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3.33호
첨부파일
33국제_김용현.hwp

무질서의 제국 : 두개의 좌담 (2)

알랭 족스 |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실베르 로트린저 | Seiotexr(e)편집인
알랭 족스(이하 AJ) 그리고 그것은 정밀무기가 출현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변화했고, 그러한 정밀무기는 단지 핵무기가 아닐 뿐, 고도로 효율적이며 초고속 작동능력을 갖춘 무기를 상상하게 했습니다. 현재 핵무기는 더 이상 전쟁억지력이 없는데, 이제 더 이상 동서대립이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디테일리스트"의 시기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미국이 지쳐 떨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제국이 선취해야하는 진정으로 일차적 부분이며, 나는 그들이 그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우리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없다". 따라서 키신저는 익살맞은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단지 "내가 한 말의 뜻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미친 것입니다"라는 방식으로 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외교를 과학이 아닌 예술로 여기는데 아주 조금 더 능력이 있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그는 좋든 싫든 간에 어느 정도는 유럽인에 더 가깝습니다. 그는 걸프전 발발 초기에, 그러나 언제나 약간의 유머를 섞어서, 이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어느 정도의 군인이 도착했고 이동해야 했을 때에는, 어떤 경우에도 해안봉쇄 대신에 전쟁을 시작한다는 결정이 이루어져야만 한다―왜냐하면 코카콜라가 바닥난 상황에서 군인들을 너무 오랫동안 사막에 남겨둘 수 없기 때문이며, 그들은 교대해야만 하기 때문이다―그리고 이런 경우라면 군사 수를 줄이지 않고서는 이동할 수 없다. 그들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NATO 군 모두를 소모하지 않고서는, 그들 모두를 구조하기에는 수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군대를 철수하기 전에 그들을 이용해야만 했는데,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마치 퇴각처럼 비춰질 것이었고, 그러면 그들의 지렛대는 사라질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세분화된 전략입니다. 그리고 나서 키신저는 최대한 빨리 2만명 이상 혹은 5만명 이상을 파병해야 한다고 말했고, 그들은 주어진 날짜 전에 운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은 철수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

SL 그렇다면 공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도정밀 무기류가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J 미국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군사적 원정에 성공하기 위해 특별한 관심을 불러 일으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그렇게 많은 군사를 파병하지 않았더라면 군을 지속적으로 주둔시키는 것이 가능했을 텐데, 그들이 너무 많은 군을 파견했기 때문에 미국은 군사를 소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무 이유 없이 그들을 철수시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SL 그렇다면 위협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얘기입니까? 그것이 실제적이기 때문에...

AJ 위협은 그것이 불변인 채 유지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사용하기 전에 파병군을 감축시킨다면......

SL 맞습니다. 그러나 파병군은 걸프에 포진한 많은 요소들 가운데 오직 하나에 불과합니다. 걸프에는 군함도 있고, 전폭기도 있었습니다...

AJ 우리가 만일 전쟁 억지의 맥락에서 이성적으로 논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풀리지 않습니다. 심리적으로 연관된 것도 있습니다. 당신이 원정군을 파병하고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그 숫자를 줄인다면, 해양봉쇄도 마찬가지로 신뢰를 상실합니다. 게다가, 해양봉쇄는 그다지 효과적이었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라크는, 그곳이 특히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도처에 있는 섬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은 이를 봉쇄할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이라크의 생각은 이럴 것입니다. "좋다. 그들은 너무 강해서 우린 협상할 것이다"―파병군을 계속 감축시키면서도 이것만으로 봉쇄가 유지될 수 있었다면 이런 식의 생각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보 및 기술적인 억지력은 심리적인 억지력과 마찬가지입니다...

SL 미국에게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즉각 공격해야 했습니다.

AJ 아닙니다. 당신이 주어진 날짜에 군사 수를 감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즉시, 당신은 그 전에 공격을 감행해야 합니다. 정확히 사태는 이와 같이 전개되었습니다. 그리고 키신저는 그 시점이 9월이라고 말했는데, [이 시점은] 달리 말하면 이론적으로 공격을 결정하기 이전인 셈입니다.

SL 전쟁 억지라는 개념으로 돌아가봅시다. 핵억지력을 대체하는 억지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첫째, 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실제적인 위험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략을 수립할 여지가 있어야 합니다...

AJ 오늘날 강제정치 시기 하에서 전쟁 억지를 연구하기 위해 톰 셸링(Tom Shelling)에 의해 창안된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셸링은 게임이론 및 핵전략 이론가인데, 그는 또한 베트남 전쟁에서 '핵 이후(post-nuclear)' 혹은 '핵에 준하는'(para-nuclear) 것을 시작할 것을 창안하기도 했습니다. 베트남에 폭격이 시작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은 그 정도로 제한적으로 목표가 설정된 폭격이라면 베트남인들로 하여금 "그래, 이런 조건에서라면 우리는 협상하겠다"라고 말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강제정치"라는 생각인데, 달리 말하자면 정확한 결과를 얻기에 충분한 압력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베트남에서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 아마도 북 베트남이 공산국가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더 이상 공산주의자들이 없다고 가정한 후―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산주의자들이 이러한 전자공학의 시대를 누리지 못했고, 기술진보가 그 시대 이후로 비로소 발전되어 왔다면―다시 셸링의 사고로 돌아가 보면 이러한 압력은 뜻대로 작동될 것입니다. 이러한 도식은 어떤 관점, 즉 보편 역사의 척도에 근거한 전략적 관점에서는 합리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결점을 숨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현재 미국은 핵이 더 이상 '게임'의 일부를 구성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작동할 수 없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밀한 전자체계 따위가 향상되었고, 위성 관측은 미터 수준보다 미세한 것까지 관찰할 수 있게 된 탓에, 우리는 벤담에 의해 창안된 판옵티콘처럼 완벽한, 혹은 더 나아가 우리가 "판옵폴리틱스(Panopolitics)"라 부를 수 있는 체계와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체계는 꿈입니다. 현실이 아닌 꿈일 따름입니다.

SL 그러나 그것은 전쟁억지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입니까?

AJ 개인적으로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무언가로부터 전쟁을 억지한다는 것은 야망과 세력 관계 등에 상응하는 책무를 수행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전쟁억지를 고려할 때 중요한 것은 인민들의 전쟁억지입니다.

SL 어떤 인민을 말합니까?

AJ 일반적으로 모든 인민을 말합니다. 제3세계에서 가속화된 빈곤과 부 사이에서 양극화된 사회에서 꼼짝못하는 대중들 말입니다. 만약 대중의 반란을 억지하고자 한다면 전체 경제전략을 재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대중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중의 봉기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억지 전략은 그들의 죽음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 그러나 그들은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 당신이 그들의 생명을 쳐부술 따름입니다. 분명히 당신은 모든 대중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그것을 승리라 부를 수 없습니다. 승리가 목적이 없다면 그것은 학살로 끝날 따름입니다. 저는 학살이 미국 문명과 문화의 목표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것은 다소 우연히 목적이 됩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기술 진보로 인해 목표 조준과 전자장비에 있어 정밀성의 특별한 증가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정된 적이 없고 그래서 남아있는 적에게 [적당한] 이름을 붙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름을 찾습니다. "마약불법거래상" 또는 이슬람 같은 이름을 찾습니다. 그러나 미국인은 사우디의 와하브주의자들(Saudi Wahabites)과 매우 밀접하게 일해왔기 때문에, 이것은[적으로 이슬람을 찾는 것은] 작동하기에 확실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슬람이 아닌 적은 전혀 발견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제거하고자 하는 대상(무질서, 소란)을 바라본다면 그렇습니다. 자, 이러한 무질서와 소란은 부분적으로 미국의 경제전략에 의해 발생된 것입니다. 추리는 순환논법이 아닙니다. 저는 미국이 그것을 더 면밀하게 조사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SL 그러나 당신은 적이 없는 군사 형태를 찾거나 군대를 만들 수 있습니까? 그것은 순환논법 아닙니까? 나는 그것이 현재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AJ 그것은 순환논법입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그 순환논법 주위를 돌 수 있고 어떤 것인지 볼 수 있습니다. 즉 만약 당신이 미망인과 고아, 팔이 잘린 어린아이 등을 구하기 위해 인도주의적 탐험을 시작한다면 탐험은 생겨날 것입니다. 그리고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 자행되고 있는 잔혹한 일들은 멈춰져야 합니다. 원인은 실제로 이러한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발전시키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배고픔으로 죽어간다면 그들은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그들은 다이아몬드 광산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국가는 존재하지 않고 재분배는 부패로 대체되었기 때문에...이것들은 모두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당신이 정치적인 프로그램이 없다면 이것들을 미국인의 방식으로 계속할 것입니다. 그들은 상황은 유감스럽지만 우리는 제국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국가는 형태가 주어지지 않은 것이고 오로지 경제만 파괴적인 형태가 주어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정치적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면, 미국인이 하지 않는 사회적 공화제의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제국에 대립하여 공화제를 반대하는 유일한 사람은 패트릭 뷰캐넌인데 그는 민주적 제국에 대립하여 극우 공화주의자를 말하면서 그가 "공화제"라고 부르는 것에 반대하는데, 이는 제가 말하고 싶은 바가 전혀 아닙니다. 뷰캐넌은 미국을 신에 의해 축복을 받은 국가로 보는 미국 전통의 일부입니다. 당신은 거기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는데, 그래서 세계 무역에 개방하거나 그것에 의존할 이유 등이 없습니다. 이 꿈은 오랜 세월동안 실제로 지워져서 미국인들은 그들에게 신용을 제공하는 교역 형태 덕분에 그들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누구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지금 아주 많은 비극이 있다면 정확히 그것은 그들이 정상적인 국가로 남는 것 대신에 세계를 지배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SL 제국의 아이디어는 자유방임입니다. 민주주의는 경제를 통해 신장되었습니다.

AJ 그렇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두 가지 임무가 있습니다. 미국을 통솔하는 것과 세계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 기능은 오랫동안 여기저기에 있어왔습니다.

SL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수준에 있어 어떤 형성이 있는데, 경제가 지금 모든 것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민주주의를 생산한다는 한에서 그것은 갈등을 없애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AJ 그러나 경제를 형성하는 것은 어떤 억압 형성을 야기합니다. 지금까지 이 억압은 그 자체로 억압으로 공공연하게 드러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국가위기나 국가분열의 형태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SL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AJ 물론 미국은 좋은 상태를 따라왔는데 왜냐하면 미국은 그 방향에 있어 일관된 흐름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그리고 억압은 또한 민주주의 복구의 형태로 출현합니다. 민주주의 복구는 결국 독재보다 낫습니다. 그래서 자유시장 경제는 예를 들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했던 것처럼, 민주주의의 복구와 일치하기 위해 수많은 이행을 겪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법칙이 아닙니다. 이는 몇 나라에서 발생하는데 왜냐하면 그 나라들은 일반적인 것으로 표현되는 모델에 맞는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모델은 어떤 나라에서는 특이한 것입니다. 지금 칠레는 매우 민주적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형태와 동시에 민주주의가 복구되었습니다. 위기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콜롬비아에서는 가혹한 경제적 탈규제 조치와 전쟁국면 양자에 직면해서 기회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5년이나 10년이 지나 상황이 경제적으로 나아지고 민주주의와 평화가 복구될 때 기회는 작동할 것입니다. 그 전략은 극단적으로 잔인합니다. 그것은 미국 시스템의 언급되지 않은 부분일 것입니다. 우리가 유럽적 관점에서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바라보면, 미국 공중의 견해에 대해 나쁜 놈들처럼 보일 텐데 이것은 완전히 역사적 관점이 부재한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우리는 알제리에서처럼 이러한 유형의 실수를 범했습니다. 만약 콘스탄틴 플랜(Constantine plan)을 도입하는 것과 동시에 민주주의를 복구했다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콘스탄틴 플랜을 수립했고 그것이 작동하지 않았다면 그 정상에서 민주주의는 허락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SL 알제리에서 그것은 이끌려서 경제적 조치와 "화해"한 것입니다.

AJ 맞습니다. 처음에 화해하고 그리고 나서 발전 계획을 가진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발전계획은 계획일 뿐이었고 그래서 자유주의적 죄악이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우리에게 아마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당신들이 통제된 경제를 원했기에 그에 반하여 우리는 자유주의를 행한다고 말입니다. 오늘날 알제리를 보기만 해도 알제리는 민주주의 없이 자유주의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하지 않지만 불행히도 폭력은 고삐가 풀려 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무장된 그룹과 독재의 합입니다. 그리고 원유가 연루되어 있는데, 그래서 우리는 미국의 이익이 실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유럽에서 우리가 덜 말하며 게다가 더 적게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인들은 훌륭하고 때때로 매우 급진적인 연설을 합니다. 미국 NGO들은 미국 정부가 행동하는 방식에 매우 비판적이지만 정부의 의사결정 수준에 있어서는 고려되지 못합니다. NGO들은 활동적이지만 콜롬비아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제는 세계 경제시스템과 군사시스템 사이의 관계에 대해 심각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군사시스템은 사실 경제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군사시스템의 순화는 결코 그것으로 하여금 충분한 방지에 대한 것을 다루도록 하지 않을 것입니다...

SL 그리고 위협 수준에서는...

AL 어떤 경우에도 수많은 것에 의해 위협받은 사람들을 연루시키기 때문에 미국의 군사적 간섭에 의한 위협은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미국인들은 설탕과 쌀을 가지고 오고 문제는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지배시스템에서 경제와 무장 폭력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정치를 제쳐놓는다 하더라도 그 질문을 해야 합니다. 정치를 제쳐놓았기 때문에 그 관계는 직접적입니다. 그것을 다뤄봅시다. 그러나 모두가 안된다고 외칠 것이고 미국에서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권력의 다른 두 부분이 있으므로, 국방부와 IMF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다뤄봅시다. 만약 실제로 그 관계가 미국 대통령에 의해 중재되기 때문에 그 질문이 어리석다면, 연관된 정치가 있는 것입니다. 자연히 같은 것이 유럽을 위해서도 필요한데 왜냐하면 유럽에는 수장이 없고, 그래서 쉬운데, 단지 국가에 의존하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유럽의 수장이 없고 수장이 없는 돈은 없습니다. 그것은 신용할 수 없습니다. 신용할 수 없다는 것은 가치가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유럽에서 대통령이 선출되었다면, 유로화는 상승할 것입니다. 그리고 순수히 경제적인 혹은 순수히 군사적인 기업으로서, 미국은 진실이 없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SL 또한 이른바 [일종의 고유명사로서] (미)합중국(United States)이라는 국가가 존재하는데요, 유럽의 국가들과는 다른 어떤 형태입니다. 그것은 프랑스의 공산주의자 작가인 앙드레 우름세르(Andr Wurmser)가 1950년대에 예컨대 미국의 인종들, 사회계급들 간의 분할들을 비난하면서 "비-합중국(Dis-United States)"이라고 지칭했던 상황과 정확히 반대입니다.

AJ 현재 유럽 연합(EU)이라고 칭해지는 것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유럽 합중국(United Europe)이라는 이름을 가질 권리를 가질 때 그렇게 불리게 될텐데, 그때 그것은 연방 또는 심지어 연합국가일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합중국을 프랑스어로 표기하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유럽은 의식적으로, 미국이 건국된 이후, 미국식 과정을 모방해왔습니다. 모네(Monnet)의 생각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미국의 이상주의자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유럽은 미국식 프로젝트의 수준으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했죠. 미국에서 각각 상이한 국가[주(州)]들의 자율성을 회복시키자는 것이 이따금 논의될 때 유럽인들은 유럽 국가들을 연합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마도 50년 이내에 유럽 합중국은 미 합중국을 닮고, 미 합중국은 유럽 합중국을 닮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합니다만, 어떤 경우, 미 합중국은 전체적으로 중심의 핵심을 지배하는 단일 권력으로서의 존재라는 자신의 독점력을 상실하게 될 겁니다. 분명히 이 독점력을 상실할 겁니다. 앞으로도 계속 [합중국을 구성하는 국가들이] 그처럼 강탈할 것이라는 어떤 이유도 존재하기 않기에...

SL 미국이 유럽의 여러 이점(利點)들에 대한 독점력을 상실할 것이다라는 말인가요?

AJ 네, 제일 먼저 유럽국가들의 이점들에 대해 그렇습니다. 그것은 불가피합니다. 유럽의 지배계급은 대체로 주민의 수, 자본비율, 등등에서 미국의 지배계급과 [사회조건이] 동일합니다. 그리고 실제 지표들의 수치는 유럽이 [미국에 비해] 더욱 강하지만 그것이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현재 유럽이 합중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럽에 대한] 미국의 우위는 설명하기 쉽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분명하고 주요한 미국의 우위는 군사(력)입니다. 그것은 단일화의 우월함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는데요, 다시 말해 군사적 단일화를 포함하는 단일화에서의 우위, 그리고 단일화로 생긴 열매의 일부분으로서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포함했습니다. 미국은 단일한 군대를 가졌고, 동시에 소련을 대신하여 세계를 지배하기를 원했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군대는]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도 월등한 군대로 남아 있습니다.

SL 하지만, 군대 그 자체나, 그것의 엄청난 기술적 발전들 등은 미국이 추구하는 경제체계에 부합하는 비중 있는 부분이고, 또 미국의 이익을 위해 작동했습니다.

AJ 맞습니다, 실제로 엄청난 기술적 발전들이 군사적 우월성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전체적으로 어떤 경계들 내에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과잉-발전국가들을 지배하는 데 이러한 기술적인 군사적 지배가 결국 유용할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물론, 파키스탄의 중심부에서 아편을 재배하는 사람들을 [군사적] 목표로 해서 싹 쓸어버릴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일례일 뿐입니다. 하지만 미국에게는 유럽을 계속 지배하기 위해서, 아마도 유럽의 주변에서 무질서의 지대를 유지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일 겁니다.

SL 그것은 당신이 때때로 지적했던 점입니다.

AJ 내가 유일하게 지적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만약 미국이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하게 그들이 그 생각을 유럽에 적용하려고 시도하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아마 러시아에서 하나의 무질서의 지대를 유지하고자 했을 겁니다. 유럽이 이러한 종류의 사태들을 통제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사실상 그러한 상황은 유럽에게나 미국에게나 모두 재앙과 같은 것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군사적 우위를 통한 유럽의 지배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긴 하지만, 이 문제가 그리 주요한 의제는 아닙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첫 번째는 미국의 군사적 수단들이, 더 이상 적성국이 존재하지 않는 유럽에서와 같이 동맹국들을 지배하기 위해 채택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경제 체계들에 대한 군사지배는 상업을 통한 평화라는 이데올로기, 신자유주의, 이른바 민주적 사고 등의 미국식 독트린에 완전히 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체계에 대한 군사지배는 파시즘으로 귀결됩니다. 그리고 미국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언젠가 깨달을 때에 ....

SL 왜 그것이 파시즘으로 귀결되죠? 어떤 국가는 자신의 무장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AJ 왜냐하면, 정의상 군사지배를 통한 경제체계의 통제는 내부 주민들을 노예화하는 직접지배 체계―물론 어떤 국가는 그렇지 않았지만, 어쨌든―이기 때문입니다.

SL 그들은 모든 책임들로부터 벗어난 제국을 원한다...

AJ 그렇습니다. 그들은 군사지배가 아닌 제국의 형태를 발명해야만 합니다.

SL 그리고 그것은 "형성중인 것"이어야 합니다...

貨 殖 화식

AJ 네, 그들은 부분적으로 군사적 우위로부터 나타날 무엇으로서, 하지만 그것은 무엇보다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재학(理財學, chrematistics)이라고 지칭한 성질, 그리고 또한 경제로부터 나타날 무언가로서 형성중인 것을 상상하려고 노력중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조심스럽게 양자를 구분하였고, 미국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재학"은 투기적인 거품, 즉 투기인데, 돈이 돈을 만든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그것은 "자연적"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경제는 노동이 자원들을 생산할 때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적 범주들에 따르자면, 자연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이재학과 경제가 함께 혼용된다면, 그 형태는 발생할 수 없습니다.

SL 하지만 그것은 자본주의 체계의 일부분입니다.

AJ 그것도 시기에 달려있죠.

SL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투기의 장구한 시기가 존재했습니다.

AJ 네, 하지만 자본주의 체계를 유지하는 것은 또한 실제 경제에서 실제 투자들을 의미합니다. 분명히 이 점에 대한 논쟁이 존재하는데요, 왜냐하면 때때로 과열되는 투기적인 거품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위험도 아닐 뿐더러 투자된 노동으로 환산되는 회사들의 실제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실제로 {자본}에서의 마르크스주의적 정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적 교란을 생산합니다.

SL 그리고 기술은 이것을 더욱 증식시킵니다.

AJ 오늘날 기술은 채권시장과 같은 것들의 다른 유형들 모두를 가능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시장은 본질상 난폭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폭력에 대한 가상의 독점(최소한 시장에 대한)을 포기함으로써 평화의 공간으로 형성됩니다. 따라서 모든 것은 보다 숙고해 볼만합니다. 나는 시애틀에서의 [반세계화] 시위가, 적어도 지배적인 국가들에서, 일반화된 제3세계라는 상황의 출현을 막아내기 위한 선례를 우리에게 제시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이기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어떤 누구도 미국이나 유럽의 일부가 시에라리온처럼 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험 상황의 초래로부터 대중들의 극빈화를 막기 위한 수단들이 취해져야 한다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이민금지 지대들은 등장하는 것입니다.

SL 멕시코, 알제리아, 남아메리카, ...

AJ 현재, 예컨대, 전(前)자본주의적 독재정치들의 청산을 옹호하는 실질적인 미국적 전통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콜럼비아의 독재정치들이 제거되었다면, 이후의 선거들이 현재 보여지고 있는 양상처럼 나타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콜럼비아는 독재정치에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분명한 능력을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농업적 독재정치는 제거되지 않았고 마피아 독재정치는 그 구조 내부에 터를 잡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마피아는 극단적으로 폭력적이고 범죄적인 사회 정화의 실행에 동반하여 등장하는 것입니다.

SL 전쟁 억지의 첫 번째 시기동안 미국이 핵무기를 가진 유일한 나라였던 "축복 받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미국이 아마도 당시의 축복 받은 순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그 순간을 다시 만들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들이 기술을 통한 절대 지배를 다시 확보할 수 있을까요?

AJ 실제로, 당시는 정말 축복 받은 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절대무기를 가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절대무기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핵무기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절대 적(敵)에 대한 절대무기였습니다.

SL 절대무기는 [전쟁]억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기술이, 거대한 기술의 파도가, 그와 같은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까요?

AJ 나는 절대무기가 그런 심각한 내용과는 어떠한 관련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핵 파워는 정확한 사회적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상대적인 무기가 결코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핵무기의 폭발력의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핵분열에 의해 엄청난 힘이 확산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핵무기의 종별성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처럼 엄청난 물체들에 상응하는 어떠한 소프트웨어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무기는 하드웨어입니다. 극한의 하드웨어. 이제 우리는 점차 소프트웨어를 개선해야 합니다. 내 생각으로는, 그에 비견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SL 네, 하지만 그들은 다른 국가가 핵을 갖는 것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AJ 그건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상업의 기본적 사실은 어느 곳에서든 거래수단(chips)이 가장 저렴하게 생산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펜타곤의 거래수단은 [이미] 인도에서 만들어졌고 중국에서도 만들어졌습니다. 이윤의 합리성, 대량생산의 합리성은 유지하기 매우 어렵고, 또한 이것은 군사적 상품들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자는 두 주요 강대국들이 스스로를 근본적인 적―각자 절대무기를 휘두르면서, 한 국가는 자본주의를 위해 싸우고, 다른 한 국가는 공산주의를 위해 싸우는―으로 선언하자마자 미국-소련의 핵 대립의 기간 동안 고유한 투쟁이 존재했었다고 매우 훌륭하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그런 경험이 또 다시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SL 절대무기는 이제 상대적인 용도를 갖는데요, 즉 "불량국가들", 테러리스트 등에 대한 용도로서 말입니다.

AJ 핵무기들은 전략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만약 중국이 스스로를 미국의 절대 적(敵)으로 선언한다면 재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중국인들이 그렇게 하지는 않을 정도로 영민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걸 두고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SL 그리고 나서 그들은 내부로부터 붕괴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체계에 저항하기 위해 그들은 공산주의적 노멘클라투라 내에서 그것을 재생산하였기 때문입니다.

AJ 네, 그들은 서서히 근대 파시즘 체제로 이행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식 민주주의에 의해 침식되었습니다. 아니, 내 생각으로 그것은 종결되었고, 결코 재발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고대 역사에서 제국들간의 적대의 최고점이 존재했다고 상상해봅니다. 사산조 제국과 로마 제국의 적대는 평형 상태에 들어갔고 로마가 파르티안 땅을 점령함으로써 그 상태는 종료됩니다. 알랙산더가 그것을 해냈지만, 그는 갈리아와 지중해 서부지대는 정복하지 못하였고, 이후에 아무도 그것을 이루지 못합니다. 게다가 최악의 사실은 평형점이 회복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유럽을 완전히 정복하는 평형점이 존재했다면, 그것은 등장과 소멸을 반복했을 겁니다. 그것은 만약 미국인들이 정복 류의 철학을 갖고 있다면, 하지만 그들이, 세계의 지배를 제외하고, 아무 것도 정복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확신할지라도, 생각할 수 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정복에 대한 자각은 없습니다. 미국인들은 독일과 일본을 정복했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미국인들이 그들에게 민주주의를 부여한 이유일 것입니다...

SL 독일인들은 그것을 깨달았죠.

AJ 네,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히틀러의 독일을 일소하고 공백으로부터 그들의 민족을 재건하도록 돕는 과정에 동의했습니다. 독일인들은 혁명을 통해 그렇게 할 수 없었고, 따라서 그들은 미국인들 덕분에 민주주의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프랑스의 경우라기보다는, 독일과, 어느 정도에서는 일본에 해당합니다.

SL 일본인들은 중세적 전통에 따라 모든 것을 유지하면서 재창조되었습니다.

AJ 왜냐하면 그들은 정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독일은 정복되었죠. 그들은 러시아-미국인들에 의해, 점령군의 도착에 의해 그리고 모든 정치권력의 완전한 제거에 의해 정복되었습니다. 휴전 수단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정복이 개시되었다는 것 그리고 독일 국가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일본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패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원자폭탄 투하 후 바로 항복했지만,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 핵폭탄을 통해 정복되었고, 따라서 협상이 반드시 존재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실제로 패배한 것이 아니었고 따라서 그들의 민주주의는 독일의 민주주의에 비해 더욱 약화되었습니다.

SL 그것은 아마도 왜 미국이 당시에 관여했던 폭력의 다른 형태들에 대해 인정하기를 거부했는가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

AJ 그들은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돕지 않았고, 그것은 엄연한 진실입니다. 당시에 미국인들이 그들은 결코 정복하려 한 적이 없고 단지 정권[의 붕괴]을 노렸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매우 상대적입니다. 그와 같은 두 가지 사례들이 존재하는데요, 모두 무시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 프랑스에서 어떤 사람들은 미국인들―미국인 일반은 아니고―의 무능력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계를 지배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거죠.

SL 그리고 그 점이 바로 왜 그들이 직접적으로 단행하려고 시도하지 않는지의 이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AJ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배라고 지칭하면 안될 것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스스로를 지도자로 여기면서 그것을 지배, "리더쉽"이라고 부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특정한 때와 장소에서는 가능합니다만, 항상 그리고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SL 그들은 어떤 때는 이것을 인식합니다. 어떤 때는 전략적 사고가 미국의 강점은 아니다라는 것을 수용하기도 합니다.

AJ 그들은 언제나 모든 것을 인정합니다. 그것은 미국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 편제이고, 작동체계입니다. 미국 내부지형에서 좌파에 속했던 클린턴은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는 것을 억제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노동계급을 재앙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해 미국 외부를 주시하도록 떠밀렸습니다. 그것은 얼마간 그의 사회민주적 의무였지만, 그것은 언제나 같은 스토리를 같습니다: 베트남에서 존슨 대통령과 "위대한 사회" ...

SL 클린턴과 "신경제"...

AJ 그것은 바로 "신경제"였습니다만, 우리는 그것이 거품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또한 군사주의적 거품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공장들이 계속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등등, 이것은 마치 하나의 프로파간다와 비슷합니다만, 나는 맥나마라가 권력을 잡고 있던 당시의 펜타곤을 방문했고 또 맥나마라의 측근들이 설명해줘서 이미 알았습니다. 그것은 매우 명확하고, 매우 미국적인 설명입니다. 합법적으로 계획된 경제의 일부분은 이제 더 이상 [뉴딜 정책의 상징이었던] 테네시 강 유역 개발공사처럼 될 수 없는데, 그것은 바로 산업, 그리고 무기산업입니다. 그것은 방위를 위한 것이고 따라서 채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일자리가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펜타곤은 미국의 사회적 개입주의입니다.

SL 이제 무기가 기술이 되고 기술이 군사적인 동시에 민간의 성격을 갖게 된 이후로 그들은 더 이상의 개입을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AJ 그것이 바로 사실상 진짜 위기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레이건 시대까지 확립되고 지속된 이러한 종류의 군사 케인즈주의가 존재합니다. 레이건은 군사지출을 통한 자신만의 케인즈주의적 흥분에 사로잡혀 있었는데요, 왜냐하면 레이건의 위선은 말하자면 사회주의에 별별 악담을 퍼붓고 무기신용을 증가시키려했기 때문이고, 그것은 맥나마라가 했던 것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SL 최근에, 펜타곤은 [군사]기술을 확장하였습니다. 그래서 깨닫지 못한 사이에 전국이 군사화 되었습니다.

AJ 기술은 그 기원상 민간 부문이며, 미국인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돌연히, 그들은 군사제품들이 다른 새로운 기술로 만들어진 비-군사제품들에 비해 열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소프트웨어도 필요하고, 컴퓨터들의 진보를 마치 타자기 이상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영리한 기인들도 필요합니다. 군사 부문의 컴퓨터들이 민간 부문의 사무용 컴퓨터들보다 성능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1980년대에 발견된 것들입니다.

SL 그래서 그들은 양자간의 차이를 폐지했던 겁니까?

AJ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군사 부문이 전략 모델로서 산업 모델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허용하였습니다.

SL 그것은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결국, 인터넷은 군사 발명품이었습니다, ARPANET은 말이죠....

AJ 네, 그것은 군사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시대를 앞선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았고, 그저 그것은 또다른 장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기술 및 사무 관리 소프트웨어의 수준에 한참 못 미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산업에 군대가 뒤쳐지지 않아야 했고, 산업으로부터 적극적으로 교훈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결국 인터넷은 "군사 업무에서의 혁명"이었습니다. 군사 업무상의 혁명은 결코 기업 혁명에 뒤지는 것이 아니었죠.

SL 결국에, 미국은 국민들의 상당수를 가상 군인들로 훈련시켰습니다.

AJ 네, 어떤 점에서 군인들은 또한 키보드 조작자들이죠. 하지만 중요한 이론적 문제는 그들은 군사의 기준들과 기업의 기준들 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확립했다라는 사실에 있는데요, 말하자면, 정치가들을 무시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 관계는 모순적이지 않다라는 겁니다. 정치를 통한 파생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위협―특히 마약 거래에서, 또는 자금세탁의 과정에서― 하에, 모든 유형의 사안들을 법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함으로써, 즉 "올바른 통치"를 부과함으로써 자신들이 활성화되고자 하는, (정치적 부정)거래법률의 제정에 개입함을 통해 정치가들은 자신의 역할을 회복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것은 독점입니다. 펜타곤은 그러한 상황을 바라지 않고,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펜타곤은 기업의 주권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미국에서조차, 정치가들은 절멸의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들은 예의주시 중입니다. 그들은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 매우 격노한 바 있는데요, 이것은 아직도 자신들이 경제의 도덕성에 개입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합니다; 그것은 낡았어, 법, 등등 말이야. 하지만 사실상 매우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최소국가는 경제에 개입해왔다는 사실입니다.

SL 그들은 어떠한 국가 경쟁자도 원하지 않습니다.

AJ 그들은 국가 경쟁자를 갖고 있습니다만, 여기서 그것은 초-국가(trans-state) 라이벌이고, 절대적으로 전략적 이유들 때문입니다. 유럽의 관점에서 보자면, 사람들은 이것을 잘 깨닫고 있습니다. 그들은 미국의 다국적 기업 수준에 상응하는 무엇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건 정부만이 아니라,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전히 경제적인 논리의 명분에서 수행된 집중의 효과들이 존재합니다. 심지어 군사무기 부문의 집중 역시 법인기업의 논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의 논리는 또한 특정 직업의 논리이며 따라서 그것은 기업들에게만 잘 어울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하이테크 및 군사 영역들에서 취해지는 모든 집중들은 각각 유럽의 기업들에 의해 수행되었습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승리도 아닙니다; "우리는 미국에 의해 통제되는 다국적 기업들의 형성을 막아야 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들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과 교역하는 "합작회사들"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고, 어떠한 것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매우 흥미로운 미스테리입니다.

SL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AJ 유럽의 법인기업들이 [합작을 할만한] 다른 유럽의 법인기업들을 찾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의미하는데요, 왜냐하면 그들과 공통적인 무엇, 즉 기업문화와 국가 조절의 유럽식 버전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이 다른 세계로부터 온 미국의 법인기업들과 합작했다면, 그들은 조화를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며 이윤조차 남기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 결과, 심지어 사적인 회사들조차 정치적 입장―어떤 경우에 민주적이지 아닌 입장―를 갖지만, 그러나, 만약 기업 문화를 하나의 정치 문화로 칭할 수 있다면, 하나의 정치 문화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람들을 이용하고, 협정들을 도출하는 것, 등의 방식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위계적 문화입니다만, 그것은 자신의 정치적 측면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미스테리하게 남아있는데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대화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진지하게 다룰 수 있는 개념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경제학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전략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정치학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부터 그것이 국가로부터 도출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SL 어떤 경우에 그것은 국가의 약화로부터 도출됩니다.

AJ 네. 하지만 그것은 동어반복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 또한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권력이란 무엇입니까? 나는 우리는 현재 법인[기업]의 주권을 위해 민주적 주권을 살해하는 과정에 있다는 분석이, 사실상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널리 유포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주권은 오직 국가들 내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하지만 만약 국가들이 소멸한다면, 법인기업들이 실제 관계들을 통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는 파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비민주적 주권의 형태가 된다라고 긍정할 수 있다면, 동맹체들(the unions)과 함께 싸워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분명해질 것입니다. 동맹체들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고, 분쇄되고 있다는 근거들도 발견됩니다. 또는 초민족적 동맹체들의 필요가 제기되고 있거나 말입니다. 아딱(ATTAC)은 프랑스에서 보다 흥미로운 발견의 지점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분명히 자생적인 민중으로부터 기반하지만, 여전히 전략적입니다. 전략은 이해관계들, 사람들, 함의들 동맹의 구성 형태, 그리고 적대지점들을 동일화합니다. 내가 한가지 잊은 것이 있는데, 왜냐하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고, 나는 나의 글쓰기 스타일을 바꾸거나 아니면 정원을 가꾸고 싶은데요, 내가 10년쯤 젊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나는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기 위해서 10년의 여생을 갖고 싶습니다.

SL 하지만 사태는 중단되지 않을 겁니다.

AJ 진정 독자적인 자본주의의 차원을 대체하는 이례적인 변이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에워싸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전략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어도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초-분과적 접근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적 범주들은 어느 정도까지만 사용되어져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단순히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이상의 다른 무엇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계급들에 대해 말하기를 회피하는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계급 개념은 양심적인 자본주의자인 아담 스미스와, 내 생각에 분명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아니었던, 다른 이들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사회계급은 따라서 국가의 개념과 연결되고, 어쨌든 평화로와야만 합니다. 계급투쟁은 정치체계에 의해 국가 내부로 제어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만약 이 모든 것을 제거하려면, (아직 사회계급의 개념을 지워버리지 못했다면 말입니다) 조절의 개념도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누군가 말하듯이 "아, 이제 전쟁은 오직 인종집단들 간에만 존재하는군요, 등등, 그건 정말 사실이네요"와 같은 이유 때문은 아닙니다. 인종들의 전쟁은 계급들의 전쟁이고, 언젠가 이것은 더욱 분명해질 겁니다. 나의 견해로는, 지금으로부터 10년에서 15년 내에 말입니다.

SL 그때가 분명해진다면 우리는 계급들로 복귀할게 될까요?

AJ 아닙니다, 우리는 만약 우리가 인류의 생존의 각 측면, 예컨대 폭력에 대한 국가의 독점에 대한 반대를 통한 평화의 문제나, 생산수단의 통제를 통한 식량문제 등을 다루고자 한다면 계급이라는 개념은 재창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라는 사고로 복귀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민주주의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조절된 경계들 안에서 그렇습니다. 만약 더 이상 민족국가의 형태를 갖지 않게 된다면, 그때 보다 거대한 연합의 형태가 필요하게 됩니다. 어떤 종류의 형태는 내전, 즉 계급들간의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정치(학)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모든 곳에 내전이 만연할 것입니다.
- 파리, 2001년 5월.
Ⅱ. 제국의 반격

비대칭적 위협 신자유주의와 군사적 복귀 "악의 축" 엔론 스캔들 군사적 신뢰의 변화 불균형한 대응 법인의 주권과 군사 법인 제국이 형태를 갖추다 헌팅턴의 반동적 시나리오 하트와 네그리의 {제국}, 위로부터 아래로

SL 2002년 일반교서(2002 State of the Union)에서,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독트린"에 적성국가들―이른바 "악의 축들"인 이라크, 이란, 북한―을 포함시켰습니다. 현 행정부가 집권하지 오래지 않아 전세계에 죽음의 위협을 보여준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공격이 있었습니다. 처음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보복 원정은 알-카에다 테러조직의 궤멸과 탈레반 정권의 교체를 시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재는 이라크가 공공연한 타겟이 되고 있습니다. 9·11은 모든 이들에게 놀라운 사건이었지만, 그것에 대한 대응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지난 2년 전에, 저는 이스라엘의 Cesarea에서 개최되었던 탈냉전을 주제로 한 군사전략가들의 회의에 참가―이 회의에 미국 펜타곤을 포함한 10여개 나라의 국방관련 고위관료들과 방위전문가들이 참석했습니다―했었는데요, 여기서 "비대칭적"("asymmetrical") 위협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회의 최대 쟁점이었습니다. ...

AJ 네, 당신의 의견은 1995년 이후, 미국이 확실한 방식으로, 추상적인 방식으로 준비해왔다고 말해도 좋을 겁니다. 클린턴의 이데올로기는 민주주의와 자유무역에 대한 신념과 동시에, 정확한 의미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던(그것은 심지어 전제적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자유 경제'의 확장에 대한 신념에 기반한 것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진보적이었습니다. 분석된 세계화의 유형들 중 하나는 모든 것은 "불량국가들"의 네트워크들에 침투(/잠입)함으로써 획득되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시 독트린은 [이상과] 동일한 형태를 지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적성국가들"과 테러리즘에 대한 일반적인 전쟁 선언인 것입니다. 약한 국가/집단과 싸우기 위해 강한 국가/집단에 의해 사용되었던 이러한 방법은 항상 존재했었고,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모든 군사적 장치들이 약한 국가/집단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신자유주의적인 민주당원이었던, 클린턴은 그와 같은 입장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필요한 시기에, 그 역시 [미국에 대한] 위협임을 천명하고 군대를 파견하기 위해 군사적 장치들을 사용했지만, 그의 목적, 그가 생각하는 제국의 본질적 정의는, 미국의 극우파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양자간의 차이는 군사적 폭력의 사용을 악마와의 싸움으로 보여지게 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클린턴은 그와 같은 종교적인 신화를 천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왜 부시가 이스라엘의 우익들―이들이 어떤 우익인지 상관치 않고―과 공명하기 시작했는가의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종교적 우익들은 외부와의 관계들과 자폐증적 정의에 기반하여 성장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지난 30년간 침공의 위협을 받는 나라로 여겨지게 한, 이러한 종류의 시각, 즉 순전히 군사적일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시각은 어떤 점에서 새로운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미국화와 동반되는 미국의 이스라엘화의 양상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SL 그것은 중요한 정치적 변동, 또는 변이이지만, 이것은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의 나머지 국가/집단들과도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보여집니다.

AJ 예, 그것은 제국적인 시각과 군사적인 시각 양자를 채택한다는 점에서 변이입니다. 그것은 두 가지 유형의 적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함의합니다: 첫 번째는 테러리즘인데, 그것은 포착하기 어렵고 어디서든 등장합니다; 두 번째는 국가 구조들 내에서 배태되는 적(들)입니다. 부시는 그러한 국가들을 묘사함에 있어 세계외교사의 관점과는 상이한 방법을 갖고 있는데, 이미 이라크는 영구적인 처벌을 받고 있지만, 반면에 클린턴은 이란과 북한이 진보[상황의 개선]가 만들어질 수 있는 국가로 여겼습니다.

SL 부시 행정부는 집권하자마자, 그리고 심지어 세계무역센터가 공격받기도 전에, 군사 기계를 작동시키기 위해서, 그들은 신속하게 북한을 고립시키고 이라크와 이란으로 하여금 인지가능한 적대 국가들로 지정하였습니다.

AJ 네, 제 생각으로는 럼스펠드와 그 주변인물들에 의해 매우 분명한 결정이 이루어졌던 것 같습니다. 즉, 적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국가들의 생존여부를 질문함으로써 자신의 세계적 실재를 군사화하기 위해서, ... 클린턴은 얼마간 교묘하고 위협적이었던 일련의 예비 단계들 이후, 한반도의 통일, 다시 말해 북한의 해방을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독일 통일의 모델에 기초한 진보적인 재-점령의 전망이었습니다: 즉 시장의 힘을 이용해 북한을 치명적인 수준까지 잠식하고 자유를 통해 전제적인 국가를 붕괴시키기 위한 존재하는 모든 방법들을 동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앤소니 레이크(Anthony Lake,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역자) 혹은 클린턴의 이데올로기에는, 만약 폭력적인 네트워크와 폭력적인 국가들 간의 음모를 막아낼 수 있다면 폭력을 사용한 필요가 없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앤소니 레이크는 자신의 몇몇 연설들에서 이러한 책략의 분명한 정의를 제공하였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사태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분명히, 모든 종류의 위험, 재난, 등등이 존재하지만, 근본적으로, 외교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혹은 체계를 조작―즉, 폭력적인 네트워크와 폭력적인 국가들 간의 점증하는 음모를 막아냄을 통해 세계를 구성하는 것―하는 것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현재로선, 이러한 두 가지 차원들[폭력적인 국가들과 네트워크들]과의 대치 이상의 무엇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SL 신자유주의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이것은 퇴보와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 제국의 역류(逆流) ....

AJ 이렇듯 그들을 잔악무도함의 전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SF 장르의 환타지들―그들은 [SF 소설/영화에 나오는] 미친 과학자들인 것이죠―를 계속해서 유지합니다. 다시 말해, 유럽적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그것이 주로 무력의 사용을 막는 기술들로 구성되는 외교(diplomacy) 문화가 퇴보하는 것 아닌가하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부시 대통령과 그 관료들의 결정이 [외교] 기술의 사용을 피하기 위해서 모든 사안에 대해 군사적 폭력만을 강조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는 느낌 또한 갖게 됩니다. 여기서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하는 의문점은 이러한 방식이 앞으로 어떠할 것인가 입니다. 이는 그것이 구성적인 정치권력들과의 상호작용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적 관점에서, 지중해 시대의 상황은 평화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반드시 협상되어야 했던 근접성(proximity)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만약, 반대로, 미국의 시각은 이곳 저곳 어느 곳이든지간에 절대적으로 위험하다고 여겨지고 군사적으로 싹쓸어 버려야만 하는 지역들을 지정하는 것이고, 그후엔 더이상 정책 조정을 해야 할 여유가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클린턴은 공격적인 제국의 시각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은 군사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장애물들을 회피하고 명분들을 부과하는 영민한 정책 조정에 의존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정복한 국가들로 하여금 스스로 관리/통제되게 하였으며, 그것이 바로 자유로운 제국들의 정의(定義)였습니다. 하지만, 부시에게는, 세계문화에서 이러한 공격과 변화들을 주도하는 것은 군사입니다. 당신이 못된 짓을 한 사람을 벌하려고 결심하자마자, 더 이상의 조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클린턴과 그의 관료들은 한반도의 통일, 이란의 온건화의 독려를 유도하기 위한 교묘한 방법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슬람을 엄하게 대하려 한다면, 이슬람의 온건화를 위한 방은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끝낼 수도 없습니다. 이라크는 아버지 부시에 의해 과시와 억지의 목적에서 선택되었습니다: 즉, 당신이 더 이상 유순하게 행동할 수 없다면, 이것은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거죠. 그러나 이라크의 운명과 함께 전세계를 협박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통상 의좋게 지내지 않던 모든 사람들을 결집하게 하고 이러한 힘을 자신의 절대적인 지배를 관철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에 저항하게 합니다.

SL 부시는 광신(狂信)에 대해 광신으로, 또는 편집증으로 응답했습니다. 아무리 나빠 봤자 그것은 음모론이고, 아무리 좋아 봤자 위험한 정책 전환이겠죠.

AJ 그것은 마니교적, 종교적, 군사주의적 퇴보이며 그러한 수단들에 대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보아야 합니다. 나는 세계에 대한 이러한 시각이 어떠한 현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상시적인 위협인 거대한 테러의 네트워크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안보적인 시각이라기 보다는 이데올로기적인 시각(또는 병리적인 시각)입니다. 만약 그것이 네트워크라면, 안보의 태도가 요청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악마의 세계적 조직이라면, 우리는 국제 체계에 대한 공상적 인식에 빠져 있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연하게도 우려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정치 권력이 우리가 믿고 있는 그러한 종류의 신앙적 형식(formula)를 내포하는 결정을 내리면, 아무도 다음에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신앙적 형식도 세계에 대한 완전한 응답을 실제로 제공할 수 없습니다. 나는 상당한 놀라움과 충격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은 아직 권력을 상실하지 않았고, 단지 침묵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변인도 없고, 유럽의 대통령도, 일반교서(State of the Union)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일반교서는 세계에 대한 교서(state of the world)가 되었습니다. 일반교서에 담긴 메시지는 정당한 것입니다; 세계에 대한 교서에 담긴 메시지는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국 대통령에 의해 부당하게 행사된 것입니다. 당연히, 이것은 지식인의 관점에서 볼 때(숙고된 진단이라 해도 좋겠군요)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세계에 대한 강령이고, 그런 점에서 논쟁적인 것입니다.

SL 그것은 두 개의 날을 갖는 강령입니다. 미국에 대한 공격의 즉각적인 효과는 정부와 정당들간의 관계양상의 완전한 변화였고 군사작전과 관련된 정보, 죄수들의 대우에 대한 이례적인 권리들, 지식에 대한 검열 을 정당화하는 전쟁시기의 정신적 착란을 대중에게 부과하였습니다. 부시 행정부는 자신의 극단적인 의제들을 실현하기 위해 그 상황을 착취하였던 것입니다.

AJ 그 사건은 수천가지 다른 방식으로 착취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이득을 얻기로 결정했던 것이죠. 왜? 답은 바로 체제입니다. 미국인들의 국가의 구조, 기능은 아마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고 따라서 자신의 제도들의 정당성 또는 권력 또는 효율성을 유지하기 위한 신화화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SL 가장 분명한 변화는 국방예산입니다. 9·11 이전에, 부시는 새로운 "스타워즈"를 밀어붙이고 있었고, 동맹국들의 반대를 억누르고 있었죠. 빈 라덴은 의회로 하여금 국방비에서 지난 20년간 최고의 증가액을 승인하도록 하였죠.

AJ 약 15%의 국방예산의 증가는 군사지출을 위한 케인즈주의적 시동을 의미합니다. 민주당은 종종 그러한 것을 시도했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은 그가 말한 바와는 달리 동일한 방식을 취했었죠. 아마도 그것은, 투기에 의존하기보다는 국가지출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경제에 시동을 걸기 위한 방식이었을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이해 가능합니다. 그것은 "올바른 행정"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고, 어떤 것은 우리가 비판할 수 있겠고, 또 어떤 것은 정상적인, 미국의 국가장치의 마키아벨리적 행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초-자유적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외부에서만 그렇습니다. 국내에서, 그것은 군사 신용들을 이용한 재분배를 위해 거대한 재정적 노력을 만들도록 결정하였습니다. 이것은 초유의 사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다른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군사적 신용들을 획득하기 위해서, 부시는 소련에 버금가는 범세계적 위험을 창조하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세계는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침소봉대하지 말라. 현재 추진중인 전쟁을 정당화하는 위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SL 진주만을 제외하면, 미국은 단 한번도 공격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부시의 극단적 대응과 미국민들로부터 부시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그러한 상황에 알맞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AJ 네, 그것이 사실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정신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습니다. 폭격을 당하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경험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새로움으로서 경험한 사람들도 그들뿐입니다. 모든 국가들은 자신의 역사에서 파괴를 경험해왔습니다. 세계의 나머지는 여전히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으며, 따라서 9·11을 겪은 미국에 대한 동정은,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히틀러나 러시아인들에 의해 준비된 세계전쟁의 전조일 수 없습니다.

SL 확실히, 9·11은 가공할 정도로 혼란스러웠습니다만, 또한 분명한 것은, 전세계에 걸쳐 미국의 권력―그리고 미국의 경제―을 부과하려는 목적에 그것을 이용하려는 시도 또한 존재합니다. 어쨌든, 부시 독트린은 경제적 관계의 군사적 형태입니다.

AJ 네, 나는 그것이 하나의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가장 혼란스러운 양상은 바로 그 형태가 완전히 미국적이라는 겁니다. 최근에 미국인들을 만나면 이렇게 말합니다: '유럽? 우리는 유럽을 탓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인들이 유럽을 비난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유럽은 미국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 자랑스러운 관점은 아닙니다. 당신이 상호작용들에 대한 질문들을 물어오기 시작할 때, 당신은 또한 세계에 대한 어원―자폐증적인, 단일한, 무언가 공유될 수 없는―상에서 "어리석은" 관점을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자신의 다수의 공론을 공유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일한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세계의 나머지가 뭔가 귀중하다라는 사실을 확신하기 위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때, 무엇보다도, 동맹들은 종결되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동맹관계를 맺을 것입니다. 이것은 대서양 공동체로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SL 우리는 미국이 스스로 세계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물론 미국은 자신이 두목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이것은 또한 궁극적으로 미국의 국가 권력의 제한이라고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확연한 군사적 팽창이 전통적인 동맹들을 희생시켜가면서 미국의 리더쉽을 강변하려는 시도라고는 말할 수 없지 않습니까? 앞서 우리가 토론한 바 있듯이 미국은 아직 자신의 [제국적] 형태를 찾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나는 9월 11일의 사건들이 그것을 규정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이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아메리카 제국이 사실상 바로 우리 눈앞에서 형태를 갖춰가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AJ 나는 당신의 의견에 완벽하게 동의합니다. 제국은 지금 당장 형태를 취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1995-6년이래 느리게 모양을 갖춰가고 있었고 과거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보다 군사적인 형태로 귀결되었습니다. 한편, 미국과 이슬람, 이스라엘과 이슬람의 관계를 확립하기 위한 시도의 의도적인 부재가 있습니다. 나는 심각한 불안을 발견했는데요. 샤론은 미국과 같은 방식으로 행위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그들의 접근법을 동시화라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며 그들이 수세에 몰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벽으로 둘러 봉쇄할지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벽으로 감쌀지를 두고 벌이는 논쟁으로부터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그들은 게토화를 원하고 있고, 이러한 것들은 진정 극적인 문제들이지만, 그들이 자유주의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SL 자유주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네그리/하트의 {제국}을 읽어보았나요? 책의 내용은 미국은 제국이 아니지만 그것을 상징하는 형태에 가깝다는 것인데요. 현재 그 제국은 스스로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고 어떠한 한계나 고정된 경계도 용인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것은 광범한 규모에서의 탈영토화입니다. 들뢰즈/가타리와 달리, 그들은 이러한 세계성이 자신의 본질에서만 대답되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더 이상의 분자혁명들이나 특이성들도 존재하지 않죠. 제국은 반-제국을 만납니다. 당신은 이러한 분석에 동의하십니까?

AJ 나는 네그리/하트가 군사와 관련된 질문을 충분히 진지하게 제기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 자본주의 체계의 확장에 대한 이상주의적 시각―아마도 심지어 클린턴주의적 시각이라고도 할 수 있는―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그것의 진실여부가 아니라 네그리가 제국을 문제화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SL 우리가 제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것은 어떤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들을 갖는, 절대적일 수 없는, 다시 말해 절대적이기를 또는 직접 통치하기를 원하지 않는 제국이었습니다. 질문으로 제기되어야 하는 것은 정확히 이 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관찰하고 있는 제국의 강력함의 징후라기 보다는 허약함의 그것일 겁니다. 그 징후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절대적 제국을 회복하려는 시도이고, 아메리카 제국으로 만드는.....
AJ 예, 하지만 그것은 상위 제국에서 하위 제국으로의 이행처럼 보여집니다.
- 뉴욕-파리, 2002년 5월.
[끝] PSSP
주제어
평화 국제 이론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