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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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5.7/8.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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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_책과나_이유민.hwp

고장난 세상에서 너구리를 만난 듯이...

『카스테라』,박민규지음, 문학동네

이유민 | 회원, 노무사
1.
어느 날 우연히 TV 화면에서 노홍철을 만났다.
알록달록 삐까뻔적한 의상에 희한한 헤어스타일의 웬 연예인이 온몸을 흔들어대며 당최 알아먹기 힘든 말들을 마치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당연하게도 속으로는 '공중파에 저런 놈이 나와도 되는 거야??'라는 말을 되 뇌였다.
그런데... 한번 두 번 만나는 횟수 늘다보니, 처음의 당혹스러움이 점차 친근감으로 변해가더니... 어느새 노홍철의 황당무계한 장광설과 정신 사나운 제스처에 나는 젖어버렸다!
감동이나 카타르시스는 없다. 그리고 사람을 낄낄대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에게는

2.
돌아보니, 노홍철에게서 느꼈던 감정과 비스무레한 감정을 느끼게 했던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박민규!

내가 박민규를 처음 소개받은 것은 옛 친구의 홈피에 실려 있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대한 짤막한 평을 통해서였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탐독한 수많은 이들도 잘 모르겠지만 (작가인 박민규도 모르는 듯) 프로야구 원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연고지는 인천만이 아니라 나의 고향인 춘천이기도 하였다. 솔직히 삼미하고 춘천하고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삼미 슈퍼스타즈는 당시 인천의 수많은 국민학생들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수많은 춘천의 국민학생들에게 동경과 좌절을 연달아 안겨준 팀이었다.

당시 5천원의 거금을 들여 어린이 회원에 가입함으로써 삼미슈퍼스타즈로부터 꿈과 희망은 고사하고 처절한 아픔과 패배를 선사받았던 기억이 선명한 나로서는 새삼 박민규라는 인간이 꺼내든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단어가 대단히 거북하고 당혹스러웠다. (솔직히 더욱 거북하고 당혹스러운 것은 당최 문학하고는 영 거리가 먼 듯한 그의 사진이었다)

그래도 별 다섯 개쯤은 쉽게 주겠다는 친구의 찬사에 '나의 삼미 슈퍼스타즈'와는 너무도 다른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를 만나던 날. 난 지하철에 미친 넘 취급받으면서 낄낄댔다!
(다만, 노홍철과 박민규가 다른 점은 감동과 카타르시스가 '약간'은 있었다는 점이다.)

3.
「카스테라」는 내가 만난 박민규의 두 번째 작품이며, 총 10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카스테라」는 전작인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만큼 「카스테라」에서의 박민규의 사진은 여전히 거북하고 당혹스러우며, 현실과 몽환을 넘나들며 종횡으로 내달리며 그야말로 뒤죽박죽의 글을 선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읽는 이를 곤혹스럽게 한다.

그래도 박민규는 변함없이 이 사회의 수많은 삼미 슈퍼스타들의 무기력하고 애절한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고, '부자들의 수학'과 '가난한 자들의 산수'로 뚜렷하게 나누어진 못마땅한 자본주의 사회를 살짝쿵 비꼬아주는 위트와 센스를 유지하고 있다.

4.
사실 박민규의 소설에는 '앞으로 어찌어찌하면 잘 될꺼야!'라는 식의 희망은 없다.
다만, 현실에 대한 긍정과 위안이 있을 뿐이며 주로 그 매개체는 삼미슈퍼스타즈나 너구리, 관짝같은 고시원, 대왕오징어, 오리배 등과 같은 멀지 않은 과거의 소소한 소품 또는 빛바랜 기억들이다.
그래서 약간은 공허하지만, 어쨌든 이 사회가 열패자라 낙인찍은 수많은 이들에게 힘겨운 삶을 살아낼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험회사 외판원들이 제시하는 'Life Cycle Plan'이라기 보다는 이전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오며 삶을 긍정케 만드는 과거의 기억들이지 않은가.

5.
박민규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중 현실에 직접 맞부딪히며 싸우는 이들을 찾아볼 수는 없다. 아마도 박민규한테 왜 그런지를 물으면 「삼미 슈퍼스타즈 마지막 팬클럽」에서 '누구나 다 프로가 될 필요는 없잖아?'라고 말했듯이 '누구나 다 투사가 될 필요는 없잖아?'라고 반문할지도...
바로 이 지점이 박민규의 한계라는 점은 명확하나, 어쨌든 그 덕분에 박민규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한편으로 더욱 현실적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카스테라」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또한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지만 그래도, 모두들 현실과는 동떨어진 무언가(그것이 너구리가 되었건 아니면 대왕오징어가 되었건 간에)를 매개로 하여 현실에서 일탈하는 상상을 한다는 것이고 때로는 엉뚱한 상상을 통해 현실에 대한 촌철살인의 풍자를 보내기도 한다는 점에서 「카스테라」의 뒷맛은 분명 유쾌하다.

냉장의 세계에서 본다면 이 세계는 얼마나 부패한 것인가
[카스테라 中]

잭 필드 4색3종 선택 면바지 세트를 구입한 사회학과의 선배는 마침 그중 베이지컬러를 골라 입으며 이렇게 얘기했다.
아무래도 자본주의는 <39,800원>이 아닐까 싶어. 나는 요새 왜 자본주의는 <40,200원>이 될 수 없을까, 에 대해 골몰히 생각중이야.
[몰라몰라, 개복치라니 中]

6.
일 년 남짓 전에 누군가는 박민규의 전작인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가장 큰 미덕은 '재미있다'고 말하였던가! 이번 「카스테라」도 물론 재미있다. 다만 무규칙 이종 예술가라 불리는 박민규인 만큼 약간 정신없다.('정신없이 재미있다'로 오해하지 마시길...)
어쨌든 내게 있어 여전히 박민규의 글은 고장 난 세상에서 만난 너구리이다.
"모두들 마음속에 있는 너구리 한 마리 몰면서 살아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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