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2024 가을. 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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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강해져서 돌아온 트럼프 경제정책의 위험성

임지섭 | 정책교육국장


1. 들어가며

 
바이든과 트럼프의 양자 대결 구도로 치러질 전망이었던 미국 대선은 트럼프 총격 사건과 바이든에서 해리스로의 민주당 대선 후보 교체를 거치며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예측불허의 미국 대선에 여러 복잡한 쟁점이 중첩된 가운데, 핵심 화두 중 하나는 역시 경제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월 《이코노미스트》와 유고브(YouGov)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는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 무엇이냐는 설문에 인플레이션(25%), 이민(13%), 일자리와 경제(12%) 순으로 답했다.

지난해 발표한 2024년 경제전망 글 「연착륙 기대에 드리우는 장기침체와 부채위기의 그림자」에서 지적한 것처럼, 미국경제는 비교적 빠르게 인플레이션율이 하락하면서도 양호한 성장세와 고용 상황을 보였지만, 이미 높아진 물가수준이 고착하는 가운데 재정위기와 부채위기의 압력이 증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 유권자의 58%가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불만이 있고, 오직 28%만이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정책이 미국경제에 도움 된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인 2021년 대비 20% 상승한 높은 물가수준이 유권자에게 가장 큰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정책과 미국의 경제 상황에 대한 여론의 부정적 평가는 트럼프 지지의 중요한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이번 대선을 앞두고 어떤 경제정책을 공약하고 있을까? 과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시행할 경제정책은 2020년대 미국경제의 핵심 문제로 지적되는 인플레이션과 부채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2016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할 당시 과연 어떤 경제정책이 시행될지를 두고 전 세계적으로 많은 혼란과 불안이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시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정책은 비교적 명확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주요 인사가 참여한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의 ‘프로젝트 2025’ 보고서 『리더십의 사명: 보수의 약속』, 트럼프 캠프의 공약 ‘어젠다 47’, 공화당의 ‘2024년 정강정책’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시행되어야 할 경제정책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아래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시행될 수 있는 경제정책을 대외정책과 국내정책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그 함의와 평가를 정리해본다. 
 
 

2. 미국과 세계를 1930년대로 되돌리는 대외경제정책

 

1) 무역정책: 관세로 무역적자 해소하기

트럼프 1기 행정부의 경제정책과 마찬가지로, 2기 행정부 공약의 핵심 중 하나는 무역정책이고 그 수단은 관세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탈냉전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전개되는 가운데 자유무역이 확대되면서 관세는 주요 정책 수단으로 고려되지 않았다. 그러나 2007~09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내에서 글로벌 무역불균형과 고용 없는 회복이라는 문제가 주목받고, 그 원인으로 중국을 비롯한 대미국 무역 흑자국의 불공정무역관행이 지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지형에서 트럼프는 무역불균형을 해소하고 국내 산업을 보호하여 제조업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그 수단으로 관세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실제로 시행했던 주요 관세 조치는 두 가지다. 하나는 특정 수입품이 국가안보에 위협을 가할 경우 대통령이 해당 상품의 수입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1962년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2018년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p와 10%p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무역 상대국의 불공정한 관행에 대해 대통령이 무역협정을 철회하거나 관세나 수입 제한 조치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1974년 무역법 301조’에 근거해, 중국 상품에 네 단계를 거처 7.5%p~25%p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2018~19년에 전개된 중국과의 무역갈등이었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무역과 대외정책 수단으로, 특히 중국을 대상으로 관세 조치를 계속해서 활용하고 있다. 2022년과 2023년에 걸쳐 동맹국인 유럽연합, 일본, 영국과 협의해, 트럼프 행정부 시기 부과되었던 철강과 알루미늄 추가 관세를 저율할당관세로 대체했을 뿐, 그 외의 관세 조치는 유지하고 있다. 특히 ‘1974년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대중국 관세의 경우,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시정하는 데 필요하다고 평가하며 유지하는 가운데, 올해 5월 14일에는 중국의 전기차(100%), 태양광 패널(50%), 철강·알루미늄(25%) 등 14개 품목에 대해 추가적인 관세를 내년부터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 2기의 관세정책은 그 대상과 범위가 이전보다 훨씬 확대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선 캠프는 보편적 기본관세와 상호주의관세법 제정을 공약했다. 먼저 보편적 기본관세란,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상품에 10%p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캠프의 공약이 구체적인 시행 조치까지 상술하진 않았기 때문에, 보편적 기본관세를 유럽연합이나 일본과 같은 동맹국이나, 한국과 같은 FTA 체결국에까지 적용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였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가 보편적 기본관세가 기존 수입상품에 부과되고 있는 관세에 추가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고, 트럼프 캠프가 미국 무역적자의 원인으로 한국, 일본, 유럽연합, 멕시코와 캐나다의 자동차와 부품을 지목했다는 점에서, 보편적 기본관세가 정말 ‘보편적’으로 부과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상호주의관세법은 상대국이 미국 상품에 부과하는 관세와 동일한 관세율을 상대국 수입 상품에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무역정책 핵심 참모였던 피터 나바로는 ‘프로젝트 2025’ 보고서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최혜국대우 의무로 인해 모든 국가에 낮은 관세가 적용됨으로써 미국이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각 WTO 회원국은 어떤 회원국에 적용하는 가장 낮은 관세를 다른 모든 회원국에 적용해야 하지만, 상대국이 그것과 동일한 관세율로 맞춰야 하는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에 대한 관세의 경우, 최혜국대우 의무에 따라 미국은 2.5%인 반면 유럽연합은 10%, 중국은 15%, 브라질은 35%에 이르기 때문에 미국의 자동차산업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나바로는 이어서 상호주의관세법을 통해 미국이 각 132개 무역 상대국과의 관세를 상호 같은 수준으로 맞추면, 미국의 무역적자가 전체 무역적자의 약 10% 정도인 58~63억 달러 감소하고 35~38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화당 역시 지난 7월 8일 채택한 2024년 정강정책에서 트럼프 캠프의 상호주의관세법 공약을 그대로 수용해 제안하고 있다.
 

2) 대중국정책: ‘위험억제’에서 ‘전략적 탈동조화’로

트럼프 2기 행정부 공약에서 또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강경한 대중국정책이다. 트럼프 캠프는 중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자립을 공약하면서, 미국의 국가안보와 경제안보를 위해 에너지, 기술, 통신, 자원, 의료, 국가자산과 같은 핵심 인프라를 중국이 소유할 수 없도록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중국으로부터의 필수품 수입을 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계획을 도입하고, 중국에 투자하는 기업은 연방정부와의 모든 계약을 금지하도록 만들겠다고 공약한다.

‘프로젝트 2025’ 보고서는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나 공정한 경쟁자가 아니라 ‘전체주의 적’으로 규정하며, 중국과의 경제적 관여를 종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언급한 라이트하이저 역시, 바이든 행정부의 ‘위험억제’(de-risking)가 아니라 중국과의 ‘전략적 탈동조화’(strategic decoupling)를 목표로 하는 경제정책과 무역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중국경제와의 강도 높은 단절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익에 해가 되는 중국과의 교류를 중단하고, 안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이중용도기술 분야에서 모든 협력을 중단하며, 나아가 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를 폐지하고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에 대한 최혜국대우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비교적 최근 제기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사회주의권이 붕괴한 이후, 미국은 기존 사회주의권의 ‘비시장경제국’을 세계시장에 통합하는 과정에서 점차 이들 국가에 항구적 정상무역관계 지위를 부여하고 최혜국대우를 적용해 왔다. 2000년 중국, 2012년 러시아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2022년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러시아의 정상무역관계 지위를 철회하고 더 높은 관세율을 적용한 바 있는데, 중국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화당과 트럼프 진영의 인사를 중심으로 제기된 것이다. 트럼프 본인 역시 재선에 성공하면 중국의 항구적 정상무역관계를 철회하고 최대 60%에 이르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3) ‘G 마이너스 2’의 세계로 이끌 트럼프의 대외경제정책

종합해보면, 트럼프가 제시하는 대외경제정책의 목적은 1기 행정부 시기의 목적과 기본적으로 같다. 즉, 무역불균형을 해소하고 국내 제조업 산업을 보호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더 나아가 강도 높은 경제적 단절을 추구하며,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에 무역흑자를 내는 국가가 미국과 공정하고 상호적 무역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 정책 수단으로 대규모 관세 조치를 제안한다.

그러나 미국의 거대한 무역적자는 무역 상대국의 불공정한 관행보다는 미국이 주도하는 금융세계화 자체에서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금융세계화와 미국경제는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에 기반한 동아시아 수출 달러 환류로 유지되고 있다. 동아시아 수출 달러 환류란, 동아시아가 생산한 상품을 미국에 수출해 벌어들인 달러를 미국 금융시장, 특히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메커니즘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동아시아 국가는 무역흑자를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미국은 금융적 지배를 누리는 한편 비교적 저렴한 물가로 소비할 수 있었다. 2010년대부터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격화하고 있지만, 동아시아 수출 달러 환류와 금융세계화는 여전히 큰 틀에서 유지되고 있다. 

물론 금융세계화는 계급적 모순을 내포한 것이었다. 중심부의 금융자본가와 신흥국의 산업자본가가 수억 명의 신흥국 노동자를 착취하는 동맹을 맺은 셈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국내로 보면, 엄청난 이윤을 누린 초국적 금융자본의 성장과 가격경쟁력을 잃은 제조업이 해외로 떠나면서 일자리를 잃은 중산층의 몰락이 대비되었다. 트럼프는 금융세계화에 내재한 계급적 모순을 반세계화와 보호무역주의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1기 행정부에서 시행된 관세 조치는 무역적자를 감축하지도, 국내 투자와 일자리를 증가시키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다시금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관세를 핵심 정책 수단으로 내세우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트럼프가 새롭게 제안하는 관세 조치가 무역에 미치는 대상과 규모가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에 비해 훨씬 크다는 점이다. 중국에 대한 고율의 관세를 포함해 트럼프가 제안하는 보편관세와 상호주의관세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4천억 달러를 포함해 약 3조 달러 이상의 미국 무역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중국과의 무역갈등이 영향을 미쳤던 무역 규모의 약 10배이고, 바이든 행정부에서 새롭게 부과하기로 한 대중국 관세의 약 150배에 달한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제안한 보편적 기본관세와 상호주의관세가 실제로 시행될 경우 나타날 교역효과를 전망한 분석을 [그림1]을 통해 살펴보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보편적 기본관세·상호주의관세·중국에 대한 고율의 관세를 시행하는 각 시나리오에서, 미국의 수입액은 약 2551억 달러에서 최대 4997억 달러 감소하고, 수출액은 약 836억 달러에서 최대 1844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무역수지는 약 1715억 달러에서 최대 3153억 달러 개선될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기준 미국의 전체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7734억 달러다) 
 

이렇게 볼 때, 트럼프의 대규모 관세 조치는 미국의 수입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감소시켜 무역적자를 어느 정도 줄이는 것 자체는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그 대가로 경제성장 저하와 물가 상승이라는 막대한 거시경제적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같은 분석에서, 보편적 기본관세를 시행할 경우 미국의 실질 GDP 성장률이 약 0.12%p에서 최대 0.36%p 감소하고, 상호주의관세를 시행할 경우 약 0.17%p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보편적 기본관세와 상호주의관세는 미국의 소비자물가를 1.8%p~3.6%p 상승시킬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상대국이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경우에는 물가상승 압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2017년 이후 새롭게 부과된 관세가 미국 구매자(사실상 소비자)에게 모두 전가되었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대규모 관세 제안이 실제로 시행될 경우, 연간 5천억 달러의 비용이 소비자에게 부과될 것으로 예측한다. 즉, 트럼프의 주장과 달리, 트럼프가 공약하는 대규모 관세 조치는 일부 국내 생산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경제성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소비자 부담을 증대하여 결과적으로 미국 노동자계급에 전체적인 해를 끼칠 것이다.

나아가, 트럼프의 급진적인 관세정책은 미국과 세계를 1930년대 또는 그 이전 시대로 되돌리려는 시도로 비판받고 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와이스먼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1980년대 이후 공화당과 민주당이 합의했던 신자유주의적 거시경제 관리 정책에서 이탈하여, 관세와 보호무역에 집착했던 20세기 초의 공화당으로 퇴보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1차 세계전쟁과 2차 세계전쟁 사이에 의회 다수를 차지한 공화당이 1929년 대공황 이후 미국 산업과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입법한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낳은 결과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2만여 개의 수입품에 평균 59%, 최고 400%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각국의 보복관세나 환율통제와 같은 보호무역주의를 추동하여 1930년대 대불황을 심화하고, 결과적으로 2차 세계전쟁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트럼프의 대외경제정책이 미국이 2차 세계전쟁 이후 형성한 규칙 기반의 세계 질서를 스스로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비판과 연결된다. 전후의 브레튼우즈 체제는 철저히 미국의 세계전략에 부합하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개방된 시장과 자유무역의 확대라는 일종의 ‘세계적 공공재’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후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 각국 경제의 상호의존성이 더욱 심화하는 가운데, 세계 금융위기, 기후위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보건위기와 같이 국제협력이 아니면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는 세계적 차원의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이러한 정세에서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의 일방주의는 WTO 무력화와 파리기후협정 탈퇴에서 드러나듯 경제와 정치 모두에서 국제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를 파괴한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 캠프와 헤리티지 재단의 ‘프로젝트 2025’ 보고서가 제기하는 대중국정책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합의하는 ‘전략적 경쟁’으로부터 이탈하는 방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양당이 합의한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의 핵심은, 중국이 자유무역 질서에 편입되면서 점차 공정한 경쟁자이자 책임 있는 국제사회 일원으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여정책의 기대가 깨졌음을 인정하는 가운데, 중국과의 경쟁을 대비하면서도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를 재정립하여 장기적으로 중국을 포섭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가 제기하는 미국 우선주의와 일방주의는 동맹국·제휴국과의 공조나 연대마저 무역분쟁으로 훼손함으로써 규칙 기반의 다자적 국제질서 재정립이라는 목표에 완전히 반한다. 게다가, 최종적으로 중국과의 완전한 단절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세계의 분열을 오히려 심화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미국과 중국이 세계에 공공선은커녕 혼란과 공공악을 제공하는 ‘G 마이너스 2’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일 것이다.
 
 

3. 인플레이션과 부채위기를 심화하는 ‘부두 경제학’

 

1) 조세정책: 감세와 관세의 결합

트럼프의 대외경제정책 공약의 핵심이 관세라면, 국내 경제정책 공약에서 핵심은 감세다. 그리고 감세 역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활용한 주요 정책수단 중 하나였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에 입법된 2017년 ‘세금감면 및 고용법’(이하 TCJA, Tax Cuts and Jobs Act of 2017)은 최고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크게 인하하고, 개인 소득세율을 구간별로 2~3%p 인하(최고소득 구간은 39.6%에서 37%로 인하)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개인 소득세율 인하는 2025년에 만료될 예정인데, 트럼프는 이를 영구화하겠다고 공약하는 한편 법인세율을 15%까지 낮추겠다고 공언한다.

트럼프의 감세 정책은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의 ‘레이거노믹스’에서 이어지는 공화당의 공급 주도 경제학을 따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공급 주도 경제학이란, 세율 인하를 통해 기업의 투자 확대를 유도하여 경제 전체의 총공급을 늘리고자 하는 경제정책을 말한다. 그런데 세율 인하가 실제로 투자 확대와 경제성장을 유발해 결과적으로 세입 역시 확충되는 효과를 일으키는, 이른바 ‘낙수효과’가 있는지는 논란이 많다. 대다수 경제학자는 조세 인하가 노동 공급과 저축을 증가시킨다는 논리 자체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공급 주도 경제학이 그 영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한다고 비판한다. 루비니는 역사적이고 실증적으로 볼 때, 세율 인하가 실제로 산출량 수준과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었으며 전체 세수입 역시 증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급 주도 경제학은 ‘부두 경제학’(voodoo economics)일 따름이라고 평가한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의 TCJA 역시 불과 몇 년 뒤 벌어진 코로나19 대유행과 인플레이션 국면으로 인해 실제 공급 측면의 효과가 있는지는 실증하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러한 감세 정책이 재정적자를 심화한다는 점이다.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TCJA 발효 다음 해인 2018년 회계연도에 실제 징수된 세수액은 TCJA 입법 이전인 2017년 1월에 미국 의회예산국(CBO)이 예측한 세수액보다 2750억 달러 적었다. 경제가 성장했고 다른 정책 요인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중 대부분을 TCJA로 인한 세수 감소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의회예산국은 TCJA를 연장하면 2033년까지 재정적자가 3조 5천억 달러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즉, 이미 미국의 재정위기와 부채위기가 ‘결정적인 선을 넘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트럼프의 감세 공약이 이를 더욱 가속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2023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미국의 재정적자는 1조 7천억 달러로, GDP의 6.3%에 달했다. 정부의 재정적자는 기초재정수지 적자와 이자지출로 나눌 수 있다. 의회예산국의 향후 10년 예측에 따르면, 미국의 기초재정수지 적자는 평균 GDP의 2.1%가 될 것이다. 이는 사회보장과 건강보험 지출이 세입보다 훨씬 빠르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부 부채의 평균 명목 이자율이 2041년까지 명목 경제성장률을 초과하여, 순이자 지출액은 현재 GDP의 2.4%에서 2034년에는 3.9%로 증가할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 부채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인데, 현재 부채 총규모가 35조 달러로 GDP의 97%인 상황에서 2034년 116%로 증가할 것이다. 2054년에는 순이자 지출액과 부채규모가 GDP의 6.4%, 172%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연방정부의 재정위기와 부채위기가 심화하는 가운데, 트럼프 2기의 조세정책 공약에서 주목해야 하는 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연방정부의 세입 기반을 소득세에서 관세로 바꾸겠다는 트럼프의 구상이다. 트럼프는 감세에서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연방소득세를 폐지하고, 앞서 언급했던 보편적 기본관세·상호주의관세나 대중국 고율 관세와 같은 관세로 이를 대체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연방소득세를 폐지하고 관세로 이를 대체하겠다는 트럼프의 구상은 부두 경제학을 넘어 미국경제를 19세기로 되돌리겠다는 터무니없는 발상에 가깝다.

물론 이러한 트럼프의 구상이 그 자체로 완전히 실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무엇보다 현실의 관세 규모가 소득세 규모에 훨씬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으로 관세 규모는 연간 약 800억 달러로 전체 세입의 약 2% 수준인 데 비해, 소득세 규모는 무려 2조 달러에 이른다. 트럼프가 제안한 보편적 기본관세·상호주의관세법을 시행하더라도, 관세 규모는 최대 2천2백억 달러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관세로 소득세 전체를 대체하는 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하다.

다만 연방정부의 세입에서 소득세 일부를 관세로 대체하는 감세와 관세의 결합은 1기 행정부에서도 일부분 시행된 바 있다. 철강·알루미늄 관세와 대중국 관세를 인상하는 한편, 2017년 TCJA로 법인세와 소득세를 인하한 것이다. 당시에는 관세와 감세의 결합 규모가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그 규모가 더욱 커질 수 있다. 트럼프 캠프가 내년 만료될 예정인 TCJA의 개인소득세 감면을 의회 입법으로 연장하는 한편, 이로 인한 연방정부의 세입 감소를 보편적 기본관세·상호주의관세와 대중국 고율 관세로 채우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세와 관세의 결합은 재정위기를 심화할 뿐만 아니라, 조세부담의 역진성을 강화한다는 문제가 있다. 소득세 감면이 소득 증가에 미치는 영향은 소득 수준이 높은 계층일수록 큰 반면, 관세 인상이 소득 감소에 미치는 영향은 소득 수준이 낮은 계층일수록 크기 때문이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분석은 이를 잘 보여준다.  

트럼프의 정책을 끝까지 밀어붙여 관세 수입을 7천8백억 달러 늘리고 소득세 수입을 그만큼 줄인다고 가정할 때, 소득 분위별로 세후소득이 얼마나 증감하는지를 살펴보자. [그림2]에 따르면, 소득 하위 5분위 가구는 소득세 감면으로 인한 세후소득 증가는 없으면서 관세 인상으로 인한 세후소득 감소는 8.5%에 이른다. 반면 상위 1분위 가구는 관세 인상으로 소득이 3.8% 감소하지만, 소득세 감면으로 6% 증가하여, 결과적으로 세후소득이 2.2% 순증가한다. 상위 1% 가구는 세후소득이 11.6% 순증가한다.
 

한편, 이보다 좀 더 현실성 있는 가정, 즉 대부분의 수입품에 20%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에 60%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TCJA의 감세를 연장하는 경우에는 소득 분위별로 세후소득이 얼마나 증감하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그림3]에 따르면, 모든 소득 분위 가구에서 세후소득이 역진적으로 순감소하는 가운데, 상위 1%의 세후소득만이 0.9% 순증가한다. 전형적인 미국 가구라고 할 수 있는 중간 분위의 세후소득은 2.7% 순감소하는데, 이는 중간 분위 가구가 트럼프가 시행할 관세정책으로 인해 연간 2600달러의 비용을 더 지출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역시, 전략적으로 표적화된 관세는 미국의 경제적·국제적 이익을 보호하는 주요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연방정부의 세입에서 관세 의존도를 높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소득불평등 추세를 악화하고 거시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20세기 이후 연방정부의 역할 증대와 소득재분배를 고려하여 형성된 누진적 소득세 제도를 19세기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퇴보적 시도라고 비판한다.
 

2) 통화정책: 약달러와 저금리를 위한 연준 독립성 공격

트럼프가 내세우는 미국 우선주의와 무역적자 해소를 향한 의지는 그가 제시하는 통화정책에 대한 우려와도 연결된다. 트럼프 캠프나 공화당 정강정책이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이 달러 환율을 약세로 만드는 ‘약달러’와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결정에 대한 대통령의 통제를 강화해 ‘저금리’를 압박하는 통화정책을 논의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달러 약세를 원하는 이유는, 현재 달러가 너무 고평가되어 대규모 무역적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의 믿음에 따른 것이다. 즉 달러가 중국, 일본, 유럽과 같은 무역 상대국의 통화보다 고평가된 ‘강달러’ 현상 때문에 미국의 수출품이 가격경쟁력을 잃게 되는 한편 수입품의 가격경쟁력은 높아져 수출은 감소하고 수입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달러 강세를 완화하기 위해 트럼프가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은 금리 인하다. 그러나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목적은 무역적자 감축이 아니라 거시경제 관리, 즉 물가와 실업률의 안정이다. 따라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달러 약세와 저금리를 관철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을 공격하는 개편을 시도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르면, 첫째, 트럼프는 기존의 제도를 존중하는 선에서 연방준비제도 의장과 부의장을 지명할 수 있다. 이 경우 현재 의장인 제롬 파월의 임기가 끝나는 2026년 5월이 기점이 될 수 있다. 둘째, 트럼프는 더 나아가 연방준비제도 의장·부의장의 임기가 만료되기 전에 이들을 일반 이사로 강등시키고 새로운 의장·부의장을 임명하려 할 수도 있다. 다만 그렇더라도 새 의장은 현직 이사 가운데에서 임명해야 하고, 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위원 중 5명은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는 준비은행의 총재이기 때문에 통화정책에 개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트럼프는 연방정부의 집행권을 오직 대통령에게만 부여하는 미국 헌법 제2조에 따르면 연방준비제도와 같은 독립 기관은 위헌이라는 보수적 법조계의 ‘단일행정부론’(unitary executive theory)을 활용해, 통화정책의 결정 권한을 대통령에게 넘기는 식으로 연방준비제도를 완전히 개편하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강달러로 인해 미국의 무역적자가 심화한다는 트럼프와 라이트하이저의 인식은 “무역과 경제에 대한 근시안적이고 17세기적인(중상주의적인)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무역적자와 마찬가지로 강달러 현상 역시 기본적으로 기축통화국으로서 미국이 주도하는 금융세계화 자체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과의 무역에서 달러를 벌어들인 국가는 다시 미국 국채에 투자하며, 세계 모든 금융기관은 안전 자산으로 달러 또는 달러와 언제든 교환 가능한 금융자산을 보유한다. 이러한 달러에 대한 세계적 수요는 경제위기일수록 ‘최후의 도피처’인 달러를 찾아 더욱 강해진다.

특히 최근의 강달러 현상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연방준비제도의 고금리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인플레이션과 부채위기가 고착하는 2020년대의 거시경제 조건에서, 트럼프가 추진하는 관세 인상과 조세 인하의 결합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한편 재정적자를 한층 심화해 금리 인상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만약 여기에 더해 트럼프가 달러 약세를 위해 통화정책 결정을 정치화하고 자의적으로 금리 인하를 추진한다면, 인플레이션은 더욱 심화할 것이고 중앙은행의 일관된 정책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어 거시경제 관리에 대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3) 에너지정책: 탈탄소에서 화석연료로의 복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캠프의 공약은 에너지정책에서도 두드러진다. 1기 행정부 시기에 파리기후협정을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각종 환경 규제를 완화한 바 있는 트럼프는, 이번 대선에서도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고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을 폐지하는 한편 화석연료 생산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공약한다.
 
먼저 트럼프 캠프는 바이든의 그린뉴딜 정책이 ‘산업과 일자리를 죽이는 친중반미 정책’이라고 비난한다. 특히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전기차에 지급되는 보조금의 최대 수혜자가 중국이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자동차산업과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전기차 보조금을 대폭 삭감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또한, 트럼프는 제조업 선진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저비용 에너지와 전력 생산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화석연료 우위로의 ‘복귀’를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이를 위해 연방정부 토지에서 석유와 가스 시추를 허가하는 절차를 완화하고, 화석연료 생산 기업에 세금 감면 혜택을 제공하며, 화석연료 발전소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프로젝트 2025’ 보고서 역시 세계 최대 에너지 생산국인 미국의 에너지 위기는 과도한 녹색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친환경·탈탄소 보조금을 대부분 축소하고 민간 에너지 부문에 대한 각종 정부 규제를 완화할 것을 제언한다.

아울러 트럼프는 적극적인 화석연료 시추 정책을 상징하는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을 연설에서 종종 활용하면서, 이를 통해 미국의 에너지 비용을 50% 절감하고 인플레이션을 감축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버냉키와 블랑샤르의 분석에 따르면, 실제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에너지 가격은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특히 2021년 4분기부터 2022년 2분기까지 인플레이션율이 최대 9%에 이르렀던 기간에 에너지 가격상승이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기여분을 차지했고, 2022년 3분기에 인플레이션율이 3%대로 하락할 때 역시 에너지 가격 하락이 가장 큰 기여분을 차지했다. 이를 고려하면, 저비용 에너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트럼프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곧바로 적극적인 화석연료 시추 정책이 실제로 트럼프가 공언하는 것만큼 미국의 에너지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무엇보다 미국의 시추량 변화가 석유의 세계시장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석유 가격이 하락하여 수익성이 떨어지면, 미국을 포함해 세계의 석유 생산자는 기본적으로 석유 생산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트럼프 행정부 1기 말기에 에너지 가격이 매우 낮았던 것은 미국 내 화석연료 시추량이 증가해서라기보다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이루어진 세계적인 경제 봉쇄의 영향이 더 크다고 본다.

그러면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의회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 입법된 ‘인프라와 투자 및 일자리에 관한 법’(IIJA)이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바꾸거나 폐지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다양한 행정조치를 통해 의회를 우회하며 에너지 분야의 규제를 철회하기는 쉬울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따르면, 최근 연방대법원은 행정법을 둘러싼 주요 판결에서, 행정부가 시행한 조치가 심각하게 불합리하지 않다면 사법부가 이를 존중하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1980년대 이래의 ‘쉐브론 원칙’(Chevron deference)을 뒤집고, 중요한 경제적·정치적 결과에 대한 문제는 법률상 명시적인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중요문제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을 새롭게 제기하는 한편, 모호한 법령에 대해서는 판사가 최선의 해석을 결정할 책임을 진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입법과 그에 따르는 행정조치에 대한 사법부의 심사와 개입을 강화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 관련 법안과 그에 따른 행정조치는 이러한 연방대법원의 새로운 경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환경 관련 법안은 종종 규제기관이 새로운 변화나 기술에 대응해 권한을 사용할 수 있도록 다소 넓고 모호하게 입법되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이러한 환경 관련 법안의 모호성을 공격하며 기존의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데 있어 연방대법원의 새로운 경향이 사법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4. 결론

 
2024년 대선으로 돌아온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그에 따른 경제정책 공약은 1기 행정부 시기의 정책과 문제의식은 같지만, 그 수단이 더욱 강력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8년 전과 마찬가지로, 트럼프와 그의 경제 참모들은 미국의 무역 상대국이 자유무역 국제질서를 악용해 미국에 불리하고 불공정한 무역관행을 강요하면서 미국에 대규모 무역적자를 야기하고 수많은 제조업 일자리를 빼앗아 갔다고 주장한다. 

이제 트럼프는 한 발 더 나아가 더욱 강력한 관세조치와 중국경제와의 단절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트럼프가 새롭게 제안하는 보편적 기본관세와 상호주의관세가 영향을 미칠 무역 규모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중국과의 무역갈등이 영향을 미쳤던 무역 규모의 약 10배에 달하며, 적용 대상도 중국을 넘어 미국을 상대로 무역흑자를 내는 국가 전체로 확대될 수 있다. 국내에서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시행하려는 감세정책 역시 1기 행정부 시기보다 한 발 더 나아간다. 트럼프는 최고 법인세율을 15%까지 인하하고 TCJA에 따른 소득세 감면을 연장하며, 궁극적으로는 연방정부의 세입기반을 누진적 소득세에서 관세로 대체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세와 감세의 결합을 유지하기 위해 통화정책 결정에 대통령이 개입할 수 있도록 중앙은행 제도를 개편하려 할 수도 있다.

이러한 트럼프의 경제정책은 본질적으로 반(反)경제학 내지는 ‘부두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대규모 무역적자가 거시경제적 요인과 세계체계적 요인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면서, 무역적자를 단순히 수입액과 수출액의 차이로 환원하기 때문이다. 거시경제 관점에서 무역적자는 국내 투자의 증가에 비해 저축률이 낮거나, 소비가 저축보다 많을 때 발생한다. 저축을 초과하는 투자는 해외로부터 자본 유입으로 조달되며, 저축을 초과하는 소비는 해외로부터 수입으로 이어진다. 미국은 대표적인 자본수입국이자 과잉소비 경제인데,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달러 기축통화국으로서 미국이 주도하는 금융세계화와 동아시아 달러 환류로 지탱된다. 관세와 같은 무역 장벽은 이러한 구조적 요인을 바꿀 수 없는데, 이런 점에서 트럼프의 경제정책은 금융세계화의 모순으로 인한 미국 대중의 불만을 외국 탓으로 돌리려는 것에 불과하다.

트럼프의 부두 경제학과 반세계화 정책은 금융세계화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미국경제와 노동자계급에 해로운 결과를 낳는다. 특히 트럼프가 추진하는 관세와 감세의 결합이 2020년대 미국경제의 핵심 문제인 인플레이션과 부채위기를 오히려 심화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 관세로 인한 비용 상승은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며, 대규모 감세는 소득불평등을 강화하고 연방정부의 세입기반을 약화해 재정위기를 악화한다. 나아가 약달러와 저금리라는 목적을 위해 통화정책 결정에 자의적으로 개입하려는 시도는 거시경제 관리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위협하며 불확실성과 경제적 혼란을 증대할 것이다. 

나아가 트럼프 경제정책의 위험성은 미국경제의 혼란을 심화하는 것을 넘어 세계의 무질서를 심화한다는 데 있다. 트럼프가 제기하는 대중국정책은 중국에 대한 규제 강화와 더 강력한 경제적 단절만을 추구할 뿐, 규칙 기반의 다자적 국제질서를 재형성하자는 문제의식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초당적으로 합의했던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에서 점차 이탈하는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그리는 세계는 국가 간에 협력과 규칙을 쌓아가는 세계가 아니라, 양자 간의 힘에 의해 결정되는 세계다. 사회운동이 제기했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대안은 반세계화가 아니라 대안세계화였음을 돌이켜본다면, 트럼프가 미국을 ‘G 마이너스 2’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한 축으로 세우려는 시도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1기 행정부 시기와 비교할 때, 두 가지 차이점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위험성을 더욱 강화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주의’가 훨씬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 상호주의관세법 입법, △ 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 폐지, △ 대규모 감세, △ ‘사회주의적인 그린뉴딜 정책’ 폐지와 같은 트럼프 캠프의 ‘어젠다 47’을 대부분 수용한 2024년 공화당 정강정책과, 트럼프 충성파를 자처하는 밴스 부통령 후보의 부상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경제정책과 대외정책에서 불확실성을 그나마 제어했던 것은 의회였는데, 이는 민주당 외에도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를 견제하는 전통적 엘리트 정치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 공화당 자체가 트럼프화된 상황에서, 2기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정책과 대외정책이 별다른 견제 없이 시행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는 세계금융위기 이후 저금리와 저물가 상황에서 고용 없는 회복이 문제가 되었던 2010년대 후반과 달리, 현재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고착된 인플레이션과 부채위기의 압력이 훨씬 강해진 정세라는 점이다. 이는 트럼프의 경제정책이 거시경제와 세계경제에 불러일으킬 혼란이 더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사회운동은 다시 돌아온 트럼프의 위험성이 그가 그저 ‘괴상하다’(weird)라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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