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은 재정을 파탄시켜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해친다”,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 원을 넘게 쏟았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하면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됐다”며 문재인 케어*를 겨냥해 화제가 되었다. 새 정부 들어 처음으로 건강보험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 문재인 케어란, 문재인 정권이 2017년부터 추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말하는 것인데, 예전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던 항목(비급여)까지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여, 전체 의료비 중 70%까지 보장률을 높이겠다는 정책 패키지다.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의 건강보험 개정안 내용과 근거를 개략적으로 살펴본다. 둘째, 이에 반대하고 있는 보건의료 운동진영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건강보험 개혁 논의를 위해 필요한 전제들이 무엇인지 제시한다.
결론부터 제시하겠다. 첫째, 윤석열 대통령의 강도 높은 발언이나 ‘문재인 케어 폐기 선언’이라는 언론의 호들갑에 비해, 공청회에 제출된 건강보험 개정안은 건강보험의 지출누수 요인을 ‘재정비’하는 정도에 그쳤다. 둘째, 보건의료 운동진영이 건강보험 재정위기를 가짜뉴스로 규정하고 문재인 케어를 방어하는 데만 급급해 파당적 선택을 계속한다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침식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셋째, 보건의료 운동은 문재인 케어의 실패 원인에 대해 성찰하면서, 고령화 요인을 고려한 제도적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운동진영 내 토론이 필요하다.
보장성 강화 중단과 급여기준 재정비가 문재인 케어 ‘폐기’는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문한 ‘건강보험 개혁’의 실내용은 지난해 12월 8일 보건복지부가 개최한 정책공청회의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안)’(이하 개정안)에 담겨있다.
추진과제 1번으로 제출된 ‘보장성 강화 항목 및 계획 재점검’에서는, 문재인 케어 정책으로 인해 급여화된 MRI, 초음파 항목의 ‘급여 기준을 명확화하고 개선’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남은 보장성 강화의 검토 대상인 근골격계 MRI·초음파 등은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선택적 의료가 다수 혼재되어 있어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방향도 발표되었다. 의학적 필요가 불명확한 검사가 시행되어 과잉 이용이 발생하고, 사후관리·심사와 같은 관리도 미흡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개정안 방향대로라면 예컨대 뇌·뇌혈관 MRI의 경우, 신경학적 ‘검사 시’ 최대 3회 건강보험으로 보장했던 것을, 신경학적 검사상 ‘이상소견 있는 경우’에만 최대 2회로 제한하여 보장한다는 말이다. 즉, 문재인 케어로 급여화된(건강보험으로 보장하는) 항목에 변동은 없고, 다만 과잉 진료나 의료 남용 유발을 막기 위해 기준을 정비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케어로 급여화된 항목에 대한 ‘관리’의 필요성은 이미 여러 번 지적되어왔다. 먼저 건강보험공단이 2022년 6월 발표한 ‘보장성 강화 항목(초음파·MRI)의 진료비 및 이용량 변화’에 따르면, 보험 적용이 된 첫해 2018년 1천891억 원 규모의 진료비 규모가 2021년 1조 8천476억 원으로 3년 새 10배 증가했다. 비급여 항목일 때 비용이 부담되어 검사를 망설였던 국민이 급여화 이후 검사를 받았다고 추정해봐도, 3년 새 10배 증가는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큰 규모라고 볼 수밖에 없다.
또한 2022년 7월에 발표된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서는 상복부 질환이 없는데도 상복부 초음파를 진행하는 ‘이상 사례’가 있었음에도 사후 조정이 부재한 문제나, 인정 횟수를 초과하는 MRI와 초음파 사례가 심사평가원의 전문심사 대상에서 제외된 문제가 지적되었다.
이에 따라 당시 감사원은 보건복지부에 ‘급여화에 따른 진료 빈도 증가를 확인해서 손실보상 규모를 조정하거나 급여 기준을 개정하는 등의 조치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이번 정부의 개정안은 급여화 결정을 되돌리진 않으면서 이런 권고를 일부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의 추진 과제 2번은 국내 체류 외국인 ‘피부양자’의 건보 적용 기준으로 ‘필수 체류 기간을 6개월로 규정’하여 의료목적의 입국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배우자와 미성년자 자녀는 현행대로 적용한다.) 현행 외국인 지역가입자는 체류 6개월 경과 후에 건강보험 가입이 가능한데, 피부양자는 체류 요건이 따로 없어 입국 직후 고액 진료를 받아 건강보험 무임승차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의하면 국내 거주 외국인 건강보험은 지속해서 흑자를 내고 있다. 이를 고려하는 한편, 한 해 건강보험의 총 급여비가 약 75조 원(2021년)임을 전제하면, 외국인 피부양자의 무임승차 사례는 전체 건강보험의 재정안정성을 해칠 만큼 대단한 규모라고 볼 수 없다. 물론 작은 규모라도 지속해서 재정 누수 원인으로 지적되어 왔으므로, 개정안도 이를 고려해 6개월이라는 제한 규정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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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개정안에는 합리적 의료이용을 유도한다는 목적으로 연간 365회 초과 외래 이용에 대해 본인부담률 90% 적용 방안, 산정특례* 질환에 의한 합병증 중, 관련도가 낮은 경증질환은 적용 제외하겠다는 방안도 함께 담겼다. 본인부담상한제 합리화 조치도 포함되어 있다.
* 산정특례 : 암 등 중증‧희귀질환 진료 시, 낮은 건보 본인부담율(5~10%)을 적용하는 제도
종합하면 윤석열 정부 건강보험의 개정안은 문재인 케어에 대한 ‘폐기’가 아니며, 전반적으로 현 상태를 건전화하는 기조의 소극적인 정책이라 평가할 수 있다.
재정위기는 가짜뉴스? 고령화 전망을 전제로 제도개혁의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개정안이 발표되자 지난 1월 3일 국회에서는 무상의료운동본부와 참여연대‧민주당‧정의당 의원실이 공동 주최한 <윤석열 정부의 긴축기조에 따른 건강보험 보장성 정책 후퇴 문제점과 대응 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의 주요 논지는 문재인 케어 시행 이후 건강보험이 재정 위기를 맞았다는 정부 주장은 사실과 다르며, 오히려 보장성을 지금보다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건강보험 흔들기 배경에는 민간보험사의 배 불려주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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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에서는 국회토론회 발제문(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의 핵심 주장을 검토하면서, 현재 건강보험 개혁을 위해 정부와 운동사회 모두에게 필요한 전제들이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가짜’ 건강보험 재정위기와 ‘진짜’ 지속가능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전략>이라는 발제문 제목에서 잘 드러나듯, 김윤 교수는 건강보험 재정위기가 가짜라고 주장한다. 2017년 문재인 케어를 시작할 때 20조 원이었던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이 2021년 말 기준 여전히 20조 원으로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김윤 교수는 이를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 저축한 돈을 쓰지 않은 것’이라 해석한다. 2022년 초 건강보험공단의 지난해 당기수지 결과가 발표되자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SNS에 “지출을 대폭 확대했는데도 건보 재정 상황은 오히려 양호해졌습니다. 건보 재정 악화니 부실이니 하는 말은 잘 모르고 하는 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고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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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건강보험공단이 직접 밝힌 2021년 흑자의 원인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예외적 상황이 작용했다. 코로나19시기에는 마스크 착용, 손 씻기와 같은 개인위생관리가 생활화되면서, 감기‧인플루엔자 등 호흡기질환 및 세균성 장감염‧결막염 등 감염성 질환을 중심으로 환자 수가 많이 감소했다. 따라서 보장성 강화 정책 시행에도 지출 증가율이 ‘둔화’되었다. 실제로 건강보험의 지출 증가율은 2018년 8.7%, 2019년은 13.8%였고, 2년간 건강보험공단은 계속 적자를 보았는데, 코로나19를 겪은 2020년과 2021년의 지출 증가율은 각각 4.1%와 5.3%로 이전과 큰 차이를 보였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코로나19 시기 2년간의 추계는 예외적 상황으로 보아야 하지, 문재인케어 계속 추진이나 더 나아가 건강보험의 재정건전성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긴 어렵다.
또한 김윤 교수는 건강보험이 적용된 MRI, 초음파 검사 중 ‘남용’된 검사의 비용을 총 2,000억 원으로 추정하면서, MRI‧초음파 검사 전체 비용의 9% 규모이고, 2021년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용의 0.2%에 불과한 금액이라 건강보험 재정위기를 불러올 만한 규모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물론 모든 MRI‧초음파 검사가 남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고, 김윤 교수의 주장처럼 그 규모로 보았을 때도 건강보험 재정을 축내는 주된 원인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남용 문제가 강력하게 규제되지 않았을 때, 고령화로 인한 건강보험 지출 증가를 ‘가속’하는 요인이라는 점은 분명히 지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것은, 정부와 학계 모두에서 건강보험 개혁의 이유로 지적하는 고령화에 대한 분석이 보건의료 운동진영의 주장 안에서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많은 논자가 지적하듯 고령화로 인한 사회 전반의 지각변동을 감지해야 보장성 규모, 보험료율 인상을 둘러싼 건강보험 제도 논의의 다음 스텝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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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207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46.4%로 예측되고, 현재 65세 이상 국민 1인당 월평균 진료비가 40만 원(2020년)으로 전체 평균의 2.9배에 달하므로, 고령화는 건강보험 재정지출의 증가와 수입감소를 강력하게 압박하는 요인이 된다.
이를 반영하여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20년 재정전망에 의하면 누적 적자가 2040년 678조 원, 2050년 2,518조 원, 2060년 5,765조 원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2년 12월 발간한 보건복지포럼 자료에는, 적자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출 증가요인을 고려했을 때) 2060년에는 건강보험료율을 24% 내외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전망마저 제기된다.
김윤 교수는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전망 자료가 보험료율을 법정 상한선인 8%에서 2026년부터 동결(2023년 현재 7.09%)하고 건강보험 수가 인상률과 진료비 증가율은 그대로 유지하여 추계한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이기에, 정부 발 재정위기론은 가짜뉴스라고 주장한다. 세상에 어느 정부와 국회가 건강보험이 적자인데 15년 동안 지출도 줄이지 않고 보험료도 인상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결국 건강보험료율 인상을 전제로 향후 재정을 추계하자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우선, 보건의료 시민사회운동은 낭비적인 의료비 지출의 비용을 공적 보험으로 노동자ㆍ민중에게 전가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보험료율 인상을 전통적으로 반대해왔는데, 김윤 교수의 주장은 이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주장이라는 점을 짚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건강보험 적자를 면하기 위해 보험료율을 인상한다는 가정은 이미 2019년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19~2028년 8대 사회보험 재정전망>에서 한 차례 진행한 바가 있다. (민감도 분석에서 기본모형 1-1안) 전제는 다음과 같다. 2025년에 보험료율이 법정 상한선인 8%에 도달한 이후 매년 3.2%씩 건강보험료율 인상하고, 2022년에 문재인 케어의 목표였던 보장률 70% 달성과 2028년까지 보장률 70%를 유지할 경우를 전제한다. 이 전제에 따르면, 건강보험은 2028년에 한 해 141.7조 원을 지출하게 되며, 이미 2024년부터 적립금이 소진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물론 이 전망은 2019년에 나온 것이므로, 코로나19로 인한 지출증가율 둔화, 문재인 케어의 실패(2021년 보장률 64.5%)는 예상하지 못했다. 따라서 적립금 소진 시점을 비관적으로 전망하여 결론적으로 틀린 추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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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전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과 문재인 케어(보장성 강화 정책)가 동시에 진행된다면, “보험료율의 계속적 인상을 전제로 했을 때 향후 재정위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 낙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고령화 요인’을 향후 건강보험 제도 설계의 중요한 전제로 인정하는 것이다. 적립금을 규모를 근거로 재정위기 전망은 ‘가짜’라거나, 보험료율 인상이 이를 해결할 것이라는 낙관적 주장은 오히려 논의를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것이다.
근본적인 건강보험 개혁, 문재인케어의 실패를 반성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편, 김윤 교수는 재정위기가 가짜라고 주장하면서도, 재정 누수의 진짜 원인 몇 가지를 짚어야 한다며 건강보험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과잉공급된 병상이다. OECD 국가에 비해 3배 더 많은 병상이 있다보니, 병원은 과잉공급된 병상을 환자로 채우기 위해 의학적으로 꼭 입원할 필요가 없는 환자까지 입원시키게 된다. 이를 공급자 유인수요라고 부르는데, OECD 평균 수준으로 병상수를 줄이면 불필요한 입원을 줄어 약 11조 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주치의 제도가 없다. 고혈압·당뇨병 환자가 주치의 역할을 하는 동네의원에 다닐 경우 다른 병의원에서 진료받을 때에 비해 뇌졸중·심장병 같은 합병증이 덜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주치의 제도 시행 시 진료비를 4분의 1가량 적게 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셋째, 민간의료보험으로 인한 의료 남용이다. 실손보험에 의해 외래진료와 입원일수가 많아지고 길어지는 경향이 있기에,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윤 교수가 지적한 병상 과잉공급, 일차 의료 부족, 팽창하고 있는 민간보험 등은 한국 의료체계의 고질적 문제로, 사회진보연대 역시 관련한 분석과 입장은 수차례 제기해왔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이런 주장은 문재인 케어의 실패 원인을 규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정직하지 못한 비판’이다.
우선, 문재인 케어의 실패부터 객관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2021년 보장률은 64.5%로, 정책을 시작한 2017년 62.7%에 비해 단 1.8% 상승했다. 문재인 케어 정책에 따라 2017~2021년 총 18조 5,963억이라는 막대한 재정을 추가 투입한 데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조금이라도 가계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재정 투입이 아니었을까 반문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케어 시행에도 ‘재난적 의료비
* 경험률’이 증가했다는 사실은, 문재인 케어 이후 과잉의료 및 신(新) 비급여 창출로 오히려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세한 분석은 <사회운동포커스> ‘
정부는 문재인케어의 실패를 인정하고 실효성 있는 비급여 통제 정책을 시행하라’ 참고)
* 재난적 의료비 : 연간 지출한 본인 부담 의료비가 가구 연간 소득의 일정 비중(예: 10%)을 넘는 경우
문제는 정책 실패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있다. 의도는 좋았으나 시간이 지나 대통령의 개혁 의지가 초반에 비해 떨어진 것일까? 의협 혹은 의료자본의 거센 공격에 무릎 꿇게 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사회진보연대는 문재인 케어 시행 초기부터 이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게 설계되었다고 주장해왔다. 아래는 2018년에 발표한 사회진보연대의 입장이다.
“비급여를 통제하려면 다음 세 이해관계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기존 약품/기기에 비해 효과가 나을 게 없으면서 가격만 비싼 의료기기나 신약을 판매하는 제약/의료기기 자본, 비급여를 수익 창출의 도구로 활용하는 의료공급자, 비급여를 통해 국민 대다수를 포섭한 민간의료보험이다.
하지만 문재인케어는 누구에게도 손해가 가지 않게 하면서 비급여를 없애겠다고 하고 있다. 결국 남을 것은 생색내기 수준의 보장성 강화와 건강보험 재정 낭비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을 통한 혁신성장 달성에 있어 보건의료산업은 1, 2순위를 다툴 정도로 중요도가 높다. 그 때문에 보건복지부는 신의료기기와 신약에 예비급여*와 선별급여*를 대거 적용할 것이다. 이는 제약/의료기기 자본에 신제품 판로를 열어 준다는 걸 의미한다. (…)
* 선별급여는 1) 경제성 또는 치료효과성 등이 불확실하여 그 검증을 위하여 추가적인 근거가 필요한 경우 2) 경제성이 낮아도 가입자와 피부양자의 건강회복에 잠재적 이득이 있는 경우 3) 제1호 또는 제2호에 준하는 경우로서 요양급여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있거나 국민건강 증진의 강화를 위하여 보건복지부장관이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급여화하는 것이고, 예비급여는 기존 선별급여와 기능은 동일하나 적용 질환의 제한 없이 본인부담률 유형을 보다 다양화하여 확대 운영하는 제도다.
결국 예비급여는 경제성이 떨어지거나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비급여를 그대로 남겨서 의료공급자들이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는 의료공급자들뿐만 아니라 민간보험사도 원하는 바다. 비급여 가격이나 행위 수를 국가가 예비급여를 통해 ‘관리’한다. 예비급여는 10~50%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본인부담이기 때문에 환자들은 실손보험에 가입한다. 실손보험은 국가가 비급여 가격을 관리해주기 때문에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 한편 예비급여 도입 과정에서는 의정협의체를 통해 수가를 대폭 인상한다.
결국 의료공급자에게는 수가 인상, 민간보험에게는 수익 증가, 제약/의료기기 자본에는 제품 판로 개척이라는 혜택을 준다. 모두가 윈-윈 하지만 비급여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건강보험 재정은 낭비된다.”
따라서 지금 보건의료 운동에 필요한 것은, 보수 정권에 맞서 문재인 케어의 성과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 케어 실패의 원인을 성찰하는 것이다.
앞서 살폈듯, 윤석열 정권의 건강보험 개혁 방안은 보장성 확대를 중단하고, 급여기준을 재정비한다는 소극적인 기조에 불과하다. 이는 의료비 상승을 부추기는 의료자본‧의료공급자‧민간의료보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부재하다는 것이며,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정책과 큰 틀에서 차이가 없는 것은 물론, 오히려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보건복지부의 2023년 예산안에는 ‘디지털‧바이오 헬스케어’를 위한 투자 확대 정책이 포함되었다. 윤석열 정권이 진정 건강보험의 ‘건전재정’을 목표로 한다면, 이러한 정책의 남발은 비용효과성이 매우 떨어지는 또 다른 낭비적 지출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
노동조합과 시민단체가 건강보험 문제에서 사회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는 집단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일관된 기준을 가지고 일관된 분석과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이름만 다른 비슷한 기조의 정책들이 박근혜 정부에서는 ‘졸속 도입과 민간 보험사 배를 불려주기’(선별급여 도입)로 비판해야 할 것이 되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의도는 좋았으나 안타깝게 중단된 정책’(문재인 케어)이 되고, 윤석열 정부에서는 ‘의료민영화 시도와 건강보험 포기선언’(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이 되는가?
이렇게 보건의료 운동진영의 주장이 진영논리에 따라 세워진다면, 윤석열 정부의 건강보험‧보건의료 정책을 비판할 근거를 스스로 침식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의 미래에 대해 정직하고 진지한 논의를 시작하자
개정안이 발표된 후 보건의료단체연합은 12월 8일 성명을 통해 ‘보장성 축소안을 제시한 것은 국민건강보험 역사상 윤석열 정부가 최초’이며, 이러한 개악은 ‘역사적 퇴행’이자 ‘의료영리화 시도’라고 규탄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12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이 나서서 건강보험 공격하다가는 정권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 선언했다.
그러나 반정권 투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선 당장 보건의료 시민사회운동 안에서도 입장이 충돌하는 지점이 많다. 예컨대, 건보료율 상한선 8%가 가까운 미래로 다가오고 있는데, 고령화와 지출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 보험료율 인상 시뮬레이션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또, 과잉 병상이 공급자 유인수요를 창출하고 이것이 다시 건강보험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과연 공공병원의 광역시 신축이 우선인가?
복잡하고 어려운 쟁점들 앞에서 우리는 사회운동이 1) 고령화 요인 2) 문재인 케어의 실패 요인에 대한 진지한 분석을 전제로, 정합성과 수용성을 고려하며 제도적 대안을 만들어내기 위해 책임 있게 논의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건강보험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시작됐다. 우선, 지난해 12월 31일부로 일몰된 건강보험 재정 국고 지원 제도는 아직도 국회에 계류된 상황이다. 제도 공백이 보험료율의 급속한 충격으로 국민에게 돌아오지 않도록, 지원 규모와 일몰 시점(혹은 일몰 폐기) 등에 대한 국회논의가 조속히 진행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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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큰 논의는 <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 수립 시기에 맞춰 올해 9~10월 중 다시 불붙을 것이다. 문재인 케어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정책이 ‘재벌과 슈퍼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서 복지‧의료 혜택을 줄이고 서민부담을 증가’시키려는 의도라며 사회운동을 현혹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시기 보건의료 시민사회운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 또다시 민주당의 손을 잡고 문재인 케어 부활을 위해 뛸 것인가? 아니면, 문재인케어의 실패를 성찰하면서 건강보험에 대한 정직하고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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