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5.9.57호
첨부파일
57_오늘여성_문설희.hwp

2005 여성캠프를 다녀오다

문설희 | 회원/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문득 이런 생각 해봤어
이 욕심 많은 세상에
그대가 여기 없었다면
난 얼마나 허전했을까

나도 그런 생각 해봤지
이 어지러운 세상에
그대가 여기 없었다면
난 얼마나 흔들렸을까

구르는 돌처럼 세상에 던져져
그 어설픈 작은 위로가 나에게는 커다란 힘
함께 나눈 얘기들 나를 평화롭게 하지

-<소풍가는 날> 언니들의 '이런 생각'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의 여름캠프.

우리는 '해방을 향한 여성운동! 자율성과 연대를 실현하기 위하여~'라는 멋진 슬로를 달고 출발을 했다. 황금연휴의 고속도로는 꽉꽉 막혔지만, 김삼순이라는 캐릭터로 우리 여자들을 씨원~하게 해주었던 그녀가 출현했던 영화들을 감상하며 수다를 떨 수 있었기에 답답하지는 않았다. 4시간이나 걸려 가평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바로 이어진 물놀이. 물살이 꽤나 거친 강의 복판으로 진입하여 다이나믹하게 유희를 즐기는 이, 발목만 물에 담그고 유유자적 광합성을 즐기는 이, 강바닥의 생물들을 채집하며 홀로 여유를 즐기는 이…. 여성위원들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물가에서의 한때를 보낸 후, 광주에서 먼 길 달려오신 강연자 선생님의 도착으로 본격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정향자 선생님은 사회진보연대에 대해서 들어본 바도 많지 않고, 저 이들이 왜 광주의 나에게까지 강연을 요청할까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20-30대 여성 활동가들의 요청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뜻 강연을 승낙하셨다고 한다. 희망이 있던 시대에 운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 시대에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이어주지 못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있었다는 후문.
"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혼도 하나의 상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당시에, 뭐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여성노동자들에게 있어 무기는 나이, 그거 하나밖에 없었죠. 그때 결혼 적령기는 21~23살이었는데, 아무리 열심히 싸우고 잘 조직되어놔도 금방 다 결혼하고…. 2~3년 주기로 계속 그런 일이 반복되고 마는 거예요. 동지로 같이 활동하다가, 어느 날 떠나고…. 떠나고 떠나는 일들이 반복되는…. 그래서 저희들이 생각하기로는, 우리 한 세대 정도는 결혼하지 말자, 그랬거든요. 그러면 나이 들어서 어떻게 하냐, 공동체를 꾸려서 함께 살자, 그런 약속을 했었어요."
전남의 실크 만드는 공장에서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20대를 보내고, 서른 즈음에 광주항쟁을 겪고….
정향자 선생님은 누에가 실을 짜내듯 천천히 당신의 삶과 운동을 풀어내셨다. 신명나게 투쟁했던 그 시절 이야기가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고, 고달프게 살아왔던 그 당시 이야기에 가슴이 저려오기도 했다. 특히 여성으로 살아가고 투쟁하는 게 그 때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는 공감대는 반가운 것이기도 했고 서글픈 것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소위 왕년에 투쟁했던 선배활동가가 "여성으로 살기 고달프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있으니 버티고 사는 것"이라며 "이 모임을 앞으로도 잘 꾸려나가 보아요"라고 진심으로 격려해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뭉클한 시간이었다. 그러한 인정과 격려는 좀처럼 받아보지 못했기에. "당신들처럼 젊은 여성들이 계속해서 노동자의 문제, 여성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해나간다는 것이 나는 참 좋다"며 선생님 당신은 외도하지 않고 활동가로서의 황혼을 잘 마무리할 테니 우리들은 계속 함께 투쟁해나가라는 말을 몇 번이고 당부하셨다. 그리고 광주에 들릴 일 있으면 꼭 연락하라고 이후의 만남을 기약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정향자 선생님이 남기신 훈훈함은 뒷풀이 자리로까지 이어졌다. 선생님의 따스한 이야기를 곱씹으며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많은 논란이 되었던 부분은 역시나 결혼(과 출산, 육아 등)에 대한 것.
'한세대는 결혼을 하지 말고 앞뒤 세대 여성활동가들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자했던 당시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정향자 선생님은 어이하여 결혼을 하시게 된 것일까'라든지ㅡ'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활동가 남성과는 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는 이야기의 진의라든지ㅡ선생님의 친구 분이 나이 마흔에 7살 연하의 후배 남성 활동가를 조직하여 결혼을 했다는 사례가 던지는 시사점이라든지ㅡ우리는 각종 주의주장들을 펼치며 보다 선명해진 고민을 풀어내었다.
나는 한 선배언니 생각이 부쩍 났다. "설희씨, 내가 이러저러한 상황에 처했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은 결정일까요?" 어느 토요일, 답답한 심정을 내게 문득 털어놓던 그 언니의 결혼은 우리 모두의 고민이었다. 그러나 현재적으로 그 문제는 여전히도 개인의 판단과 결정에 맡겨질 수밖에 없는 노릇임을 씁쓸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축복을 빌어주는 수밖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쨌거나 혼자 판단과 결정을 내렸던 언니의 모습과 그런 언니를 바라보며 쓸쓸해졌던 우리의 모습이 번갈아 아른거리면서, 그 언니 말고 다른 선배언니들도 결혼을 하게 되면 나는 더 쓸쓸하고 외로워지지 않을까 나의 몇 년 후는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들이 술기운과 함께 어지러이 드나들었다. 진정, 여성이 제대로 살고 오래 활동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고립되거나 이탈하지 않고 계속하여 좋은 이들과 함께 변혁을 실천해내는 삶을 일구어나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러한 조건을 위해 우리는 어떤 투쟁을 해나가야 하는 것인가?
물론 강연에서 뒷풀이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길고 긴 발제로 유명한 사회진보연대의 토론시간을 빠뜨릴 수는 없었으니까. 정향자 선생님이 더욱 선명하게 만든 우리의 고민과도 직결되고, 출발할 때부터 내걸고 온 우리의 슬로와 관련되는, '새로운' '여성운동'의 '출현'을 위한 '모색'을 진행하였다. 여성이 모인다는 것 그 자체로 새로운 여성운동이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결국 여성의 문제를 운동의 보편적 의제로 삼으며 사회구조 전반을 재조직하고 대안적 공동체를 구성해내는 투쟁이 필요할 터인데, 이러한 투쟁에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는 또한 어떠한 몫을 해낼 것인가? 2003년 준비위 시기를 거쳐 2004년 구성되었고 2005년 현재 끊임없이 활동의 정형과 운영의 원리를 계발해내기 위한 노력을 기하고 있는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우리의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우리의 고민은 의미 있는 실험과 실천 속에서 풍부해지고 예리해질 것이다. 새로운 여성운동의 출현을 위한 여성캠프에서의 모색은, 하반기의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을 적극적으로 유의미한 '기회'로 만들어내고 그러한 기회가 남긴 성과들을 이후의 '일상적 실천'으로 이어나가도록 하자는 결의로 일단락되었다. 밤은 짧고, 우리는 또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 나갈 것이니까.
주제어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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