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 | 2016.11.15
100만 모인 열망, 짜여진 각본을 찢어버리자!
11월 12일 민중총궐기 평가와 나아갈 길
지난 12일 민중총궐기는 100만 민중이 모인 거대한 저항의 장이었다. 도심 곳곳이 발 디딜 틈 없이 채워졌고, 뜨거운 함성으로 들썩였다. 민주노총은 조합원 15만 명이 참가해 민중총궐기의 판을 열었다. 이어 전국에서 모인 농민, 청소년, 대학생, 여성, 빈민, 장애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총궐기에 함께 했다. 우리 사회를 이토록 망가뜨린 권력자들에 맞서 함께 싸웠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시작부터 판을 주도한 것은 조선일보였다. 보수 재집권을 위해선 보수세력 내 재편이 필요하다 여긴 조선일보 등은 검찰의 칼과 비박 보수의 지분을 바탕으로 쉴 틈 없이 방향을 제시하고, 매일 같이 판을 뒤집었다.
여기에 분노한 시민들의 저항이 등장했다. 야당들이 오락가락하며 사태를 주도하지 못하고 끌려 다니면서, 우리는 야당에게 사태를 수습할 능력이 없음을 깨달았다. 야당은 몇 차례씩 입장을 번복했고, 분명한 입장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결국 갈팡질팡하는 정치판을 압도한 것은 노동자와 시민들이었다. 10월 29일 촛불집회는 주최 측의 예상을 몇 갑절 뛰어넘는 3만여 명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자신감을 얻은 시민들은 매일 저녁 주요 도시로 투쟁을 확대했고, 게이트 2주차인 11월 5일엔 20만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부산과 대구, 광주, 대전 등 주요 도시의 시민 대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리고 12일, 100만 명의 국민들이 모여 청와대로 향하기에 이른 것이다.
사태 해결의 열쇠는 누구에게 있는가?
“우리는 대통령이 던진 덫에 빠졌다” 민중총궐기 나흘 전 국민의당 박지원은 초라하게 토로했다. 이는 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진영 자신의 무능함과 자신들에게 사태 해결의 열쇠가 없다는 것을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박지원은 두 번째 대국민 사과에 이어 국회까지 방문해 카드를 내민 박근혜가 노리는 것은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 야당을 늪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란 경고도 덧붙였다. 자신들에게 어떤 해결책도, 의지도 없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반면 민중들은 보란 듯이 증명했다. 광화문에서 숭례문까지, 종로3가와 안국동에서 신문로까지! 모든 도로와 광장이 분노한 시민들로 가득 했다. 모두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고, 조심스레 희망을 가늠했다. 우리는 깨달았다. ‘열쇠는 우리에게 있다’고,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느냐에 따라 사회는 바뀐다’고!
짜여진 각본을 찢고 사회를 바꾸자!
보수신문이 규정하는 것과 달리 국민들의 요구는 박근혜 하야에만 그치지 않는다.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이 주요 국가 정책을 비롯 삼성과 국민연금 등 총체적으로 개입됐다는 사실에서 확인됐듯, 대통령 갈아치우는 것만으론 이 모든 문제, 즉 '박근혜를 낳은 체제'를 해체할 수 없다. 정경유착, 검찰, 국민연금 등 사태와 직접적으로 연루된 사안과 우리 사회를 병 들게 한 모순들을 전면적으로 혁신해야, 민중의 삶을 지키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다. 광장 곳곳에서 ‘혁명’이라는 말이 쏟아지는 것은 시민들이 지닌 이런 열망을 반영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잠복된 쟁점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지난 민중총궐기 전후 벌어진 폭력-비폭력 시위 논쟁이 가장 대표적이다. 최근 언론들은 대규모 시위에서 비폭력과 깨끗하고 질서 있는 집회가 고수되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실제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 사이에서는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을 둘러싼 논쟁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폭력-비폭력’의 대립은 표면적 쟁점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일보를 위시로 한 보수세력은 시민들의 투쟁이 물리적 충돌의 문제건 과감한 입장이건, 자신들이 짜놓은 각본을 벗어나면 ‘불법과 폭력, 반공이데올로기’의 딱지를 붙이려 할 것이고, 각본 안에만 머무른다면 ‘모범시민’이란 칭찬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보수재편 시나리오가 삶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민중의 열망을 담을 수 있는가? 도리어 기회주의적 미봉책에 불과하지 않은가?
민중총궐기에서 우리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민중의 분노와 의지를 확인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보수세력이 짜놓은 각본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우리의 인식과 힘을 다시 지역과 현장에서 모으고 분출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지속적이고 다양한 저항, '박근혜 체제'란 무엇이며, 이 체제를 넘어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
일터와 학교, 지역에서 함께 할 수 있는 행동을 조직하자. 시민들의 토론을 통해 민중들이 나아갈 길을 합의하고, 다시 광장에 섰을 때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4년에 한 번, 5년에 한 번 어떤 정치인을 지지할 것인가에만 머무르는 민주주의, 우리의 삶과는 무관한 헌신짝 같은 가짜 민주주의를 넘어서자. 보수재편이라는 짜여진 각본을 찢고, 민중의 시나리오를 새롭게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