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5.12.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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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투쟁을 전국으로, 세계로!

APEC 투쟁 취재기

장진범 | 정책편집부장
양극화에 대한 노무현의 기막힌 해법1)

지난 11월 18·19 양일에 걸쳐 아펙 21개국 회원국 정상들은 부산 벡스코에서 두 차례의 정상회의를 갖고, '부산선언'과 'DDA 특별성명'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전자의 핵심은 지난 1994년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채택된 이른바 '보고르 목표'(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각각 2010년과 2020년까지 무역·투자를 자유화)를 재확인하고, 각국의 이행 의지를 다지는 것이다. 후자는 말 그대로 '2006년까지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의제(DDA) 협상이 조속히 타결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는 3주 남은 WTO 각료 회의를 겨냥한 것이다. 관련해 정부는 "APEC은 그간 DDA협상의 주요 고비마다 각료급 DDA 성명문을 채택하여 의미 있는 기여를 해 왔는데, 올해에는 6월 제주 개최 APEC 통상장관회의에서 각료급 성명문을 채택한 데 이어 금번에 정상차원의 성명문까지 채택함으로써 DDA협상 진전에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며 자평했다.
11월 18일, 공연비용 포함 최소 8억에서 최대 15억 짜리 궁중요리 만찬을 벌이면서, 노무현은 시장개방 지지를 전제로 한 '양극화 해결'이라는 참으로 오묘한 말을 한 마디 했다고 한다. 그 시간 수영교 건너편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민중들이 컨테이너 박스에 가로막히고 물대포에 쓰러지며 곤봉과 저 끔찍한 방패에 얻어맞고 있었다. 양극화의 아래편에 있는 민중들을 폭력적으로 차단하고 배제하는 것. 이보다 기막힌 양극화 해결 방안이 또 어디 있겠는가.

농민들의 울분: "당연히 나와야 되니까 나왔지, 왜 나오긴 왜 나와?"

11월 18일 부산 곳곳에서는 여러 집회가 열렸다. 오전 10시 부산대 앞에서 열린 '대안세계화를 향한 민중의 목소리' 집회를 시작으로, 12시부터는 광안역, 망미3거리, 광안리 만남의 광장, 토곡4거리 등지에서 농민·노동자·빈민·여성·지역/사회단체 등 부문대회가 개최되었다.
12시 고(故) 오추옥 열사 추모식으로 시작된 농민대회에서는 문자 그대로 '울분'(鬱憤)이 감돌고 있었다. 쌀 비준안 국회 통과와 WTO 홍콩각료회의를 눈앞에 두고 있었던 데다가(결국 쌀 비준안은 아펙이라는 부담스러운 일정이 끝난 11월 23일, 한때 농민의 '우군'이었던 전대협 출신 386 의원들의 주도 하에 통과되었다), 수백 명 농민을 다치게 하고 지난 11월 24일 끝끝내 전용철 농민을 열사로 만든 11월 15일 농민대회의 폭력 탄압 직후였으며, 당일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에 참여하려는 농민들을 출발지에서부터 경찰차량으로 막고, 전세버스 차량키를 탈취하고, 섬에서 뭍으로 통하는 하나밖에 없는 다리를 봉쇄하고, 톨게이트에서 차단하는 등 참으로 비상식적인 탄압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순하디 순한 농민이라도 이 지경이 되면 격분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떤 계기로 아펙 투쟁에 나오시게 됐느냐 라는 질문에, "당연히 나와야 되니까 나왔지, 왜 나오긴 왜 나와?"라고 반문한 진주의 한 여성 농민처럼, 농민들에게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은 관념적이라거나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말 그대로 '현안'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반대투쟁으로 시작해서 2003년 고(故) 이경해 열사의 피값으로 얻어낸 WTO 칸쿤각료회의 저지에 이르기까지, 농민들은 가장 선구적이고 가장 비타협적이고 가장 지속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을 해 왔기 때문이다.
아펙투쟁에 참가한 농민대중들은 11월 부산 아펙 회의가 DDA(도하개발의제) 협상을 진전시키려는 12월 WTO 홍콩각료회의의 전초전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또 보수언론과 지배엘리트들이 모욕적으로 지껄이는 것과 전혀 달리, 대책 없고 퇴행적으로 세계화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를 '부산시민'이라고 해 달라던 한 농민은 개방이나 세계화 자체는 대세라 치더라도 그것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얘기해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농민들은 개방 일반이냐 고립 일반이냐 라는 추상적이고 폭력적인 이분법을 들이미는 지배계급보다 훨씬 현실(주의)적이었다.
농민들은 11월 쌀 비준안 국회 처리 강행 기도에 깊이 분노하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이 국가가 농민들 편에 설 것이라는 헛된 기대 따위를 가져서가 결코 아니다. 지배계급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항상 핑계로 드는 저 '세계적 대세' 최근 WTO 협상의 난항에서 보듯 전혀 '대세'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지만 에 맞서, 칸쿤 때 그랬던 것처럼 홍콩에서도 저 무책임하고 의지 없는 정부 대신 농민들 스스로 투쟁하고 승리하겠다는 주체적 계획과 의지를 국회가 정면으로 가로막기 때문이다. 11월 쌀 비준안 국회 처리는 국가가 지금껏 말한 것처럼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농업과 농민을 포기한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냈고, 그에 반대하는 농민들에 대한 잔혹한 국가폭력과 살인은 '광주민중항쟁'과 '87년 6월 항쟁'은 물론 심지어 '갑오농민전쟁'이라는 봉기의 기억을 현재의 투쟁에 오버랩했다.
취재 과정에서 농민들로부터, 조상 대대로 지켜온 쌀을 우리 대에 끊기게 할 수는 없다는 말, 남한농민들은 (세계의 다른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식량주권과 민중의 생존이라는 대의를 위해 싸운다는 말, 유사 이래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지배계급들이 나라를 구한 적은 한 번도 없고 항상 농민을 비롯한 민중들이 들고 일어났다는 말 등을 들었는데, 그 말들은 하나같이 천근의 무게를 지닌 것이었다. 이처럼 대중들이, 전통과 주권과 책임 등 전통적으로 국가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관념들에 대한 국가의 권위를 부정하고 이런 보편성을 떠맡을 주체로 스스로를 호명하는 상황은 결코 예사로운 사건이 아니다. 앞으로 이 투쟁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 한국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과 관련하여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이 개인적인 느낌이다. 혹은 그렇게 하는 데 우리를 포함한 사회운동의 의무와 역할이 있을 것이다.

노동자운동과 대안세계화 운동의 마주침

한편 망미교차로에서는 민주노총 조합원 등 3,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노동자대회가 열렸다. 대회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노동자들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WTO DDA 협상에 교육개방이 현안으로 걸려 있을 뿐더러, '아펙계기수업'에 관한 공동수업안(흔히 '아펙반대교육'으로 호도되는)을 지배계급이 맹렬히 공격하면서 자의반 타의반 아펙반대의 중심에 서게 된 전교조 조합원을 만났을 때, 지금까지 잘 몰랐던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교육청이 올해 1학기에 아펙선전자료를 배포하면서 계기수업 및 그림대회 등 관련 문예행사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 자료가 아펙의 좋은 점만을 일방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느낀 전교조는 정부자료와 함께 반대측 자료도 함께 활용할 것을 조합원들에게 제안했고, 참고자료 중 하나로 아펙반대 부시반대 국민행동에서 제작한 아펙반대 동영상을 전교조 홈페이지 자료실에 등록했다. 이렇듯 일방적 홍보를 토론수업으로 바꾸려고 한 것이 지배계급들이 온갖 무시무시한 수사를 갖다 붙이며 비난했던 '반아펙수업'의 전말이다. 지배계급들이 생각하는 교육의 '중립성'이란 국가가 추진하는 정책을 곧이곧대로 선전하는 것이고, 그에 대한 이견의 목소리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소개하는 것은 곧 국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된다. 또한 단 한 번만 인터뷰를 해 보면 명백해질 사실을 확인조차 하지 않고 또는 심지어 확인했으면서도 국가와 지배계급들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 적거나 한술 더 떠서 전교조 죽이기에 나서는 것이 언론을 비롯한 이른바 '시민사회'의 작태다.
경기도 건설연맹과 인천 타워크레인 노조에서 온 노조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아펙 때문에 부산지역 건설현장이 모두 정지되었으며, 이 때문에 일용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외국에서 온 높으신 금융투자자들이 '보시기에' 좋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부산시는 노점상과 노숙자 등 빈민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조치를 취했다. 이들은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아펙의 본질을 집약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는 현재 건설 현장에서 진행 중인 극단적인 불평등과 궤를 같이 한다고 주장했다. 거대 독점 세력만이 살아남는 가운데 분양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반면, 서민들은 고통받고 건설현장 비정규직은 점점 더 확대된다. 아펙 투쟁에 이은 비정규직법 개악안 반대투쟁에 관한 계획을 물었을 때, 건설현장은 이미 다 비정규직화되었고 더 비정규직으로 만들 사람도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공무원 노조 부산지부 조합원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초래된 빈곤확대나 불평등 심화에 맞서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 공무원 노동자들의 의무라고 역설했다.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구체적 사례를 묻는 질문에, 그는 1997년 IMF 이후 정부가 삼성경제연구소에 의뢰해 나온 공무원 구조조정안 곧 신공공관리정책을 지목했다. 이중 인사정책의 핵심은 현재 92만에 이르는 공무원 정원을 56만까지 축소함으로써 50% 가량을 비정규직화하는 것이다. 또한 총액인건비제 역시 문제로 지적되었는데, 그 핵심은 각 자치단체의 실적에 대한 평가제를 도입하고 이를 통해서 예산을 조정하는 것이다. 그는 이 정책이 중앙정부의 통제를 강화시키고, 공무원들에 대한 자치단체장의 재량권을 확대함으로써 매관매직 등 부패가 성행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확인되듯,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결정적 계기는 여전히 IMF로부터 시작된 구조조정으로, 모든 노동자들은 이 구조조정의 결과에 고통받고 그것에 맞서 싸우고 있다.
그 외로 인터뷰하지 못한 많은 단위들이 다 나름의 준비와 근거에 따라 아펙 투쟁에 참여했을 것이다. 다만 인터뷰한 몇몇 단위들을 미루어 짐작컨대, 모든 노동자들이 IMF 구조조정 반대투쟁을 제대로 하지 못한 후과를 각자의 방식으로 겪고 있지 않을까 싶다. IMF를 전후하여 도입된 정리해고 및 파견법 등은 노동의 불안정화 경향을 체계적으로 확산시켰다. 경제위기로 인한 거대한 실업과 빈곤에 대해 지배계급은 여러 층위의 비정규직 도입을 처방했고, 이는 '노동빈민'(working poor)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내는 한편 이 같은 불안정한 처지에 대한 공포에 기초하여 노동규율/강도를 더욱 강화시켰다. 이렇게 해서 현안 이외의 문제를 사고할 여유를 도저히 주지 않는 극도로 열악한 노동·생존 조건이 확립된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인터뷰에서 들었던 가장 서글픈 얘기 중 하나는 한 비정규직 청소용역노동자의 말이었다. 아펙에 왜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세계화가 공공부문 개방 역시 초래할 것이고 여기에는 청소부문 인력개방도 포함되는데 그렇게 되면 저임금의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됨으로써 자신들의 처지가 더욱 열악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노동의 불안정화가 노동자들 간의 경쟁을 체계적으로 조장/심화함으로써 연대의 가능성을 축소할 수 있다는 점을 직접 확인한 셈이다.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지 못한 것을 원인으로 하여 1970년대부터 전세계를 엄습한 경제위기는 한편으로 완전고용 다른 편으로 고임금 또는 일부 재생산비용의 경향적 탈상품화에 기초한 노자타협체제를 붕괴시켰고, 이를 계기로 부르주아들은 금융화 또는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의 개념을 빌자면) '강탈(dispossession)에 의한 축적'을 전면화한다. 이 같은 축적의 핵심은 지금껏 상품화를 모면했던 모든 '공유물'에 대한 폭력적인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으로, 이때 주된 강탈 대상이 되는 것은 의료(또는 복지, 곧 부분적으로 사회화된 재생산비용), 식량(또는 보다 넓게 말하자면 '생태'), 그리고 이 모두와 연관되는 지식(및 교육) 등이다. 경제위기를 등에 업은 이 같은 전면적 공세에 대해, 전통적인 계급투쟁 전략을 쇄신하지 못한 노동자운동은 후퇴를 거듭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 같은 강탈 및 이것이 필연적으로 초래할 수밖에 없는 각종 전쟁과 폭력에 맞선 새로운 주체로, 다양한 반세계화/대안세계화 운동 및 반전/반폭력 운동이 부상한다.
이번 아펙투쟁에서도 이러한 새로운 주체들이 눈에 띠었다. 보건의료운동을 하는 한 활동가는 어떤 계기로 아펙반대투쟁에 나서게 됐느냐는 질문에, 이번 아펙에 TRIPs(지적재산권협정) 강화라는 의제가 올라와 있고 이는 의약품 특허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질병치료를 매개로 한 민중수탈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또 전주에서 온 한 학생은 같은 질문에 대해 자신이 고(故) 김선일씨의 죽음을 계기로 반전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소개하면서, 전부터 아펙에서 파병 등 전쟁과 관련한 많은 논의가 있었던 데다가, 이번 아펙에서 논의되는 '인간안보'라는 의제가 이른바 '대테러전쟁'을 더욱 강화시키고 인종차별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피부로 느끼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묻는 질문에 그는 교육비와 취업 부담으로 인한 대학(인)의 전반적 위축을 들었는데, 이 역시 대안세계화 운동의 핵심 쟁점 중 하나다. 비록 인터뷰는 하지 못했지만, 이번 아펙 투쟁에서 특히 활력을 발산했던 주체 중 하나가 평택이나 청년·학생을 중심으로 한 반전운동세력이었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이 같은 새로운 주체들에 비하면, 87년 이후 한국의 사회운동을 주도했던 노동자운동은 다소 활력이 없어 보였다. 이는 이른바 '87년 체제'의 해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87년을 전후한 3저 호황을 거치면서 재벌은 시대착오적 과잉축적을 진행했고 노동자운동은 이 같은 고성장/완전고용에 조응하는 고임금을 자신의 목표로 하게 된다. 이 전략은 당시의 정세에서 유효했을 수 있다. 하지만 IMF 경제위기는 이 같은 발전전망 및 이를 전제로 한 노동자운동의 전략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극적으로 증명했다. 또한 당시 도입된 구조조정 결과 전면화된 '노동의 불안정화'라는 객관적 조건 하에서, 경제성장에 조응하는 임금상승 전략은 '노동귀족'의 전략으로 고립되고 만다. 87년은 끝났다.
하지만 운동이 끝난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노동자운동이 나타나고 있으며, '강탈에 의한 축적'에 저항하는 대안세계화운동이 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경제위기/불황기에 적합하지 않은 '87년 체제'를 해체하고 경제위기를 조건으로 한 새로운 노동자운동의 전략을 열어 가는 것이다. 이때 핵심적인 두 가지 과제는, 세계적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그리고 한국경제 위기의 내재적 연관에 대한 분명한 인식, 그리고 3저 호황을 거치면서 정립된 노동자운동의 전략 혁신 및 새로운 전략의 광범위한 토론일 것이다. 이 두 가지 지점 모두에서 새롭게 출현하는 대안세계화 운동과의 마주침은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이번 아펙투쟁은 매우 중요한 계기였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 같은 마주침은 특정 계기에 국한되지 않고 더욱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고(故) 전용철 열사의 죽음으로 시작된 농민투쟁과 비정규직 법안 개악 시도로 촉발된 노동자투쟁의 연대, 신자유주의적이고 경찰적인 국가폭력에 맞선 민중들의 연대다.

신자유주의 시대 지역의 현실

(반)주변부에서 신자유주의는 발전주의 이후에 온다. 발전주의가 불균등하나마 민족국가 전반의 발전 기획을 추진한다면, 신자유주의는 예컨대 '동북아 중심국가' 등의 허황된 수사로 민족적인 발전 전망의 상실을 은폐하며 이른바 '선택과 집중' 즉 배제에 기초한 지역 간 경쟁을 격화시킨다. 이제 각 지역(경제)은 국가로부터의 지원이 아니라 세계화된 금융시장과 민간자본의 시장에 자기 지역사회(경제)를 떠넘겨야 한다. 국가지원이 완전히 철회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이제 금융자본에 철저히 종속되도록 지역의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수단이 된다. 당장 정부의 살농정책(殺農政策)은 농업에 기초한 부안이나 평택 같은 지역(주민)의 생존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여기에 정부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핵폐기장이나 미군기지를 유치해 그 보상금으로 지역을 뜨거나 이들에 종속된 서비스업에 종사하라고 협박한다. 한때 광산업이 흥했던 강원 지역은 이제 초민족 엘리트나 도시의 부자가 머리 식히러 찾아오는 도박지대가 된다. 제주도에서는 영어공용화를 검토하겠다고 말한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하여 이름 있는 영화제만도 대여섯 개가 넘고, 각종 예술비엔날레가 전국 곳곳에 열린다. 심지어 강원 강릉시와 전남 장성읍, 전남 곡성군과 경기 옹진군, 그리고 경남 진주시와 전북 장수군은 각각 홍길동, 심청, 논개의 연고권을 놓고 소송을 불사하는 분쟁을 벌인다. 물론 예술과 전통에 대한 애정 때문이 아니라 관광 '자원'을 개발해 금융자본을 유치하고 서비스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시대 지역발전의 실체다.
몇 차례 여론조사에서 부산시민의 대다수가 아펙 유치를 찬성한 것은 이런 사정을 직접적 배경으로 한다. 부산투쟁위원회의 한 활동가는 본래 물류산업과 서비스업에 기초를 두고 있는 부산 역시 최근 경제위기의 영향을 크게 겪고 있으며, 이 때문에 각종 행사를 유치함으로써 부산의 위상이 제고되고 고용이 확대되는 것을 기대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고용은 대부분 일시적인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채워질 것이지만 말이다. 이 같은 금융자본 유치경쟁은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의 설립으로 이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자에게는 저임금과 노조무력화 등 노동조건의 악화가 강제된다. 실제로 한 활동가가 증언한 몇 년 전 초민족적 유통업체 까르푸 사상점에서 벌어진 사례는 상징적이다. 당시 이곳에서 노동쟁의가 벌어졌는데, 이 자체는 다른 투쟁들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사측에서는 본래 투자를 유치할 때 한국 쪽에서 약속했던 조건과 다르다며 외교통상부에 이를 '외교 문제'로 제기했고, 이에 놀란 외통부는 해당 지역 국회의원과 시의원을 불러 중재에 나서게 만들었다. 이들은 부랴부랴 쟁의현장에 와서, 이 문제는 외교 문제로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노동쟁의 때문에 금융자본이 철수하게 되면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고 노동자들을 압박했다고 한다. 이렇듯 노동쟁의가 외교 분쟁이 되고, 이로 인해 노동자들의 활동이 크게 제약받는 풍경은, 다소 극적이기는 하지만 아주 현실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한 단면이다.
또한 앞서 잠시 언급한 노점상 생존권이나 지역 건설현장의 중단 등의 문제도 단지 몇몇 관료들의 '전시행정'으로 돌릴 수만은 없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금융자본의 유치에 입각한 '지역 발전'이 절대선이 되면서, 그에 반대하는 모든 것은 '범죄'가 되고 따라서 정치가 아닌 행정·경찰력에 의해 제거된다. 배제와 경찰폭력의 악순환, 이것이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정치지형의 변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의 야만

이번 아펙 투쟁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민주주의의 압살, 그리고 행정·경찰 논리의 확대가 내적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각각의 부문에서 구체적으로 느끼는 모순은 극히 다양했지만, 이 점에 관해서는 놀라운 정도의 일치가 발견됐다.
인터뷰한 모든 이들은 국가가 민중들의 삶에 깊은 연관이 있는 사안들을 그/녀들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은 채 반민주적으로 '강행처리'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국가는 민중들을 철저히 배제하거나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으로만 참여를 허락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민중들은 저항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데, 자신들이 허용한 선을 넘어서는 모든 저항은 철저히 범죄화되고 따라서 정치가 아닌 경찰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된다. 민중의 '몫소리'에 대한 체계적인 배제는 언론을 비롯한 이른바 '시민사회'도 거의 다를 바 없다. 실제로 한 농민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옆에 있던 동료 농민은 "기자여? 기자면 가"라고 매섭게 말했고, 사회단체에서 일한다고 밝힌 후에야 인터뷰를 허락했다.
군산의 한 농민은 최근 벌어지는 죽음이 바로 이 같은 침묵의 강요와 관련된다고 말했다. 단지 생존의 위기가 극에 달해서가 아니라, 이 같은 생존의 위기를 그 누구도 공적으로 다루지 않을뿐더러 필사적으로 건넨 목소리마저 억압될 때, 죽음을 통해서 자신들의 고통스런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자니 바로 전날인 11월 17일, 경주에서 한미정상회담 규탄 투쟁에 다녀와 늦은 저녁을 들던 식당이 떠올랐다. 경주 투쟁을 비롯한 아펙투쟁이 어떤 식으로 보도될까 궁금해 식사를 마친 다음까지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는데, 부산지역 경제인들이 국제행사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 걸 두고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준엄히 꾸짖은 후, 몇 명의 활동가가 '불법시위'를 하다가 잡혔다(무엇을 외쳤다는 얘기도 나오지 않은 채!)는 단 몇 초의 단신이 보도될 뿐이었다. 오직 법을 위반하는 물리력을 동원할 때에만 극히 짧은 순간 우리의 존재를 비춰준다는 점을 (재)확인했을 때 느꼈던 그 밀폐감과 숨막힘. 대중들이 이른바 '대항폭력'을 행사하는 순간은 항상 이런 폐쇄감을 참을 수 없을 때가 아닐까. 우리가 가장 최근에 목격한 그런 종류의 폭력이 아마 프랑스 소요사태일 것이다.
최근 결국 고(故) 전용철 열사를 죽음으로 내몰 정도로 끔찍했던 경찰폭력은 단연코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위에서 살펴본 방식에 따라 끊임없이 대중들의 대항폭력을 도발하고, 그렇게 유도된 대항폭력에 대해 대중들이 느끼는 불안에 기초하여 법질서와 '예방폭력'의 이름으로 자신의 취약한 정당성을 보충한다. 다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신자유주의 시대, 경찰행위는 국가의 유일한 정당성이다. 그러나 이는 극히 불안정한 정당성인데, 왜냐하면 경찰은 모든 갈등과 차이, 결국 자신의 편협한 기준에 위배되는 모든 행위를 범죄로 취급함으로써 시민적 존엄과 자유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경향을 갖기 때문이다. 부산투쟁위원회에서 활동한 한 케이블 노동자는 얼마 전 전봇대 위에 5분 이상 올라가 있으면 테러리스트로 간주할 테니 조심하라는 어이없는 공문이 내려왔다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아펙 기간을 전후해 부산에서 펼쳐진 준계엄상태나, 합법적으로 신고된 집회에 대해 과격시위가 '예상'된다며 톨게이트를 포함한 모든 길목에서 대중들을 차단하던 경찰들의 작태, 그리고 강과 콘테이너 박스라는 준자연적 경계선 및 그를 수호하는 물대포와 곤봉과 방패로 무장한 경찰력에 의해 '분단'된 아펙정상회의와 항의시위대는,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의 섬뜩한 미래를 예시하는 것 같았다.
이 같은 상황을 바라보던 한 노동자는 '헌법 1조'와 '민주공화국'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입헌' 원리가 파괴되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가 정확하게 통찰한 것처럼, 신자유주의 및 그것이 동반하는 경찰국가는, 인민들이 자신의 운명을 자신과 동료 시민들의 힘으로 개척한다는 의미에서의 '정치'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민주주의 정치'를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이 조직된 폭력의 해체는 민주주의 정치의 재개를 위해 가장 다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아펙 투쟁을 노무현 정권 퇴진 투쟁과 WTO DDA 분쇄 투쟁으로 이어가자!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두 운동의 결합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초민족자본과 지배계급들을 가로막는 모든 경계선들을 폐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민중들의 연대를 차단하기 위해 다양한 경계선들을 강화하거나 새롭게 생산해 낸다. 우리가 이번 아펙투쟁을 통해 생생히 목격한 것처럼, 전세계의 정치엘리트와 자본가들이 한곳에 모여 자신들의 미래를 속삭이는 동안, 세계 곳곳에서 한국을 찾아온 대안세계화 활동가들은 공항에서, 전국에서 몰려온 민중들은 톨게이트에서, 아펙에 반대하는 우리의 목소리는 수영교 컨테이너 박스에서 가로막혔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같은 다양한 경계선들의 강화와 (재)생산을 통해서만 반민중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능한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대안세계화 운동에 관한 핵심 명제를 하나 얻어낼 수 있다. 즉 대안세계화 운동은 국경을 비롯한 저 모든 강압적인 경계선들을 해체하고 그것들 때문에 가로막혔던 전세계 민중들 간의 연대를 이룸으로써 초민족자본과 엘리트들에 대한 통제를 실현하려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자본과 국가에 의한 민중의 통제를, 민중에 의한 자본과 국가의 통제로 역전시키는 운동이다. 이는 오직 자본과 특히 국가가 민중들에게 부여해 온 동일성에 갇히지 않는 연대가 이루어질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정세적으로 이는 한편으로 초민족자본과 미국에 복종하는 재벌 및 그 주구 노무현 정권, 다른 편으로 그들이 끊임없이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농민이 '사회적 교섭'이나 '사회 통합'을 통해 함께 잘 살아볼 수 있다는 따위의 미망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노동자·농민 민중들과 연대하여 WTO DDA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를 분쇄하고 '식량주권' 등의 민중적 기획들을 세계화함으로써 초민족자본과 국가를 아래 및 위 양쪽 편에서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현실적 역량을 구성해 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단언컨대 신자유주의를 따르는 국내 지배계급과 '사회 통합'을 이루겠다는 것보다는 더 현실(주의)적이다.
WTO DDA 협상을 겨냥하여 쌀 비준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그리고 신자유주의자들의 구역질나는 축제인 아펙에 대한 반대목소리를 조기에 진압하기 위해 저 신자유주의 경찰국가가 고(故) 전용철 농민열사를 살해한 지금에도 신자유주의 지배계급과 민중이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있다는 미망을 버리지 못한다면, 우리 운동에는 미래가 없다. 민생파탄 민주압살 노무현 정권을 퇴진시키며, 국내 지배계급을 향한 비굴한 애원이 아닌 전세계 민중들과의 연대로 WTO DDA 협상을 분쇄하고 또다른 세계로의 길을 엶으로써 민중운동의 독립성을 마침내 쟁취하는 것, 대안세계화 운동은 듣기 좋은 관념적 수사가 아니라 바로 이 물리적이고 살 떨리는 투쟁이다. 우리는 지금 이 투쟁의 한 가운데 서 있다.

[각주]

1) 이 글은 지난 11월 셋째 주에 있었던 아펙투쟁 중 특히 18일 집회현장을 취재한 것입니다. 그날, 아래 취재한 단위들보다 훨씬 더 많은 단위들이 참가했으나, 취재 역량의 한계로 그 목소리를 다 담지 못했습니다. 이 점 동지들의 너그러운 양해를 빕니다.본문으로

부산 국제민중포럼 스케치 1

부산 국제민중포럼 전체회의

11월 16일 부산 아펙 회의 시작과 함께 한국과 세계 사회운동가들이 모이는 부산 국제민중포럼도 개막되었다. 16일 오전 11시 부산대학교에서 '아펙반대부시반대 국민행동'과 '아펙반대부시반대 부산시민행동' 공동주최로 열린 국제민중포럼 개막식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운동가들을 포함한 200여 명이 참석했다.
특히 외국 참석자 중에는 12월 홍콩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홍콩민중동맹의 엘리자베스 탕 대표(홍콩노총 집행위원장), 사무국에서 활동하는 메이블 오우, 그리고 홍콩노총의 탐천인 등 여러분이 참가해서 12월 WTO 이사회 저지 투쟁과 이번 아펙투쟁을 연계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또한 입국하는 데 어려움을 많았던 비아캄페시나 소속 인도네시아 활동가들도 자리를 빛냈는데, 국제사업을 담당하는 테조 프라모노와 알리 파흐미, 아구스 룰리 아르디안시아 등이 참석했다. 미국 반전연대체인 ANSWER(전쟁과 인종차별 종식 연합)의 대변인이자 LA지역 조직책임자인 존 비첨, 일본 아탁재팬의 사무국장 요코 아키모토를 비롯한 8명의 활동가들, 일한민중연대네트워크의 도마츠 가츠노리 씨를 비롯한 6명의 활동가들, 상야 쟁의단의 아라키 씨, 교토 우정유니온(체신노조) 등 많은 분들이 참석했다. 부문별 워크샵에는 국제노점상연합, 뉴질랜드, 일본교원노조, 국제공공노련 소속 아시아 지역의 노조 활동가가 다수 참석했다.
개막사를 맡은 정광훈 전국민중연대 상임의장은 "어제 11월 15일 여의도에서 농민들의 반란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다쳤고 앞서 농민들이 음독자살을 하는 등 세계화는 세계 민중들에게 재앙이다"라며 "이번 포럼이 그들만의 세계화에 반대해야 한다는 메세지를 많은 민중들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중포럼 첫 번째 발표를 맡은 김석준 부산시민행동 공동대표는 "아펙 정상회의라는 잔치 판은 한국을 포함한 개발도상국 민중들에게는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전쟁위험 증대라는 고통을 강요하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번 아펙 정상회의에서는 무역자유화를 촉진하기 위한 '부산 로드맵' 채택, WTO 도하개발아젠다 협상 지원 결의, 핵문제 및 인권문제를 쟁점으로 한 북한에 대한 압박이 주요 의제로 다루어질 것이다. 이런 쟁점들은 주로 미국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방식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ANSWER의 존 비첨은 "부시는 두 주 앞서 미주정상회의에 참석했다가 그곳 민중의 반대시위에 부닥쳤다. 부시는 어디를 가더라도 그곳 민중의 반대에 부닥치고 있다"면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한반도의 핵 위협은 평양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워싱턴에서 오는 것이다. 미국은 핵무기를 선제공격용 무기로 보유하고 있다. 이번 아펙 회의를 계기로 부시에 반대하고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명호 민주노총 기획실장은 "노무현 정부는 이번 아펙회의를 통해 전쟁공조이자 민중착취공조인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하고자 한다. 우리는 노무현 정부가 지속적으로 확장시키는 전쟁정책, 세계화 정책에 반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부산 민중선언을 채택하기 위한 토론이 이뤄졌다. 토론을 진행한 이종회 WTO반대 국민행동 대표는 "이번 국제포럼은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16일 열린 'WTO 홍콩 각료회의 대응을 위한 아시아 사회운동 전략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비롯해 이번 포럼에서 얻어진 값진 성과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사회운동 진영이 받아 안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채택된 부산 민중선언은 "부산아펙정상회의가 우리가 우려한 대로 강자의 논리만 일방적으로 적용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더욱 확대하는 결론으로 가고 있다"며 "우리 아시아 태평양 지역 사회운동가들은 이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빈곤과 전쟁의 세계화를 확대하려는 아펙 정상회의에 맞서 평등과 평화를 위한 아름다운 저항을 펼칠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국정부는 전 세계 NGO 활동가에 대한 입국 금지, 집회참가 금지와 사찰, 법적 강제력이 없는 특별치안지구 내 집회금지 등 독재정권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한국정부가 전 세계로부터 인권후진국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기 전에 18일, 19일에 있을 전쟁과 빈곤을 확대하는 아펙과 부시에 반대하는 다양한 시위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류미경 국제민중포럼 팀장은 이번 국제민중포럼에 대해 "기존 세계사회포럼 등의 성과의 연장에서 WTO 저지, 반전 등 공동과제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초국적 금융자본 중심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민중의 저항을 세계화하기 위해서는 그 대안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원리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과정이 중요하고, 이번 국제민중포럼에서 다루어졌던 의제들이 그 바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세계화 시대에 이주의 문제를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 하는 문제, 교육을 비롯한 공공서비스 상품화에 맞선 민중들의 권리를 제기하는 문제, 신자유주의에 여성을 포섭하는 ‘성주류화’에 맞서 여성의 요구를 더욱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문제,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 신자유주의 지역 정책에 맞서 지역차원에서의 운동을 굳건하게 조직하는 문제 등에 대한 고민이 앞으로 더욱 진척시켜 가야 할 내용"이라고 향후 과제를 제시했다.


부산 국제민중포럼 스케치 2

'아펙을 반대하는 여성' 워크샵: 성주류화 전략에서 신자유주의 비판으로

이번 아펙정상회의 7개 의제 중 하나인 '중소기업·영세기업에 여성참여 확대'란 여성의제가 채택된 배경에는 여성가족부 뿐만 아니라, 부산지역 민·관·학을 망라한 여성주체들의 일 년여에 걸친 분투가 있었다. 부산지역의 이른바 '여성계'는 올해 초 '아펙 여성의제 채택을 위한 여성연대'를 구성하였는데, 여기에는 부산여성단체협의회, 부산여성연합을 비롯해, 부산지역 시민운동, 학계에 몸담고 있는 여성인사, 소속 정당을 가리지 않는 여성정치인 등이 대거 망라되어 있다. 부산여성연합은 나중에 '아펙여성연대'를 탈퇴하긴 했지만, 현재의 금융/군사세계화가 여성에게 미치는 해악이 널리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여성운동의 대표세력을 자임하고 있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지역조직의 이와 같은 판단은 여성운동에 있어 결코 간과될 수 없는 문제다. 이러한 여성운동의 행보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1995년 북경여성대회 이후 각 국의 여성정책의 기조이자, 세계여성운동의 전략이 된 '성주류화 전략' 평가를 우회할 수 없다.
11월 16일 오후 4시 부산대에서 '세계여성행진과 함께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은 '아펙을 반대하는 여성' 워크샵을 개최하고 아펙에서 최초로 채택된 여성의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와 이를 가능하게 했던 여성운동의 행보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였다.
현재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여성정책의 핵심기조로서 성주류화 전략은 자본의 위기 극복을 위해 값싸고 탄력적이라 여겨지는 여성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한 정책이며, 여성운동이 채택하고 있는 성주류화 전략 역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없는 무기력한 전략이라는 평가가 제출되었다. 워크샵 발제문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를 지시하는 '빈곤의 여성화, 노동의 여성화, 이주의 여성화'는 구조조정의 위기 비용 부담이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불평등한 조건과 삶이 여/남 모두에게 일반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현재 주류 여성운동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이후 증가하는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을 여성의 경제적 독립의 '기회'로 보는 것이 아니라면, 우선 여성이 처한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직장과 가사의 양립'으로 표현되는 이중노동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저항하는 것이 여성운동의 과제"여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또한 국제발전기관들과 각 국 정부들은 현재의 위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여성운동을 포함한 시민사회운동을 동원, 활용하고자 하는데, "여성운동이 현재 상황에서 스스로 '직장과 가사의 양립 지원 정책'을 요구하는 것은 그 정책의 실효성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과 그 위기대응의 비용을 여성이 감내할 수 있도록 보조하거나 조직하는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워크샵 1부에선 1998년 아시아여성위원회에서 제작한 '먼지 덮인 인형'이란 영화가 상영되었다. 영화는 IMF가 요구하는 구조조정을 실행한 스리랑카, 태국, 한국의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저항을 보여주었다. 이들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여성노동자는 구조조정 이후 값싼 노동력으로 주목받았다. 스리랑카는 동남아시아에서 최초로 IMF 구조조정을 채택하였는데, 자유무역지대에서 일하는 10만의 여성노동자는 기본적인 노동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결혼하면 퇴사하는 것을 고용조건으로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해야만 했다. 1993년 태국의 케이더 완구공장에 화재가 나면서 188명의 여성노동자가 사망하였는데 공장인형엔 보험이 가입되어 있었지만, 노동자에겐 보험이 없었다. 아펙회의가 열리는 장소인 부산은 1997년 구조조정 이후 지역 주력산업인 신발공장들은 문을 닫고,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직장을 잃었다. 사라진 신발공장을 대체한 것은 부동산 투기 대상이 된 아파트였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은 이러한 현실에 저항하여 여성노동자 조직을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며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워크샵은 "세계화에 저항하는 여성운동은 여성억압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사고하며 이와 같은 분석이 보다 많은 여성들에 의해 자각되고, 통계지표나 분석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여성들 스스로의 발언과 투쟁으로 현실을 드러내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여성운동이 가야 할 유일한 길"임을 확인하면서 마무리되었다.


부산 국제민중포럼 스케치 3

대안세계화와 지역사회운동

아펙 부산민중포럼에서는 대안세계화 운동의 이념을 확산하고자 하는 흐름 중 하나로 '대안세계화와 지역사회운동' 워크샵이 진행되었다. 서울, 평택, 전북, 광주, 강원, 인천을 순회하면서 사전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논의를 심화했던 이번 워크샵의 주제는 지역사회운동의 이념이자 전망으로서 대안세계화 운동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사회는 정지영 사회진보연대 정책편집부장이, 총괄 발제는 조대환 이윤보다인간을 활동가가 진행했다. 총괄발제에서 드러나듯이 대안세계화 운동으로서 지역사회운동은 현재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야기하는 전쟁과 빈곤, 불평등에 맞서 노동자, 농민, 여성, 빈민의 보편적인 권리를 확장하는 연대 지향적인 운동을 만들어가야 한다. 농민의 토지와 종자, 농사에 대한 통제권을 요구하는 투쟁은 지금까지 실제 농사를 짓고 공동체를 유지해온 여성의 권리를 배제하고 성공할 수 없다. 이처럼 대안세계화 운동은 각각의 투쟁과 운동이 보편화하고 상호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저항을 세계화하자'는 대안세계화 운동의 슬로건은 바로 이런 의미다. 따라서 지역의 운동은 행정구역 단위의 지역을 넘어 세계적으로 보편화될 수 있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이는 단지 주체들이 여러 투쟁에 결합하는 문제가 아니고, 지금까지 운동의 원리와 정형화된 운동 양태, 조직화 양식 전반을 재고해야 하는 문제다.
워크샵에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병행하는 지방화 전략의 문제점을 몸소 부딪히며 투쟁하고 있는 여러 단위들이 발표에 함께 했다. 제주도특별자치도법 반대 투쟁,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 전북 지역의 물 사유화 반대 투쟁, 소위 삼성 도시라는 수원 지역의 삼성 노동자들의 연대 투쟁의 사례가 발표되었다. 사안은 다양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오는 빈곤과 불평등의 확산이라는 결과를 지역 경제 발전이라는 미망으로 관리하고, 이것은 또 다시 지역별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동력이 되면서 민중들의 삶에 파괴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있음이 공통적으로 드러났다. 각각의 발표자들은 이 투쟁들의 중요성과 연대를 호소했다. 이 중요한 투쟁을 제대로 일궈가기 위해서도, 그리고 전국적인 연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도 이 투쟁들 자체가 세계화될 수 있는 저항, 대안세계화 운동이 되어야 한다.
주제어
생태 민중생존권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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