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풍경, 세상이 멈춰있다.
한국 축구 8강 진출! 텔레비젼, 신문을 비롯한 모든 매체가 '태극불패, 월드컵 본선 무패의 신화', '아시아 축구의 새로운 역사' 등 한국축구에 관한 화려한 수사들로 채워지고 있다. 축구얘기에 밀려 각종 게이트, 지자체, 박찬호까지 들리지 않는다. 전국 400만, 서울에만 100만의 인파가 모인 거리 응원. 심지어 승전보 이후 거리거리 울려퍼지는 애국가.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란 외침들. '붉은 악마=한국인=애국자'라는 등식이 전제된 붉은 패션은 월드컵으로 통합된 국민의 보편적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96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결정 후 6년 동안 한국은 수 조원을 들여 경기장을 짓고, 언론과 정부기관은 월드컵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국가홍보, 국민화합, 경제적 효과'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홍보를 해왔다. 그리고 지금 2002년 6월 한국사회는 모든 것이 월드컵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마치 세상이 월드컵을 중심에 두고 그대로 멈춰버린 듯하다. 그러나 지금도 국민들의 눈을 잠시 가린 채 지배계급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노동유연화 전략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불안정노동의 일반화로 민중의 삶은 더욱 빈곤해져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안정을 이유로 공공근로를 내년부터 절반이하로 축소하겠다고 한다. 더불어 노사정위는 비정규직 보호라는 미명아래 비정규직을 제도화하기 위한 행동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금융화의 비애, 금융비리 부패와 가계파산

우리가 월드컵에 빠져 있는 사이 '빚지고 사세요', '열나게 연체한 당신 떠나라'는 풍자개그까지 만들어내던 카드광고의 카피가 '사고 싶어도 갚을 수 있는지, 꼭 필요한 물건인지 생각해보고 사자'로 그 내용을 바꾸기 시작했다.
IMF-김대중 정권 5년,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지금 각종 구조적 금융 비리를 양산하며 동시에 민중 생활을 파탄내고 있다. 금융화 시대의 민중들의 삶에 핵심은 바로 '카드'로 대표되는 개인에 대한 금융대출이다. 오늘날(5월) 남한사회에서 신용불량건은 800만, 신용불량자는 약 260만명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가계 부채는 총 342조원으로 3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하였으며, 이 액수는 GDP의 62% 수준이다. 바야흐로 카드의 보편화가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본에게 다른 방식의 대책을 요구하게 된다. 7월 1일부터 신용불량자 등록 기준금액을 30만원으로 상향하고 그로인해 약 24만명의 신용불량자들이 사면될 것이라고 한다.(은행연합회) 그리고 5월 22일 금융정책협의회에서 금융사들이 회사 내규에 반드시 의무적으로 마련하도록 한 '개인워크아웃제도'-신용카드 사용대금을 연체한 고객에게 돈을 빌려줘 그 대출금으로 연체 빚을 갚도록 하는 금융기관의 대환대출 제도 등을 통해 신용을 회복할 기회를 준다는 것-가 새로운 대책의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이는 결코 진정한 의미의 대책이 되지 못한다. 금융화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 이상 결과적으로 계속 빚을 늘려가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오히려 국민 개개인의 금융 관리가 국가의 통합적인 관리에 들어간다면 채무자들은 언제 노예로 전락할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어야 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세아들을 둘러싼 비리부패 문제가 차남 김홍업을 마지막으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있다. 셋째아들 김홍걸이 구속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검 중수부는 오늘(21일) 김홍업이 각종 청탁명목으로 22억8천만원의 금품을 받은 사실을 확인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금의 사태를 두고 사람들은 김영삼 전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을 보며 왜 배우지 못했냐고 기막혀 할지 모르지만, 지금 정권의 비리부패상은 개인의 청렴의 문제로만 해결될 수 없는 금융화의 구조적 비리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기간 동안 발생한 20건이 넘는 비리사건들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과 궤를 같이하며 발생해 온 것이다. 또한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신종 투기산업은 사업자 선정 이권을 둘러싼 로비와 뇌물 공여를 항상 동반하고 있다. 여기에 정·관계의 고위급 인사들이 결탁하여 비리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정치자금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도 여러 차례 확인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유착관계는 또 다른 이권에 개입하여 비리행각을 벌이는 토대가 되고 있으니, 금융세계화가 양산하고 있는 부패의 사슬이 정·경·관의 공생관계로 구조화되어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제도화하는 노사정위 해체하라!

식물국회의 상황에서도 지배계급은 노사정위를 통해 노동유연화 정책을 차근히 실행해 나가고 있다. 노사정위 비정규특위에서는 '비정규직 근로자 대책'이라는 미명 하에 6월말까지 최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기간제와 파견제 노동', '특수고용노동', '단시간 노동' 등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5월 6일 발표한 '비정규직 근로자 대책에 관한 노사정 1차 합의문'의 내용은 비정규 노동자의 규모를 축소하는 분할정책일 뿐이며,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3권 보장 요구를 일부 보험적용이라는 것으로 대체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기간제 노동과 관련해서 노사정위는 기간제 노동의 사유를 제한하려 한다. 결국 상시적 업무에 대해 기간제 노동을 사용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사용자는 언제라도 정규직을 기간제 노동으로 대체하고 기간제 노동에 대해서는 해고의 자유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특수고용과 관련된 문제도 준근로자 개념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노동3권의 완전한 보장에는 한참 미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법파견에 대해서도 파견법 철폐가 아니라 몇가지 개선책을 논의하고 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노사정위 논의의 전제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유연화에 맞게 비정규 노동을 제도화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처절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속에서 사회적으로 확인된 불만과 요구를 무마하고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단속추방 반대, 노동비자 쟁취하자

공로를 인정하여 히딩크에게 명예국민증까지 부여하겠다는, 정권은 25만이 넘는 (살인적인 주 6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 턱없이 낮은 임금으로 열심히 일해온)이주노동자들에게는 고용허가제라는 그럴듯한 제도를 실시하려 하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5월 25일로 체벌면제, 최소 1년의 출국준비기간을 준다는 사실상 추방대기표에 다름 아닌 '자진신고'기간이 끝났으며, 앞으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월드컵이 끝나는 7-8월에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고용해지에 대한 권한은 사업주에게만 주어지고,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이탈방지와 퇴직적립금 제도로 인해 사업장 변동의 자유조차 없다. 게다가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있다. 안 그래도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임금체불, 폭행과 폭언,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산업재해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이러한 고용허가제는 합법이라는 족쇄 속에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혹독한 착취와 탄압을 양성화하겠다는 발상일 뿐이다.

농업포기, 농업 개방 반대한다.

WTO-도하개발의제의 출범으로 쌀시장 수입개방 협상을 치러야 하는 정부는 지난 4월 18일 발표된 [쌀산업 종합 대책]을 통해 쌀값을 시장에 맡겨 가격하락을 유도하여 쌀 생산량과 쌀재배 면적을 줄여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농업 소득의 50%를 차지하는 쌀 소득의 감소로 인한 농민들의 생활고는 논농업에 대한 직접지불제를 통해 보조하겠다고 하나 이에 할당된 예산 비중은 전체 농업예산의 2.9%로 아주 낮아 거의 실효성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이러한 정책들도 오는 2004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쌀 재협상과 쌀시장 개방을 앞두고 국제가격의 5배 수준인 국내 쌀가격을 떨어뜨려야 하는데 따른 농가소득보전 문제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며, 쌀시장 개방 협상을 맞이하여 스스로 쌀 시장 개방을 준비하겠다는 자세일 뿐이다. 농업이 지닌 식량안보, 환경보전, 고용유지, 지역개발 등의 고유한 역할의 보전과 농민들의 생존권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라는 질서 재편 속에서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것이다.

불안정 노동 철폐, 노사정위 해체! 다시금 투쟁의 전선으로

어쩌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8강 진출. 집회 문화를 그대로 흡수해 버리고 있는 붉은 악마의 응원 문화 속에서 '호헌 철폐! 독재타도!'가 '대-한민국'으로 바뀌었다는 언론들의 호들갑스런 보도들... 못갈 것 없다는 4강을 향한 격돌, 8강전이 22일 광주에서 진행된다. 대중들의 열기가 식기 전에 이쯤에서 월드컵에 고정된 시선을 돌려 지금의 정세를 정확히 바라보야 한다. 월드컵으로 온 국민들이 환호하고 있는 동안 자본주의와 보수정권은 너무나 많은 일들을 추진하고 있다. 보험업법 개혁안을 발표 등을 통한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화 전략, 사회의 제도적 측면에서 의료등 기존 복지영역에 대한 금융질서로의 재편, 주5일제근무 도입의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는 불안정노동의 확산/노동신축화 정책개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노사정위에 의해 불안정 노동은 더욱더 확산되고 조건은 더욱더 열악해져간다. 우리도 쫓겨나지 않고 노동하게 해달라는 이주노동자의 절규는 처절하다.
2002년 월드컵이 이제 6월 30일 폐막을 앞두고 있다. 월드컵 개최와 세계를 놀라게 한 8강 진출일 지라도 이것을 통해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와 정치의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월드컵의 스포츠민족주의가, 국민 통합이 지나간 자리에는 폐허만이 남아있을 것이다. 정세에 대한 철저한 인식으로, IMF 경제위기 5년간 이루어진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과 끊이지 않는 부정부패,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극도의 불신과 환멸을 모아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노동유연화를 막아내기 위한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그럼 무더운 여름 그리고 하반기, 노동자 민중의 가열찬 투쟁을 다시 한번.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