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청구에 대한 인권단체 성명서>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청구는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11월 5일 정부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청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였다. 우리는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제소는 민주주의와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헌법질서를 파괴하는 반헌법적 처사이며, 정부의 제소야말로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뿌리째 위협하는 반민주적 퇴행적 시도로 규정한다.
헌법은 정당 설립 및 정당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정당 활동의 자유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민주적 헌정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국민들은 일정한 정치이념과 정책을 공유하는 정치적 결사체로 정당을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으며, 정당은 선거에 참여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헌법이 보장한 정당 설립 및 활동의 자유는 국민주권원리 및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필수적인 제도이다. 비록 정당해산제도가 헌법에 규정되어 있기는 하나, 그것은 정당 활동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는 분명한 민주주의적 전제를 갖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정당해산의 요건인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라 함은 정당의 강령이나 정책이 명백히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와 양립할 수 없고 또한 정당의 활동이 헌정질서를 폭력적으로 전복시킬 명백하고도 급박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매우 예외적이고 엄격한 요건 하에서 적용되는 것이어야 한다.
법무부는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하면서 이른바 ‘RO’ 조직 등 종북세력이 통합진보당의 핵심이 되었으며 통합진보당의 활동이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 연계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근거로 과거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연루된 간첩사건의 예를 들고 있다. 그러나 북한과 통합진보당(또는 그 전신의 민주노동당)이 연계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내용은 실제 재판에서는 그 어떤 것도 사실로 인정되지 않았다. 정부는 과거 재판에서 입증되지 않았던 것을 마치 진실인 양 포장하여 사실을 왜곡・날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이 주인되는 세상’이라든가 ‘민중’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지극히 자의적이고 편협한 잣대를 동원하여 북한의 대남혁명전략과 일치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주한미군철수라든가 평화협정체결, 국가보안법 폐지와 같은 정책적 주장도 단지 북한의 주장과 동일하다는 이유로 ‘종북’으로 매도하고 ‘위헌정당’이라고 낙인찍고 있다. 이미 사상・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인권적인 악법이라고 국내외에서 비판받아 온 국가보안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면서 지극히 편협한 반공주의만이 헌법의 이념이라고 강변하는 박근혜 정부의 민주주의관은 이미 그 자체로 반헌법적이다. 정부가 문제삼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강령이나 정책들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그러한 강령이나 정책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정부의 인식이 민주주의 이념에 부합될 수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열린 체제이다. 다양한 정치이념과 사상의 자유, 표현・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함은 민주주의의 필수조건이다. 특히 정당은 선거에 참여하고 그 정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함으로써 국민주권원리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매개체이기 때문에 정당해산은 민주주의가 전복될 만한 급박한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 민주주의 수호를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에만 정당성을 갖는다.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기 위하여, 정치권력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하여 정당해산제도를 이용하는 것은 단순한 정부의 권한남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중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심판청구는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서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는 공안매카시즘의 연장에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국정원은 물론 군까지 나서서 지난 대통령선거에 개입한 사건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유린한 사건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적반하장 격으로 종북척결이라는 미명 하에 공포정치와 공안매카시즘을 극도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내란음모사건을 비롯하여, 전교조의 법외노조화, 공무원노조에 대한 근거 없는 탄압 등이 그러하다. 거대 자본의 횡포와 폭압에 맞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민중들에게 무지막지한 경찰력을 동원하여 사회적 비판과 저항을 봉쇄하는 사태를 우리는 매일같이 목격하고 있다. 게다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심판청구에 이어 정부와 새누리당은 ‘종북’이라는 잣대를 이용하여 반국가단체・이적단체의 강제해산을 가능케 하는 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나섰다. 이것은 시민사회에서 정치적 저항과 표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파시즘적 발상이다. 정치권력과 자본의 폭력에 저항하는 모든 사람들과 시민사회에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탄압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할 자유가 사라질 것이며, 권력과 자본의 횡포에 맞서는 인권의 외침도 심각하게 위협받는다.
그러므로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심판청구는 우리 사회의 정치이념과 사상의 다양성을 부정하고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는 반민주적 폭거이며, 지금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종북 매카시즘의 날카로운 발톱 하나를 드러낸 것이다. 우리는 정치이념과 사상의 다양성을 유린하고 모든 사회적 비판과 저항을 말할 자유를 가두어버리려는 정부의 파시즘적 행태를 강력히 규탄하며, 정당해산심판청구를 당장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아울러 우리는 종북이라는 낙인과 매카시즘을 동원하여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하는 모든 퇴행적 시도에 맞서 싸울 것이다.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정당해산심판 청구는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종북 낙인을 이용하여 사회적 저항과 비판을 봉쇄하려는 모든 시도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
2013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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