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오늘 논평 | 2017.03.03

알맹이 없는 삼성그룹 쇄신안

삼성 원하청 백만 노동자에게 민주주의를

2월 28일, 특검은 이재용 등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연루된 삼성 핵심인물 5명을 기소했다. 같은 날 삼성그룹은 ‘쇄신안’을 발표했다.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 해체와 계열사 이사회 중심의 자율 경영, 대관업무 조직 해체 등이 골자다. 이를 두고 대다수 언론은 사실상 ‘그룹 해체’라고 평하면서, 이재용의 ‘뉴(New)삼성’은 계열사 자율경영 체제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그룹 차원의 전략적 판단 기능이 저해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과 우려는 과장된 것이다.



미전실은 법적 실체가 없다. 그럼에도 삼성이 자신의 경영구조를 “총수-미래전략실-계열사 최고경영자(CEO)의 삼각편대”라고 칭할 정도로 역할이 컸다. 그러나 그룹의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역할은 그럴싸한 포장일 뿐이다. 보다 본질적 임무는 총수의 사익을 챙겨주는 ‘사금고 관리’를 통한 경영권 승계였다. 이재용이 이건희에게 증여받은 종자돈 60억 원으로 8조를 만든 것도, 극히 적은 지분으로 삼성을 지배할 수 있게 한 마법도 미전실 때문에 가능했다. 헌법을 무시하는 무(無)노조 방침을 현실로 만들어온 것도 미전실이다.

이런 조직을 형식적으로 해체한다 해서 그 기능도 사라지는 것인가? 미전실의 기능을 없앤다는 건 사실상 총수의 지배권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반복되어온 삼성의 헌정유린은 3대에 걸친 경영권 세습 때문에 발생했다. 총수 일가의 지배가 그대로라면 무엇이 새롭다는 것인가? ‘이재용의 뉴삼성’이란 말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 족벌경영 포기, 노조 활동의 실질적 인정과 보장에 대한 언급이 일언반구 없는 쇄신안은 ‘쇼’에 불과하다.

[출처: 연합뉴스]


미전실이 가졌던 기능은 보다 은밀해질 가능성이 높다. 2007년 삼성 비자금 특검 이후 2008년 구조조정본부를 해체했지만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전략기획실(2010년 미래전략실로 명칭 변경)로 개편한 것과 마찬가지의 꼼수다. 삼성전자의 한 부서든, 통합 삼성물산의 비서실이든 핵심 계열사로 기능을 이전하고 간판만 바꿔달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지주회사 체계로 전환했을 땐 지주사의 공식 기구로 두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한국 사회가 ‘삼성왕국’이라 불린 이유가 무엇이었나. 삼성은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경영시스템을 고수해 평범한 사람들을 굴종시켰다. 국민의 삶은 피폐해졌지만 이건희-이재용 일가는 온갖 초법적 수단을 동원해 수 조원의 이익을 챙겨왔다. 이것이 우리가 ‘박근혜 체제’로 지적해온 재벌 체제다.

삼성의 ‘쇄신안’엔 노동자에게 가해진 억압과 학살에 대한 반성이 없다. 반도체 공장에서 직업병에 걸려 목숨을 잃거나 힘겹게 투병하고 있는 노동자들, 삼성 휴대폰 하청 공장에서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파견직 노동자들, 지독한 노조 탄압에 두 명의 동료 노동자가 자결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에게 ‘쇄신안’은 어떤 응답도 될 수 없다.

[출처: 민중의소리]


쇼 아닌 진짜 변화가 필요하다. 가장 분명한 효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노동조합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심각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무권리 간접고용 노동자의 삶이 개선되는 것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1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삼성 계열사와 하청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노조를 만들고, 직장에서의 주권을 회복해야 진짜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다단계 하청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삼성이 스스로 책임을 다하여 원청으로서 직접 교섭에 임해야한다.

순환출자 해소, 금산분리 등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변화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노조할 권리’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높이는 것은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그래야 ‘쇄신’이다.

이재용 일가는 진심으로 과오를 반성하고 쇄신할 의지가 있다면, 삼성의 100만 원하청 노동자의 권리부터 보장하라. 일하다 죽어가는 공장, 노조 한다고 해고되는 일터, 욕설과 하대가 난무하는 직장은 박근혜 체제와 같다. 천만 촛불은 삼성 백만 노동자의 일터에 민주주의의 봄이 오길 촉구한다.

[출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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