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버마의 민주주의 진전을 한국기업과 정부는 악용해서는 안된다.
최근 치러진 버마 보궐선거에서 아웅산 수키여사가 당선되는 등, 버마의 민주주의가 일정한 진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물론 일련의 자유화조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군부가 버마를 사실상 통치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군부의 철권통치로 인해 출구를 찾지 못한 버마의 열악했던 민주주의가 일정정도 진전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동안 버마의 민주주의를 염원해온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한국시민사회는 이러한 버마의 민주주의 진전을 마냥 환영하기는 어려운 입장이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버마 정권이 취하고 있는 일련의 조치들을 빌미로 그동안 중국, 한국, 인도 등에 버마 시장을 빼앗겼다고 느낀 유럽과 미국 및 일본기업들이 대규모로 버마에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문제에 대해 버마정권이 조금 양보를 하자 이를 명분으로 버마전역을 거대 다국적기업들의 각축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미 버마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자원개발과정에서의 인권 및 환경침해, 관료들과 다국적기업의 유착 및 부패,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 더욱 노골적이고 광범위하게 벌어지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일정 수준의 민주주의체제가 확립된 국가일지라도, 기업의 이익을 우선 보호하는 현 시기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99%의 사람들은 경제적 고통에 상시적으로 시달리고 있다. 이제 겨우 약간의 민주주의가 진전된 버마의 민중들이 다국적기업의 횡포에 맞서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한국의 시민사회는 한국기업의 버마 투자사례를 통해 이미 이를 확인하고 있다.
버마정권의 비호아래서 버마가 투자하기 좋은 국가로 한국에 알려진 탓인지, 4월 6일과 7일에는 지식경제부와 한국기업들이 대거 참여하는 한국-미얀마 경제협력포럼이 개최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정부는 버마에 공적원조(ODA)로 “새마을 운동”형태의 농촌개발프로그램을 제공하기로 발표하는 등, 정부차원에서 버마투자를 적극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대우인터내셔널과 한국가스공사가 참여하고 있는 슈에가스개발은 버마 국토를 가로질러 중국으로 연결되는 파이프라인 공사가 시작되면서 대규모 인권침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2010년 1월에는 랑군 산업공단의 한국의류공장에서 각박한 노동조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파업을 벌인 적도 있다. 작년에는 KMDC라는 회사가 대규모 버마가스개발 계획을 발표하였고 이에 대한 각종 정치적 의혹들이 제기된바도 있다.
현지 주민들과 노동자들의 인권을 고려하지 않는 다국적기업의 무분별한 투자에 대한 우려는 이미 버마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도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버마환경활동단체(Burma Environmental Working Group:www.bewg.org)는 성명을 통해 버마에 투자할시 국제 인권 및 환경기준을 지켜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버마국민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권력을 선택할 수 있을 때 까지 더더욱 버마에 대한 투자는 신중하게 인권과 환경을 고려해서 이뤄져야 한다. 이미 버마의 민중들은 수십년간 군부와 군부의 비호를 받는 다국적기업들로 인해 고통받아왔다. 한국정부와 기업은 버마의 민주주의가 약간 진전했다는 점을 악용하여 버마 민중들에게 고통을 주는 무분별한 투자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버마 투자 한국기업은 사업시행 전에 공정하고 투명한 인권영향평가/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라
2. 버마 투자 한국기업은 OECD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및 ILO노동기준과 같은 국제기준을 준수하라
3. 자원개발과정에서 강제철거,강제노동과 같은 군부에 의한 인권침해범죄에 공모해서는 안된다.
4. 한국정부는 버마 진출 한국기업의 인권 및 환경침해를 예방하고 구제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
5. 한국정부의 대 버마 ODA사업에서 인권 및 환경보호 기준을 수립하고 실행하라
2012년 4월 9일
경계를 넘어/공익변호사그룹 공감/국제민주연대/랑젠/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사회진보연대/인권교육센터‘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참여연대/팔레스타인 평화연대 (11개 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