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406호 | 2008.10.10

긴급경제안정화법의 한계와 모순

구제금융 조치와 국제적 정책 공조는 위기의 폭발을 방지할 수 없다

정책위원회
9월 금융위기를 수습할 목적으로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제출한 2008년 긴급경제안정화법안(The Emergency Economic Stabilization Act of 2008)이 지난 주 우여곡절 끝에 미 의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번 주 들어 미국을 위시한 세계 금융시장은 내내 불안에서 헤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대적인 신용경색 우려가 확산되는 가운데 미국 발 금융위기의 파고는 금융 ‘공황(panic)’을 넘어 실물경제 충격으로 전파․확대되는 상황이다.
버냉키 연준 의장이 7일 전미기업경제협회(NABE) 연례 회의에서 “미국의 경제활동이 내년까지 위축되고 시장 혼란이 경기둔화를 오래 지속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데 이어,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주요 경제국 역시 경기침체에 접어들었다고 발표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연차총회와 G7 회의를 앞두고 7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정체 상태에 빠지면서 세계 경제가 내년에 침체를 향해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미국 발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국제적 정책 공조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연 미국 발 금융위기는 미국의 긴급경제안정화법에 따른 조치들과 이에 조응한 국제적 정책 공조를 통해 성공적으로 수습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긴급경제안정화법이 내포하고 있는 모순은 무엇이며, 따라서 그것이 향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에 미치게 될 영향은 무엇인가?


긴급경제안정화법과 후속 조치들

지난 주 의회를 통과한 긴급경제안정화법안은,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의 유동성 부족과 금융기관의 자기 자본 부족 현상(under-capitalization)을 완화하고 금융기관․비금융기업․가계를 망라한 신용경색 위험과 주택가격의 과도한 하락에 따른 주택압류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미 재무부가 공적자금을 조성하여 일정한 조건 하에 구제금융을 실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미 당국이 최초로 구제금융법안을 발의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7천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언제, 어떻게, 어디에 투입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진행되고 있다. 공적자금을 조성하여 부실 금융기관의 ‘나쁜 행실’을 구제한다는 발상은 결국 시장 원리를 훼손함으로써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과 함께 그 비용이 납세자의 부담으로 귀결되어 ‘이익을 사유화하고 손실을 사회화’ 한다는 비판이 가세하고 있는 형세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구제금융 절차는 △우선 미 재무부가 국채 발행을 통해 조성한 공적자금으로 펀드를 설정한 뒤 △이 펀드로 각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모기지담보부증권(MBS)과 부채담보부증권(CDO)을 매입하여 △이를 외부 자산운용사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그리고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구제할 대상으로는 모기지 관련 증권을 구입했다가 주택가격이 급락하여 부실화된 증권을 현금화하지 못해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금융기관이 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금리 인하와 같은 후속 조치에도 불구하고 주택가격이 추가로 폭락할 위험이 제기되면서 미 당국은 주택 소유자로부터 직접 모기지를 사들여 유리한 조건으로 다시 대출해주는 조치(차환 대출)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는 1989년 저축대부조합(S&L) 파산 당시 정리신탁공사(RTC)의 사례처럼 단순히 부실자산을 매입하는 방식을 넘어,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재건금융공사(RFC)나 주택소유자대부공사(HOLC)의 사례처럼 정부가 가계에 직접 구제금융을 제공함으로써 모기지 원리금을 삭감하는 정책을 결합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신용경색을 차단하기 위해 은행 지분을 직접 매입(‘부분적 국유화’)하는 데 구제금융을 사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구제금융이 제공되는 금융기관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질 위험을 우려하여 이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자기 자본 부족 현상이 보다 심각한 금융기관들의 경우 부실자산구제계획(TARP)에 따른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보다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지원 절차에 따르도록 하는 등 공적 자금 투여 조건을 엄격화 하는 조치도 수반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위기 이후 그 대출이 급증하여 부실화 위험에 제기되고 있는 신용카드․자동차할부금융․학자금융자 등 비모기지 관련 증권에 대해서도 언제든 구제금융을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4/4분기 내로 추가 금리 인하를 포함한 경기부양책이 제시된다는 관측도 있다.


구제금융 조치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이와 같은 긴급경제안정화법에 따른 후속 조치들은 현재의 금융위기가 ‘대공황’에 비견되는 것처럼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로저벨트가 제시한 뉴딜과 흡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의 뉴딜이 전후 미국 경제의 성장을 구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제기되는 조치들이 현하의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방책이 될 수 있을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역사적 조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우선, 1929년 뉴욕 증권시장의 붕괴와 1930-33년 은행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로저벨트가 제시한 뉴딜의 핵심은 ‘금리생활자의 안락사’라는 구호로 상징되듯 이러한 불안정을 낳은 고도금융을 억압하는 것이었다. 로저벨트 정부는 중앙은행(연준)을 재무부에 종속시키고 기관투자자와 투자신탁기금과 같은 고도금융을 규제하기 위해 글래스-스티걸 은행법을 통해 은행의 겸업화를 금지했다. 그러나 미국은 금융세계화 아래 과거 뉴딜을 통해 확립된 화폐․금융제도의 근간을 역전시킨 데 이어(1999년 ‘금융서비스현대화법’에 따라 은행의 겸업화를 금지한 과거의 글래스-스티걸 은행법이 폐지된 것은 그 최종적인 수순이었다.), 최근 투자은행의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상업은행에 의한 인수․합병 또는 금융지주회사로의 전환을 통해 은행의 겸업화․대형화와 초민족화를 촉진하였다. 노동자계급에 대해 완전고용과 고임금을 보장함으로써 부분적 타협을 약속했던 ‘뉴딜 연합’ 역시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극적으로 해체된 상태다.
한편 뉴딜의 신화는 2차 세계전쟁(1939-45년)에 의해서야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1933년 뉴딜 정책의 도입 이후 미국 경제는 4년여 동안 회복세로 접어들었지만, 1937년에 또다시 경기침체에 봉착했고(당시 실업률은 14.3%에 달했다), 1929년 수준의 국민소득은 1940년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회복되었다. 실례로, 1943년의 경우 설비 투자의 65%, 총투자의 61%가 정부 재정에 의한 것이었는데, 이는 종전 후 경제 회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작용하여 민간 투자가 매우 저조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케인즈주의의 ‘투자의 사회화’는 2차 대전 군수 물자를 조달하는 과정에서 실현되었고(‘군사적 케인즈주의’), 이를 통해 전후 미국의 고도성장의 토대가 완성된 셈이다.
무엇보다 1930년대 대공황은 미국 경제가 19세기 말의 ‘법인혁명’과 20세기 초의 ‘관리자혁명’을 경과하며 이윤율이 상승하는 장기 추세에서 벌어진 일종의 ‘예외적 사건’이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반면 20세기 후반 이후 미국의 이윤율은 장기 하락 추세에 놓여 있으며, 특히 2007-08년 금융위기 아래 이윤율은 미국이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던 1974-75년 이윤율 수준을 하회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는, 미 당국이 예상하듯 일시적인 고통 끝에 자본주의에 재생의 기회를 제공하는 정화(purification)의 ‘계기’라기보다는 정화의 ‘위기’를 예고한다.


구제금융 부담의 해외 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현재의 금융위기가 미국 경제의 경착륙으로 이어지는 것을 당분간 지연할 수 있다면, 이는 오로지 위기의 부담을 해외로 전가하는 노골적인 ‘제국주의’를 통해서 가능할 따름이다.
현재 미국은 2009년 연방 재정으로 3조1천억 달러의 예산을 책정하고 있고 재정적자 규모를 약 5천3백억 달러(GDP의 3.5%)로 예상하고 있지만, 지난 9월 연준의 패니메이 및 프레디맥 구제에 투입된 2천억 달러와 부실자산 매입에 투여될 재무부의 7천억 달러 한도를 감안할 경우 재정적자 규모는 최소 1조4천억 달러(GDP의 9%)에 이를 전망이다. 더구나 이번에 통과된 7천억 달러로 미국 금융위기가 진정될 것이라고 보는 이들은 전무하다. 이를 예상한 듯 미국 재무부는 국가 채무한도를 기존 10조6천억 달러에서 11조3천억 달러(GDP의 약 80%)까지 늘리는 내용의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 상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결국 미국이 조성하게 될 구제금융 비용의 상당 부분은 세계 여타 국가들이 미국이 발행하는 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즉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달러 유동성을 미국에 제공하는 방식으로 충당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미 당국이 발행하는 국채의 상당 부분은 미국으로 상품과 자본을 동시에 수출하는 일본․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매입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들 국가들은 대미 상품 수출을 통해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고 이는 미국 가계의 과소비로 실현되어 미국의 무역적자를 낳는데, 이들 국가들이 이러한 발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무역흑자를 통해 확보한 달러로 미국 국채를 매입함으로써 달러 유동성을 미국으로 환류해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미 재무부가 발표한 <2000-2008년 미국 재무부 증권 해외 보유 현황>에 따르면, 일본․중국․홍콩․한국․대만․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6개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60%를 상회한다.) 실제로 이번 미국의 구제금융 조치가 발표되자 중국 은행감독원도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으로 현재의 위기를 해소하기는 충분하지 않으며 인민은행이 연준과 유동성 지원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와 함께 화폐․재정 정책상의 국제적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압력도 커지고 있다. 일차적으로 지난 8일 미국의 금리 인하에 동반하여 유럽과 중국의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그러나 주요국의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기 회복 가능성이 불투명한 가운데, 10일 IMF 연차총회에 즈음하여 보다 강력한 국제 공조 구제책을 주문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미국의 이중적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엔화와 마르크화를 평가절상한 1985년 ‘플라자합의’를 하나의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하고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대미 무역흑자국이자 최대 자본수출국인 중국의 위안화에 대한 평가절상 압력이 거세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만일 이러한 제2의 ‘플라자합의’가 실현된다면 미국은 금융위기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더욱 커지게 될 부채(국채와 무역적자) 부담을 완화함으로써 위기의 최종적 폭발을 당분간 지연할 수 있을 전망이다. 즉, 위안화의 평가절상이 이뤄질 경우 진행되는 상황을 도식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중국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되어 미국의 무역적자 폭이 그에 비례하여 감소하게 된다. ②위안화로 표시되는 미국의 대외자산의 가치는 상승하고 달러로 표시되는 미국의 대외부채의 가치는 하락하기 때문에 순자본소득의 적자도 축소 가능하다. 이는 결국 환율 조작을 통해 자국의 부채를 해외의 부담으로 이전, 탕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최강 제국주의’로서 미국의 위상은 궁극적으로 세계화폐로서 달러를 독점적으로 발행하는 특권적 지위로부터 유래한다. 미국은 달러 발권이익 덕분에 외환보유의 제약 없이 국제수지 적자를 운용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미국은 세계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오랫동안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실시하여 불황기 충격을 회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장 달러 가치가 급락할 조짐은 나타나고 있지 않고 따라서 달러 환류의 메커니즘 역시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이에 따라 이윤율 하락 추세를 역전시키지 못한다면 결국 달러위기와 함께 세계적 차원의 대불황은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다. 대안세계화를 지향하는 사회운동의 형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한 과제로 제기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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