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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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6.1-2.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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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북한 인권' 논의의 맹목과 함정

정희찬 | 정책편집부장
‘북한인권’과 미국의 전방위적인 대북압박

지난 해 12월 16일 60차 유엔총회에서 유럽연합이 제출한 북한인권결의안이 미국, 일본의 동의를 포함하여 찬성 88개국, 반대 21개국, 기권 60개국으로 가결되면서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지난 해 12월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를 후원하고 주요 인사가 이 행사에 참여하는 등 다방면에서 북한 체제의 문제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은 범죄정권(criminal regime)"(12월 7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위폐혐의를 제기하며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
“미국은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며 … 자유를 북한에 전파하는 것이고 북한에 곧 밝은 빛이 비칠 것”(12월 8일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에 참석한 레프코위츠 미국 북한인권특사)

북한 체제에 대한 문제제기 속에서 미국은 북한이 위폐 제조 등의 불법행위에 연루되었다고 주장하며 대북 제재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미국은 지난 해 12월 북한과 금융거래를 해온 마카오 소재 ‘방코 델타 아시아’에 대해 미국 재무부 소속 금융범죄단속강화반(FinCen)이 돈 세탁과 위폐 유통 혐의로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했는데, 이에 대해 북한은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주한 미국대사는 미국법에 따른 금융제재는 북한과의 협의대상이 아님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1월 5일 “만약 북한이 고립을 택한다면 이는 미국 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북한이 자초한 선택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위험한 정권(dangerous regime)이다. 북한의 불법행위는 제재를 초래할 것인데, 왜냐하면 대통령은 상응하는 조치 없이 북한이 미국의 화폐를 위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며,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를 정당화했다. 미국의 이러한 말과 행동은 미국의 군사적 안전보장 및 금융·경제제재의 해제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북한의 바람과는 상충되는 것임에 분명하며 향후 6자회담의 낙관적 전망을 무색케 하기에 충분하다.

미국의 인권-외교 정책의 역사
-반공주의에서 네오콘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북한인권’ 문제는 미국의 군사·안보정책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미국이 인권 의제를 외교정책에 포함시킨 것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은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의 패배와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자유진영을 수호하는 미국의 정치적·도덕적 지도력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되었고, 부패와 부당한 정권에 맞서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방어자라는 미국의 역할이 위협받고 있었다. 이러한 도전에 직면하여 미국의 지도력과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 바로 ‘인권’과 대외정책의 연계라는 카드다.
당시 미국의 새로운 대외정책의 두 가지 상이한 방향이 제기되었는데, 하나는 소련·중국과의 긴장완화, 즉 데탕트를 추진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에 대한 반발로서 오히려 소련 등과의 관계개선에서 인권 문제를 제기하며 미국과의 경제·무역관계를 제한하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후자를 주도한 것은 오늘날 네오콘의 선배격인 민주당의 강경한 반공그룹이었다. 당시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소련을 겨냥하여) 이민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의 최혜국 대우와 미국과의 무역관계를 제한하는 법안(1974년 ‘잭슨-베닉 수정안’)을 발의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 ‘북한인권’을 6자회담과 연계하고 나아가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제기하는 네오콘 인사들의 논리와 궤를 같이 한다.
몇몇 인사들의 열렬한 반공 캠페인이 그대로 미국의 대외정책에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점차 인권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반영된다. 1976년 출범한 민주당의 카터 행정부는 인권 외교를 표방하며, 대외원조와 수혜국의 인권을 연계했다. 다만 그 대상은 민주당 내 우파그룹과는 달리 미국의 동맹세력이었던 군부독재 정권이었다. 미국은 1973년 의회에서 「해외원조법안」이 채택된 것을 시작으로, 1976년에는 국무부 내에 인권·인도주의국의 조직, 1978년부터는 유엔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국무부의 『연례 각국 인권보고서』발간으로 인권 외교의 행보를 이어가게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인권 외교는 반공동맹이라는 냉전기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카터의 인권 외교가 비록 남한이나 아르헨티나 등 몇몇 국가와의 외교적 갈등을 야기했지만, 이러한 갈등이 실질적으로 반공독재 정권에 대한 미국의 경제 제재, 군사적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는 취임 이후 남한 신군부 세력의 광주학살을 묵인한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실제 미국의 인권 외교는 애초 반공 이데올로기와 공명했을 뿐 아니라 미국의 군사·안보적 이해관계에 종속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성격은 냉전 질서의 소멸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았으며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세력을 구축하고, 이라크에서 후세인 정권을 전복하고 친미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민간인 사망자를 ‘부수적 피해’로 명명하면서 자신의 침략행위를 자유와 해방을 위한 것이었다고 윤색하는 데서 인권은 미국은 전략적 목표와 결부되거나 도구화된다.
네오콘은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1996년)에서 이미 세계의 “민주적 전환”의 출발점으로서 ‘중동 민주화’를 주창한 바 있다. 여기서 후세인 정권의 제거라는 목표가 천명되거니와, 이러한 자신들의 구상을 선(미국)과 악(‘불량국가’)의 대결로 묘사한다. 이러한 대결 구도 속에서 미국의 행위는 기독교적 사명감이나 도덕적 우월성 등으로 윤색된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언 중에 “21세기 십자군 전쟁”이나 “무한정의(infinite justice)”, “악의 축(axis of evil)” 등의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색채의 표현이 동원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적극적인 개입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군사적 팽창은 이미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개시된 것이다. 1999년 클린턴 행정부는 이전까지의 국방비 감축 추세를 역전시켜 국방예산을 1,120억 달러 증액하기로 결정했으며, 걸프전쟁(1991년)과 코소보 공습(1995년), 이라크에 대한 미사일 공격(2003년 이전 이미 미국은 이라크를 폭격하고 있었다!) 등 미국의 군사개입은 냉전 질서의 소멸 이후 1990년대에 이전보다 오히려 더욱 늘어난다.

인권과 안보의 결합: 인간안보의 진상

인권을 (외교)안보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비단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 내 국가들이나 일본 등 대부분의 중심부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이 국가들이 이번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될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데서도 알 수 있다.
중심부 국가들이 표방하는 인권 외교의 실체란 무엇인가? 단적으로 (금융)세계화로 야기된 세계적 차원의 정치적 위기를 관리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계화로 인한 부와 빈곤의 극단적인 불평등, 민족적·종족적 갈등의 격화 속에서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일부 국가들에서는 내전이 벌어지거나, 국제적인 마약 카르텔이 일부 지역을 통치하거나, 다양한 군벌들이 지역적으로 할거하는 등 정상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이른바 국가의 (무정부적) 해체가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범죄, 테러의 가능성은 국제적인 안보를 위협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방식으로서 1990년대 국제적인 개입/간섭이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고, 결국 이러한 국제적인 개입/간섭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의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인권과 안보의 결합이 이루어지는데, 이는 종전까지 엄격하게 유지되어 왔던 유엔 헌장의 주권 평등, 무력 사용 금지, 분쟁의 평화적 해결, 내정 불간섭 등의 기본적인 원칙을 상대화하고 평화에 대한 위협 시 무력사용을 허용하는 유엔헌장의 예외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적용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발전한다. 즉 개별인권이 궁극적으로는 주권보다 상위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결국 개별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주권에 대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되어 오던 기존의 절대적인 불가침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일개 국가로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국제현안이 발생하고, 국가 자체가 붕괴함으로써 발생하는 대량 난민과 분쟁의 가능성은 안보적 관심사를 달성하기 위해서 이제 기존의 (국가)안보에 국한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1999년 총회에서 유엔헌장이 국제사회가 타국에 간섭할 권리가 있음을 배제하지는 않으며,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개선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간섭에는 평화적 수단과 강압적인 수단 모두가 포함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유엔개발계획은 인권을 전통적인 안보 개념과 결합하면서,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관심사로서 마약과 인권침해 등의 위협을 강조하고 이 문제를 모든 국가들이 참여하여 해결할 것, 또한 무엇보다 사전예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언급한다. 그리고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전략 역시 큰 틀에서는 이러한 국제적인 논의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핵심적인 질문은, 국제사회가 세계의 주요 군비 지출국인 미국과 그 동맹국들로 이루어진 국가들(NATO, 일본, 남한) 없이는 공허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무질서를 어떻게 감축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수세기에 걸쳐 형성된 국가 간 체계와 민족국가의 확립과 붕괴는 필연적으로 그 체계 속에서 제도화되어있던 기존 권리들의 해체와 재구성을 요구한다. 사회복지를 축소하고, 노동조합의 권리를 축소해나가는 신자유주의 정책기조가 유지되는 한에서 얼마나 현재 해체되고 있는 민족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실효성이 있으며, 혹은 국제사회의 개입/간섭이 안정적인 정치 공동체의 창출에 성공할 수 있을 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점차 종족 간·종교 간 내전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이라크의 정정(政情)에 비추어본다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킬 따름이다. 현재 ‘북한인권’을 둘러싼 논의지형 역시 인권 외교 혹은 미국의 전략적 구상이 노정하는 한계와 모순에 대한 비판 없이는 운동진영의 실천과 투쟁을 위치짓는 것이 지극히 난망하거나 지배세력의 구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북한인권’ 논의의 노림수

‘북한인권’이라는 표현에는 이미 북한이 자국 인민의 보편적 인권을 침해하거나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전체주의 체제/독재정권이라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 국무부의 『연례 각국 인권 보고서』에서 북한은 이미 1993년부터 “대량살상무기를 추구하면서 주민을 굶주림에 처하게 하는 전체주의 체제”로 규정되어왔다. 그리고 2004년 미국 의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한 「북한인권법」에서는 “민주적 체제로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가속화”하는 것을 기본 목적으로 설정하고, 북한과의 협상 시 북한인권 문제를 “주요 관심 사안”으로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1)
법안은 탈북자를 보호한다고 하지만 실제 미국이 9·11 테러 이후 본토입국에 대한 엄격한 제한조건을 부과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북한 주민의 대량 입국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대부분의 활동은 탈북자를 지원하는 NGO의 활동에 지원되거나 보고서 발간, 북한인권특사의 임명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압박수단으로서 활용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한반도에서 군사·안보적 주도권을 유지·강화하려는 중장기적 목표를 전제한다. 1990년대 이후 북미관계는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이는 미국에게 그 일차적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미국은 핵개발 의혹 뿐 아니라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 그리고 최근에는 인권문제 등을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제기하면서, 지역적 차원에서 남한 및 일본과의 군사동맹질서를 공고하게 다지고자 하기 때문이다. 남한정부의 햇볕정책을 가능케 했던 『페리 보고서』는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약속한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서 북한의 미사일 개발 포기를 추가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남한과 일본 등의 주변국들은 경제·문화적 교류를 통해 유인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미국과 남한의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은 철회되지 않았다. 1998년까지 미국은 북한에 대한 모의 핵공격을 연습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북한의 미사일 공격 위협을 근거로 수백억 달러가 소요되는 미사일방어망(MD)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처럼 북한에 대해 추가적인 요구조건을 제시하는 미국의 태도는 북한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면 이해하기 어렵다. 즉 미국은 일관되게 사실상 북한 체제 자체를 불량국가로 규정하고 무장해제와 응징이라는 수단을 일관되게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대북정책은 ‘테러와의 전쟁’이 진행되면서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저지하고 테러를 근본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는 현재 독재체제를 전복시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발상과 결합한다. 실제 미국은 『핵 태세 보고서』(2001년)에서 북한을 선제핵공격이 가능한 국가로 분류하고, 2002년 대통령 연두교서에서는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데 이들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목표는 다름 아닌 ‘정권 교체’였다.
그렇지만 미국 내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다른 의제와 연계할 지 여부에 대해서는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즉 부시 행정부 내 국무부의 몇몇 관리들은 인권문제와 북핵문제를 연계하는 것이 협상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북한의 인권 개선을 연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를 지지하는 입장(기독교 복음주의 계열의 NGO)과 이에 대해 신중한 입장(주류 인권운동 NGO)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갈등은 앞으로 6자회담의 진전에 따라서 점차 본격화될 전망이다.2)
그렇지만 그러한 이견은 1970년대 미국의 인권 외교가 냉전기 미국의 전략의 틀 자체를 넘어서지 못했던 것처럼, 인권 외교에 내포된 미국의 군사·안보적 주도권을 전제하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정책적 해법에 대한 부수적인 차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기는 어렵다. 비록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구하는 네오콘과는 달리 북한에 대한 실용주의적 접근을 지지하는 입장이 미국 내에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2005년 3월 의회에 상정된 「민주주의 증진법(Advance Democracy Act)」에 드러난 미국의 야심찬 구상을 고려한다면 ‘폭정의 종식’, 즉 정권 교체를 통한 북한 내적인 정치구도의 변화가 궁극적인 미국의 목표라고 할 수밖에 없다.3)
각종 재래식 화력이 밀집되어 있는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은 자칫 수백만 명의 사상자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다양한 방식의 제재를 통해 ‘정권 교체’를 추진할 것이다. 중앙정보국(CIA)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이미 석유시설의 국유화를 추진하던 이란 모사데그 정부의 전복(1953년)과,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실험하던 칠레 아옌데 정부에 대항한 쿠데타(1973년)로 악명을 떨친 바 있다. 특히 인권 외교에서 미국 국무부는 NGO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민주주의 가치관 등을 선전한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위한 기금’(NED)을 통해 NGO 단체들과 국제적 협력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2002~03년에 걸쳐 NED는 남한의 북한인권시민연합과 북한민주화운동네트워크에 각각 25만 달러를 지원한 바 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해 서울에서 개최된 북한인권국제대회에 대해서도 200만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지원하였다. 게다가 「북한인권법」의 시행에 책정된 2천 4백만 달러의 예산은 탈북자들의 망명을 기획하는 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민주화운동네트워크 등의 NGO 단체들에게 유입될 것이다. 이들은 남한정부가 제공하는 탈북자 정착금을 중간에서 착복하는 브로커들의 횡포를 방조·조장할 뿐 아니라, (부풀려지고 왜곡된) 기초적인 대북정보를 제공하여 ‘북한인권’ 관련 정책에 개입하고 미국의 재정적 지원을 얻고자 한다. 북한을 “범죄정권”이나 “전체주의 체제”로 규정하는 한에서 ‘기획 탈북’을 시도하는 인권 NGO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나 대북 금융 제재 등이 지속된다면 6자회담 타결의 전망이 불투명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한반도에서 분단 질서의 변화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장담할 수도 없게 된다.

‘북한인권’ 수용의 함정과 반전운동

따라서 ‘북한인권’이라는 문제설정을 현재의 논의지형과 역관계를 사장한 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북한인권’이라는 문제설정에는 이미 전체주의 체제/독재정권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으로서 국제사회의 개입/간섭을 통한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 즉 북한체제의 전복이라는 구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네오콘이 제시하는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해방'(?)의 논리는 절대적이고 구제 불가능한 악의 세력에 대해 희생자들을 대신하여 행하는 복수의 논리와 다름없다. 비인도적인 조건에서 희생자들은 인권을 박탈당하고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규정할 능력이 부재한 이들이다. 이러한 선과 악이라는 구분 속에서 기존의 모든 가치관과 규범들은 상대화된다. 이를테면 수십 년 동안 남한의 군사독재정권이 반공이라는 국시(國是)를 제창하고 고문과 학살, 언론과 출판의 규제를 거의 무제한적으로 수행했던 것처럼, 이제 테러에 대항하여 안보를 수호하기 위해 비밀구금과 체포, 고문을 배제하지 않게 되고, 제네바 협정에 규정된 전쟁포로에 대한 인도적 대우의 의무 등은 상대화된다(당장 관타나모 수용소와 아부그라이브 감옥에서 벌어지는 포로에 대한 일상적인 학대와 폭력을 보라!) 현재 이라크에서 미국의 점령은 “(독재) 정권 교체”와 “민주화”를 내세우는 미국의 구상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 지를 명백하게 드러낸다. 이라크인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독재자를 쫓아냈다는 호언장담은 저항세력을 소탕하기 위한 미군의 초토화 작전과 무수한 민간인 사상자들 앞에서 무색해진다. 미국이 수행하는 국가재건과 ‘민주화’란 미국에 대항하는 정치세력의 출현을 봉쇄하는 분할통치, 억압적인 국가장치의 확대(경찰과 군대의 충원)에 토대를 둔 것으로서 오히려 민중의 민주주의와 괴리된 기형적 지배질서를 수립하는 것으로 귀결될 뿐이다.
북한체제가 1990년대 이후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전력난을 비롯한 에너지의 부족과 기본적인 식량의 부족 등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북한 인권개선’을 결합하고 이것을 자국의 군사·안보 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미국의 전략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남한정부의 햇볕정책 역시 이른바 인도주의적 지원과 군사적 압박을 병행하는 것이므로 그 중 하나만을 특권화하여 나머지를 용인할 수는 없다.
현재 남한정부의 대북정책은 국내의 보수세력이나 미국의 네오콘들과 다르지 않다. 현 정권의 대북정책은 한·미동맹, 혹은 북한의 위협에 근거하여 지속적으로 군비증강을 추구하는 군사·안보정책의 종속변수라는 점에서 역대 정권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와서 거듭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을 설파하지 않았던가?). 남북관계에서 경색국면과 유화국면 사이의 동요는 핵과 미사일 등을 둘러싸고 북미관계가 악화되거나 호전될 때의 시점과 거의 일치하며, 최근에 와서야 삭제된 북한 주적론을 대신하여 등장한 이른바 자주국방, 균형자론 등은 변함없이 군사력을 증강하겠다는 남한정부의 군사적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과 남한의 대북정책을 대조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전자를 비판하고 반대하면서 후자를 지지 내지 견인하겠다는 발상에 사로잡히는 것은 운동진영이 경계해야 할 위험천만한 함정이다. 미국과 남한의 대북정책은 상호보완적인데, 왜냐하면 양자는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역관계를 변경할 의사가 없다는 점에서 공통적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현재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남한정부는 이라크 파병을 감행하면서 미국의 “세계적 동반자”로서, 즉 세계적 차원에서의 군사·안보의 동맹자로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려 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른바 북한의 위협을 부풀려 일본과의 군사·안보적 협력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역내에서 안보질서를 자신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재구축하려 한다. 이러한 흐름대로라면 한반도의 통일 역시 민주주의와 변혁의 과정이 아니라 현행의 군사적 질서를 유지한 채 신자유주의적 경제통합으로 대체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북한인권’에 대한 운동진영의 태도는 한반도 전체의 민주주의와 해방의 현재적 과제를 모색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그 첫 번째 과제는 무엇보다 반전운동, 즉 한반도에서 미국의 제국주의 질서를 해체, 소멸시키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이 문제가 전제되지 않는 ‘북한인권’ 논의는 미국 인권외교의 틀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북한과 나아가 동북아 민중의 민주주의와 괴리된 제국주의 담론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인권’에 대한 운동진영의 인식은 미국과 남한의 대북정책 자체에 대한 비판과 그 군사안보전략에 맞선 투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1) 후술하겠지만 이러한 조항이 반드시 북미 협상의 전제가 되거나, 북미 간의 모든 현안을 ‘북한인권’과 연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본문으로
2) John Feffer, "To Link or Not to Link: The Human Rights Question in North Korea", December 19, 2005 (www.fpif.org). 본문으로
3) 이 법은 미국 대통령이 “비민주적으로 분류된 외국국가”에 대해 미국 관할 하의 재산에 대한 동결, 국제금융기구의 지원 반대, 해당 국가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미국 정부의 불매 조치, 미국 기업들의 해당 국가에 대한 수출 불허 등 사실상의 무역 및 금융 제재를 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부설 인권운동연구소 자료실 http://www.sarangbang.or.kr/bbs/list.php?board=inst2&page=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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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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