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2023 겨울. 1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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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사건을 통해 본 교사의 교육권

교사회원모임 |
 

들어가며

 
7월 18일 서이초 한 교사의 죽음은 이후 예상치 못한 교사들의 집단행동을 촉발했다. 그동안 현장 교사들은 학부모의 부당한 민원, 공교육에 대한 사회적 불신, 발달 위기 학생의 언어적·신체적 폭력, 생활지도의 불가능과 같은 교육활동의 비정상화가 심해지고 있음을 호소해 왔다. 이미 곪을 대로 곪아 있었던 학교 현장의 문제를 특별한 해결책 없이 교사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 왔던 문제가 결국 터지고 만 것이다.

사건 이후 교사들은 자발적으로 매주 집회를 시작했고 그 수가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서이초 사건 이후 첫 집회였던 7월 22일 보신각 집회에 1만 명이 모인 것을 시작으로, 이후 네 번의 집회에는 종각부터 을지로까지 약 6만 명 정도가 모였다.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30만 명 이상이 모였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교사가 자발적으로 모인 것은 아마도 남한 역사상 최초일 것이다. 

이렇게 매주 이어온 집회는 교원노조나 단체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초등 교사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인디스쿨’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이들은 철저히 교원노조나 단체의 개입을 반대했다. 집회마다 진행요원은 노조와 단체의 깃발이나 이를 알리는 그 어떠한 상징도 걸지 못하게 했으며, 다른 구호나 발언도 용납하지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것을 지속해서 강조했다. 덧붙여 교사노조연맹은 이번 사건의 후과로 가입자 수가 폭등하면서 명실공히 제1의 교원노조 지위를 얻게 되었다.

그렇다면 교사들은 왜 이렇게 날이 갈수록 집회에 많이 참여한 것일까? 집회에 참석한 교사들은 ‘교육 활동 보장’, ‘아동 학대 관련 법안 개정’, ‘악성 민원으로부터의 보호’ 등을 요구했다. 즉 그간 교육활동과 무관한 업무 폭증, 노동강도 강화, 학생 지도권 부재, 교육의 자율성 부재로 고통받고 있었음을 호소한 것이다. 이러한 호소는 이미 2000년부터 ‘교실붕괴’라는 담론으로 존재했다. 전교조에서도 2018년 교육권 위기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바 있는데, 당시 주목한 것은 업무 폭증, 노동강도 강화,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권리 침해 확대, 교수-학습과 생활지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상적인 어려움이었다. 

그러나 전교조는 교사의 교권을 반대하는 세력과 교권을 주장하는 세력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권 보장 정책을 만들지 못했다. 당시 전교조의 지도부 중에는 교권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다. 이들은 교권을 학생에 대한 통제 수단으로 규정하고 학생인권을 축소하는 권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각 때문에 그동안 전교조의 교찾사(교육노동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 그룹은 교권 회복에 대한 입장을 통일하지 못했었다. 현 지도부는 선거 당시 ‘교육이 가능한 학교’를 만들겠다는 공약으로 교사의 교육권을 주요한 이슈로 선점했지만, 집권 내내 이와 관련된 사업은 거의 없었다. 그러는 사이 현장의 어려움은 커져만 갔고, 급기야 여러 선생님이 죽음을 선택하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문제를 남겼다. 학교는 교사가 스스로 삶을 포기할 정도로 교육노동이 힘든 곳인가? 학교는 교사가 학생들을 지도하기 어려울 정도로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보장하지 못하는가? 학부모는 교사에게 의견을 제기하지 못하는가? 학부모는 교사에게 어떠한 종류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가? 본질적으로 학교교육은 어떠한 교육이여야 하는가?
 
 

무엇이 서이초 교사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가?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두고 처음 언론에서는 교사 개인의 우울증 때문으로 몰고 가려 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는 이른바 ‘연필 사건’에서 비롯된 학부모와의 갈등이 교사의 죽음과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이 유력하다고 알려져 있다. 연필 사건이란 서이초 교사가 담임인 1학년 학급에서 한 학생이 연필로 다른 학생의 이마를 그었는데, 이후 특정 학부모로부터 항의와 민원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우리가 서이초 교사의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현재 학부모들은 학생을 지도하는 교육자로서의 위상보다는 학생을 돌보는 돌봄 노동자나 시험용 지식을 전달하는 학원 강사 정도로 교사를 인식한다. 이렇게 교사의 위상이 달라진 것은 1995년 5.31 교육개혁안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학교에서 교사의 권한이 절대적이었으나, 교육의 상품화가 보편화되면서 교사의 역할도 점차 안내자, 촉진자, 교육 디자이너로 규정되고 있다. 

교사의 역할에 대한 이러한 규정은 학생이 스스로 지식인이고 어린 과학자임을 전제하는 구성주의 교육철학의 사조에서 등장했다. 즉, 구성주의 교육철학에서 교사의 역할은 학생에게 내재한 자발성을 바탕으로 학생 개개인이 요구하는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사는 ‘서비스 노동자’로 인식되고 있으며, 학부모는 교육의 소비자로서 교사에게 보다 많은 서비스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이제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교사도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돌봄 노동자나 학원 강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학부모가 제기하는 민원의 종류와 강도는 학교급별로 다르다. 고등학교의 경우 학생 평가권이 교사에게 있고 이러한 평가가 대입에 반영되다 보니, 그만큼 학부모가 제기하는 민원의 강도가 비교적 약한 편이다. 반면 돌봄과 교육이 함께 이루어지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경우 학부모의 민원의 강도가 비교적 큰 편이다. 이는 학부모 민원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교사가 초등학교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 학부모의 민원 중에는 인간적인 모멸감이 드는 민원도 존재하는데, 모범생으로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러한 민원은 교사가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둘째, 점차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학생은 많아지지만, 이들을 지도할 방법과 조건은 마땅치 않다.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학생이 많아진 데에는 경쟁이 극심해지면서 부모의 잘못된 양육 방식이 강화된 영향도 있고, 예전보다 자율적인 학교 분위기로 인해 참지 못하는 학생이 많아진 영향도 있다. 여기에 더해 2014년에 제정된 ‘아동학대처벌법’도 한몫한다. 아동학대처벌법의 주요 문제는 의심만으로도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를 바로 ‘직위해제’ 시킬 수 있다는 점과 ‘정서적 학대’라는 추상적인 혐의를 형법으로 다스린다는 점이다. 즉, 교사가 아동이나 학부모가 싫어할 만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그 일의 정당성과 관계없이 학생과 분리되거나 직위해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업에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이나 이탈하는 학생, 심지어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지만, 교사들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도하려고 나섰다가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

셋째, 학교 공동체 문화의 해체다. 서이초 교사는 신규 임용 때부터 이례적으로 1학년 담임을 맡아왔다고 한다. 보통 초등학교 1학년과 6학년은 경력이 많은 교사가 담임을 맡는다. 그만큼 챙겨야 할 일이 많고 학생들의 지도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서이초 교사는 1학년을 맡아 왔고, 어려운 점이 있더라도 주변에 호소할 곳이 없었다. 이러한 일은 현장에서 비일비재한데, 언젠가부터 교사들은 각자의 일에만 집중하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혼자서 해결하고 있다. 특히 초등학교 교사의 경우 별도 공간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 가중되었을 것이다. 

학교의 교사 공동체가 파괴된 이유에는 단순히 교사의 개인주의적 성향 때문만은 아니다. 교사들은 본연의 업무인 가르치는 업무, 학생 생활지도 외에 과중한 행정업무도 있다 실제로 OECD 국가들과 비교해 봐도 한국은 교사의 수업 시간은 다소 적은 반면 행정업무에 투여하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높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교직 사회의 협력 문화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원노조를 ‘패싱’하는 교사들

 
서이초 교사의 죽음은 교육의 위기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교사들은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스스로 내면화하면서 거리로 나왔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은 전교조를 비롯한 교사단체의 조직적 개입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행동은 그 어떠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행동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마치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 운동에서 민주노총이 집회를 주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이 과정에서 전교조에 대한 혐오와 더불어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혐오도 공존했다. 또한 교사의 교육권이 실추된 것이 모두 학생인권조례의 탓인 것처럼 비치기도 했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 집회를 주도하는 20~30대 초등 교사는 ‘인디스쿨’이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주로 정보교류를 하면서 빠르게 소통하는 특징이 있으며, 감각적인 글쓰기를 통해 서로 감정을 교류한다. 이들은 기존 운동권처럼 누굴 가르치려는 훈계조의 글이나 긴 글에 대해서는 익숙하지 않으며, 자신의 행동도 일종의 정치적 행동임을 자각하지 못한다. 특히 이번 서이초 관련 집회를 주도하는 운영진은 일종의 팬클럽을 조직하듯 집회를 조직하면서 자신들이 깔아놓은 판에 기존의 교원노조들이 접근하는 것을 경계했다. (인디스쿨 운영진 스스로도 “우리가 팬 카페 등에서 몇천 명이 모이는 집회를 했던 경험이 있다”고 표현한다.)

이들은 전교조를 포함하여 교원단체들이 직접 결합하는 형태를 거부하고 현장 교사의 자발성을 강조하면서 전교조 혐오까지 드러내고 있다. 이들이 전교조를 비롯한 여러 교원 단체에 불신을 갖게 된 이유는, 노조나 교원단체들이 현장 교사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지만, 전교조 운동에 대해 돌아볼 필요는 있다. 전교조는 그동안 교사의 전문성보다는 노동자성을 강조해 왔다. 이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교사가 노동3권을 요구하면서 단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는 교사의 교육권이 위기인 상태이다. 사교육 시장은 공교육보다 훨씬 세련된 모습으로 교육 소비자의 욕구를 얼마든지 충족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교사의 노동자성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공교육과 교사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교육 시장은 교육의 모든 초점이 대학입시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교육의 역할은 학생을 단순히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아니다. 학생의 전인적인 성장을 도모하고 사회에 기여할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은 공교육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다. 물론 ‘내 새끼 지상주의’의 사고방식을 가진 학부모들로부터 공교육의 역할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더욱 교원노조가 필요하다. 

전교조가 현장 교사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이유는 현장 교사들이 소신을 가지고 제대로 된 교육활동을 하려는 것을 전교조가 외면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장 교사들이 교사로서 전문성을 쌓아 학부모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독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다시 현장 교사와 학부모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려면, 전교조가 앞장서서 좋은 교육을 하려는 열정 있는 교사들을 독려하고 지원해야 하며, 학부모가 전교조 조합원이 최고의 교사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래를 위해서 전교조는 전문성을 갖춘 조합원을 확보하려고 해야 할 것이며, 학생들이 올바로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한편, 교사의 탈정치화는 교사에게 연대의 경험이 부족하고 교사가 연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전교조는 사회운동을 통해 교사 간의 연대, 교사와 다른 직종 간 연대의 틀을 공고히 해야 한다. 특히 이익집단화 되어버린 교사노조연맹이 제1노조가 된 상황에 대해서도 대응해야 한다. 지금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교사끼리 뭉쳐서 다른 노동자들을 비난하거나 교사 집단을 가장 불쌍한 집단으로 여기는 태도가 아니라, 교사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학생들을 올바로 지도할 수 있는 교사로 거듭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사회운동으로 만들어 가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만 교사의 탈정치화 현상을 조금이라도 제어할 수 있다.
 
 

교권 4법 통과 이후, 남은 문제들

 
서이초 사건 이후 매주 수만에서 수십만의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결과, 지난 9월 21일 소위 교권4법(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이 개정되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교원지위법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해 아동학대범죄로 신고되어 조사·수사가 진행되는 경우 교육감의 신속한 의견 제출 의무화
-교원이 아동학대범죄로 신고된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직위해제 처분 제한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교육활동 침해유형으로 신설
-학부모가 교육활동 침해활동을 할 경우, ‘서명사과 및 재발방지 서약’, ‘특별교육·심리치료 행위’를 조치하고, 미이수시 300만원 이하 과태료 부과
-피해 교원의 확실한 보호 및 가해학생 조치 강화
-정부의 책무성 및 행정지원체제 강화
 
2. 초·중등교육법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복지법에 따른 아동 학대(신체적 학대·정서적 학대·방임)   금지 행위로 보지 않음
-학교장에게 민원 처리에 대한 책임 부여
-교원의 개인정보가 관계 법률에 따라 보호될 수 있도록 학교와 학교의 장에게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함
-교직원 또는 다른 학생의 인권 침해행위 금지, 교원의 정당한 지도에 대한 존중 및 지원, 학생 지도에 대한 보호자의 적극 협력 의무
 
3. 유아교육법
-초·중등교육법과 비슷한 내용 포함
-유치원 원장·교원의 생활지도 권한 명시
 
4. 교육기본법
-부모 등 아동의 보호자가 학교의 정당한 교육활동에 협조하고 존중할 의무
 
이에 따르면, 앞으로 교사가 아동학대로 신고된다고 하더라도 무분별하게 직위해제되는 일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피해를 당한 교원에 대한 대책 마련도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교사는 교사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걱정이 많다. 

우선 교사의 생활지도권이 법령에 따라 보장돼도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교사의 교육활동을 아동학대 면책조항으로 넣을 수도 없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이라는 것 역시 추상적이며, 아동과 연계된 수많은 직업 중에서 교사만 면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장에게 민원 처리의 책임을 부여하는 문제도 복잡하다. 학부모 역시 교육의 주체 중 하나이기 때문에 학부모가 교육활동에 대한 민원 자체를 하지 못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선 민원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데, 교육활동과 관련이 적은 단순민원(예를 들어 출결 문제나 학교 행정 등)은 창구를 단일화해서 해결할 수 있지만, 교육활동과 관련된 민원은 교육활동 당사자가 해명해야 할 부분이 많아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내준 숙제에 대해 “왜 이렇게 숙제가 많으냐”라는 학부모의 민원에 대해서는, 우선 담임교사가 (불쾌하더라도) 자신의 교육철학에 근거하여 학부모에게 설명해야 한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가 계속해서 악성 민원을 반복한다면 그때 학교장이 나서서 담임교사를 같이 방어해야 할 책임이 있다. 

법은 원래 사회적 공감대의 최소한을 규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법 개정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법 개정을 시작으로 교사의 교육활동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는 아동과 학생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하며, 자신의 교육활동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교사는 교육에 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하며, 교원노조는 교사가 노동자이자 전문가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교사는 교육을 통해 주체를 재생산하며 전문적이고 공적인 영역을 책임지는 지식노동자다. 따라서 교사는 한 아이의 성장과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보편적인 발달에 맞게 성장하도록 돕고 미래 사회를 주체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육활동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부모와 의견이 부딪힐 수 있는데, 그때 교사 공동체가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교육활동의 정상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법이 마련되는 것과 함께 교사 공동체의 복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교원노조는 교사 개개인과 집단적인 성장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교권과 학생인권을 대립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 대하여

 
서이초 교사 사건 이후에 가장 이슈가 된 것은 ‘교권’ 개념을 둘러싼 쟁점이다. 과연 ‘교권’이란 무엇인가? 교육공무원법에서 ‘교권’ 개념을 처음 규정한 것은 1981년 전문 개정에서다. 그 이후 1991년 개정에서는 “교권은 존중되어야 하며, 교원은 그 전문적 지위나 신분에 영향을 미치는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아니한다(제 43조 1항)”라고 하여 1981년의 선언적 규정보다 교권이 강조되었지만, 여전히 교권에 대한 개념적 정의는 모호하다.

교권에 대한 여러 학설을 종합하면, 교권은 교육의 본질상 인정되는 교육활동에 관한 교육 내용과 방법의 선택결정권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교과교육에 관한 수업내용편성권, 교재선택권, 성적평가권, 생활지도권, 징계권 등이 포함되고, 헌법상의 기본적 인권의 성격과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법률상 직무권한의 성격도 있다. 즉, 교권이란 올바른 교육활동을 위하여 인정되는 교사의 권리, 직무권한, 권위와 교육 노동자로서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을 총화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전교조 내의 일부 그룹은 ‘교권’에 반대하면서, ‘교사 노동권’이나 ‘교사 생존권’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권’이라는 개념은 ‘교사 노동권’이나 ‘교사 생존권’으로 대체될 수 없다. 교권은 교사의 인권, 권리, 권한, 권위를 모두 포함하는데, 교사 노동권이나 생존권은 교권의 인권적 측면만 강조되기 때문이다.

또한 교권을 학생인권과 대립시키는 시각을 가진 사람은 보수와 진보의 양극단에 서 있는 사람일 것이다. 보수적 시각에서는 교권이 훼손된 것이 학생인권 때문이라고 생각할 테고, 급진적 진보주의 관점에서는 교권의 확립이 학생인권을 훼손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보수와 진보의 양극단에 서 있는 두 세력은 아이러니하게도 교권과 학생인권의 관계에 대해서는 유사한 관점을 지니고 있다.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권리는 ‘교육할 권리’다. ‘교육할 권리’는 전통적인 ‘훈육’의 의미를 포함하는데, ‘훈육’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아동을 지도하기 위한 ‘강제성’을 지닌 개념으로 교육에서 필수적이다. 다만 ‘훈육’에 바람직한 방식과 그렇지 못한 방식이 있을 뿐이고, 이는 교육자들의 성찰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교육에서 ‘훈육’은 일종의 교육적 권한이다. 아동발달심리학자들도 부모의 일관성 있고, 확고한 ‘훈육’이 아이의 건강한 정서를 만든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적어도 초등학생 시기까지 부모와 더불어 교사의 바람직한 ‘훈육’은 아동의 건강한 발달을 돕는다.

한편 교사의 교육권이 완성되려면 권리와 권한 외에 권위도 필요하다. 그러한 교사의 권위는 법이나 교사 개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교사의 교육권을 완성하기 위해 권리, 권한, 권위가 채워질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교사의 교육권을 포괄적으로 ‘교육할 권리’로 이해한다면 교사의 교육권과 학생인권은 부딪히지 않는다. 다만 학생인권의 핵심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또한 교사의 교육권이 필요하다고 학부모의 민원이 무조건 무시되어서도 안 된다. 교사는 교육을 전문적으로 행하는 사람이지만 학부모는 전문성이 교사보다 부족하더라도 교육활동에 대한 권리가 있다. 따라서 학부모의 교육적 요구를 무조건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이지 않다고 판단되는 것에 대해 교사가 거부할 수 있고, 이러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담론 지형에서는 학부모의 민원이 무조건 문제가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학부모의 의견은 청취하되, 이러한 의견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한지에 대한 판단은 교사가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학부모의 요구는 대부분 자신의 자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바람직한 교육활동보다는 입시와 성적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우도 있다. 학교는 학생의 전인적인 발달을 도모해야 하는 곳이므로 학부모가 편향적이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의견을 제시했을 경우 학교 공동체가 방어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학생인권의 핵심은 무엇인가?

 
서이초 사건 이후 교육부가 ‘교권 보호 대책’을 발표하자, 진보적인 사회운동단체들은 학생인권과 교권을 대립시키지 말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과연 누가 학생인권과 교권을 대립시키고 있는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정부뿐만 아니라 소위 진보적인 사회운동진영에서도 이 두 개념을 대립시키고 있다. 그러나 ‘교권’은 교육을 위한 권리이며 권한이라는 점에서 필요하다. 교사에게 교육을 맡겼는데 교육에 필요한 권한을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교육을 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인권운동, 학부모운동, 여러 사회운동단체에서 교권을 부정하는 이유는 학생인권의 핵심을 ‘자유권’라고 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교사가 학교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이 있었기 때문에 교육적 의미를 넘어서 학생들을 필요 이상으로 통제했었다. 따라서 ‘자유권’으로서 학생인권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현재에는 교사에 의해 학생의 자유권이 침해된다고 보기 어렵다. 체벌도 사라졌고, 정부의 정책이 교사를 교육서비스 공급자의 지위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에서 중요한 권리는 학생의 교육권(학습권)과 발달권이다. 노동자들에게 교육권보다 생존권이 우선이듯 학생에게는 교육권(학습권), 발달권이 우선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학생의 발달권을 오히려 저해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교사가 아니라 자본주의 무한경쟁 시스템과 이에 동조하는 학부모다. 학생인권의 핵심을 ‘자유권’으로 볼 경우 학생과 노동자는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자의 인권과 구분되는 학생인권으로서 교육권(학습권)과 발달권의 중요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교사의 권력이 교육적 의미를 넘어서 학생에게 군림했기 때문에 학생인권운동이 중요했었다. 학생인권운동이 활발해지고 진보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게 되면서 교사의 권한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학생인권조례가 불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학생인권조례와 교사의 교육적 권한의 관계가 불명확했던 것이다. 학생인권을 보편적 시민의 권리라는 측면만으로 바라보면서 학생과 교사와의 특수한 관계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학생은 성장과정에 있는 인간이며, 교사는 학생을 올바른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학생과 교사가 완전히 동일한 위치에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교권침해는 한국에서만 나타나는가?

 
서이초 사건의 원인으로 한국의 입시몰입교육을 지적하는 분석도 있다. 일면 타당성이 있기는 하지만 교사의 교권침해는 비단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각국은 교권침해 현상에 대해 자국 상황에 맞는 교권보호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교사보호법’에 의해 교사 생활지도에 면책권을 부여하고 있고, 영국에서도 법적으로 금지된 체벌을 제외한 훈육적 처벌 권한을 교사 및 교장에게 보장하거나(2006년 교육법 개정), 교사의 수업활동을 따르지 않을 경우 학생을 교실 밖으로 내보내고 근신조치를 취할 수 있다(2011년 교육법 개정). 또한 학생의 참여가 가장 잘 보장되어 있다는 독일에서도 학교법에 따라 ‘교권보호를 위한 교사위원회’를 두고 교권 침해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대처하고 있다. 

이렇게 여러 나라에서 교권침해가 문제 되는 것은 현재 유행하고 있는 심리학의 대중화와 진보주의 교육철학과도 관계가 있다. 교권침해는 교사의 정당한 교육적 활동을 인정하지 않고 지나치게 자기중심적 요구를 하는 학부모에게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 역시 ‘내 아이가 손해 보는 것은 절대로 못 참는’ 학부모를 일컫는 ‘몬스터 페어런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가 심각한 편이다. 

우선 심리학의 대중화는 20세기 초에 권위주의적 교육의 폐해를 성찰하는 데 이바지했지만, 학생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는 것보다 그 원인을 파악하는 데에만 집중하면서 ‘잘못된 행동을 계획적으로 바로잡아야 할’ 교사의 위상이 축소되었다. 또한 진보주의 교육철학은 학생의 능동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정작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발달과업과 훈련이 적절하게 제시되어야 한다는 점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바람직한 교육은 모든 학생이 능동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자유에 도달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지만, 이는 계획적이고 전문적인 교육프로그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사람마다 발달 속도와 심리적 속성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각 성장 시기마다 반드시 익혀야 할 발달과업이 있고, 싫어도 반드시 익혀야 할 지식이 있다. 이러한 교육프로그램은 아동이 요구하지 않아도 올바른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하다. 따라서 바람직한 교육이 이루어지려면 교사의 정당한 교육할 권리가 전제되어야 한다. 
 
 

교사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서이초 사건에서 나타난 학교와 교육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다음과 같은 과제가 필요하다. 첫째, 교사의 교육권이 온전히 보장되어야 한다. 교사의 교육권이란 교사가 학생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지도하기 위한 교육과정 구성의 자율성, 교수-학습방식의 자율성, 평가의 자율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물론 교육과정 구성에 대해 온전히 교사에게 맡길 수 있는지 혹은 맡겨야 하는지는 여전히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모든 학문에는 당파성이 있기 때문에 교육과정 구성을 온전히 교사에게 맡긴다면 거시적으로는 학문에 대한 당파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교사 사회의 논쟁과 사회적 운동으로 풀어낼 과제다. 현재는 교육과정이 국가 교육과정으로 제시되어 있지만, 그 안에서 교사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제에 대해서 재조직하고 가르칠 자율성은 필요하다. 또한 교수-학습에 대한 자율성도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교사가 지닌 권한의 핵심이다. 교사가 필요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교수-학습에 대하여 결정할 수 있어야 하며, 이에 대한 평가권도 가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학부모의 의견은 참조할 수 있지만 학부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둘째, 교사는 학생들의 발달에 대해 지속해서 고민하며 이에 걸맞은 교육적 활동을 만들어야 한다. 학생의 발달은 각자 속도도 다르고 필요한 내용도 다르지만, 비고츠키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발달심리학자들은 매 시기 반드시 넘어야 할 결정적 과제를 둔다. 이러한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또한 발달이 지연되거나 위기를 맞게 되면 지적 활동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 어렵다. 유아기까지 가장 중요한 발달은 기초적인 식생활과 배변활동 그리고 사회적 관계에 대한 안정감 확보다. 초등학생 시기부터는 지적 발달을 위한 기초적인 문해력 학습, 주변 환경에 대한 이해, 또래집단과의 관계 맺기가 중요한 과제다. 따라서 기초학력지원도 아무 때나 원하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필요한 시기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그렇듯 때를 놓치면 되돌리기 힘든 법이다. 

셋째, 본질적으로는 교사 사회의 자정도 필요하다. 교사 사회에서 협력문화는 축소되고 있고, 자신의 수업이나 평가에 대해서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특정 교사의 수업이 문제가 되었을 때 교사들이 협력하여 방어하기 어렵다. 따라서 일상적으로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을 개방하고 교육과정을 협력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러한 연대가 전제되어야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학생이나 학부모들로부터 방어할 힘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전교조는 교사의 기본권 확보 투쟁과 함께 전문성을 독려하고 미래를 위한 바람직한 시민을 양성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무를 갖고 운동해야 한다. 즉, 교사의 노동권을 증진하는 운동과 전문성을 확대하는 운동을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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