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447호 | 2009.09.18

신종플루를 통해 드러난 부실한 공공의료체계

민중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정부

정책위원회
확산되는 신종플루와 그 특성

지난 5월 2일 국내에서 신종 인플루엔자(이하 신종플루)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이후 이에 대한 공포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9월 15일 60대 여성이 국내에서 8번째로 신종플루로 사망했으며, 현재 국내 감염 환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 한편 WHO는 9월 6일 세계 신종플루 감염자 수가 27만 7,607명에 달하며, 사망자는 3,205명으로 확인됐다고 보고하였다.

신종 인플루엔자는 새롭게 발생한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인 만큼 초기에는 그 위험성을 알 수 없어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으나, 점차 그 특성이 밝혀지고 있다. 계절 인플루엔자에 비해 비교적 젊은 층에서 감염자와 사망자가 발생한다. 국내 환자의 약 70%가 10~30세 범위에 있으며, 60세 이상은 1%에 불과하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노인층이 신종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유전적 및 면역학적으로 밀접한 연관이 있는 바이러스에 노출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기초재감염수(1명의 지표환자에 의해 감염되는 환자수)는 1.4~1.6으로 계절인플루엔자의 1.3보다 높은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국내에서 치명률(감염자 중 사망자 비율)은 계절 인플루엔자와 비슷한 약 0.1%로 계산된다.

신종인플루엔자의 잠복기는 계절인플루엔자와 비슷한 1~7일로 추정되며, 발열과 상기도증상(기침, 인후통, 콧물, 호흡곤란)이 주요 증상으로 근육통, 관절통, 피로감, 구토 혹은 설사가 동반될 수 있다. 면역력이 약한 어린아이나 노인, 임산부, 만성질환자 등에서는 폐렴 등의 합병증을 일으키며 중증으로 진행할 수 있으나, 감염자의 대부분은 계절 인플루엔자와 비슷한 경과를 거치며 회복된다. 따라서 중증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군을 제외하면 확진검사와 항바이러스제 투약은 불필요하며 충분한 휴식과 수분, 영양 섭취가 권장된다.

그러나 신종플루가 계절독감보다 치명률이 비슷하고 건강한 사람들은 일반 독감에 준하는 치료를 하면 낫는다고 해서 신종플루에 대한 체계적인 대비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기초재감염수나 치명률 모두 지금까지 발생한 신종플루 발생자 및 사망자를 근거로 추산된 것이지 앞으로 신종플루 확산 정도가 더 증가함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염병은 그 전파에 위생과 건강상태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빈곤병이라고도 불린다. 전염병의 고위험 군에는 어린아이, 노인, 임산부, 만성질환자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포함된다. 따라서 이들에 대해 한 차원 높은 예방대책과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신종플루 진단과 치료과정에 대한 적절한 보장이 이뤄지지 않다보니 이들 고위험군의 병원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며 신종플루 대책을 위한 1,2,3차 의료기관 연계망도 엉망이다. “건강한 사람이 신종플루를 크게 겁낼 것은 없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가 이 말을 반복하는 맥락은 한국의 미비한 공공보건의료체계의 모순을 덮는 데 있다는 게 문제다.


신종플루 대응을 통해 드러난 민간중심 보건의료체계의 문제

민간에 의존하여 형성되고 유지되어 왔으나 그나마도 의료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 남한의 보건의료체계는 신종 전염병을 맞이하여 그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신종 인플루엔자의 유행이 시작될 당시 정부의 대응 방침은 모든 의심환자에 대한 확진 검사와 격리를 통한 대유행의 차단이었다. 이후 대유행으로 들어섰다고 판단되자 정부는 8월 20일부터는 치료거점병원, 거점약국 지정을 통한 환자 관리와 고위험군, 중증 환자에 대한 집중 치료로 대응 방침을 전환했다. 그러나 치료거점병원, 거점약국이라는 것은 대부분이 민간 의료 기관으로 신종 전염병 환자를 진료할 만한 시설(격리 병실, 음압 시설 등)을 갖추지 못하여 진료 현장의 혼란은 심각한 상태였다. 신종 전염병의 유행이라는 국가적 공중보건의 위기 상황에서 최일선에서 기능해야 할 공공의료기관인 보건소는 대응 체계에서 빠지고 의심 환자가 오면 거점병원으로 보낼 뿐이었다. 일차의료기관 역시 진료 지침의 부재와 정부 대응 기구와의 긴밀한 소통의 부재로 혼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응 체계를 민간의료기관으로 전환하면서 유행 초기 신종 인플루엔자 확진 검사, 항바이러스제와 격리입원치료에 대한 비용을 국가에서 부담하던 것을 항바이러스제를 제외한 확진 검사와 치료비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여 비용의 일부를 환자에게 부담시켰다.

치료거점병원 지정 당시, 대표적인 공공의료기관인 서울대 병원이 치료거점병원 지정을 거부했다가 비판적 여론에 밀려 거부의사를 철회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공공의료체계의 무력함과 허술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격리병동이 없어 신종 인플루엔자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서울대병원의 거부 논리에서 더 큰 허술함을 찾을 수 있다. 언제 발생할 지도 모르고 이윤이 낮은 전염병 관리 시설은 꼭 필요한 시설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지원 및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에 신종 전염병 환자를 위한 병동은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전국적으로도 이런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거점병원은 대부분 대형병원이라 면역력이 약한 중환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런 대형 병원이 격리 병동 없이 신종 전염병 환자의 1차 진료를 담당하는 경우 광범위하게 중증 질환자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대구의 한 거점병원에서 원내감염으로 의심되는 감염사례가 지난 8일과 14일, 2건 발생하였다. 지역사회에 밀접한 보건소에서 1차적으로 무료 검사, 치료를 하고, 중증 환자를 격리 병상이 마련된 2, 3차 병원으로 보내는 체계를 마련했어야 했다. 문제는 이러한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것이 정부가 무지해서가 아니라 공공의료체계의 부재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1차 진료를 민간의료기관에서 담당해 왔기 때문에 보건소에서는 늘어나는 환자를 책임질 수 없었고, 부족한 예산으로 무료 검사, 치료를 감당할 수 없어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민간의료기관과 민중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결국 문제는 체계적이고 공고한 공공의료체계의 부재로 인한 민간/민중으로의 책임 전가이다. 한국 보건의료체계가 형성될 때부터 지금까지 늘 제기되고 나타났던 문제가 신종 전염병의 출현으로 두드러진 것뿐이다. 1차, 2차, 3차로 연결되는 공공의료체계의 확립을 통한 체계적인 환자관리와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지원을 통한 의료 시설, 장비, 인력의 확보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거대 제약기업의 독점

2005년부터 WHO가 신종 인플루엔자의 유행을 예측하여 치료제와 백신 확보를 권고하였으나 정부는 오히려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예산을 삭감하였다. 의료기관들의 혼란에 치료제와 백신 부족설이 가중되어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조장된 면이 크다. 뒤늦은 치료제와 백신확보, 그리고 공포와 불안으로 인해 이득을 얻는 것은 이제 부르는 게 값인 신종 인플루엔자 치료제와 백신, 계절 인플루엔자와 폐렴 백신 등을 만드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다. 그러나 정부는 예산 낭비와 불안 조장에 대한 책임의식 없이 치료제와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며 숫자놀이만 하고 있다.

한편, WHO는 국민의 20~30%에 해당하는 치료제를 확보할 것을 권고하면서도 가난한 나라들이 돈이 없어 약을 마련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국가가 강제실시를 결정하면 위기상황에 제약회사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에서 필요한 만큼의 약을 생산할 수 있음에도 WHO는 이를 권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강제실시 주장을 약화시키는 가격인하나 기금마련 등으로 당장의 문제만을 해결하려 한다.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만큼 약을 공급할 수 없는 근본적인 원인이 초국적 제약자본의 지적재산권으로 인한 생산/판매 독점에 있음에도 이런 권력관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신종 인플루엔자 유행 초기에 여행 제한 조치, 경보수준 격상 등을 주요 강대국들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 실행시키지 못하였다. (사스 유행 당시 WHO는 캐나다 토론토 여행 자제 발언으로 곤욕을 치루었다.) 설사 강제실시가 이루어지더라도 이제까지 강제실시는 미국, 캐나다 그리고 의약품 접근권 운동을 통해 태국, 브라질 등에서 이루어졌으며 약소국에서의 강제실시는 무역보복과 소송분쟁으로 철저히 봉쇄되어왔다.

이처럼 정부가 타미플루 확보를 위해 타미플루를 독점생산하는 로슈만 바라보고 강대국에서는 약을 확보하는 사이 멕시코 같이 가난한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약을 먹지 못해 죽어나가고 있다. 항바이러스제 판매로 이미 천문학적인 이윤을 남겼음에도 세계적인 대유행 앞에서 지적재산권만을 주장하는 초국적 제약회사는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민중의 건강에 위협적이다. 백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각국 연구소에서 균주를 제공받아 백신을 만들지만 백신의 배분과 이윤의 배분 모두 공정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생태 파괴와 거대 축산업이 신종 인플루엔자의 발생에 기능했다면, 미흡한 공공의료체계와 세계적으로 약의 공급을 좌우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초국적 제약회사, 그와 손잡은 신자유주의 정부가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공포와 위험성을 유지, 증폭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의료체계의 붕괴를 가속화시키는 정부의 의료 민영화 정책과 공공의료기관 구조조정은 민중의 건강을 포기하는 행위이다. 신자유주의 정부와 자본에 맞서 민중의 건강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지 않으면 백혈병, 에이즈, 신종 인플루엔자, 이후 어떤 질병에 있어서도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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