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5.1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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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부터 노동자운동의 혁신을!

박준형 | 회원, 공공연맹조직부장
민주노총의 핵심지도부인 수석부위원장이 사용자의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후, 민주노총은 내부적으로 큰 혼란에 휩싸였다. 지난 21일,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 등 지도부의 일괄사퇴로 강승규 수석부위원장 비리혐의 구속으로 인한 사태는 한 시기를 넘겼다. 민주노조 운동의 원칙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집행부가 책임지고 사퇴할 것을 많은 활동가들이 요구했고 사회진보연대도 이와 같은 입장을 가졌다. 그러나 이제, 이수호 지도부가 퇴진한 상황에서 민주노조 운동의 기풍이 서고 노동자운동이 혁신될 가능성이 열리는 것일까? 강승규 수석부위원장 구속 이후 급박하게 전개된 지난 10여일 상황의 대차대조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수호 위원장 사퇴 이후 남겨진 것

이수호 위원장을 포함한 지도부 사퇴 기자회견은 몸싸움과 피켓팅 가운데 결국 보도자료로 대체되었다. 지도부의 사퇴 성명은, 자신들의 사퇴가 강승규 수석부위원장 비리 사건에 대해 보다 진실하고 전면적인 책임을 지기 위해서이거나 혹은 현장의 민주적인 요구 때문이 아니라, 이른바 (금속, 공공 등) '거대 연맹'이 하반기 투쟁을 책임질 수 있다고 결의했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반기 투쟁에 대한 책임을 미루는 데 급급할 뿐 진정으로 자신들의 사퇴가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에 밑거름이 되어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곧 이은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에서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조직적 위기를 봉합하기 위한 수준이었다. 책임을 분산하고 정치세력 간에 서로를 견제하기 위한 구도로 짜여진 비대위는 지도력과 집행력을 갖고 하반기 투쟁을 조직하는 역할이나 논쟁 과정에서 제기된 노동자운동의 혁신을 위한 실천은 고사하고 비리척결 등 당면한 조직 내 혁신과제마저 수행하기 힘든 구조로 만들어졌다. 지도부 사퇴를 요구하며 사직서를 제출한 민주노총 사무총국의 간부들은 중집위에서 전원 사직서가 수리됨으로써 민주노총의 집행력도 더욱 취약해진 상태다. 비정규직 권리입법 투쟁을 제대로 진행하고 투쟁의 의미를 확실히 하자는 취지에서 제안된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의 비대위 참여문제는 제대로 제기되지도 못하고 정리되었다.
이수호 지도부의 사퇴논란부터 비대위 구성까지, 주류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이른바 '노동언론'까지도 전체 상황을 정파조직간 대립의 논리로 바라보고 보도했다. 인터넷 게시판의 논쟁뿐만 아니라 중집위에서도 노골적으로 갈등 전체가 정파간 갈등이라고 규정하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논쟁과정에서 활동가들 사이에 남은 것은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을 위한 과제에 대한 공동의 인식이 아니라 '정파갈등'이라는 대립구도였다. 이에 따라 당연히 활동가들도 모두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특정한 입장으로 해석되고 서로를 비방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활발하게 제기된 모든 입장은 '정파갈등'이라는 구도 속에 폭력적으로 침묵을 강요받았다.
그렇다면 이수호 지도부의 사퇴 이후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사퇴의 조직적 결과인 비대위는 투쟁도 혁신도 힘있게 추동하기 힘든 위기 봉합 구조로 짜여졌고 논쟁의 모든 의미는 정파갈등이라는 덧칠 속에 묻혀버렸다. 마지막까지 책임을 회피하는 지도부의 사퇴 입장 속에서, 민주노조 운동의 기풍을 세워야한다는 목소리도 공허한 외침이 되었다.
조합원들 역시, 이 전체 과정에서 대개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식의 냉소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적극적으로 민주노조 운동의 원칙을 세우고 혁신하자는 주장이 현장에서부터 제기되지 못했다. 지도부 사퇴 요구 자체가 정파적 요구로 채색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냉소는 더욱 심화되었으며, 이후 떠도는 노조간부의 추가비리혐의 소식을 들으면서 냉소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수호 지도부의 사퇴 이후, 정작 사퇴를 요구한 이유였던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은 어쩌면 점점 더 요원한 일로 보인다. 그러나 지도부 사퇴를 요구했던 대다수 활동가들은 단지 사퇴만 요구한 것만이 아니라, 이를 통해 노동자운동 혁신의 과제를 제기하려 했다는 점에서 다시 평가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전면적으로 관철되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실천이 필요할지 생각해볼 시점이다.

노조비리 : 민주노조 운동의 구조적 위기의 결과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 사건은 개인의 돌출적인 비리행위라고만 보기에는 힘든 것이었다. 그것은 노조운동 전반이 처한 상황에서 구조적으로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미 민주노조 운동이 태동 당시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민주노조라는 것의 '민주'는 민주적, 혹은 독립적/자주적이라는 의미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수사로 전락해 있다.
이미 많은 노조들이 조합원들이 투쟁으로 뭉치기 위한 단결체가 아니라 사용자와의 특정한 방식의 교섭과 타협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애초에 민주노조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던 남한의 독립적인 노동운동은, 이제는 사업장 단위에서는 개별 자본과, 전국적인 차원에서는 정권과 제도화된 교섭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실리적인 이해를 극대화하는 조직이 되어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조합원 대중이 투쟁을 통해서 계급으로 구성되고 그 단결을 확대해 가는 과정을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특정한 합의를 창출하고 교섭구조를 안정화하기 위해서 조합원(또는 비조합원인 비정규직)에 대한 통제를 증대하고 있다. 안정적인 합의구조를 붕괴시킬 것이 자명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이들 노조가 쉽게 수용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사업장의 자본가나 국가가 노동자운동을 길들이기 위해 가장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관료화된 노조조직의 지도자들을 매수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금전을 통해서, 혹은 임기만료 이후의 정치적 입지를 약속하고 매수한다. 또한 현장조직들에게 선거자금을 건네는 방식 등으로 노동조합 내부 정치에 개입하는 과정을 통해서 영향력을 확대하기도 한다. 이런 방법들은 이미 대공장노조들과 상급단체들에서 이미 일어나기도 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다. 노조비리는 민주노조 운동의 구조적 위기가 발현된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이번 비리 사건이 민주노조운동이 처한 조건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처방도 이에 걸맞게 이루어져야한다. 노동조합 간부들의 비리가 노동운동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점에서, 그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혁신이 이루어져야한다. 지도부 사퇴 요구는 이러한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을 위한 시작으로서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지도부 사퇴로 사태를 봉합하는 수순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기로 문제의 원인에 대한 대중적 토론을 활성화하고 대안을 찾아가기 위한 논의가 개시되어야한다. 그러나 현재 이수호 지도부의 사퇴 이후 상황은 이러한 방향과는 반대로 전개되고 있다.

지도부 사퇴와 함께 사라진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이라는 쟁점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민주노총 내의 각 정치세력들의 정파적인 접근이라는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 지도부의 진퇴가 어느 순간 원래의 의미를 떠나서 민주노총 권력에 대한 쟁점으로 전화되면서 모든 쟁점은 사장되었다. 모든 문제가 노조 상층 엘리트들의 권력투쟁의 일환이라면 현장 조합원들의 무관심은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그리고 현장의 무관심은 노조 상층 엘리트들이 권력게임에 몰두하는 것을 제어할 수 없는 조건을 만든다. 논란의 과정에서 이수호 지도부의 사퇴 요구를 정파적 요구라고 해석하고 정파간 대립으로 사태를 규정지은 사람들이 일차적인 책임이 있을 것이지만, 지도부의 사퇴를 요구한 측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논쟁의 과정에서 특정한 정파이기 때문에 문제라는 식의 문제제기가 계속되었고 인신공격에 서로 가담하는 과정이 있었다. 또한 조합원 대중으로부터 문제제기를 조직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층 논의기구의 쟁점으로 만들어가면서 정파적 대립구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해야한다.
이와 관련되어, 민주노총 지도부의 사퇴 논쟁이 단위노조 수준의 혁신이라는 문제와 연결되기 어려웠다는 것도 지적되어야한다. 지도부가 엄정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요구가 노조 상급단체 차원의 혁신요구를 쟁점화할 수는 있으나 그것으로 단위노조, 사업장 현장까지 포함하는 노조운동 전반의 혁신을 추동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노동자운동의 위기의 원인이 투명하게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민주노조 운동의 원칙을 다시 세우고 노동조합을 노동자'운동'의 기관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단위노조, 사업장 현장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혁신을 추동할 수 있는 대중적 기반이 구축되어야한다.
그러나 이번 논쟁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듯이 많은 노동조합에서 조합원까지도 이미 이러한 비리가 발생하는 구조에 (그것에 부정적이라고 하더라도) 익숙해있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대중적 세력이 아래로부터 형성되고 있지는 못한 상황이다. 자본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선별적으로 포섭하여 분할관리하기 위해서 기존의 노조 조직을 활용하기도 하고 상당수의 정규직 조합원들이 여기에 안주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적당한 타협과 관리의 조건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전투적인 투쟁이 민주노조 운동의 원칙을 복원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는 있겠으나 아직 그것을 전체운동의 과제로 전면화할 수 있는 상황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의 혁신운동과 만나야 한다

위로부터의 혁신노력은, 이번 사태와 같이 큰 상징성이 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그것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대중적 요구와 만날 때만 상급단체의 임원의 거취만이 아니라 운동전체의 구조와 기풍까지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과정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노조운동의 상급단체에서의 혁신을 위한 시도는 그것이 민주노총 위원장의 사퇴까지 가는 '충격적인 것'일지라도 그것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대중적인 혁신의 요구와 만나지 못했을 때, 그것은 아무리 멀리 나가도 상급단체 수준의 제도 개선과 지도부 교체라는 쟁점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쟁점은 필연적으로 노조 권력을 둘러싼 정파적 대립과 논란을 증폭시킬 수밖에 없다.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를 극적으로 드러낸 이번 비리 사건의 원인은 단지 개인의 품성문제가 아니라 노조 자체가 변화된 상황에 기인한다는 점을 위에서 언급했다. 투쟁을 통해 노동자계급을 형성해가기 보다는 적절한 교섭과 타협을 통해서 실리를 추구하고 이를 위해서 조합원을 관리하는, 노조운동의 전반적인 상황이 문제다. 그렇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를 현장에서부터 수립하고 하나의 대중적 운동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 이제 시작되어야한다. 그것은 비정규직 투쟁과 같이 정권과 자본이 타협할 수도 없고 타협할 의사도 없는 쟁점에서부터 운동을 활성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타협에 익숙해진 기존의 노조운동도 이 투쟁을 함께 하는 속에서 자신을 검증하고 변화될 수 있다.
그럴 때만 다소 뒤늦더라도, 민주노총 지도부의 사퇴를 제기하고 이를 통해서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을 추동하려고 했던 시도는 비로소 자신의 고유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사퇴 이후, 그것을 넘어서 애초에 제기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실천은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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