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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중심국가,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김석진 주간경제 719호 2003.03.19

국제 비즈니스 중심지로 발돋움하기 위한 아시아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하다. 진정한 ‘동북아 중심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리 나라의 경제 중심지들을 최상급의 ‘세계 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한 포괄적인 전략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새 정부는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건설을 경제 분야의 핵심 국정과제로 제기했다. 사실 이 과제는 이번에 새로 제기된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난 해 1월 우리나라를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로 육성한다는 기본구상이 발표됐고, 관련 부처 간 협의를 거쳐 4월에는 기본계획(master plan)이, 7월에는 세부실행계획(action plan)이 확정된 바 있다. 그리고 이 계획에 따라 정부가 제출한 ‘경제자유구역법안’이 지난 해 11월 국회를 통과했고 올해 상반기중 시행령 제정 작업을 거쳐 7월부터 정식으로 발효될 예정이다.


아시아 국가간 경쟁 치열

우리 정부가 제시한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의 핵심적인 내용은 인천, 부산, 광양의 일부 지역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해 국제적인 비즈니스 중심지로 육성한다는 데 있다.

국제적인 비즈니스 중심지를 육성하자는 이러한 구상은 사실 아시아 역내의 경쟁국가들이 우리보다 먼저 제기해 실천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예를 들어 최근 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개발 프로젝트인 상하이 푸둥(浦東) 특구 건설은 이미 1990년에 시작되어 상당한 결실을 맺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상하이를 세계적인 비즈니스 중심지로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국가적 개발구상을 지속적으로 실행해 온 것으로 유명한데, 특히 2000년에는 ‘싱가포르 21’이라는 새로운 전략구상을 제기했고 최근에는 ‘경제(정책)검토위원회’를 구성해 분야별로 세부 정책을 가다듬고 있다. 홍콩 정부는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인 1998년부터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장기 발전구상 마련에 착수했으며, 2001년부터는 ‘홍콩 2030’이라는 주제 하에 개발정책을 구체화해 나가고 있다. 대만 정부 역시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예정으로 ‘아태지역 운영센터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국가 경쟁력은 클러스터에서 나온다

국제 비즈니스 중심지를 육성하자는 이상의 모든 구상은 다음 두 가지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첫째는 경제성장의 주된 동력은 세계시장을 무대로 하는 국제적인 경제활동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국가 경쟁력은 지역 경쟁력에 기초하고 있으며, 지역 경쟁력의 핵심은 ‘클러스터’(cluster)의 발전에 있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클러스터란 “특정 지역에 모여 있는, 수직적·수평적으로 긴밀한 상호관련을 갖는 기업 또는 생산자들의 집단”이라는 뜻이다.

클러스터의 발전은 왜 중요한가? 경제학에서는 이를 ‘외부적인 규모의 경제’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규모의 경제란 생산규모가 증가할수록 평균비용이 하락해 경쟁력이 높아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 때 한 기업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그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경우를 ‘내부적인 규모의 경제’라 한다면, 그 기업이 속한 산업 또는 지역경제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그 기업과 해당 산업 및 지역경제 전체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경우는 ‘외부적인 규모의 경제’ 또는 ‘집적의 경제’라고 부른다.

클러스터가 발전하게 되면, 각 기업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자(설비, 원료, 부품 등) 또는 서비스(금융, 회계, 광고 등)의 공급이 더욱 저렴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해당 지역에서 인력의 풀이 형성되어 각 기업이 원하는 적정 인력을 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또한 상호관련을 가진 기업들이 한 곳에 모여 있기 때문에 정보의 교환이 활발해지고 새로운 지식이 쉽게 전파된다. 지식의 전파 효과는 오늘날과 같은 지식기반 경제 시대에는 더욱 중요해지는데, 이를 잘 활용하고 있는 클러스터를 ‘혁신 클러스터’라고 부를 수 있다. 요컨대 클러스터란 어떤 신기한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그 규모가 크건 작건 대부분의 도시와 산업지구는 일종의 클러스터이다. 문제는 어떤 클러스터가 더 효율적으로 구성된, 따라서 경쟁력이 더 높은 클러스터인가 하는 데 있다. 효율적이고 혁신적인 클러스터를 많이 가진 나라가 국가 경쟁력이 높은 나라인 것이다.


우리 정부의 구상 : 세 가지 클러스터와 경제특구 전략

그렇다면, 우리 나라의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어떤 클러스터를 발전시킬 것인가? 정부는 물류 중심지, 첨단산업 클러스터, 국제금융센터라는 세 가지 클러스터 개념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 나라를 동북아시아의 물류, 첨단산업, 금융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는 경제특구 전략을 내세우고 있는데, ‘경제자유구역’이라고 이름붙인 특구에서는 외국인투자기업에 각종 혜택을 부여한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

우리 정부의 구상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우리 나라가 동북아시아의 경제 중심이 된다는 게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냐 하는 것이다. 이런 의문은 ‘중심’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에서 비롯된 오해일 수 있다. ‘중심’이라고 하면 마치 동북아의 나머지 지역은 모두 하위에 놓이고 우리 나라가 유일하게 지도적인 위치에 올라서겠다는 뜻처럼 들린다. 그러나 국제적인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효율적이고 혁신적인 클러스터의 창출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면, 그러한 의미의 중심지는 반드시 유일할 필요는 없다. 또한 클러스터들 간의 관계는 반드시 서로 경합하는 관계만은 아니며 오히려 공존하면서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윈-윈(win-win)의 관계가 될 수 있다. 요컨대 우리 나라가 반드시 동북아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라서지 않더라도 국제적인 비즈니스 중심지를 육성하자는 구상은 충분히 현실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고부가가치 물류 서비스 체제 갖춰야

우리 정부가 육성하고자 하는 첫 번째 클러스터는 국제 물류 중심지로서, 부산, 광양 항만과 인천 국제공항이 주된 개발 대상이다. 사실 부산항은 컨테이너 화물 처리실적 기준으로 홍콩, 싱가포르에 이은 세계 3위 항만이고(그림 1), 인천 공항도 홍콩의 첵랍콕, 싱가포르의 창이 및 일본의 나리타 공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아시아 4대 공항 중 하나로, 이미 동북아의 물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부산, 광양 항만과 인천 국제공항은 한국을 경유하는 환적화물을 많이 처리하고 있으며, 환적 수요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동북아 지역의 물동량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국제 물류업이 ‘거대중추항’(Mega Hub Port) 중심 시스템으로 변모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제 물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해운의 경우, 대륙간 운송을 담당하는 선박은 갈수록 대형화되고 있으며 이들 대형 컨테이너선이 정박해 효율적으로 화물을 처리할 수 있는 소수의 ‘거대중추항’이 물류 중심지가 되고 나머지 항만으로는 소형 선박으로 환적해 화물을 운송하는 ‘지류 서비스’(feeder service)가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 특히 부산, 광양 항만의 경우 향후 중국 동북부로의 환적 수요 급증이 기대되는데, 이는 중국 동북부의 주요 항만들이 지형적 여건상 거대중추항으로 발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으로 상하이가 대대적인 개발을 통해 거대중추항으로 발돋움할 계획이긴 하지만, 얕은 수심이라는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기 위한 대공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애로가 예상되며, 개발계획이 실현되더라도 중국 동북부의 물류 수요까지 충분히 충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인천 공항의 경우 동북아의 주요 거점도시 간 거리를 고려할 때 환적여객 및 화물을 처리하기에 적당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 물류 중심지로의 발전 전망은 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환적화물 처리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최근의 국제 물류업은 ‘다기능 복합형’의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화물 처리뿐만 아니라 포장, 조립, 가공 등 제조업적 기능과 무역, 금융, 보험 등 서비스적 기능까지 결합하여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부가가치 물류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컨대 물류를 중심으로 관련 산업, 기업이 모여 고부가가치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효율적 클러스터가 형성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물류 중심지라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하드 인프라인 화물처리 시설의 확충 외에 소프트 인프라인 물류 네트워크의 정비와 관련 법·제도의 정비를 통한 물류 경쟁력의 향상을 주요한 정책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한편, 북한을 관통하는 유라시아 횡단 철도 프로젝트도 논의되고 있으나 이는 당면 과제라기보다는 장기적인 과제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를 실현하려면 어려운 정치적 협상을 거쳐야 하는 데다 막대한 건설비용 및 오랜 건설 기간이 소요되는 북한 철도의 전면적인 보수와 복선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첨단산업 클러스터에서는 혁신 환경 중요

우리 정부가 생각하는 두 번째 경제 중심지는 IT와 바이오 등 하이테크 부문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혁신 클러스터’이다. 하이테크 부문에서는 본래 생산공정보다 R&D가 더욱 중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첨단산업 클러스터는 전통적인 공업단지보다는 연구소 중심의 R&D 센터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특정 지역에 특정한 산업 클러스터를 창출한다는 것은 곧 특정 지역과 산업에 혜택을 부여하는 선별적 산업정책을 시행한다는 뜻이 된다. 이는 또한 다른 지역과 산업에는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것이 되기 때문에 시장원리를 왜곡하는 측면이 강하고, 따라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그런 선별적인 정책에 반대한다. 그렇지만 하이테크 부문처럼 지식의 전파에 따른 ‘외부효과’(externalities)가 큰 산업의 경우에는 정부의 개입이 정당화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러한 외부효과를 창출하는 데 적합한 정부 개입의 수준과 내용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모든 개발정책에는 이득뿐만 아니라 비용도 발생하고 자칫하면 개발 이득이 비용에 못미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혁신에 유리한 환경의 조성이다. 전통적인 공업단지의 경우 하드 인프라 개발이 중요했다면, 첨단산업 클러스터에서는 기업과 대학, 공공연구소 등의 유기적 협력체제를 구축해 지식의 창출·전파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노력이 핵심적 정책이 된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흔히 정부의 지원 아래 형성·운영되고 있는 과학기술 연구단지가 바로 그러한 노력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화 시대의 꽃, 국제금융센터

동북아 경제를 선도할 국제 비즈니스 중심지라는 원대한 목표에 비추어 볼 때 물류 중심지와 첨단산업 클러스터만으로는 뭔가 불충분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세계화 시대 국제 비즈니스의 중심은 뭐니뭐니 해도 금융부문에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도 ‘국제금융센터’를 육성하겠다는 안을 정부시안에 포함시키고 있으나, 민간의 많은 전문가들은 보다 적극적인 육성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1960~70년대까지 세계 각국의 금융산업은 주로 국내부문에 한정된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국적기업의 발전과 자본시장 개방 추세에 따라 1980년대 이후에는 국제금융업이 급속도로 발전해 왔다. 또한 국제금융업에서는 전통적인 은행업보다 외환, 주식, 채권, 파생상품 시장 등이 더욱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다. 국제금융업의 발전과 함께 세계 각국 금융중심지의 분포에도 커다란 변화가 발생했다. 금융중심지는 수십년 전에는 비교적 널리 분산되어 있었으나 점점 더 집중이 심화되어 오늘날에는 각국의 경제수도가 해당 국가의 금융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게 되었으며, 특히 국제금융업은 런던, 뉴욕, 도쿄 등 소수의 국제금융센터에 집중되어 있다(표 1). 이러한 금융의 집중 현상은 금융이야말로 클러스터의 이득 또는 집적의 경제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부문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나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국제금융센터를 가질 수 있을까? <표 1>에서 알 수 있듯이 주요 국제금융센터들과 서울 사이에는 아직 엄청난 격차가 존재한다. 더욱이 동아시아에는 이미 도쿄, 싱가포르, 홍콩, 시드니 같은 세계적인 국제금융센터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과의 경쟁을 뚫고 또 하나의 국제금융센터로 발돋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국제금융센터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전제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금융부문 자체의 측면에서 보자면, 자본시장 자유화, 안정적인 환율, 규제환경의 선진화(즉 각종 금융규제를 최소수준으로 억제) 등이 필요하고, 좀더 일반적으로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경제환경, 고급 인력, 강력한 법률 시스템, 편리한 교통·통신, 국제어(즉 영어) 사용의 편의성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정치·군사적인 안정성도 매우 중요하다. 이런 여러 측면에서 우리 나라(즉 서울)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국제금융센터의 육성은 물류 및 산업 클러스터 개발과는 상당히 다른 성격을 갖는다는 점이다. 물류 및 산업 클러스터의 경우에는 상당히 넓은 면적을 가진 특정 지역을 설정해 인프라 개발 등 대규모의 공공투자를 수행한 후 민간 기업들의 투자가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국제금융센터는 일반적으로 각국의 경제수도 내 중심 업무지구에 위치해야 하고 그다지 넓은 면적이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교외 지역에서 대규모 개발사업을 새로 진행할 필요는 없다. 국제금융센터 육성의 초점은 하드 인프라의 건설이 아니라 제도와 환경의 선진화에 있는 것이다.


진정한 경제 중심지는 ‘세계 도시’

지난 해에 마련된 정부시안이나 이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최근의 토론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개념을 빠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불충분하다. 기존의 구상에서는 어떤 특수한 클러스터를 만들 것인가에만 신경을 썼을 뿐, 보다 일반적인 비즈니스 중심지, 즉 ‘클러스터들의 클러스터’를 발전시키는 문제는 놓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화 시대에서 진정한 국제 비즈니스 중심지는 흔히 ‘세계 도시’(global city or world city)라고 불리는 대도시 지역(metropolitan area)인데, 대도시 지역은 그 자체가 다양한 클러스터들로 구성된 거대 클러스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규모가 크다고 해서 세계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최상급의 국제적인 비즈니스 활동을 효율적으로 뒷받침하는 곳이라야 세계 도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화 추세에 따라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많은 활동들이 범세계적으로 분산되어 가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그러한 분산된 활동들을 통제·조정하기 위한 중추 기능의 중요성은 더욱 커져 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중추 기능을 수행하는 다양한 조직들, 즉 다국적기업의 본사와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금융, 회계, 법률, 광고 등 고부가가치의 ‘생산자 서비스’는 세계 도시라는 비즈니스 중심지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 도시들의 위계구조와 네트워크를 조사한 한 연구에 의하면, 서울도 주요한 세계 도시 중 하나이긴 하지만, 도쿄,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권 경쟁 도시들에 비해 아직 수준이 한참 떨어져 있다(그림 2). 또 미국의 경제전문지인 포천(Fortune)이 선정한 아시아권의 ‘기업하기에 가장 좋은 도시’에서도 서울은 계속 주요 순위 안에 들지 못했다(표 2).

그렇다면, 국제적인 비즈니스 활동에 적합한 ‘세계 도시’가 갖춰야 할 조건들은 무엇인가? 사실상 이는 앞에서 언급한 국제금융센터의 전제조건들과 거의 유사하다. 이 때문에 주요한 세계 도시들은 곧 주요 국제금융센터의 소재지이기도 하며, 세계 도시의 순위와 국제금융센터의 순위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다만 국제금융센터 외의 일반적 비즈니스 기능들은 해당 도시 배후의 지역 경제권과 좀더 밀접한 관련을 맺기 때문에 주변의 역동적인 지역 경제권의 존재는 세계 도시의 발전에 매우 유리한 환경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밖의 일반적인 전제조건들은 크게 두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고급 인력의 확보에 유리한 환경이다. 쾌적한 생활환경과 우수한 교육환경, 국제적이고 개방적인 문화, 유연한 노동시장 등이 이 범주에 들어가는 조건들이다. 두 번째는 국제 비즈니스에 유리한 제도적·정책적 환경이다. 금융·외환 시스템, 조세·회계제도, 외자유치 정책, 기업정책, 노동정책 등의 면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상의 조건들은 굳이 국제 비즈니스 중심지라는 비전이 아니더라도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해 추진해야 하고 또 이미 추진하고 있는 정책과제들이기도 하다. 요컨대 일반적인 정책과제를 충실히 실천해 나가는 것이 동북아 중심국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기본 전제가 된다는 것이다.


클러스터 개발 위한 의식적 노력 필요

또한 이런 기본적인 전제 외에도 클러스터의 개발이라는 관점에서 비즈니스 중심지를 육성하려는 보다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서울(및 수도권)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 지역에서는 ‘클러스터들의 클러스터’를 효율적으로 구성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범지역적 차원의 공공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선 주의해야 할 것은 모든 지역에 적합한 단일한 클러스터 개발정책이란 없으며, 각 지역마다 지역 사정에 적합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지역적 개발전략을 순조롭게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는 단지 정부의 힘만으로는 안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민간기업, 대학, 공공연구소 등 관련 당사자들 모두의 적극적 참여와 긴밀한 협력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다.

이 때 중앙정부는 중앙정부가 사용가능한 공공투자 자금을 각 지역에 적절히 배분하여 클러스터 개발을 촉진·지원해야 하고, 관련 당사자들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도울 수 있도록 적절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또 지방정부는 각 지역 차원의 클러스터 개발정책을 수립하고 그 집행과정에서 관련 당사자들의 참여와 협력을 유도하는 리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해당 기업이 위치한 지역의 클러스터를 기업의 중요한 자산으로 인식하고, 보다 효율적인 방향으로 클러스터가 발전할 수 있도록 클러스터 개발정책에 적극 참여하고 협조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동북아 중심국가’라는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은 아직 충분히 구체화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가 진정한 ‘동북아 중심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단지 수도권 외곽 등 몇몇 제한된 지역의 특수한 개발사업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특히 서울(및 수도권)이나 부산 같은 우리 나라의 경제 중심지들을 고부가가치의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최상급의 세계 도시(global city)로 발전시키기 위한 보다 포괄적인 전략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경제자유구역’ 개발사업도 그런 포괄적인 개발전략과의 밀접한 연계 아래 추진된다면 더욱 큰 성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경제특구란 무엇인가
우리 정부는 경제특구 정책을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인 수단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정책을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특구의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경제특구란 다른 곳에서는 실시하지 않는 특별한 경제제도를 실시하는 한정된 지역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그러한 특별한 제도를 실시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외국기 업의 유치를 위해서이다. 경제특구는 대체로 1970년대부터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수출가공구역’, ‘자유경제구역’, ‘자유무역지역’ 등 다양한 이름 아래 실시되기 시작했고 특히 사회주의 국가였던 중국이 1980년대초부터 시장경제 및 경제개방 실험을 위한 장소로 활용해 성공을 거두면서 전세계적으로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개발도상국이나 舊사회주의 국가의 경우에는 국가 전체의 제도적 환경을 당장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어렵고 경제 여건이 전반적으로 나쁘기 때문에, 한정된 지역에서 외국 기업에 보다 유리한 제도와 정책을 실시해 외국기업을 유치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이는 경제특구 정책이 최선의 정책이 아니라 단지 차선의 정책에 불과함을 의미한다. 경제특구보 다 더 나은 정책은 특정 지역만이 아니라 나라 전체의 제도와 환경을 선진화하는 것이고, 그러한 선진적 조건을 갖춘다면 특정 지역에 특별한 제도적 혜택을 부여하지 않아도 외국 기업 스스로 찾아오게 마련이다. 선진국에서는 경제특구 정책을 실시하는 사례가 흔치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또 하나 주의할 점은 경제특구와 (특히 정부 주도의) 클러스터를 혼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나라의 많은 산업단지들은 정부 주도로 형성된 산업 클러스터지만 경제특 구는 아니다. 마산 수출자유지역(현재 명칭은 ‘자유무역지역’)처럼 외국기업 유치를 위해 특별한 제도를 실시한 곳만 경제특구인 것이다. 요컨대 경제특구는 단지 정부 주도로 산업 클 러스터를 개발하고자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한 가지 특수한 방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의 요체가 클러스터 개발을 통한 국가 경쟁력 향상에 있다면, 경제특구 이 외에도 좀더 다양한 정책수단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