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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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에 복무하는 시민운동

정종권 | 정책기획국장
사회운동 사회?

미국의 한 사회학자는 1968년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사회운동의 흐름을 조망하면서, 매우 역설적인 현상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과거의 사회운동은 인권운동, 반전운동 등에서 보여지듯이 사실 청년층과 학생층에 의해 주도되었고, 그런 면에서 전사회 구성원이 참여했다기보다는 소위 '좌파'의 전유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운동에서 보여진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젊은이들의 열정과 폭발적 에너지, 그리고 헌신성 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그는 오늘날에 이르러 사회운동의 논리들이 전사회적으로 확산되었고, 모든 사회세력들이 사회운동의 논리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기업가들의 연합체나 총기소유 옹호자의 조직, 심지어 인종주의나 남성우월주의 조직 등 전통적 우파조직들도 과거 '좌파'의 운동방식을 배워서, 피켓팅이나 거리행진, 국회 앞 농성 등을 통해 스스로의 주장들을 사회적으로 천명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양상을 보면서, 오늘날의 사회를 '사회운동 사회(Social Movement Society)'라고 칭하고 있다.

이는 60년대에서 90년대 후반까지의 서구사회를 분석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을 접할 때, 우리는 우리사회와 서구사회에서 기묘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오늘날 우리사회에서도 각종 사회세력들이 저마다 '정치활동 선언'을 천명하고 있고, 각종 이익집단들이 자신들의 요구관철을 위해 스스로를 조직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도 동일한 방식으로 언론을 통해 성명서를 발표하고, 각종 이벤트를 조직하여 여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종종 집회나 가두시위를 통해 이른바 '직접 행동'에 나서고 있다.
그렇다면 기존의 좌파는 물론이거니와 전통적인 우파들마저도 기존 좌파의 행동양식을 모사하는, 이른바 '사회운동 사회'의 시대에, NGO는 어떤 연유로 스스로를 'NGO'로 형성시켜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기존의 사회운동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운동으로 각인시켜내면서 세력화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NGO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사실 NGO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는 큰 의미를 담고있지 않다. 왜냐하면, 단어 그 자체만을 놓고보자면 전세계 초국적자본의 모임인 '다보스 포럼'에서부터 멕시코 농민반란조직인 '사파티스타'까지 모두 NGO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NGO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왜 이러한 NGO활동이 90년대에 들어 하나의 세계적 현상이자 사회운동의 주류적 흐름으로 등장하게 되었는가를 질문하는 게 더 현명할 것이다. 즉, 하나의 '정치적 현상'으로서 NGO의 문제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와 함께, NGO 현상이 한국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에서는 NGO활동이 일종의 '사회운동'의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중 일부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시민 사회운동의 르네상스'라고 칭하고 있으며, '세상 정말 좋아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왜 지금 한국사회에서 "NGO"라는 현상이 사회운동의 형태로 각광받고 있는가? 그것은 전반적인 사회변화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등의 질문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오늘날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하나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신자유주의'는 무엇이며, 그것은 세계적인 자본축적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왜 그것이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의 변종형태를 띠는지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 속에서 왜 지금 세계적으로, 그리고 그것을 배경으로 해서 한국사회에서 NGO라는 현상이 출현하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의 역사적 진화와 신자유주의

우리가 알고있는 정치이념에서 상식적으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상식적으로 구분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양자는 기본적으로 대지주세력과 부르조아세력의 대립 같은, 정치적 대립쌍의 변동과정에 대해 선택적 친화력을 가지면서 공생과 경쟁의 관계를 가져왔다. 이러한 정치세력들은 나라마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면서 스스로를 조직하고 있다.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그에 입각해서 세계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국가는 보수당과 민주당의 이원적 대립구도를 보이고 있는 미국이라 할 수 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적 헤게모니 국가가 된 미국은 기실 자유주의의 나라라 할 수 있다. 전후 20년의 호황기 동안 민주당 주도하의 케인즈적 정책은 국내적으로는 노동자대중의 일부를 소비주의와 중산층의식을 통해 포섭했고, 전세계으로는 저발전국가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보여주면서 성공을 거듭해왔다. 여기서 자유주의는 언제나 보수주의와 민중세력 사이에서 '중도세력'을 자임하면서, 역사는 조금씩 천천히 진보한다고 주장해왔고, 이념보다는 실용적인 성공을 통해 스스로의 정당성을 획득해왔다.
그것이 세계적으로 표현된 것이 이른바 '반공발전주의'이다. 즉 자유세계의 일원으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미국의 지원 하에 미국과 같은 수준의 발전 혹은 근대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래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신보수주의 세력은 이러한 세계적 축적 경로에 대해 강력한 반격을 수행했다. 그들은 자유주의적 실용주의를 보수주의적 이념으로 대체할 것을 호소하고, 종교적 경건성과 도덕적 재무장을 주창했다.
또 이들은 빈민과 실업자들을 도덕적으로 해이한 집단으로 낙인찍고 이들의 사회적 권리를 없애자고 주장했다. 경제적으로 긴축재정을 통해서 국가의 재정부담을 줄이고, 고이자·고달러 정책을 통해서 금리생활자와 초국적 은행의 이해를 대변하고자 했다.

하지만, 고금리·고달러 정책은 남미의 외채위기를 낳았으며 미국의 금융체제는 붕괴될 뻔했다. 초국적은행은 축적의 뒷무대로 퇴장하고 초국적기업들이 주식시장을 매개로 해외직접투자를 추진하였다. 여기에 연금기금과 뮤츄얼 펀드 등이 이러한 금융적 축적에 동참하면서, 다시 한번 월스트리트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자유주의 세력이 힘을 얻게 된다. 그 결과 민주당은 '주식시장'에 근거한 금융팽창과 전세계적 구조조정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즉 부채의 상환시기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식으로 전환하여 시스템의 붕괴를 지연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신자유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는 전후 호황기의 자유주의와 결정적인 차별점을 갖는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는 황금기의 자유주의처럼 전체 국민대중을 포섭할 수도, 전세계 자유국가를 포괄할 수도 없는 '위기의' 자유주의, '타락한' 자유주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자유기업주의에 입각해서 자본의 '금융세계화'를 정당화하고 그것에 기반해서 '배제와 포섭'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이데올로기이다. 그것의 구체적 정책은 저금리·저달러 정책을 통해서 주식시장을 부양하고, 이를 매개로 M&A 등의 해외직접투자를 추진하며, '금융적 부'를 수취하는 것이다. 또한 민중들에게도 역시 배제와 포섭의 이중적 전략을 구사하여, 모든 '자유세계'가 아니라 특정 국가의 특정국민 혹은 '가계'의 일부분을 주주로 만들어 금융체제에 빌붙어먹게 (trickling down) 만드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이는 상당한 취약성을 가지는데, 왜냐하면 군사적 분쟁 및 사회적 갈등이나 노사분쟁은 곧바로 금융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입되는 것이 이른바 '사회적 안전망'이나 '생산적 복지'이다. 이는 전국민의 복지권 혹은 사회적 시민권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100명중에서 10개의 일자리를 놓고 노력하는 자' 혹은 사회적 불안정요인이 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표명하고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별적 관리망이다.
이는 빈민과 실업노동자를 '무능력자'로 몰아붙이는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 사회적 관리비용을 최소화한 사회정책이라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와 NGO의 등장

그러나 오늘날의 자유주의가 타락한 자유주의일 수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는, 자유주의의 '황금기'와는 달리, 자본축적이 더 이상 국민들의 다수를 포섭해낼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마치 피라미드식 판매기법처럼 팽창하는 금융의 세계화 속에서, 이 사실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드러난다.

하나는 더 이상 생산부문에서 안정된 일자리, 높은 임금, 다양한 사회경제적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세계화와 함께 개별국가들이 자국의 경제정책, 특히 자국 금융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특히 후자는 의회의 기능을 축소시키며 심지어 자유주의적 의회정치체제의 위기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적 의회체제가 실제로 다양한 사회세력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정책의 실물적 기초를 확보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러한 실물적 기초를 포기한 상황에서, 오늘날의 의회정치는 미디어와 상징에 의존하는 '대중조작적 민주주의'로 향하는 경향성을 갖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자유주의는 사회적 관리와 통합을 가능한 효율적인 방식으로 추진하면서, 동시에 대중들을 지속적으로 동원해내기 위해 새로운 관리전략을 추구하게 된다.

그리고 제3세계 중 적극적 포섭전략에 포괄되고자 하는 국가 -- 예를 들어 중앙아프리카의 국가들이나 동유럽 대다수 국가를 제외하고 -- 의 경우, 이러한 관리전략에 더하여 '구조조정'과 미국식 금융체제가 이식되는 것에 대해 대중적 지지를 적극적으로 조직해내야 한다.
즉, 미국과 IMF를 활용하는 초국적기업과 각종 펀드들은 소액주주운동이 활성화된 주식시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결국 한국사회를 비롯한 전세계적으로 많은 NGO들은 바로 이러한 구조조정의 지지자이자, 갈등을 효율적으로 조정하는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에 내재한 이 특성을 '관리주의'라 칭하고자 하는데, 그 핵심에는 사회적 갈등을 관리함으로써 대중을 동원한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여기서 '관리'는 갈등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보수적 회귀보다는 일정한 경제적 합리성과 실용적 포섭에 호소한다는 면에서 보수주의와 구분된다.


한국에서의 자유주의와 NGO

불행하게도, 한국민족의 역사는 단 한번도 자유주의나 보수주의 등과 같은 이념적 전망 및 그에 근거한 정책적 논쟁의 경험을 가지지 못했다. 주지하다시피, 이는 6.25라는 내전과 이에 따른 남북의 이념적 대립, 나아가 이러한 대립을 국제적으로 고착화시킨 냉전체제 등에 기인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 냉전체제하에서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지원과 구조적 종속이라는, 어쩌면 동전의 양면과 같은 발전전략을 수립해왔다. 사실 이러한 발전전략에서 국가는 불가피하게 재벌과 같은 집단으로부터 스스로의 정당성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반공=발전'이라는 도식이 성립한다. 즉 한국 민족이 살아남는 길은 반공에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발전을 제공해주기 때문이고, 또 역으로 오직 발전만이 남한체제의 정당성을 회복해줄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사회의 보수주의 즉, 군부독재의 논리였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단 한번도 '자유주의 세력'이 하나의 집단적 정치세력으로 형성된 적이 없다. 반공과 발전에 근거를 둔 사회적 동원체제하에서, 이에 저항하는 어떤 대중운동이라도 억압받았고 그 결과 '절차적 합리성'이나 '이해관계의 조정' 등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설사 이러한 군부독재 체제의 국민통제전략에 '관리적' 측면이 있었다면, 그것은 '가족주의'의 사회적 확장형태, 즉 가부장적 온정주의였다. 엄격한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억압적인 형태로 애정을 표현하듯이, 혹은 군대의 병장이 이등병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동시에 애정을 표현하듯이, 전사회적인 보수적 통제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이러한 체제 속에서 발생하여, 1987년을 전후로 폭발한 민주화운동은 여러 가지 면에서 복합적인 성격을 띠었다. 기실 부분적으로는 이미 전두환 정권초기부터 진행된 자유화정책이 낳은 효과이기도 했다. 즉, 전두환 정권이후부터 재벌세력들을 중심으로 이른바 '시장세력'을 지원하는 정책들이 추진되어온 것이다. 동시에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느끼는 - 사실 어느 누구도 중산층에 대한 객관적 기준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 사람들의 사회적 불만은 '자유화'에 대한 요구로 수렴되었다. 최소한의 합리성과 자유민주주의적 절차에 대한 요구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운동 속에는 이와 구분되는 민중적 요구들도 존재했는데, 그것은 분명하게 자유와 평등을 가로막는 사회적 조건들을 민주화하려는 요구였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종속적 축적구조, 노동에 대한 자본의 절대적 통제력 등을 제거하려는 요구였다.

1987년 이후의 사정은 누구나 알다시피 자유주의 세력과 민중운동 진영의 분화의 역사였다. 자유주의 세력은 의회내 자유주의세력과 민중운동내부의 급진자유주의세력 사이에서 끊임없이 분화되는 과정을 겪어왔다. 반면 민중운동세력은 나름의 독자정립 노선을 추구해왔으나, 1991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해체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상황에서 이른바 '문민정부'의 출현 이후 수구와 개혁의 대립을 핵심으로 한, 자유주의 세력의 재결집이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소위 386세대를 개혁적 자유주의세력으로 규정해내면서, 자신들의 지지기반으로 구축해냈고, 그에 걸맞는 모호한 합리성과 개혁성, 실용성 등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창조해냈다. 이들에 따르면, 이제 한국사회는 군사독재의 시대를 지나, 누구나 자신의 견해와 이익을 공개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대가 도래한 듯하고, 이에 저항하는 기득권세력들을 제거하는 일만 남은 것 같았다.

이렇게 볼 때, 한국사회에서 NGO가 등장하고 활성화된 것은 바로 YS와 DJ정권을 계기로, 자유주의 세력이 정치적으로 자기세력을 형성한 과정과 맞물려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또 다른 아이러니, 즉 YS와 DJ정부의, 나아가 한국 자유주의의 역사적 한계를 이해할 수 있다. 즉, YS와 DJ는 모두 보수주의 세력과의 연합을 통해서만 정치적 지배세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한국의 자유주의 NGO는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갖게 된다.

즉, 한편으로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꿈인 건강한 시민사회의 건설이,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와 국가 영역에서 보수주의 세력에 대한 공격이, 동시에 요구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국가-시장-시민사회'의 균형잡힌 상호관계의 형성, 활성화된 시민사회, 시민사회내 영향력의 정치 등과 같은 이상으로 제기된다. 이에 따라 시민운동은 '시민사회의 파수꾼'으로 규정된다. 이 입장은 결국 '국가'는 내버려두고 시민사회의 이해와 갈등을 조정하고 대중들을 '시민의 이름으로' 동원하는 역할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후자의 경우는, 보수주의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정치개혁의 선두에 설 수밖에 없다는 노선이다.

이 경우, 그들은 시민사회의 공론을 조직할 뿐만 아니라 국가운영에 참여하는 적극적 역할을 스스로 자임한다. 즉, 자유주의의 대의 하에 적극적으로 대중들을 동원하고, 이에 근거해서 '참여와 공생'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시민운동

그렇지만 이른바 '시민사회의 파수꾼'으로서 시민운동은 가치중립적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민중운동의 자유주의화, 탈계급화, 부르조아적 시민화'을 지향하는 가치함축적인 표현이다. 모든 시민운동론자은 시민운동이 특정한 집단의 특수한 이해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이해'를 대변하려는 운동이라고 말하며, 그 보편적 이해는 종종 '공익' 또는 '공공선'으로 표현된다.

그들의 논리를 따른다면, 시민운동은 단순한 계급적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공공성의 실현을 지향하는 운동이며, 오히려 노동운동은 시민사회운동의 일부이나 그것과 분리된 계급이익을 추구하는 운동인 것이다. 물론 그들 중에는 계급적 이해의 대립이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중심적인 대립축이라고 말하는 논자들도 있으나, 그들 역시 '계급이해는 시민일반의 이해와 공유되는 영역과 독자적인 영역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운동은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과 대중적 기반을 갖는 운동들에 대해 '차이'가 아닌 '동질성'을 부각시킨다. 그 동질성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으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진정한 시민의식을 가진 국민적 개인으로서 활동한다는 의미에서의 동질성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민운동은 필연적으로 NGO운동으로 확장된다.

NGO를 큰 형태로 분류하자면, 자발적으로 조직된 주체들의 특수한 이해를 대변하고 추구하는 운동이냐, 사회의 공익적 요구를 대변하고 추구하는 운동이냐로 나눌 수 있으며, 후자의 경우가 시민운동의 논리이다. 시민단체는 NGO의 소극적이고 정치적인 표현이라면, 이제 NGO는 시민단체의 노골적이고 확장된 표현에 다름아니다. 이제 시민운동을 하는 단체들은 각자가 내세우는 공익의 아이템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로비와 활동력에 의해 변별점을 가질 뿐이다.
이러한 시민운동적 논리에서 과거의 YMCA와 현재의 참여연대가 무슨 본질적 차별성을 가질 것이며, 또한 차이를 분석하고 평가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만약 의미가 있다면, 그 단체의 선구적인 활동방식과 체계 그리고 나름의 조직적 노하우를 벤치마킹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시민운동은 민중운동과 대립하면서 등장한 운동이다. 전통적인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사회구조적 모순과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관리를 지향하는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그런 점에서 '공익'의 논리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다양한 사회 이익집단의 요구를 조정하는 논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공익'이라는 용어를 노사갈등의 현장에서, 중재자의 외양을 띤 정부의 논리 속에서 수없이 듣고 보고 부딪혀왔다. 계급갈등과 투쟁을 이해다툼으로 전락시키고, 이를 공공의 이익(공익)을 파괴하는 행위로 비판하면서 타협과 화해를 요구하는 것-사실은 노동의 항복-이 공익의 실체이며, 공익집단(정부 또는 사회적 지위와 권위를 가진 중재집단)의 모습이었다.

과거에는 공익의 담지자가 정부 또는 공적 기관이며 공익을 관철하는 수단과 방식이 대단히 억압적이었다면, 현재 공익의 담지자는 시민운동이며 이를 관철시키는 수단은 그들의 영향력과 사회적 합의를 통한 압력이다. 또 그 양상은 과정에서의 절차적,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시민단체의 이러한 태도가 드러난 대표적인 경우가, 작년 지하철노조의 파업투쟁때이다. 지하철파업의 핵심적 성격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한 반대투쟁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파업 당시,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은 파업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아니면 유보적이고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 시민운동에게 파업사태의 본질은 지하철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공익-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이해-을 위해서 사용자와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중재하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즉 이들에게, 파업 원인에 대한 구조적 분석과 이에 근거한 당파적인 태도는 편협한 것이며, 대립과 갈등-그것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부차적이다-을 중재하고 해결하는 것만이 공익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거꾸로 바라본다. 파업이 발생한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구조적이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로 공익이며, 이용자들의 불편은 부차적인 것이다. 동시에 노동조합의 자주적 권리와 파업권은 무엇에 의해서도 부정되거나 훼손되어서는 안되는 기본권이며, 누군가의 불편함이 이를 부정하는 이유가 되어서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례가 일회적이거나 특수한 것이 아니라 시민운동의 논리 속에서 필연적이며, 일반적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관리주의와 전문가주의

전세계적으로 관리주의의 주체는 세계적 NGO를 기반으로 하며 그 결과 한국의 신자유주의세력은 해외로부터 이슈를 적극적으로 수입하는 것에 민감하다. 역설적으로 한국의 국가와 NGO는 양자 모두 서로 다른 경로로 세계적 NGO로부터 같은 정책들을 수입하고 있다. 또한 관리주의는 현재 존재하는 사회적 갈등과 모순을 부정하거나 보수적이고 물리적 방식에 의존하는 해결방식을 회피한다.
이것은 갈등의 법률적 관리와 전문적 지식, 미디어를 통한 관리방식을 선호하며, 실용적이고 정책적인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갈등을 해소하려 하기 때문에, 정부와 국가에 대한 '영향력'이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이렇듯 관리주의는 공익소송과 같은 법률적 매개수단을 보편화·절대화시키는 법률주의, 전문적 지식에 기반한 정책의 입안, 갈등의 중재를 일상화할 수밖에 없는 전문가주의를 내부요소로 하고 있다.
일례로,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실업문제에 대한 실천방안들 중에서 우리는 이러한 관리주의적 경향성을 볼 수 있다.

실업문제에 대한 대응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실업노동자를 조직하고 이를 노동자운동의 주요한 내적 계기로 전환하려는 운동-이것은 실업으로부터의 자유를 지향하는 노동자적 권리-이다. 두번째로 실업은 경제위기의 불가피한 산물로 이해하고, 이것의 사회적 파괴효과를 최소화하려는 운동-이것은 실업자에 대한 관리정책의 하위범주이다-이 있다. 후자의 흐름에서 실업노동자는 조직화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 될 뿐이며, 능동적인 실천적 주체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것이 관리주의적 측면의 사회적 효과이다.

이렇듯 관리주의로서의 시민운동은 노동자와 민중을 정치적 주체로 형성하기보다는, 개별 시민으로 분산시키고, 다시 이들을 압력집단으로 재조직하는 양상을 보인다. 결국 시민운동은 비계급적 의제에 대한 계급적 개입이 아니라 탈계급주의, 반계급주의운동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니 전문가주의니 혹은 법률주의니 하는 것들은 NGO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그 구조적 특성과 분리할 수 없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것의 또 다른 귀결은 대중들을 스스로의 지성과 판단에서 분리시키는 것이다. 즉, 전문적 지식과 법률적 실현가능성 등등이 과학적 인식과 도덕적 판단 등을 대체하게 된다. 사실 이는 이념의 부재 혹은 '자유주의적 이념의 은폐'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NGO의 관리자적 성격이 전형적으로 나타난 예를 신자유주의 재편하의 라틴아메리카에서 찾을 수 있다.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 라틴아메리카 전역에 걸쳐 NGO가 급증하였으며 그들의 주요한 역할은 개발 계획의 입안자이자 이를 실행하는 대리인역할이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경제위기가 NGO가 확장하는데 기여한 주요요인이 된 것이다. 즉 국가정책의 전환과 연결된 정치적이고 제도적인 변화는, 빈곤의 격감과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에서 정부의 대안적 집행자역할을 NGO에게 부여했다. 이렇듯 '발전NGO'라는 이름으로 관리주의의 주요주체로 기능하는 시민운동과 NGO운동의 전례를 라틴아메리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시민운동을 넘어

자유주의와 관리주의는 분명히 보수주의나 군사주의적 문화와는 구별된다. 그러나 20 대 80사회가 도래한 오늘날, 그 함의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그것은 결국 25 대 75 혹은 30 대 70에 대한 욕망과 배제된 자들의 근시안적인 궁여지책이 결합한 것, 그것일 뿐이다. 배제된 자들 일부는 열심히 노력해서 30의 대열에 들어갈 수 있다. 또 그렇지 못한 자는 눈앞의 생존을 위해서 권리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관리대상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다음 세대를 위한 희망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를 통찰하는 혜안과 그것에 근거한 사회운동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상식과 소박한 지혜를 믿는다면, 대중운동은 결코 법률이나 전문적 지식으로 해결될 수 없다. 오히려 대중적 운동은 대중들 스스로의 지혜를 강화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금융적 거품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는 없다. 모두가 무의식 중에 알고 있는 것처럼 IMF 구제금융을 통해 구조조정을 진행한 어떤 나라도, 금융위기를 지속적으로 겪어왔다. 전국민이 언제 꺼질지 모르는 주식거품에 모든 생업을 잊고 부나방처럼 뛰어드는 나라에서, 어떻게 안정적인 내일을 기약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우리의 사회운동은 현재 사태의 원인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정치적 허무주의, 불안정 노동의 확산 등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를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 원인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현재의 모든 사태는 '관리'되고 '변형'될지는 몰라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또 그 원인들이 없어지지 않고서는 사회적 불평등과 불안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이 없는 모든 실용적 미사여구는 자기기만과 허구에 불과하고, 대중의 허무주의를 심화시킬 뿐이다. 어떤 사회운동이 어떤 희망을 실현하려면, 어떤 조건과 구조들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가를 먼저 명확히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그 조건과 구조의 변형 없이는 어떤 희망도 달성될 수 없다.

결국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운동의 전략을 둘러싼 문제로 귀결된다. 다시말해, 시민운동적 전략과 민중운동적 전략이 무엇이 다르며, 누가 대중운동을 전취하고 실질적으로 결합하는가의 문제로 돌아 온다.
이 점에서 한국사회의 NGO론자들의 주장 즉 "전투적 노동운동과 진보적 신사회운동이 동맹하는, 세계운동사적 전형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토양이 한국 사회운동에 존재한다"는 주장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은 과학적 사회주의와 노동자운동의 결합이라는 전통적 전략구도에 대한 대항 테제이자, 자유주의(시민운동)와 노동운동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제도화되고 체제의 일부로 전락한 진보정당, 조직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이해를 대변하는 협소한 계급대중조직과 시민의 이름으로, 공공선을 추구하는 시민운동'이라는 운동의 벨트가 형성되느냐? 아니면 '급진적이고 대중적인 진보정당, 협소한 조직이기주의가 아니라 사회운동적 노선을 분명히 하는 계급대중조직과 정치적이고 급진적인 사회운동'의 벨트가 형성되느냐의 문제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예상하고 분석할 과제가 아니라 투쟁과 실천의 과제이며, 경향성과 전략노선의 투쟁일 수 밖에 없다. 몰락의 길이 아닌 전진의 길을 가기 위해 각자의 노력과 투쟁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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