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하고 정의로운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수립을 촉구한다
대기업 특혜와 에너지 민영화 확대로 점철된 에너지 기본계획 민관 합동 워킹그룹 권고안
지난 10월 11일 정부는 ‘에너지 기본계획 민?관 합동 워킹그룹 권고안’(이하 권고안)을 발표하였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향후 20년간 국가 에너지 정책의 기본 틀을 규정할 에너지 기본계획 초안을 작성하여 12월 중 심의, 확정할 예정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후쿠시마 핵사고, 전력대란, 밀양 송전탑 사태, 원전 비리 등 에너지 체제와 정책에 커다란 문제가 있음을 알리는 사건이 계속해서 터지고 있다. 기존의 에너지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새로운 방향을 세워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하지만 권고안은 기존의 에너지 정책의 주요한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첫째, 과도한 수요예측을 통해 전력공급확대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가 국회에 따로 제출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초안-「민관 워킹그룹 권고안」과 향후 계획』(이하 초안)은 2035년의 전력수요가 지금보다 80%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권고안은 ‘수요관리 중심의 에너지 정책 전환’을 제1과제로 제시하고 있지만, 세부 계획은 ‘가격 정책’에만 치우쳐 있다. 그간 시민사회진영이 요구해 온 ‘산업구조의 개편’, ‘에너지 저소비 사회로의 전환’, ‘에너지 효율 개선’ 등 중요한 과제는 빠져 있다.
둘째, 정부는 권고안에서 이전 계획에 비해 원전비중을 41%에서 22~29%로 크게 줄였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들은 탈핵으로 나아가는 신호탄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정부의 80% 늘어난 전력수요 예측에 따르면 원전 숫자는 지금보다 최소 12기에서 18기까지 더 늘어나게 된다. 원자력발전의 안전성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 역시 원자력 발전의 지속에 대한 논란이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진지한 사회적 토론을 통해 합의를 만들어 나가기는커녕 숫자 놀음으로 국민의 눈을 현혹시키고 슬그머니 기존의 원전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려 하고 있다.
더구나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을 높이고 원전 운영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담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제출된 대책은 미흡한 점이 많다. 원자력발전을 담당하는 주요 공기업들의 수익성?상업성 위주의 운영의 탈피, 공공성과 안전을 중심으로 한 민주적인 운영체제 수립, 안전을 위한 충분한 인력 충원 등 핵심적인 내용들이 모두 빠져 있다.
셋째, 대기업 특혜와 에너지 산업의 민영화 확대 계획이다. 권고안은 2035년 발전량의 15%를 분산형 전원으로 공급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주된 방식을 민간기업의 자가발전 확대에서 찾고 있다는 데 문제점이 있다. 권고안은 자기소비의 70%를 자가발전하고 있는 포스코를 모범사례로 들고 있다. 하지만 포스코는 민간 발전 4대 메이저 회사 중 하나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민간 발전사들은 왜곡된 전력거래시스템 을 활용하여 천문학적 이익을 거두고 있고, 무책임하게 발전소 건설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전력 공급 불안을 초래한 주범이다. 대기업의 자가발전 중심의 분산형 발전 확대는 민자 발전 비율 확대로 귀결될 것이며 더 심각한 문제를 불러 올 것이다.
또한 권고안은 해외자원개발을 내실화하겠다며 공기업은 리스크가 높고 장기투자가 필요한 분야를 중점 추진하고, 시장성이 큰 분야는 민간 중심으로 추진하겠다고 하고 있다. 위험은 국민에게 부담지우고, 이익은 사기업에게 넘기는 꼴이다.
더구나 비공개된 초안에는 “가스 민간직수입 활성화, 소비자 후생 증진을 위한 전력산업 선진화 방안 마련” 등 노골적으로 민영화 확대 방안이 제시되어 있다.
넷째, 에너지 기본권 보장 방안이 부실하다. 역전된 에너지 가격을 바로잡기 위해 전기요금을 합리화하겠다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은 빠져 있으며, 오히려 전체적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하겠다고 하며 비용 부담을 일반 시민에게 전가하려고 하고 있다. 에너지 복지제도 관련해서는 추상적인 정책목표와 근거가 부족한 개선 전망치만 제시되어 있을 뿐 세부 계획이 하나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권고안의 에너지 기본권에 대한 고려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다섯째, 정부는 이번 에너지기본계획이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과정을 거쳐 수립했다는 점을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민?관 합동 워킹그룹에는 일부 환경단체의 정책전문가들이 포함된 것을 제외하고 각계각층을 대변하고 다양한 정치적 견해들을 대표하는 민간의 참여는 애초부터 없었다.
향후 우리 사회가 어떠한 에너지 체제를 선택할 것인지의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며 지속가능하고 정의로운 에너지 체제로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와 토론, 소통과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며 이에 기반한 중장기적인 에너지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정부는 민영화와 에너지 기업에 대한 특혜, 기업의 이익을 위해 전기요금 부담을 시민에게 전가하려는 시도를 중단하여야 한다. 우리는 정부가 지금이라도 밀실에서 나와 더 넓은 광장에서 함께 소통하여 지속가능하고 정의로운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13년 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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