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3.4.34호

지하철을 타려거든 목숨을 내놓아라

이대우 | 인천지부 집행위원
지하철을 타려거든 목숨을 내놓아라

이 무슨 해괴망측한 말인가? 지하철에 떼강도가 수시로 출몰하기라도 한단 뜻인가?

나는 작년 말부터 인천 장애인이동권연대와 함께 활동을 해오고 있다. 아직까지 여러모로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에 다양한 활동을 하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서명전과 버스타기 투쟁을 진행해 오고 있다.

서명전은 주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지하철 역사를 이용하는데 장애인들의 곤란함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일단 집에서 지하철을 타는 곳까지 휠체어나 전동스쿠터를 타고 와야 하는데 한 동지의 경우 집에서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전동스쿠터를 타고 오는데 무려 1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그것도 대형트럭들이 다니는 차도를 따라서 말이다. 간신히 지하철에 도착하면 이제는 타는 것이 문제다. 국철의 경우 노후한 역사가 많아서 엘리베이터는커녕 심지어 장애인용 리프트조차 설치 안된 곳이 태반이다. 또한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의 틈이 작게는 15cm에서 넓게는 30cm까지 벌어진 곳이 많다. 다른 이의 도움이 없으면 그 틈 사이로 휠체어 바퀴가 빠지기 일쑤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서명전 장소까지 도착했다고 치자. 그래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서명전 도중에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일단 한 명 이상의 도움이 필수다. 비장애인들에게 계단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장애인들에게는 태산보다 더한 것이 계단이기 때문이다. 화장실 앞 에 경사로가 없으면 그때부터는 안고 업고 옮기는 수밖에 없다. 화장실에 입성(?)해도 난관은 있다. 장애인용 화장실이 없는 곳이 많기 때문에 비장애인용 소변기 앞에서 볼일을 보다보면 여러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의 반복이다 보니 장애인동지들의 생존전략은 안타깝게도 깡통이 되어 버렸다.

참으로 갑갑하고 답이 안나오는 이야기들이지만 한가지 일화를 더 소개해 보겠다. 지난 2월 15일 국제반전공동행동의 날을 맞아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부평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출발해서 지하철을 타고 일단 서울역까지는 무난하게 올 수 있었다. 다행히도 일행은 얼마 전에 공사를 마친 엘리베이터 덕분에 환승구 입구까지는 올라올 수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위치가 4호선 환승 통로와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굳게 닫힌 개찰구 통로를 열어달라고 인터폰으로 호출했지만 역무원은 5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화가난 장애인동지가 전동휠체어로 철문을 향해 돌진하더니 이내 잠금 부위가 휘면서 문이 열렸다. 물론 전동휠체어에도 흠집이 생기고 말이다. 4호선 환승 통로로 들어와서는 리프트를 타야했다.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리프트 앞에는 이런 경고문이 있다. "승무원 없이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사고가 나면 아무런 책임이 없음"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승무원을 호출해야만 한다. 또 다시 인터폰을 누르고 승무원을 호출했다. 역시나 수분이 지나서야 공익요원 한 명이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왔다. 휠체어가 4대다 보니 30분 이상이 지나서야 4호선을 탈수 있었다. 혜화 역에 도착해서는 그나마 지하에서 지상까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서 수월하게 올라올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집회장소까지 걸린 시간은 2시 30분, 비장애인의 경우 보통 1시 남짓 걸리는 시간을 무려 곱절의 시간을 넘겨서야 도착한 것이다.

시간은 흘러 본대회와 행진 그리고 촛불시위까지 끝났다. 이제는 돌아가는 일이 남았다. 광화문에서 제일 가까운 역은 종각역인데 그곳은 리프트가 없기 때문에 종로 3가까지 가야만 했다. 장애인동지들이 휠체어를 타고서 인파 속을 지나가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닌데, 워낙 바깥 나들이를 못해왔기 때문에 즐거운 표정으로 종로3가까지 이동했다.

역무원을 호출했다. 역무원이 키를 꼽고 리프트를 작동시켜봤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리프트를 이리저리 흔들어 보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장이라고 잘라 말했다. 싸워봐야 소용없는 일이기에 반드시 수리할 것을 요구하고 5분 거리의 3호선 종로3가 역으로 향했다. 역무원을 호출하고 작은 휠체어부터 실어 날랐다. 3대의 휠체어가 지하 매표소까지 이동하는데 30분 정도가 걸리고 이제는 나머지 한 대를 실어야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전동스쿠터가 너무 큰 나머지 리프트 앞뒤의 안전받침대가 제대로 올라오지 않아서 작동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전동스쿠터의 기종이 천차만별인데 반해 리프트의 규격이 너무 작았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일행은 갈라진 채 3호선과 1호선이 만나는 곳에서 모이기로 하고 건너편의 5호선 종로3가역으로 향했다. 간신히 스쿠터크기와 리프트의 규격이 맞아서 매표소 입구까지 내려 올 수 있었다. 이제는 1호선을 타기 위해서 2번의 리프트 또 타야 했다. 공익요원 4명의 도움으로 별 탈 없이 인천행 전철을 타는 곳까지 도착했다. 광화문에서부터 우여곡절 끝에 인천행 전철을 타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2시간이 걸렸다. 이날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휠체어 한 대당 평균 엘리베이터 5번에 리프트를 7번 타야만 했다.

장애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집밖 활동 시 불편한 이유로 '대중교통수단의 편의시설 부족'을 답한 응답자가 무려 52.5%라고 한다. 장애인의 숫자가 450만 명이라고 할 때, 234만 명의 장애인이 대중교통의 이용이 불편해서 집밖 활동을 못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중교통수단 이용의 불편함 즉 이동권의 제약은 결국 장애인의 교육, 노동, 문화 등 각종 사회적 활동에 대한 배제로 이어지며 결론적으로 사회적 차별을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노무현대통령은 지난 16대 대선 기간 중 각종 사회적 차별을 없애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제 2차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참여정부라 말하는 노무현정부의 장애차별철폐의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오는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정부 혹은 관변단체들은 장애인을 데려다가 각종 수상과 위문공연 등 행사를 진행하면서 이날은 마치 장애인들도 사회의 구성원인 냥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댈 것이다. 이제는 장애인들을 대상화하는 이런 행사를 거부하고 장애인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양산하는 사회구조를 바꿔내기 위한 투쟁과 장애인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 날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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