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5호 | 2008.09.27
미국발 금융위기, 서브프라임 사태의 끝은 어디인가
부시정부의 구제금융 요청과 금융화의 계급적 본질
미국 금융위기의 최근 양상
9월 15일 미국 4위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가 뉴욕 파산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3위 투자은행인 메릴린치가 뱅크오프아메리카에 인수되면서 미국 금융시장의 불안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미국 최대 보험사인 AIG 역시 자금난에 빠져 미국 정부가 8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공급하여 지분의 80%를 인수하면서 파산은 면하였으나 공적관리 하에 놓이게 되었다. 5위 투자은행이었던 베어스턴스는 이미 작년에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올해 3월 16일 JP모건체이스에게 헐값으로 인수되었다. 또 9월 21일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제출한 은행지주회사로의 기업구조 변경신청을 승인했다. 이로써 6개월 만에 미국의 1~5위 투자은행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규모(6,139억 달러, 약 679조 원)는 2002년 엔론과 더불어 회계조작 사건으로 유명한 월드컴의 파산금액(419억 달러)의 15배에 달하는 역대 최고규모이다. 부동산 거품에 편승하여 주택대출상품에 올인했던 리먼브라더스는 주택가격이 하락하면서 주가가 무려 94.25% 떨어져 21센트(180원)의 휴지조각으로 변했다. 130개국에 진출한 미국 최대의 보험회사 AIG도 주식가격이 80% 가까이 하락하면서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아 가까스로 파산을 면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9월 6일 양대 모기지 대출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부실을 막기 위해 2,0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한데 이어 리먼브라더스 파산 후 이틀에 걸쳐 1,400억 달러를 투입했다. 또 유럽중앙은행 300억 유로(427억 달러),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 50억 파운드(90억 달러), 일본중앙은행 1조5,000억 엔(142억 달러) 등 각국 중앙은행도 사태의 확산 방지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9월 19일에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안을 발표했다. 7,000억 달러(약 800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금융기관의 부실을 떠안을 공적기구를 설립하고,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을 인수하겠다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위기와 부채의 증권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 이후 금융위기의 전이과정은 단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주택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모기지시장의 부실화 → 모기지 관련 업체 및 보증기관의 부실자산 증가 → 대형은행 파생상품 가격 하락 → 대형은행 및 금융기관 부실 및 파산. 한편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연관된 경제주체는 다음과 같다. 모기지차입자 → 모기지대출회사 → 자산유동화회사 → 채권보증회사 → 투자은행 → 투자자.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기업들은 투자은행이나 투자자들로 모기지 부실에 연계된 최종단계의 주체들이다.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리먼브라더스는 투자은행이며, AIG는 투자자의 역할을 담당한 보험회사다.
그러나 위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계사슬의 최종단계까지 전개됐다는 사실이 위기의 끝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위기가 모든 금융주체에게 확산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이로써 실물경제에 대한 위협이 더욱 높아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초기에는 중간의 어느 단계에서 위기의 전이가 중단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결국 관련된 모든 경제주체들이 위기에 노출됨으로써 미국경제 전반과 세계경제에까지 위기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 거품이 꺼진 이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에서 시작된 위기가 이렇게 여러 단계로 확산된 것은 부채의 증권화 때문이다. 증권화는 이전에 유통되지 못했던 부채자산을 거래 가능한 증권으로 변경시켜 자본시장에 판매하는 것이다. 예컨대 은행이 채무자에게 자금을 빌려주었다면 은행의 자산계정에는 대출이라는 부채자산이 나타나게 되며, 이 대출자산은 약정된 이자와 원금을 회수하기 이전에는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묶여 있는 비유동적 자산이다. 그러나 채무자에게 원금과 이자를 받을 이 권리, 즉 대출자산을 누군가에게 판매하면 대출 회수 이전에 은행은 대출을 현금화할 수 있게 되고 또 다른 누구에게 추가로 대출을 해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전통적으로는 은행이 발행하고 보유했던 비유동적 대출(부채자산)을 증권시장에 판매하고 유통시키는 행위를 증권화라고 한다. 증권화 과정에서 은행 등이 매각한 기초자산인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은 유사한 종류의 다른 대출과 함께 재구성되어 이를 담보로 주택담보부증권(MBS), 부채담보부증권(CDO) 같은 일종의 구조화된 채권이 발행된다. 이렇게 해서 증권화는 은행의 자산 및 부채구조에 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증권화는 은행의 수익구조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은행이 이제 전통적인 예대업무에서 발생되는 이자수익보다는 부채를 가공해 만들어낸 증권을 발행하고 판매할 때 발생하는 수수료를 주요한 수입수단으로 삼게 된다. 미국 상업은행의 영업수입 중 비이자수입의 비중이 1980년대 20%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45%에 접근하고 있으며, 그 중 많은 부분이 증권화와 관련되어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을 금융전반의 위기로 확산시키고, 투자은행의 파산을 몰고 온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증권화로 투자은행은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챙겼다. 중요한 것은 이 증권화 과정이 한 차례로 끝난 것이 아니라 2차, 3차로 확대되고 증폭되었다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위기 확산의 주범이 2차 증권화 과정에서 새롭게 발행된 CDO의 부실이다. 1차 증권화 과정에서 발행된 MBS에 카드대출, 자동차대출, 기업대출, 학자금대출 등을 담로로 발행된 다른 증권을 혼합하여 만든 것이 CDO다. 투자은행들은 CDO를 발행하고 매각할 때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얻을 수 있어서 앞 다투어 CDO의 발행과 인수, 판매에 뛰어들었다. 또 투자은행들은 이 CDO를 다른 자산담보부증권(ABS)과 섞어 3차 증권을 발행했다. 이렇게 여러 차례의 증권화 과정을 거치면서 원자산인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이 은폐되었다.
하지만 고수익 추구는 필연적으로 높은 위험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CDO를 발행, 인수, 판매한 투자은행들은 CDO의 채무불이행 위험에 대비하여 채권보증회사(모노라인)와 일종의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이것이 바로 신용파산스왑(CDS)계약이다. 투자은행이 채권보증회사에 보험료를 내면, CDO에 채무불이행 위험이 발생했을 때 채권보증회사가 원리금의 지불을 보증한다. 따라서 CDO의 원자산인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부실이 발생하여 채무불이행이 발생하면, 채권보증회사의 원리금 지불 보증금액이 증가하여 결국 채권보증회사의 부실이 늘어난다. 채권보증회사의 보증능력에 대한 불안이 고조됨에 따라 그 회사의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되고, 채권보증회사와 계약했던 CDS 계약의 가치가 재평가되어 결국에는 손실로 계상된다. 이것이 바로 CDS의 평가손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서 유발된 금융위기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아직도 주요 금융기관들에서 CDS 같은 신용파생상품의 평가손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예기치 못한 금융기관의 추가부실과 도산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서브프라임 위기의 전개과정
이러한 서브프라임 위기의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지금까지의 사태 전개과정을 1~6차의 위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미국의 주택거품은 2001년 미국 FRB의 급격한 금리인하 이후 5년간 지속되었다. 하지만 FRB가 2004년부터 2006년 중반까지 여러 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1%에서 5.25%로 인상시키자 주택거품은 폭발했다. 주택판매, 주택건설, 모기지 대출, 주택가격이 모두 급락하기 시작했다. 2007년 2~3월 모기지 대출회사의 부실화와 파산 위기라는 서브프라임 발 금융위기의 태풍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이자율 상향조정의 첫 번째 물결이 강타했다(1차 위기).
2007년 8월 9일 프랑스계 투자은행 베엔뻬 빠리바가 서브프라임 관련 두 종류의 펀드에 대한 환매를 중단하자 세계적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채권을 유동화한 파생금융상품의 가격폭락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2차 위기). 먼저 MBS 시장이 사실상 소실되었고, 이는 모든 층위의 CDO 시장을 동결시켰다. CDO 시장이 급격히 위기에 전염되자, 거래규모가 급격히 축소되었고 추정 가치의 약 80%가 하락했다. CDO에 투자한 헤지펀드, 보험회사, 연금, 은행 등이 줄줄이 손실을 입게 되었다. 메릴린치와 시티뱅크는 대규모 자산상각이 불가피해졌고, 2007년 10월 말 각각 80억 달러와 110억 달러의 손실을 발표했다. 또한 메자닌 트랑시(고수익고위험 등급) 이하 신용등급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았던 헤지펀드는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위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2007년 11월, 투자은행들이 고수익 자산에 투자할 목적으로 세운 구조화투자회사(SIV)를 중심으로 하는 3차 위기가 발생했다. 이제 은행은 갑작스럽게 고객의 즉각적인 유동성 투입 요구에 직면했다. 이러한 자금 소요는 은행간시장(inter-bank market)에서 폭발했다. 2007년 8월 세계적으로 조직된 은행간시장이 급속도로 무질서해지자, 전 세계의 중앙은행들(특히 유럽중앙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이사회)은 몇 주 동안 대규모 긴급자금을 투입해야 했다. 최고 중앙은행, 즉 ‘최종대부자’의 개입은 선례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9월 18일 미국 연방준비이사회의 갑작스러운 대규모 이자율 인하(0.5%)에 뒤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금융위기는 계속해서 다른 위기로 이어졌다. 2008년 1월 채권보증회사들(모노라인)의 위기가 현실화되었다(4차 위기). 모노라인은 신용파산스왑(CDS) 계약을 통해서 헤지펀드나 투자은행 등으로부터 특정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일정 수준의 신용보증수수료를 받는 대신, 채권에 대한 원금과 이자지급을 보증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가 눈덩이 불어나듯 커지자 채권보증회사들의 부실이 커졌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최대 모기지 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으로 위기가 확산된 것이다(5차 위기). 13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주택 모기지 중 5조 5,000억 달러를 공급하는 두 기관은 민간금융기관들의 주택 모기지를 재매입하여 MBS를 발행했다. 이들은 2005년까지만 해도 비우량 MBS에는 손을 대지 않았지만 비우량 MBS가 폭발적인 수익률을 거두고, 이에 대한 규제와 감독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2,000억 달러가 넘는 비우량 MBS를 구입했다. 여기에다 미국 주택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모기지 연체율이 상승해 모기지 부실이 서브프라임을 넘어 프라임 부문으로 확산되자 두 업체도 사실상 지급불능 사태에 빠진 것이다. 이에 미국 재무부는 뉴욕연방은행을 통하여 두 업체에 2,00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해 사실상 국유화하게 된다.
그 이후 투자은행의 부실 심화로 투자은행의 파산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미국 5대 투자은행이 며칠 사이에 모두 사라졌다(6차 위기).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의 부실이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고, 금융경색으로 자금동원과 지분매각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자은행 등 금융기관의 부실화와 파산은 자금경색 및 이자율 상승을 초래하여 주택가격의 추가적인 하락을 가져오고, 이는 다시 더 많은 금융기관의 부실을 유발하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미국식 금융모델과 투자은행의 몰락?
최근 사태로 인해 미국식 금융모델, 특히 투자은행의 향방에 대한 관심이 높다. 7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1980년대 이후 금융세계화를 이끌어오던 미국 5대 투자은행이 6개월 만에 모두 사라졌다. 이런 사태를 보고 미국식 금융모델의 위기, 투자은행의 몰락을 진단하는 목소리가 높다.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예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독립 투자은행의 몰락이 곧 바로 금융자본의 몰락을 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미국 투자은행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1929년 주가대폭락과 그 이후의 대공황을 계기로 J.P.모건이라는 겸업은행이 미국의 주요 대기업을 지배, 통제하는 일종의 금융자본주의가 붕괴했다. 이를 대신하여 경영자-뉴딜관료-조직노동자 간의 불완전한 타협에 기초하여 금융자본(고도금융)을 일정하게 제어하는 관리자 자본주의가 성립했다. 관리자 자본주의에서 금융시스템은 금융당국에 의해 규제되고 통제되었다. 1933년 미국의 은행법(일명 글래스-스티걸법)은 금융자본의 과도한 영향력을 제어하기 위해서 상업은행의 증권업무와 인수업무를 금지함으로써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완전히 분리했다.
이와 동시에 1930년대 초 미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일찍 투자은행의 주 활동무대인 자본시장의 제도를 정비했다. 다른 주요 선진국들의 자본시장이 1~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던 데 비해 미국의 자본시장은 전쟁과 대공황의 혼란 속에서도 발전할 수 있었다. 미국은 1933년 증권법, 1934년 증권거래소법, 1939년 신탁증서법, 1940년 투자회사법 등의 조치를 통해 자본시장을 안정화하고,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형성했다. 또 2차 대전 직후에는 월가를 중심으로 한 금융자본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구헤게모니국가(미국과 영국) 간의 불완전한 타협(특히 케인즈의 요구가 부분적으로 반영)으로 각 국민국가들이 자유로운 국제적 자본이동에 대해 일정한 규제와 통제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체제는 본성상 완전한 자유화와 고도의 유동성을 추구하는 금융자본과 양립하기가 어려웠다. 미국 금융자본은 1930년대 이후 70년 동안 케인즈주의 타협으로 가능했던 각종 금융규제를 대부분 해체하고 변형함으로써 자신의 수익성과 유동성을 회복하고 강화시켰다.
미국의 투자은행은 1960년대 중후반까지만 하더라도 파트너십 형태의 소규모 자본에 머물러 있었다. 초기 투자은행의 경우 주된 업무가 암묵적 지식과 정보에 의존하기 때문에 인적 네트워크의 형성이 아주 중요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 이윤율이 하락하고 오일머니가 유입되면서 자금이 자본시장 쪽으로 몰리자 파트너십 형태의 소규모 투자은행으로는 급속히 커져가는 자본시장 업무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또한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고 정보통신기술이 금융부문에 응용되면서 대규모 거래의 주문체결과 결제가 용이해짐에 따라 대규모 소매거래에서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는 대규모 투자은행이 필요했다. 1914년에 소매증권사로 출발하여 인수합병 등을 거쳐 거대 종합투자은행으로 발돋움한 메릴린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메릴린치는 1971년에 비로소 기업공개를 했으며 1973년 업계 최초로 금융지주회사체제로 전환했다.
한편 월스트리트가 생긴 이후 200여 년 동안 주식매매 중개수수료가 고정적으로 유지되어 왔는데, 이런 관행도 1970년대 주식거래의 폭발적 증가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마침내 1974년 미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의해 주식매매 중개수수료가 전면적으로 자유화되었으며, 파트너십의 소규모 투자은행들도 주식회사형태로 전환하면서 대형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등장한 정보통신기술이 금융에 접맥되면서 대규모 거래와 결제가 전례 없이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1980년대 이후 미국 가계의 예금, 적금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는 대신 가계의 간접적인 주식보유가 크게 증가했다. 이런 여건에서는 전통적인 상업은행이 기존의 업무영역에서 높은 수익을 올리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지주회사형태의 거대상업은행은 은행지주회사의 자회사 방식으로 투자은행의 자본시장 업무영역으로 진출하려고 했다. 따라서 1980년대를 지나오면서 상업은행은 은행지주회사를 통해 증권업무, 자산관리업무, 보험업무 등 비은행업무로의 확대를 지속해서 추진했다. 1990년대까지 존재했던 은행의 겸업화와 대형화에 대한 걸림돌은 1999년 금융서비스현대화법(그램-리치-블라일리법) 제정을 계기로 거의 사라졌다. 이 법의 제정은 1930년대 만들어져 미국 금융시스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글래스-스티걸법을 허무는 최종 조치이기도 했다.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의 제정으로 2000년 이후에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경계선이 사실상 모호해졌다. 몇 가지 제한 조치가 남아있기는 하나 은행, 증권, 보험회사 간 합병이 가능해지면서 금융기관의 대형화가 급속히 진행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미 1990년대 중반 이후 거대금융기관 간 합병인수의 결과로 소수의 거대은행들의 금융지배력이 더욱 커진 상황에서 이러한 추세가 강화될 수 있는 제도적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또한 기존의 은행지주회사가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게 됨으로써 미국금융자본의 권력은 이전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금융지주회사가 미국금융자본의 핵심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장벽이 금산분리이다. 추가적으로 은행과 상공업 분리원칙마저 무너진다면 산업과 금융 두 영역 모두를 동시에 지배하는 거대권력이 출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5대 투자은행이 상업은행에게 인수되거나(베어스턴스, 메릴린치), 은행지주회사로 전환(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한 것을 두고 투자은행 모델의 몰락이라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미국 금융의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1980년대 이후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경계가 약화되기 시작했고 1999년의 금융서비스현대화법으로 결정적인 장벽이 제거되었다. 이번 금융위기로 인해 독립적인 투자은행이 한꺼번에 사라지기는 했지만 이미 다양한 기관에서 수행하고 있는 업무는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에서 존속될 것이다. 오히려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싼 값으로 거대 투자은행을 인수한 금융자본의 권력이 강화되면서 금융지주회사가 금융자본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할 지도 모른다.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 금융자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한편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미국 정부는 구제금융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이미 베어스턴스를 구제하기 위해서 29억 달러의 부실증권을 인수했고, 2,000억 달러를 들여 패니메이와 프래디맥을 국유화했다. 또 850억 달러를 들여 AIG의 지분 80%를 인수했다. 그리고 마침내 연준 위원장 버냉키와 재무부 장관 폴슨은 미국 시민들의 세금 7,000억 달러를 구제금융으로 금융자본의 부실자산을 대부분 사들이겠다고 제안했다. 또 동시에 미국 정부는 3조 5,000억 달러에 달하는 '머니마켓펀드(MMF)' 예금으로 위기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에 대해서 지급보장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미 재무부 장관 헨리 폴슨은 서브프라임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세계 1위의 투자은행이었던 골드만삭스의 전직 CEO 출신이다. 그런데 지금 폴슨(또는 골드만삭스?)이 이러한 구제금융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폴슨의 구제금융안에는 정부가 어떤 증권을 구매할 것인지, 어떤 기업이 이러한 보장을 받을 것인지, 증권의 가격은 어떻게 매길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기준도 담고 있지 않다. 오직 정부와 의회가 폴슨에게 7,000억 달러에 대한 처분권을 위임해 줄 것을 요구할 뿐이다.
사실 구제금융을 통한 부실증권 매입은 미국정부로서도 매우 곤혹스러운 결정이다. 어떤 자산을 어떤 가격으로 사야하는지 결정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부실 금융기관들이 매각하는 자산의 가치가 현재의 시장가치보다 낮을 경우에 다시 그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지고, 금융경색 현상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반면 부실자산을 시장가치보다 높게 사들일 경우 정부의 재정적자는 과대해질 것이고,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시민들의 부정적인 여론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금융자산에 대한 적정 가치를 측정하는 문제 자체가 현재의 위기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너무나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폴슨은 구제금융 절차를 자신에게 위임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구제 과정을 사유화하려고 한다. 폴슨이 고용한 월스트리트의 기업이 부실자산의 가격을 결정하면, 정부는 시민들의 세금으로 월스트리트 기업의 부실자산을 구매해야 한다. 한편 이 월스트리트 기업은 수억 달러를 금융서비스의 대가로 받을 것이다. 게다가 폴슨과 버냉키는 시간이 지체되면 세계 금융시장이 붕괴할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자신들의 구제금융안을 의회가 신속하게 통과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 의회가 이 안을 그대로 통과시킨다면 한 사람에게 미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결정적인 권한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승인 받기 위해 했던 일과 유사하다.) 또 놀랍게도 폴슨의 구제금융안에는 금융자본에 대한 처벌이나 유사한 사태를 막기 위한 규제방안이 없다. 그러나 민주당이 제기하는 부실금융기관 경영자에 대한 보수 제한조치도 실질적인 문제 해결과는 무관한 파퓰리즘에 불과할 뿐이다.
폴슨은 2007년 봄에만 해도 미국이 금융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인해서 세계 금융시장에서 우위를 빼앗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정부는 금융시장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폴슨은 '금융제국'의 대리인이자 건설자로서 이러한 금융 위기를 만든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금융자본과 자신과 같은 금융엘리트들이 만든 현재의 위기를 시민들의 돈과 책임으로 떠넘기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처리 과정의 결정권을 자신의 수중에서 통제해서 7,000억 달러를 사용하려고 한다.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7,000억 달러를 들여 미국의 금융위기를 현 상황에서 제어한다면 금융자본과 미국 지배세력에게는 좋은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독점적인 권리를 통해 권력을 재승인 받는 금융엘리트와 금융자본은 새로운 금융권력을 형성하려고 할 것이다. 9월 25일 미국에서는 사회운동네트워크인 평화정의연합(United for Peace and Justice, UFPJ) 주최로 월스트리트를 위한 자금 지원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8,000억 달러 이상을 쓴 미국 정부가 월스트리트를 위해 7,000억 달러를 쓰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항의의 표시였다. 미국 경제의 금융화는 미국 내 소득 격차를 축소하기는커녕 더욱 확대했다. 즉 금융화의 수혜는 소수 고소득자에게 부를 더욱 집중시켰다. 하지만 금융화 거품이 붕괴하는 순간 그 막대한 회생비용은 결국 다수의 민중이 부담하게 된 것이다. 미국 금융위기는 금융화가 내포하는 계급적 본질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9월 15일 미국 4위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가 뉴욕 파산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하고, 3위 투자은행인 메릴린치가 뱅크오프아메리카에 인수되면서 미국 금융시장의 불안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미국 최대 보험사인 AIG 역시 자금난에 빠져 미국 정부가 8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공급하여 지분의 80%를 인수하면서 파산은 면하였으나 공적관리 하에 놓이게 되었다. 5위 투자은행이었던 베어스턴스는 이미 작년에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올해 3월 16일 JP모건체이스에게 헐값으로 인수되었다. 또 9월 21일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제출한 은행지주회사로의 기업구조 변경신청을 승인했다. 이로써 6개월 만에 미국의 1~5위 투자은행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규모(6,139억 달러, 약 679조 원)는 2002년 엔론과 더불어 회계조작 사건으로 유명한 월드컴의 파산금액(419억 달러)의 15배에 달하는 역대 최고규모이다. 부동산 거품에 편승하여 주택대출상품에 올인했던 리먼브라더스는 주택가격이 하락하면서 주가가 무려 94.25% 떨어져 21센트(180원)의 휴지조각으로 변했다. 130개국에 진출한 미국 최대의 보험회사 AIG도 주식가격이 80% 가까이 하락하면서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아 가까스로 파산을 면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9월 6일 양대 모기지 대출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부실을 막기 위해 2,0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한데 이어 리먼브라더스 파산 후 이틀에 걸쳐 1,400억 달러를 투입했다. 또 유럽중앙은행 300억 유로(427억 달러),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 50억 파운드(90억 달러), 일본중앙은행 1조5,000억 엔(142억 달러) 등 각국 중앙은행도 사태의 확산 방지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9월 19일에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안을 발표했다. 7,000억 달러(약 800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금융기관의 부실을 떠안을 공적기구를 설립하고,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을 인수하겠다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위기와 부채의 증권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 이후 금융위기의 전이과정은 단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주택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모기지시장의 부실화 → 모기지 관련 업체 및 보증기관의 부실자산 증가 → 대형은행 파생상품 가격 하락 → 대형은행 및 금융기관 부실 및 파산. 한편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연관된 경제주체는 다음과 같다. 모기지차입자 → 모기지대출회사 → 자산유동화회사 → 채권보증회사 → 투자은행 → 투자자.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기업들은 투자은행이나 투자자들로 모기지 부실에 연계된 최종단계의 주체들이다.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리먼브라더스는 투자은행이며, AIG는 투자자의 역할을 담당한 보험회사다.
그러나 위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계사슬의 최종단계까지 전개됐다는 사실이 위기의 끝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위기가 모든 금융주체에게 확산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이로써 실물경제에 대한 위협이 더욱 높아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초기에는 중간의 어느 단계에서 위기의 전이가 중단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결국 관련된 모든 경제주체들이 위기에 노출됨으로써 미국경제 전반과 세계경제에까지 위기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 거품이 꺼진 이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에서 시작된 위기가 이렇게 여러 단계로 확산된 것은 부채의 증권화 때문이다. 증권화는 이전에 유통되지 못했던 부채자산을 거래 가능한 증권으로 변경시켜 자본시장에 판매하는 것이다. 예컨대 은행이 채무자에게 자금을 빌려주었다면 은행의 자산계정에는 대출이라는 부채자산이 나타나게 되며, 이 대출자산은 약정된 이자와 원금을 회수하기 이전에는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묶여 있는 비유동적 자산이다. 그러나 채무자에게 원금과 이자를 받을 이 권리, 즉 대출자산을 누군가에게 판매하면 대출 회수 이전에 은행은 대출을 현금화할 수 있게 되고 또 다른 누구에게 추가로 대출을 해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전통적으로는 은행이 발행하고 보유했던 비유동적 대출(부채자산)을 증권시장에 판매하고 유통시키는 행위를 증권화라고 한다. 증권화 과정에서 은행 등이 매각한 기초자산인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은 유사한 종류의 다른 대출과 함께 재구성되어 이를 담보로 주택담보부증권(MBS), 부채담보부증권(CDO) 같은 일종의 구조화된 채권이 발행된다. 이렇게 해서 증권화는 은행의 자산 및 부채구조에 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증권화는 은행의 수익구조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은행이 이제 전통적인 예대업무에서 발생되는 이자수익보다는 부채를 가공해 만들어낸 증권을 발행하고 판매할 때 발생하는 수수료를 주요한 수입수단으로 삼게 된다. 미국 상업은행의 영업수입 중 비이자수입의 비중이 1980년대 20%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45%에 접근하고 있으며, 그 중 많은 부분이 증권화와 관련되어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을 금융전반의 위기로 확산시키고, 투자은행의 파산을 몰고 온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증권화로 투자은행은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챙겼다. 중요한 것은 이 증권화 과정이 한 차례로 끝난 것이 아니라 2차, 3차로 확대되고 증폭되었다는 것이다. 서브프라임 위기 확산의 주범이 2차 증권화 과정에서 새롭게 발행된 CDO의 부실이다. 1차 증권화 과정에서 발행된 MBS에 카드대출, 자동차대출, 기업대출, 학자금대출 등을 담로로 발행된 다른 증권을 혼합하여 만든 것이 CDO다. 투자은행들은 CDO를 발행하고 매각할 때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얻을 수 있어서 앞 다투어 CDO의 발행과 인수, 판매에 뛰어들었다. 또 투자은행들은 이 CDO를 다른 자산담보부증권(ABS)과 섞어 3차 증권을 발행했다. 이렇게 여러 차례의 증권화 과정을 거치면서 원자산인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이 은폐되었다.
하지만 고수익 추구는 필연적으로 높은 위험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CDO를 발행, 인수, 판매한 투자은행들은 CDO의 채무불이행 위험에 대비하여 채권보증회사(모노라인)와 일종의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이것이 바로 신용파산스왑(CDS)계약이다. 투자은행이 채권보증회사에 보험료를 내면, CDO에 채무불이행 위험이 발생했을 때 채권보증회사가 원리금의 지불을 보증한다. 따라서 CDO의 원자산인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부실이 발생하여 채무불이행이 발생하면, 채권보증회사의 원리금 지불 보증금액이 증가하여 결국 채권보증회사의 부실이 늘어난다. 채권보증회사의 보증능력에 대한 불안이 고조됨에 따라 그 회사의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되고, 채권보증회사와 계약했던 CDS 계약의 가치가 재평가되어 결국에는 손실로 계상된다. 이것이 바로 CDS의 평가손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서 유발된 금융위기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아직도 주요 금융기관들에서 CDS 같은 신용파생상품의 평가손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예기치 못한 금융기관의 추가부실과 도산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서브프라임 위기의 전개과정
이러한 서브프라임 위기의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지금까지의 사태 전개과정을 1~6차의 위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미국의 주택거품은 2001년 미국 FRB의 급격한 금리인하 이후 5년간 지속되었다. 하지만 FRB가 2004년부터 2006년 중반까지 여러 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1%에서 5.25%로 인상시키자 주택거품은 폭발했다. 주택판매, 주택건설, 모기지 대출, 주택가격이 모두 급락하기 시작했다. 2007년 2~3월 모기지 대출회사의 부실화와 파산 위기라는 서브프라임 발 금융위기의 태풍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이자율 상향조정의 첫 번째 물결이 강타했다(1차 위기).
2007년 8월 9일 프랑스계 투자은행 베엔뻬 빠리바가 서브프라임 관련 두 종류의 펀드에 대한 환매를 중단하자 세계적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채권을 유동화한 파생금융상품의 가격폭락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2차 위기). 먼저 MBS 시장이 사실상 소실되었고, 이는 모든 층위의 CDO 시장을 동결시켰다. CDO 시장이 급격히 위기에 전염되자, 거래규모가 급격히 축소되었고 추정 가치의 약 80%가 하락했다. CDO에 투자한 헤지펀드, 보험회사, 연금, 은행 등이 줄줄이 손실을 입게 되었다. 메릴린치와 시티뱅크는 대규모 자산상각이 불가피해졌고, 2007년 10월 말 각각 80억 달러와 110억 달러의 손실을 발표했다. 또한 메자닌 트랑시(고수익고위험 등급) 이하 신용등급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았던 헤지펀드는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위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2007년 11월, 투자은행들이 고수익 자산에 투자할 목적으로 세운 구조화투자회사(SIV)를 중심으로 하는 3차 위기가 발생했다. 이제 은행은 갑작스럽게 고객의 즉각적인 유동성 투입 요구에 직면했다. 이러한 자금 소요는 은행간시장(inter-bank market)에서 폭발했다. 2007년 8월 세계적으로 조직된 은행간시장이 급속도로 무질서해지자, 전 세계의 중앙은행들(특히 유럽중앙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이사회)은 몇 주 동안 대규모 긴급자금을 투입해야 했다. 최고 중앙은행, 즉 ‘최종대부자’의 개입은 선례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9월 18일 미국 연방준비이사회의 갑작스러운 대규모 이자율 인하(0.5%)에 뒤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금융위기는 계속해서 다른 위기로 이어졌다. 2008년 1월 채권보증회사들(모노라인)의 위기가 현실화되었다(4차 위기). 모노라인은 신용파산스왑(CDS) 계약을 통해서 헤지펀드나 투자은행 등으로부터 특정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일정 수준의 신용보증수수료를 받는 대신, 채권에 대한 원금과 이자지급을 보증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가 눈덩이 불어나듯 커지자 채권보증회사들의 부실이 커졌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최대 모기지 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으로 위기가 확산된 것이다(5차 위기). 13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주택 모기지 중 5조 5,000억 달러를 공급하는 두 기관은 민간금융기관들의 주택 모기지를 재매입하여 MBS를 발행했다. 이들은 2005년까지만 해도 비우량 MBS에는 손을 대지 않았지만 비우량 MBS가 폭발적인 수익률을 거두고, 이에 대한 규제와 감독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2,000억 달러가 넘는 비우량 MBS를 구입했다. 여기에다 미국 주택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모기지 연체율이 상승해 모기지 부실이 서브프라임을 넘어 프라임 부문으로 확산되자 두 업체도 사실상 지급불능 사태에 빠진 것이다. 이에 미국 재무부는 뉴욕연방은행을 통하여 두 업체에 2,000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해 사실상 국유화하게 된다.
그 이후 투자은행의 부실 심화로 투자은행의 파산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미국 5대 투자은행이 며칠 사이에 모두 사라졌다(6차 위기).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의 부실이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고, 금융경색으로 자금동원과 지분매각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자은행 등 금융기관의 부실화와 파산은 자금경색 및 이자율 상승을 초래하여 주택가격의 추가적인 하락을 가져오고, 이는 다시 더 많은 금융기관의 부실을 유발하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미국식 금융모델과 투자은행의 몰락?
최근 사태로 인해 미국식 금융모델, 특히 투자은행의 향방에 대한 관심이 높다. 7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1980년대 이후 금융세계화를 이끌어오던 미국 5대 투자은행이 6개월 만에 모두 사라졌다. 이런 사태를 보고 미국식 금융모델의 위기, 투자은행의 몰락을 진단하는 목소리가 높다.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예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독립 투자은행의 몰락이 곧 바로 금융자본의 몰락을 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미국 투자은행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1929년 주가대폭락과 그 이후의 대공황을 계기로 J.P.모건이라는 겸업은행이 미국의 주요 대기업을 지배, 통제하는 일종의 금융자본주의가 붕괴했다. 이를 대신하여 경영자-뉴딜관료-조직노동자 간의 불완전한 타협에 기초하여 금융자본(고도금융)을 일정하게 제어하는 관리자 자본주의가 성립했다. 관리자 자본주의에서 금융시스템은 금융당국에 의해 규제되고 통제되었다. 1933년 미국의 은행법(일명 글래스-스티걸법)은 금융자본의 과도한 영향력을 제어하기 위해서 상업은행의 증권업무와 인수업무를 금지함으로써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완전히 분리했다.
이와 동시에 1930년대 초 미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일찍 투자은행의 주 활동무대인 자본시장의 제도를 정비했다. 다른 주요 선진국들의 자본시장이 1~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던 데 비해 미국의 자본시장은 전쟁과 대공황의 혼란 속에서도 발전할 수 있었다. 미국은 1933년 증권법, 1934년 증권거래소법, 1939년 신탁증서법, 1940년 투자회사법 등의 조치를 통해 자본시장을 안정화하고,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형성했다. 또 2차 대전 직후에는 월가를 중심으로 한 금융자본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구헤게모니국가(미국과 영국) 간의 불완전한 타협(특히 케인즈의 요구가 부분적으로 반영)으로 각 국민국가들이 자유로운 국제적 자본이동에 대해 일정한 규제와 통제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체제는 본성상 완전한 자유화와 고도의 유동성을 추구하는 금융자본과 양립하기가 어려웠다. 미국 금융자본은 1930년대 이후 70년 동안 케인즈주의 타협으로 가능했던 각종 금융규제를 대부분 해체하고 변형함으로써 자신의 수익성과 유동성을 회복하고 강화시켰다.
미국의 투자은행은 1960년대 중후반까지만 하더라도 파트너십 형태의 소규모 자본에 머물러 있었다. 초기 투자은행의 경우 주된 업무가 암묵적 지식과 정보에 의존하기 때문에 인적 네트워크의 형성이 아주 중요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 이윤율이 하락하고 오일머니가 유입되면서 자금이 자본시장 쪽으로 몰리자 파트너십 형태의 소규모 투자은행으로는 급속히 커져가는 자본시장 업무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또한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고 정보통신기술이 금융부문에 응용되면서 대규모 거래의 주문체결과 결제가 용이해짐에 따라 대규모 소매거래에서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는 대규모 투자은행이 필요했다. 1914년에 소매증권사로 출발하여 인수합병 등을 거쳐 거대 종합투자은행으로 발돋움한 메릴린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메릴린치는 1971년에 비로소 기업공개를 했으며 1973년 업계 최초로 금융지주회사체제로 전환했다.
한편 월스트리트가 생긴 이후 200여 년 동안 주식매매 중개수수료가 고정적으로 유지되어 왔는데, 이런 관행도 1970년대 주식거래의 폭발적 증가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마침내 1974년 미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의해 주식매매 중개수수료가 전면적으로 자유화되었으며, 파트너십의 소규모 투자은행들도 주식회사형태로 전환하면서 대형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등장한 정보통신기술이 금융에 접맥되면서 대규모 거래와 결제가 전례 없이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1980년대 이후 미국 가계의 예금, 적금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는 대신 가계의 간접적인 주식보유가 크게 증가했다. 이런 여건에서는 전통적인 상업은행이 기존의 업무영역에서 높은 수익을 올리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지주회사형태의 거대상업은행은 은행지주회사의 자회사 방식으로 투자은행의 자본시장 업무영역으로 진출하려고 했다. 따라서 1980년대를 지나오면서 상업은행은 은행지주회사를 통해 증권업무, 자산관리업무, 보험업무 등 비은행업무로의 확대를 지속해서 추진했다. 1990년대까지 존재했던 은행의 겸업화와 대형화에 대한 걸림돌은 1999년 금융서비스현대화법(그램-리치-블라일리법) 제정을 계기로 거의 사라졌다. 이 법의 제정은 1930년대 만들어져 미국 금융시스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글래스-스티걸법을 허무는 최종 조치이기도 했다.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의 제정으로 2000년 이후에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경계선이 사실상 모호해졌다. 몇 가지 제한 조치가 남아있기는 하나 은행, 증권, 보험회사 간 합병이 가능해지면서 금융기관의 대형화가 급속히 진행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미 1990년대 중반 이후 거대금융기관 간 합병인수의 결과로 소수의 거대은행들의 금융지배력이 더욱 커진 상황에서 이러한 추세가 강화될 수 있는 제도적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또한 기존의 은행지주회사가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게 됨으로써 미국금융자본의 권력은 이전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금융지주회사가 미국금융자본의 핵심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장벽이 금산분리이다. 추가적으로 은행과 상공업 분리원칙마저 무너진다면 산업과 금융 두 영역 모두를 동시에 지배하는 거대권력이 출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5대 투자은행이 상업은행에게 인수되거나(베어스턴스, 메릴린치), 은행지주회사로 전환(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한 것을 두고 투자은행 모델의 몰락이라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미국 금융의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1980년대 이후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경계가 약화되기 시작했고 1999년의 금융서비스현대화법으로 결정적인 장벽이 제거되었다. 이번 금융위기로 인해 독립적인 투자은행이 한꺼번에 사라지기는 했지만 이미 다양한 기관에서 수행하고 있는 업무는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에서 존속될 것이다. 오히려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싼 값으로 거대 투자은행을 인수한 금융자본의 권력이 강화되면서 금융지주회사가 금융자본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할 지도 모른다.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 금융자본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한편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미국 정부는 구제금융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이미 베어스턴스를 구제하기 위해서 29억 달러의 부실증권을 인수했고, 2,000억 달러를 들여 패니메이와 프래디맥을 국유화했다. 또 850억 달러를 들여 AIG의 지분 80%를 인수했다. 그리고 마침내 연준 위원장 버냉키와 재무부 장관 폴슨은 미국 시민들의 세금 7,000억 달러를 구제금융으로 금융자본의 부실자산을 대부분 사들이겠다고 제안했다. 또 동시에 미국 정부는 3조 5,000억 달러에 달하는 '머니마켓펀드(MMF)' 예금으로 위기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에 대해서 지급보장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미 재무부 장관 헨리 폴슨은 서브프라임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세계 1위의 투자은행이었던 골드만삭스의 전직 CEO 출신이다. 그런데 지금 폴슨(또는 골드만삭스?)이 이러한 구제금융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폴슨의 구제금융안에는 정부가 어떤 증권을 구매할 것인지, 어떤 기업이 이러한 보장을 받을 것인지, 증권의 가격은 어떻게 매길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기준도 담고 있지 않다. 오직 정부와 의회가 폴슨에게 7,000억 달러에 대한 처분권을 위임해 줄 것을 요구할 뿐이다.
사실 구제금융을 통한 부실증권 매입은 미국정부로서도 매우 곤혹스러운 결정이다. 어떤 자산을 어떤 가격으로 사야하는지 결정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부실 금융기관들이 매각하는 자산의 가치가 현재의 시장가치보다 낮을 경우에 다시 그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지고, 금융경색 현상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반면 부실자산을 시장가치보다 높게 사들일 경우 정부의 재정적자는 과대해질 것이고,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시민들의 부정적인 여론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금융자산에 대한 적정 가치를 측정하는 문제 자체가 현재의 위기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너무나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폴슨은 구제금융 절차를 자신에게 위임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구제 과정을 사유화하려고 한다. 폴슨이 고용한 월스트리트의 기업이 부실자산의 가격을 결정하면, 정부는 시민들의 세금으로 월스트리트 기업의 부실자산을 구매해야 한다. 한편 이 월스트리트 기업은 수억 달러를 금융서비스의 대가로 받을 것이다. 게다가 폴슨과 버냉키는 시간이 지체되면 세계 금융시장이 붕괴할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자신들의 구제금융안을 의회가 신속하게 통과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 의회가 이 안을 그대로 통과시킨다면 한 사람에게 미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결정적인 권한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을 승인 받기 위해 했던 일과 유사하다.) 또 놀랍게도 폴슨의 구제금융안에는 금융자본에 대한 처벌이나 유사한 사태를 막기 위한 규제방안이 없다. 그러나 민주당이 제기하는 부실금융기관 경영자에 대한 보수 제한조치도 실질적인 문제 해결과는 무관한 파퓰리즘에 불과할 뿐이다.
폴슨은 2007년 봄에만 해도 미국이 금융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인해서 세계 금융시장에서 우위를 빼앗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정부는 금융시장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폴슨은 '금융제국'의 대리인이자 건설자로서 이러한 금융 위기를 만든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금융자본과 자신과 같은 금융엘리트들이 만든 현재의 위기를 시민들의 돈과 책임으로 떠넘기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처리 과정의 결정권을 자신의 수중에서 통제해서 7,000억 달러를 사용하려고 한다.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7,000억 달러를 들여 미국의 금융위기를 현 상황에서 제어한다면 금융자본과 미국 지배세력에게는 좋은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독점적인 권리를 통해 권력을 재승인 받는 금융엘리트와 금융자본은 새로운 금융권력을 형성하려고 할 것이다. 9월 25일 미국에서는 사회운동네트워크인 평화정의연합(United for Peace and Justice, UFPJ) 주최로 월스트리트를 위한 자금 지원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8,000억 달러 이상을 쓴 미국 정부가 월스트리트를 위해 7,000억 달러를 쓰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항의의 표시였다. 미국 경제의 금융화는 미국 내 소득 격차를 축소하기는커녕 더욱 확대했다. 즉 금융화의 수혜는 소수 고소득자에게 부를 더욱 집중시켰다. 하지만 금융화 거품이 붕괴하는 순간 그 막대한 회생비용은 결국 다수의 민중이 부담하게 된 것이다. 미국 금융위기는 금융화가 내포하는 계급적 본질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