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사업장 리스트 제공을 중단하는 것은 이주노동자를 노예로 만드는 것!
사업장 변경을 더욱 제한하는 고용노동부 방침을 강력히 규탄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6월 4일 ‘외국인근로자 사업장 변경 개선 및 브로커개입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8월 1일부터 이주노동자에게 구인사업장 명단을 더 이상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즉 그동안 사업장 변경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고용센터에서 구인사업장 명단을 제공하고 이주노동자가 그 사업장들에 전화를 하거나 방문을 하여 조건이 맞으면 계약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이제는 사업주들에게 이주노동자 명단을 제공하고 사업주들이 맘에 드는 이주노동자에게 연락을 하여 고용을 하라는 것이다. 결국 이주노동자는 그냥 앉아서 사업주의 연락을 기다리라는 말이다. 이것은 그렇지 않아도 원천적으로 제한되어 온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완전히 가로막는 부당한 처사이며 이주노동자를 더욱 사업주에게 종속시키는 조치이다. 우리는 사업주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고용노동부의 무책임한 처사를 강력히 규탄하는 바이다. 심지어 사업주가 채용하고자 하는데 이주노동자가 거부하면 2주 동안이나 알선을 중단하겠다고 하니, 이주노동자는 근로조건이고뭐고 따지지 말고 주는대로 아무데서나 일하라는 것 아닌가!
애초에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은 휴업이나 폐업의 경우, 계약이 해지된 경우, 사업주가 근로관계법을 위반했을 경우 등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사업장 이동을 할 수 있었다. 그 경우에도 임금체불, 폭행, 성희롱, 욕설 등에 대해서 이주노동자가 증명을 해야 했기에 이주노동자 혼자서 사업장 이동을 추진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사업장 이동 제한은 고용허가제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혔다. 근로조건이 열악하거나 일이 너무 힘들어서 사업장을 옮기고 싶어도 법위반 사실을 이주노동자가 증명을 해야 하거나, 사업장 변경에 대해 사업주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옮길 수가 없어서 사업주에게 이주노동자를 종속시키는 강제노동의 성격이 컸던 것이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는커녕 해괴한 논리를 들고 나와서 이주노동자를 더욱 옭죄고 있다. 즉 구인 사업장 명단을 이주노동자에게 주면 그것이 브로커들에게 유출되어서 사업장 변경 과정에 브로커들이 끼어들어 판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스스로의 주장에 대한 제대로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막연한 추측만을 해댔다. 그러면서 브로커 개입을 막아야 한다면서 구인사업장 명단을 이주노동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중단하고 사업주에게만 구직중인 이주노동자 명단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브로커 개입 차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조치다. 오히려 브로커들을 더욱 활개치게 만들 것이다. 생각해보라. 가만히 앉아서 사업주의 연락을 기다려야 하는 이주노동자의 처지에서, 만약 연락이 오지 않으면 얼마나 초조하겠는가. 3개월 내에 구직하지 못하면 미등록 체류자가 되거나 출국해야 하는데, 이주노동자 입장에서는 1개월만 지나도 구직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것이고 그리되면 브로커를 찾을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결국 고용노동부의 이번 방침은 이주노동자의 제한된 사업장 선택만 더욱 가로막을 뿐, 브로커 개입 차단에는 아무런 대책이 되지 못할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목적은 아마 다른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그동안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가 노동조건이 나은 곳으로만 옮기려 한다면서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는 불만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즉 사업장 변경과정에 있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방문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공된 명단에 있는 다른 사업장을 더 알아보고 구직을 할 수 있었는데 사업주들은 이것이 문제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고용노동부는 사업주들의 제기를 받아들여 이주노동자들이 구인 명단에 있는 사업주를 선택하게 하는게 아니라 아예 이를 원천적으로 막아버리고 사업주들이 구직 명단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연락하게끔 하는 방식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더 나은 노동조건을 찾아 사업장을 이동하는 것은 노동자라면 누구나 마찬가지다. 이것을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인종차별이요 이주노동자를 더욱 노예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사업주가 구인이 힘들다면 노동조건을 개선해서 노동자들이 일하고 싶게끔 만들 일이고 사업장이 아주 영세하다면 정부가 지원할 일이지 이주노동자를 더 구속하려는 것은 정말 파렴치하고 차별적인 작태이다.
고용허가제를 시행한지 거의 8년이 되었는데,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처지를 더 개선하기는커녕 더욱 후퇴시키는 조치를 내놓고 있다. 재입국을 허용해준다면서 ‘사업장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건을 달아서 실제로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변경하지 않도록 유도하려 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고용노동부는 더 이상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려만 해서는 안된다. 고용허가제 8년 간 무수한 비판을 받아온 것을 직시하고 근본적 개선을 해야 한다. 현장의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임금체불, 상습적인 폭언, 폭행, 사업주의 부당한 대우, 인격무시, 열악한 노동환경과 주거환경 등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부터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이주노동자를 옭죄기만 하는 조치들은 분노를 부를 수밖에 없다.
현재 고용노동부의 이번 조치로 인해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즉각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 방침 철회를 위해 우리는 다른 단체들과 연대하여 싸워나갈 것이다.
2012. 7. 15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