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2024 가을. 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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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민주주의, 헌정주의 

임필수 | 편집장

미국 역대 대통령 46명 중에서 재선에 나섰다가 실패한 인물은 12명이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중 한 명이다. 그러나 재선에 실패한 전직 대통령이 4년 후 다시 출마하는 경우는 매우 희귀하다. 19세기 말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징검다리 임기(22대, 24대)에 성공한 유일한 사례다. 우리가 눈으로 본 20세기와 21세기에는 이런 사례가 없다. 사실 대선 본선에서 낙선한 후보가 다음 선거에 재출마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쟁쟁한 정치인도 많고, 경쟁도 치열하기 때문에, 어쨌든 본선에서 한 번 떨어진 후보가 다시 나가기 쉽지 않다. 민주 공화 양당 모두 특정 개인이 정점에 있는 사당(私黨)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당선될 때까지 계속 나갈 수는 없다. 우리가 알던 상식이 이러한데도, 낙선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출마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가 공화당 내에서 얼마나 강력한 기반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트럼프 지지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만큼 트럼프주의, 트럼프 포퓰리즘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는 트럼프의 복귀가 미국과 세계에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특집은 ‘트럼프 포퓰리즘 분석’이고, 세 개의 글로 구성했다.

특집의 첫째 글, 정성진의 「트럼프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처음 등장한 이래, 트럼프주의 이념과 운동이 어떻게 점점 더 힘을 발휘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트럼프 포퓰리즘이 어떤 점에서 미국 정치와 세계의 안녕에 위협을 가하는지 분석한다. 이를 위해 트럼프주의 대중운동의 성장과, 공화당과 미국 정치제도에서 나타난 변화, 두 가지 차원을 살핀다. 트럼프주의 운동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미국 중류계급의 불만과 원한을 동원했고, 그들을 행동주의로 이끌기 위해 미국 좌파의 활동방식을 모방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트럼프를 무조건 지지하는 강력한 지지층이 출현했고, 이들을 기반으로 삼아 트럼프 대통령과 트럼프주의자는 공화당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는 재임 기간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을 장악하고자 시도했는데, 특히 연방대법원과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대거 교체할 수 있었다. 또한, 트럼프 개인을 넘어서 트럼프주의자 집단을 재생산하는 여러 플랫폼이 구축되었다. 트럼프주의가 보여주는 현실 인식의 결여와 지도자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는 극단적인 정치양극화로 이어지고 의회의 무력화, 사법의 정치화와 같은 민주주의와 헌정의 위기를 불러온다. 트럼프주의는 경제와 외교 사안을 국내정치에 활용되는 도구쯤으로 인식하는데, 이는 곧 국제질서의 혼란, 규칙 기반 세계질서의 파괴를 의미한다. 사회운동은 트럼프주의와 그로부터 나타나는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식해야만 한다. 

임지섭의 「더욱 강해져서 돌아온 트럼프 경제정책의 위험성」은 트럼프의 ‘부두 경제학’과 반세계화 경제정책이 2020년대 미국 경제의 핵심 문제인 물가상승과 부채누적을 한층 더 부채질할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의 무질서를 불러올 것이라고 비판한다. 지난 1기 행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와 그의 경제 참모들은 미국의 무역적자와 제조업 일자리 감소 문제를 무역 상대국의 불공정한 무역관행과 자유무역 국제질서 탓으로 돌린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제 한발 더 나아가, 보편적 기본관세와 상호주의 관세, 중국경제와의 전략적 탈동조화, 대규모 감세와 같은 더욱 강력한 공약을 내세우는 한편, 연방소득세를 폐지하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결정에 개입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트럼프의 경제정책은 금융세계화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세계경제의 기초로 작동하는 규칙 기반 질서를 파괴할 것이다. 필자는 인플레이션과 부채위기, 국제질서의 분열이라는 2020년대 세계경제의 만성적 특징을 고려할 때, 트럼프가 제시하는 더욱 강력한 ‘부두 경제학’과 반세계화 정책의 위험성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진영의 「미국 공화당의 변화와 트럼프의 귀환이 열 ‘미국 없는 세계’」는 지금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초당적 합의였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고수하느냐 아니면 비자유주의적 인민주의라는 특징을 보이는 트럼프주의를 선택하느냐의 기로에 섰다고 진단한다. 트럼프 캠프의 인선과 공약을 보면, 트럼프 2기 대외정책은 1기 때보다 더 ‘트럼프주의’적으로 나타날 공산이 크다. 즉, 안보나 가치, 장기적 전략이 아닌 단기적 이익을 중심으로 동맹국과 ‘거래’하려는 태도가 더 강해지고, 인류 공동협력이 필요한 보건·기후위기에 대한 비과학적 태도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공화당 엘리트와 보수 싱크탱크에서도 트럼프주의자가 주류를 점하고 있으므로, 트럼프가 집권한다면 정책과 인력이 부족했던 트럼프 1기 때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자유주의를 국익의 기준으로 여기지 않는 이들은 세계의 권위주의, 인민주의 정권과 연대할 위험이 있다. 나아가 트럼프의 미국이 도래하면, 세계가 강대국들의 세력권 분할과 무력행사로 이어진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무질서로 회귀할 수 있다.

두 차례에 걸쳐 한국헌정사를 다룰 예정인데, 이번 호에는 김성균의 「헌정주의란 무엇인가」를 싣는다. 이 글은 사회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는 중국, 북한, 러시아가 권위주의 진영의 중심국가가 된 현 상황을 해명하고, 한국 정치의 난맥상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점을 마련하기 위해 헌정과 헌정주의가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 헌정이 시작된 영국 사례와, 영국을 계승하면서도 그들의 환경에 맞게 독창적 제도를 형성한 미국 사례를 살펴본다. 헌정은 법의 지배를 권력기관에 적용하고, 권력기관 내에, 또는 권력기관 간에 견제와 균형을 제도적으로 형성함으로써 권력기관의 자의적 권한 행사를 제한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도모했던 바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의 보장이었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권력을 제한함으로써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고자 했던 헌정의 근본 문제의식에 대한 몰인식이 과거 혁명사에서의 잔혹한 인권탄압으로 이어졌으며, 해방 후 한국 정치가 질곡을 겪은 원인이 된 게 아닌가 주장한다. 다음 호에서는 한국헌정사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지난 2022년 여름호부터 다섯 번에 걸쳐 연재했던 ‘1987년 이후 한국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마무리하는 독자 좌담회를 열었다. 글을 집필했던 박준형 회원과 다섯 명의 회원이 자리를 함께하여, 지금까지 다룬 주요 쟁점들을 복기했다. 전노협에서 민주노총으로의 전환, 1990년대 정치적 노동자운동의 소멸, IMF 구제금융 시기 노동자운동의 대응, 2000년대 산별교섭과 기업별 교섭의 긴장관계, 2005년 사회적 대화와 2006년 비정규직법을 둘러싼 논쟁, 전략조직화 사업,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기업별 구조조정 저지 투쟁, 2010년대 야권연대와 진보정당 운동의 퇴조 등등, 우리 운동사의 굵직한 쟁점들을 되짚어보면서, ‘노동자운동은 변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고자 했다. 

‘사회주의 역사 읽기’로는 흘레브뉴크의 『스탈린: 독재자의 새로운 얼굴』을 다룬 이진호의 「‘스탈린 신화’를 파헤치다」를 실었다. 사회주의 역사 읽기는 2022년 가을호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러시아혁명을 다룬 『속삭이는 사회』와 『러시아혁명 1917-1938』, 중국혁명을 다룬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와 『중국현대사상사론』, 프랑스혁명을 다룬 『프랑스혁명사는 논쟁 중』을 소개했고, 관련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다시 러시아혁명으로 돌아간다. 흘레브뉴크의 스탈린 전기는 그의 치밀한 소련 정치사 연구를 집대성하는 것이자, 동시에 푸틴의 스탈린 복권에 대한 정세적 개입이라는 의도도 담고 있다. 따라서 ‘현대화 동력으로서 스탈린주의’라는 스탈린 옹호론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이를 구체적 사료를 통해 논파하고자 한다. 이번 호와 다음 호, 두 번에 나눠 싣는다. 

고은영의 「불평등하고 평등한, 선거의 두 얼굴」은 마넹의 『선거는 민주적인가』를 소개한다. 이 책의 원제는 ‘대의 정부의 원칙들’인데, 고대 아테네에서부터 현대 정체까지 민주정과 대의제의 여러 형태를 꼼꼼히 비교하여, ▲ 주기적·반복적 선거 ▲ 대표의 부분적 독립성 ▲ 여론의 자유 ▲ 토론을 통한 심판·결정이라는 대의제의 네 가지의 원칙을 도출한다. 마넹은 이 원칙들에 의해 선거가 “민주정·귀족정의 성격을 양면적으로 가진 혼합정체”를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어떤 조건에서 선거가 민주적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로 질문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포퓰리즘이 현대 대의제를 어떻게 타락시키는지 분석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할 것이다. 

회원칼럼으로 문설희의 「이글이글 뜨거웠던 하루, 인천공항지역지부 파업을 돌아보며」, 윤이나의 「내 마음이 움직이는 활동을 하기 위하여」를 담았다. ‘필자가 독자에게’로는 이소형의 「‘전태일재단-조선일보 공동기획 논란을 되돌아보며’ 독자에게」를 실었다. 

이번 호에 실린 글을 유심히 본 독자라면 포퓰리즘, 민주주의, 사회주의, 헌정주의와 같은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을 듯하다. 편집진의 관심이 당대 포퓰리즘이 가하는 민주주의, 헌정주의에 대한 위협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 주제를 놓고 독자들과 다각도의 토론을 하고 싶다. 
 
2024년 9월 4일
임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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