들까지 박원순 후보 지원유세에 열심이다.
그러나 과연 박원순 후보는 민주노총이 전면적으로 지지할만한 노선과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결코 아니다. 시민운동가로서 박원순 후보의 핵심적인 활동은 참여연대 활동(대표적으로 소액주주운동과 낙천낙선운동)과 이후 아름다운재단 활동(기업의 기부운동)이다.
우선 박원순 후보가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참여연대는 금융(투기)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소액주주운동’을 진보적인 운동으로 포장해서 진행했다.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은 그 이름과는 달리 타이거펀드와 템플턴그룹(당시 국내 증시에 30억 달러 정도 투자했던 미국의 기관투자자)이라는 미국의 초국적자본과 전략적 제휴의 힘을 바탕으로 한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운동이었다. 소액주주운동은 ‘재벌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서 재벌을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주주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주주행동주의와 선진적이고 투명한 기업지배구조 개선, 즉 한국경제를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경제시스템으로 개조하는 운동이었다. 이는 설사 참여연대가 의도하지는 않았을 지라도 기업의 경영 효율성 제고와 비용감축을 위한 노동자들에 대한 상시적인 구조조정과 비정규직화를 동시에 촉진하는 결과를 낳았다.
박원순 후보가 전념했던 ‘기업의 사회적 공헌, 기부’라는 것 또한 하청기업 수탈, 노동착취와 노조탄압, 환경파괴 등 한국사회에서 재벌기업들의 문제를 눈가림하고,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수탈, 투기를 통해 얻은 재산의 극히 일부를 기부하는 기업을 훌륭한 기업으로 포장하는 사회적 효과를 양산한다. 무노조 경영과 불공정 거래로 유명한 삼성전자와 포스코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선두주자라는 사실이 ‘기업의 사회적 기부’의 기만성을 증명해 주고 있다. 또한 재벌기업의 협찬으로 활동하는 단체가 과연 노동자 시민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시민운동’이라 불릴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박원순 후보가 포스코의 사외이사직을 맡은 것도 재벌기업과 아름다운재단과 같은 비영리조직들의 상생관계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일례이다.
따라서 박원순 후보가 그 동안 노동자 민중운동이 반대하고 맞서 싸웠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와 재벌․기업 친화적인 운동을 펼쳐온 것은 명확하다. 이에 대한 명확한 자기비판이 없다면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박원순 후보의 정책은 친노동자적 정책과는 거리가 멀 가능성이 크다. 박원순 후보는 10월 20일 TV토론회에서 한미FTA에 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상대 후보가 다그치자 ‘신중히 검토해 보겠다.’고 발언했다. 박원순 선본의 대변인은 ‘한미FTA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미FTA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중소․영세 상인들의 삶과 한국사회 전체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1% 초국적 자본만을 위한 재앙의 협정이다. 한미FTA가 통과된다면 설령 진보적인 인사가 서울시장이 되더라도 미국기업의 투자이익을 감소시킬 수 있는 공공, 복지정책에 있어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노동자 민중운동이 단식을 불사하며 결사반대하고 있는 한미FTA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박원순 후보는 노동자들의 후보일 수 없다. 친재벌 반노동 정책으로 일관하는 이명박-한나라당에 비해 박원순 후보가 개혁적일 수 있지만, 그가 가진 신자유주의적인 노선과 입장은 노동자 민중운동의 노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무원칙한 야권연대’ 선거방침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무덤이다!
‘이명박․한나라당에 반대하면 다 같은 편’이라는 무원칙한 반MB야권연대 논리는 지난 해 6.2 지방선거와 올해 4.27재보선에 이어 10.26재보선에서도 어김없이 민주노총-진보정당의 선거방침으로 채택되었다. 지난 6.2 지방선거 당시에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은 노무현 정권에서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며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투쟁이나 한미 FTA반대 투쟁을 진압했던 한명숙을 서울시장 후보로 지지했다. 반면에 진보정당 후보로 나선 노회찬은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웃지 못 할 사태도 발생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야권단일화 경선으로 치러지면서 정작 노동자 민중을 대표한다고 하는 민주노동당 후보는 고작 2.68%의 초라한 득표에 고쳤다. 진보정당과 민주노총 서울본부, 각 산별노조․연맹이 국민참여경선 참여를 적극적으로 조직했음에도 17,891명의 국민참여경선 참여자 중 467명이 지지했을 뿐이다. 진보정당 당원들도, 민주노총 조합원도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과 자본의 강력한 노조탄압에 의해 현장의 투쟁력이 약화되고, 진보정당의 지지율이 현저히 낮은 조건이 손쉽게 ‘야권연대’와 같은 상층 간의 정치협상에 매달릴 명분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장 국민경선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이 자신의 노선과 투쟁의 원칙, 독자성을 명확히 하지 않고 ‘무원칙한 야권연대’에 집착할수록 현장조합원들과 진보정당의 당원들조차 진보정당을 외면하고 지지하지 않는 현상은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원칙한 야권연대’ 흐름이 강화되면서 민주노총의 일부 사업장들이 노조의 실리를 얻기 위해 민주당, 더 나아가 한나라당 의원에 대한 정치 후원이 공공연하게 추진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노조는 노조답게! 노동자 정치세력화운동의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
이번 10.26 선거과정에서 민주노총의 대응에는 노조가 노조답게, 조합원을 조직하고 대중적 행동과 압박을 통해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는 민주노조의 원칙(계급성,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 연대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공공운수노조․연맹 등 민주노총 주요 조직들은 박원순 후보와의 정책협약이 발표되기도 전에 선본참여를 결정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와는 협약 체결조차 하지 않았고 간담회를 통해 구두로 약속했을 뿐이다. 공공운수노조․연맹에서 체결한 정책협약의 내용에도 서울시 산하기관 해고노동자 복직과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서울시 산하기관 운영에 노동조합 참여 보장, 서울시 예산수립과정에 노동조합 참여 보장 등과 같은 절박한 요구는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 더구나 합의된 내용 역시 대부분 추상적인 수준에서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수많은 노조의 단체교섭 투쟁 과정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구체적인 합의사항조차 번복하는 것이 작금의 권력과 자본가들의 행태임에도 불구하고, 해고자 복직과 같은 구체적인 요구에 대해 명확한 합의도 없이 민주노총이 선본에 참여하는 것은 명확히 잘못된 결정이다.
박원순 후보가 만약 당선된다고 해도 노조 요구에 대한 수용여부는 결국 노동자의 힘에 달려 있다. 노동조합의 요구를 분명히 하고 이를 대중적으로 선전하면서 조합원과 서울시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요구의 수용 여부를 투표의 기준으로 삼도록 설득하고 박원순 후보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만들어가는 것이 민주노조로서 민주노총의 활동이 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선거과정에서 노동자의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서가 아니라 표를 모아 줄 테니 제발 우리 요구를 들어 달라는 식으로 노동자대중들에게 일단 믿고 찍어 보자며 무책임한 선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지난 십 수 년 간 노동운동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시민운동을 해 온 ‘정신적인 민주당원’ 박원순 후보에 대해 전 조직적 지지선언을 하고 정치후원금을 모으고, 조합원들에게 이들의 지지자가 될 것을 강요해야 하는가? 민주노총이 ‘무원칙한 야권연대’ 선거방침으로 현장 조합원들을 신자유주의세력인 민주당-주류 시민운동의 들러리로 동원한다면, 세계적 경제위기의 시대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 연대에 기초한 노동조합운동’의 투쟁기풍은 더욱 더 축소되고, 좀 더 영향력 있는 보수정당에 대한 로비와 상층 협상에 의존하는 경향이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동 대중이 아래로부터 스스로의 요구와 투쟁을 조직하여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이러한 대중운동을 바탕으로 기존의 지배질서를 변혁하여 생산의 주인, 사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할 때이다.
현장활동가들이 주체가 되어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기풍을 다시 세우자!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위기 이후 미국, 일본, 유럽 등 세계자본주의 중심부의 장기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유럽의 재정위기의 심화로 세계경제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수출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한국경제 또한 세계경제위기의 심화에 따라 심각한 위험과 경제위기를 빌미로 한 긴축예산 등 노동자 민중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예고되고 있다. 따라서 세계적 경제위기 국면에서 예고되는 정권과 자본의 공세에 맞서 대중운동을 강화하고 자본주의체제를 넘어서는 대안세계를 향한 운동전략을 구체화하는 것은 노동자 민중운동에게 사활적인 과제다.
그러나 이러한 엄혹한 정세에도 불구하고 운동진영 일각에서 ‘민주연립정부’를 말하며 2012년 총선, 대선에서 민주당 등과 연합하여 국회 다수의석 확보와 정권교체를 위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조차 뒤흔들며,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을 신자유주의세력인 민주당-주류 시민운동의 들러리로 전락시키고 있다.
우리는 민주당과의 연합을 통합 집권을 ‘진보적 정권교체’로 볼 수 없다. 설사 그렇게 정권이 교체되어 진보정당 출신이 장관 한 두 자리를 한다고 해도 득보다는 실이 크다. 향후 세계적 경제위기라는 정세 속에서 집권세력은 대중의 불만을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하고, 집권세력 내부에서 권한은 거의 없고 민주당-주류 시민운동의 반노동자적 정책집행의 책임은 함께 져야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경제위기 하에 체제유지를 위해 노동자 투쟁을 탄압하는 상황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현재와 같은 민주노총-진보정당의 ‘무원칙한 선거방침’과 ‘민주연립정부’ 방침이 지속된다면 민주노조운동의 기본적인 토대조차 붕괴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흐름을 바꿔내기 위해서는 현장활동가들이 나서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조직적으로 결집해야 한다. 현장으로부터 민주노조운동의 원칙과 기풍을 다시 세우고,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 투쟁과 괴리되는 정치, 운동과 괴리되는 선거를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
2011년 10. 24
【계급적, 변혁적 노동운동을 위한 공공운수 현장조직․활동가 연대회의】
(계급적 단결과 연대를 위한 철도노동자회, 발전 현장투쟁위원회, 사회보험 민주노조 재건 투쟁위원회, 사회보험 현장노동자회,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 공공운수분회, 사회진보연대, KT 민주동지회,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화물 현장노동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