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여성운동'을 향한 행진은 계속되어야 한다
2005년 세계여성행진과 한국 여성행진 평가
지난 2005년은 사회진보연대와 남한의 여성운동에 있어 실험의 한 해였다. '세계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이라는 네트워크가 2000년에 이어 2005년 다시 한번 전 세계 릴레이 행진을 진행한 데 맞춰, 한국에서도 세계여성행진에 연대하며 여성운동을 일구려했던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여성행진과 함께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이하 여성행진)은 세계여성행진이 제안한 7.3 집회, 10.17 24시간 정오 연대행동을 진행했고, 부산에서 열린 아펙정상회의 반대 투쟁에도 참가했다. 2005 세계여성행진 사업단으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여성행진은 이제 해소를 앞두고 있다. 여성행진이라는 시도가 남긴 성과와 과제는 여기에 참가한 각 단체들이 이어가기로 했다. 이 글에서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진행된 여성행진의 성과와 이후 남겨진 과제를 점검해보고 사회진보연대 여성운동의 나아갈 바를 조망해보고자 한다.
2005 세계 여성들의 릴레이 행진과 24시간 연대행동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구현할 이념과 원칙을 담은 '인류를 위한 세계 여성 헌장'(이하 헌장)과 전 세계 연대의 표상인 패치워크가 2005년 지구를 돌며 행진했다. 3.8 '여성의 날' 브라질에서 시작된 행진은 아메리카를 거쳐 유럽,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로 이어졌다.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세계 곳곳에서는 헌장에 담긴 여성의 권리와 가치에 관한 토론이 진행되었고, 각 나라 혹은 대륙별로 구체적인 요구를 제기하는 행동이 이어졌다.
3.8부터 10.17까지 진행된 릴레이 행진에 참가한 여성들은 각 대륙마다 다양한 요구를 제기했다. 남아메리카에의 여성들은 국제금융기구들에 의해 부과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특히 북미자유무역협정, 전미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제출했다. 또한 이주자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남아메리카 각 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반대하며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를 철회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낙태의 권리를 주장했다. 유럽에서는 전반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동유럽 여성들이 서유럽으로 이주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주로 제기되었는데, 강제 인신매매에 반대하며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또한 여성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를 불러일으키는 공장이전, 가정폭력, 사회서비스 축소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군사주의 강화에 반대하는 입장이 제출되었고, 여성에게 집중되는 저임금과 빈곤의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원주민 여성, 비공식 여성노동자를 포함하는 여성들의 연대를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중동의 여성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적 개입 및 점령 그리고, 강간, 성폭력, 고문과 살인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반대했고 중동 지역의 평화를 호소했다. 아프리카의 여성들은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제고할 것을 요구했으며, 식량 안전의 중요성을 제기했다. 또한 강간, 여성학대, 가정폭력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여성행진은 10월 17일 해를 따라 지구를 한바퀴 돌며 진행한 24시간 연대행동과 폐막식으로 마무리되었다. 행진의 피날레를 장식한 서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에는 아프리카 전역에서 약 300명,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에서 온 약 400명의 여성들을 포함해 약 5000명이 모였다. 정오에 이들은 여성들의 연대 행동과 평화를 호소하기 위한 릴레이 행진의 폐막을 축하했다. 공식 폐막식이 열린 장소는 다양한 색깔로 장식되었으며, 참가자들은 다양한 언어로 전 세계 평화를 호소했고, 젊은 여학생들에게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장학금을 전달했다.
각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는 정오에 맞추어 다양한 행진과 토론을 진행했고, 몇몇 나라에서는 철야농성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사가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여성들은 부엌과 공장에서 나와 연대의 대열에 섰다. 행진에 참여한 여성들은 가부장제, 전쟁, 자유무역협정, 여성의 가난, 인종주의, 가족과 친척에 의해 자행되는 강간 및 인신매매에 대한 분노를 공공연하게 표현했다.
2005년 세계여성행진은 여러 가지 성과를 남겼다. 우선, 전 세계 여성들의 공동 행동과 연대 강화했다. 헌장과 퀄트가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가는 동안, 각 국의 여성들은 인접한 나라의 여성들과 함께 모여 공동 행동을 진행하며 연대를 강화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진행한 7.3 여성행진 행사에는 필리핀 WEDPRO 활동가가 참가하여 서로 생각과 경험을 교류하였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활발하게 진행된 행진은 아프리카 내에서의 연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동시에,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전쟁에 의해 파괴된 아프리카 대륙이 세계의 여성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또한 세계여성행진은 국가적, 종교적 장벽을 허무고 여성들의 연대를 실현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는데, 인도의 여성과 파키스탄의 여성은 27년 만에 처음으로 신정체제에 의해 갈라진 장벽을 깨고 전 세계 여성들의 운동에 함께 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음으로 세계여성행진을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여성에 대한 폭력 반대라는 요구가 분명하게 제기되었다. 빈곤과 폭력이라는 보편적 의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다양한 방식의 폭력 반대, 평화 옹호'라는 구체적인 요구들로 발언되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져오는 자유무역협정, 이에 의해 증대되는 이주, 천연자원에 대한 외국의 통제 거부 등이 주로 중앙·남아메리카에서 제기되었다. 여성들이 겪는 강간, 가정 폭력, 차별 등의 다양한 폭력이 제기되었고, 전쟁에서의 여성에 대한 선별적인 폭력과 인신매매 등과 같은 여성에게 집중되는 폭력 또한 폭로되었다.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주의, 종교적·영토적 분쟁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행동도 조직되었다.
마지막으로 세계여성행진은 여성운동과 사회운동의 결합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세계여성행진은 국가적, 지역적, 국제적 수준에서 <비아 캄페시나>(Via Campesina), <아탁>(ATTAC),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과 같은 다른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혹은 사회운동들과 연대했다. 2005년 2월,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기간에 진행된 사회운동총회에서 2005년 릴레이 여성행진이 제안되었고 이로써 행진과 10.17 24시간 연대행동이 사회운동의 주요 일정에 포함될 수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 네트워크는 10월 12일 '소외된 자들의 외침(Cry of the Excluded)', 10월 16 '농촌 여성의 날(Rural Women's Day)'과 같은 행사를 진행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은 예루살렘에서 여성행진과 연대 행동을 취했으며, <비아 캄페시나>의 여성들은 라틴 아메리카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행진에 참석했다. 헌장과 패치워크 퀼트를 매개로, 세계여성행진과 다른 사회운동들은 연대를 굳건히 하고, 식량주권, 생명다양성에 대한 공적 통제, 평화와 탈군사화 등과 같은 주제를 심도 깊게 토론할 수 있었다.
부르키나 파소의 폐막식에서, 헌장은 군사화에 반대해 싸울 것을 선언한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 대표자와 식량 주권을 위해 싸울 것을 호소한 <비아 캄페시나> 여성에게 전달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운동과 사회운동 단체들이 각각의 문제의식과 투쟁을 공유하고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세계여성행진은 지난 해 릴레이 행진을 평가하고 세계여성행진의 향후 진로를 모색하는 논의를 진행 하고 있다. 2006년 7월 경 개최될 총회에서는 탈중심화와 책임력 강화를 위한 네트워크 운영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세계여성행진 내부에는 북반구 여성들이 주로 택하고 있는 국제기구 등에 대한 압력 행사를 중심에 두는 활동방식과 각 국 정부나 국제기구에 대한 입장, 성노동1)에 관한 입장 등을 둘러싼 여러 쟁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 때문에 세계여성행진의 성과를 과소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우리는 국제적인 여성운동체로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라는 여성 억압의 원인을 분석하고, 공동계획과 행동을 통해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와 더 나아가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이뤄나가기 위한 시도를 주목하고자 한다. 세계여성행진은 결성된 때부터, 전 세계 여성들의 네트워크이자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투쟁을 조직하는 이미 거역할 수 없는 운동으로서 지속될 것이다.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한국의 새로운 여성운동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는 2005년 세계여성행진이라는 일정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세계여성행진 일정에 결합하면서 한국 여성의 권리와 요구를 조직하고 발언하자는 취지에서 여성행진 사업단위를 구성하게 되었다. 여성행진은 7.3 헌장과 퀼트가 한국에 도착한 날 진행된 집회와 10.17 정오 여성가족부 앞 기자회견과 문화제를 진행했으며, 아펙정상회의에 맞춰 여성의 이름으로 이에 반대하는 투쟁을 진행했다. 지난해 진행된 여성행진 사업내용은 본 기관지를 통해 몇 차례 소개되었으므로 이 글에서는 성과와 남겨진 과제를 짚어보도록 하겠다.
1)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를 표방한 여성운동, 노무현 정부의 여성정책 비판
여성행진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야기하는 여성에 대한 빈곤과 폭력의 문제를 정세적으로 제기하고자 했다. 저출산 고령화를 문제 삼으며 여성 인력 활용을 운운하는 정부의 모습은 여성의 출산, 육아, 가사노동 등의 이중부담, 노동의 불안정화를 더욱 강화할 뿐이다. 정부의 정책은 기층 여성들의 권리 쟁취와는 하등 무관한 그야말로 여성 착취 방안일 뿐이다. 자본의 위기를 지연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과 여성에 관한 제 정책들의 연관성을 보지 못한 채 여성정책만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여성운동의 성과일 수 없다. 여성행진은 정부의 여성정책에 부응하는 주류 여성단체와 여성가족부를 비판했고, 신자유주의에 신음하는 여성노동자들과 연대투쟁을 진행하였다. 또한 투자와 무역의 자유화, 전쟁을 강화하려는 아펙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여성의제가 여성 일반의 권리신장과는 무관한 것들임을 폭로하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반대, 노무현 정부의 여성정책 비판 등이 적절한 기획이나 사업들로 입안되지 못한 것은 한계로 남는다.
2) 권리선언문 작성 및 논의
7월 3일 집회와 10월 17일 24시간 연대행동을 준비하면서 여성행진은 한국에서 여성이 처한 상황을 폭로하고 여성의 권리를 천명하기 위한 권리선언문을 작성했다. 이 권리선언은 단지 여성들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서술하는 것을 넘어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구조, 제도 등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장애여성, 이주여성, 여성농민 등 여성 주체마다의 특화된 권리 등을 제기하고 있다. 여성행진은 권리선언문 작성 논의를 통해 참가단위들의 문제인식의 같고 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권리선언에 기반을 둔 다양한 여성운동의 의제와 과제들은 이후 각 단위에서 쟁점을 형성하고 고민해야 한다.
3) 다양한 여성주체와의 연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에 반대하며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여 투쟁하는 여성노동자, 여성빈민, 여성농민, 성노동자, 장애여성, 이주여성 등 투쟁주체들을 조직화하고 이들의 요구를 여성 전체의 요구로 제기하고자 노력했다. 일례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 투쟁에 결합하면서 고발대회를 기획하여 여성노동자의 투쟁을 환기시키고, 노동의 불안정화를 폭로할 수 있었다. 7.3 여성행진 집회에 많은 단위 및 여성주체들이 참가하여 여성의 이름으로 연대하고 서로의 요구와 문제의식을 나눌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지역에 존재하는 여성 활동가들과도 여성행진의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간담회 등을 진행하였다. 광주 지역에서는 광주민중행동이 주축이 되어 타 단위들과 여성행진의 문제의식에 기반을 둔 선전전 등의 사업 또한 진행하였다. 그러나 연대사업이 여성대중운동단위들과의 공동사업 등을 진행하지 못한 채 투쟁하는 단위사업장 별로, 혹은 논의 등으로 제한적으로 진행된 점은 아쉬운 지점으로 남는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출현한 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자리로서 여성행진의 공간은 열려있었다. 토론회와 집회 등을 통해 그녀들과 우리의 입장을 논의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여성행진 참가 단위 일부와 성노동자 조직이 성노동자 운동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들을 진행 중이다. 여성행진을 통해 촉발된 성노동자운동에 관한 논의를 지속, 심화해가는 것 또한 남겨진 과제이다.
4) 공동사업 및 연대 경험 축적
여성행진에 참여한 여러 단위들이 여성행진을 통해 제기된 여성운동의 의제를 논의하는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비록 각 단위에서 여성 쟁점이 부차화되거나 여성활동가들의 업무로 치부되기도 하였지만 여성운동의 경험을 통해 각 단위에서의 상황과 과제 또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단위가 공동으로 사업을 기획, 집행한 것 또한 여성행진의 성과라 할 것이다. 여성행진을 진행한 각 단위가 서로를 연대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는 만큼 이후 지속적인 연대활동을 통해 소중한 성과가 유실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5) 세계여성운동에의 결합 및 국제연대의 싸이클 구축
세계여성행진이라는 전 세계 여성들의 네트워크를 한국사회에 소개하고, 전지구적 릴레이 행진에 결합하는 경험을 통해 국제연대의 경험과 싸이클 또한 구축할 수 있었다.
나아가며
앞서의 평가지점들은 성과와 동시에 미숙했던 지점들 또한 드러내준다. 그러나 이는 여성행진 독자적인 노력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 또한 아니다. 여성행진이 애초에 기획했던 여성 대중단위 등을 포괄하지 못한 채 몇몇 단위에 한정되었던 지점, 성매매방지법 찬/반을 넘어 성노동자의 권리투쟁을 지지하는 입장이 여성행진 조직화에 걸림돌이 되었던 지점 등은 타 단위들의 경직성 내지 폐쇄성에도 부분적인 원인이 존재한다.
이른바 주류 여성단체들은 여성운동의 자율성을 상실한 채, 정부, 의회를 대상으로 여성 이슈를 제도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개입 운동을 시도하며 지방의회에 직접 진출하거나 압력활동 등을 벌이고 있다. 또한 대학 내 페미니스트 그룹 등의 영페미니스트 진영은 성폭력 등과 같은 단일 사안에 치중하거나 문화주의적 경향으로 매몰되고 있다. 노조 등의 단위에서는 할당제나 정치세력화 등의 의제만이 제기되고 여성활동가를 재생산하는 데도 급급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사회에서 여성대중운동이라 불릴 만한 것은 부재한 상황이다. 여성운동은 독자적인 여성해방의 이론과 체계를 갖추는 것과 함께,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들을 기울어야 한다.
현재 여성행진은 아펙투쟁까지 진행한 후 평가와 전망 논의를 진행했다. 2005년 세계여성행진이라는 운동의 사업단의 역할을 마감한 여성행진은 이를 통해 제기된 여성 의제들을 각 단위에서 논의, 심화해가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것이 여성행진의 소중한 성과를 책임감 있게 계승해가는 것이라는 제안을 공유하면서 해소를 결정했다. 그러나 여성행진 참가단위들이 연대 파트너쉽을 형성하였기에 이후 각 단위에서 쟁점 토론 및 공동사업 등의 다양한 사업 제안을 위한 회의를 소집할 수 있을 것이다.
발전적 해소에 걸맞게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또한 여성행진의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여성운동의 비판적 현실에 입각한 '새로운 여성운동'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풍부한 논의와 다양한 실험들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정책이자 이데올로기가 강화하는 노동의 불안정화, 여성 의무 강화 등의 양태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법, 제도로 환원되지 않는 여성억압의 구조로서 역사적 가족 형태의 문제나 여성의 성적 대상화, 상품화 문제를 비판하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와 여성 억압 구조에 대한 심화된 논의를 정세적인 쟁점에 개입하고 대중운동적인 의제로 만드는 다양한 시도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분석에 그치지 않는 다양한 여성 주체와의 공동투쟁을 통해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상호 발전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노동운동과의 상호 결합을 위해, 노조는 여성이슈에 제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을 증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사회운동의 의제에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 사회운동 또한 현장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여야 한다.
여성행진 사업을 진행하면서 여성행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곤 했다. 주류 여성단체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고 영페미니스트와는 조금 다른 이슈를 제기하는 여성행진이 현재의 여성운동 지형에서 적절한 표상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드러난 지점인 것 같다. 그러나 당분간 이러한 지형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우리의 계획이 여성운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다. 여성운동이 부차화되지 않는 민중운동의 혁신과 함께, 여성운동의 이념이 민중운동과의 그것과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여성운동'을 현실화하기 위해, 여성행진의 소중한 시도와 성과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들은 계속 되어야 한다.
1) 세계여성행진 내에서의 성노동을 둘러싼 논쟁은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2005년 여성캠프에 수록된 첨부자료를 참고하시오. http://www.pssp.org/bbs/view.php?board=document&id=810&page=1&category1=5 본문으로
2005 세계 여성들의 릴레이 행진과 24시간 연대행동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구현할 이념과 원칙을 담은 '인류를 위한 세계 여성 헌장'(이하 헌장)과 전 세계 연대의 표상인 패치워크가 2005년 지구를 돌며 행진했다. 3.8 '여성의 날' 브라질에서 시작된 행진은 아메리카를 거쳐 유럽,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로 이어졌다.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세계 곳곳에서는 헌장에 담긴 여성의 권리와 가치에 관한 토론이 진행되었고, 각 나라 혹은 대륙별로 구체적인 요구를 제기하는 행동이 이어졌다.
3.8부터 10.17까지 진행된 릴레이 행진에 참가한 여성들은 각 대륙마다 다양한 요구를 제기했다. 남아메리카에의 여성들은 국제금융기구들에 의해 부과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특히 북미자유무역협정, 전미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제출했다. 또한 이주자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남아메리카 각 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반대하며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를 철회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낙태의 권리를 주장했다. 유럽에서는 전반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동유럽 여성들이 서유럽으로 이주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주로 제기되었는데, 강제 인신매매에 반대하며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또한 여성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를 불러일으키는 공장이전, 가정폭력, 사회서비스 축소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군사주의 강화에 반대하는 입장이 제출되었고, 여성에게 집중되는 저임금과 빈곤의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원주민 여성, 비공식 여성노동자를 포함하는 여성들의 연대를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중동의 여성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적 개입 및 점령 그리고, 강간, 성폭력, 고문과 살인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반대했고 중동 지역의 평화를 호소했다. 아프리카의 여성들은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제고할 것을 요구했으며, 식량 안전의 중요성을 제기했다. 또한 강간, 여성학대, 가정폭력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여성행진은 10월 17일 해를 따라 지구를 한바퀴 돌며 진행한 24시간 연대행동과 폐막식으로 마무리되었다. 행진의 피날레를 장식한 서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에는 아프리카 전역에서 약 300명,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에서 온 약 400명의 여성들을 포함해 약 5000명이 모였다. 정오에 이들은 여성들의 연대 행동과 평화를 호소하기 위한 릴레이 행진의 폐막을 축하했다. 공식 폐막식이 열린 장소는 다양한 색깔로 장식되었으며, 참가자들은 다양한 언어로 전 세계 평화를 호소했고, 젊은 여학생들에게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장학금을 전달했다.
각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는 정오에 맞추어 다양한 행진과 토론을 진행했고, 몇몇 나라에서는 철야농성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사가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여성들은 부엌과 공장에서 나와 연대의 대열에 섰다. 행진에 참여한 여성들은 가부장제, 전쟁, 자유무역협정, 여성의 가난, 인종주의, 가족과 친척에 의해 자행되는 강간 및 인신매매에 대한 분노를 공공연하게 표현했다.
2005년 세계여성행진은 여러 가지 성과를 남겼다. 우선, 전 세계 여성들의 공동 행동과 연대 강화했다. 헌장과 퀄트가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가는 동안, 각 국의 여성들은 인접한 나라의 여성들과 함께 모여 공동 행동을 진행하며 연대를 강화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진행한 7.3 여성행진 행사에는 필리핀 WEDPRO 활동가가 참가하여 서로 생각과 경험을 교류하였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활발하게 진행된 행진은 아프리카 내에서의 연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동시에,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전쟁에 의해 파괴된 아프리카 대륙이 세계의 여성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또한 세계여성행진은 국가적, 종교적 장벽을 허무고 여성들의 연대를 실현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는데, 인도의 여성과 파키스탄의 여성은 27년 만에 처음으로 신정체제에 의해 갈라진 장벽을 깨고 전 세계 여성들의 운동에 함께 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음으로 세계여성행진을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여성에 대한 폭력 반대라는 요구가 분명하게 제기되었다. 빈곤과 폭력이라는 보편적 의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다양한 방식의 폭력 반대, 평화 옹호'라는 구체적인 요구들로 발언되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져오는 자유무역협정, 이에 의해 증대되는 이주, 천연자원에 대한 외국의 통제 거부 등이 주로 중앙·남아메리카에서 제기되었다. 여성들이 겪는 강간, 가정 폭력, 차별 등의 다양한 폭력이 제기되었고, 전쟁에서의 여성에 대한 선별적인 폭력과 인신매매 등과 같은 여성에게 집중되는 폭력 또한 폭로되었다.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주의, 종교적·영토적 분쟁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행동도 조직되었다.
마지막으로 세계여성행진은 여성운동과 사회운동의 결합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세계여성행진은 국가적, 지역적, 국제적 수준에서 <비아 캄페시나>(Via Campesina), <아탁>(ATTAC),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과 같은 다른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혹은 사회운동들과 연대했다. 2005년 2월,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기간에 진행된 사회운동총회에서 2005년 릴레이 여성행진이 제안되었고 이로써 행진과 10.17 24시간 연대행동이 사회운동의 주요 일정에 포함될 수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 네트워크는 10월 12일 '소외된 자들의 외침(Cry of the Excluded)', 10월 16 '농촌 여성의 날(Rural Women's Day)'과 같은 행사를 진행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은 예루살렘에서 여성행진과 연대 행동을 취했으며, <비아 캄페시나>의 여성들은 라틴 아메리카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행진에 참석했다. 헌장과 패치워크 퀼트를 매개로, 세계여성행진과 다른 사회운동들은 연대를 굳건히 하고, 식량주권, 생명다양성에 대한 공적 통제, 평화와 탈군사화 등과 같은 주제를 심도 깊게 토론할 수 있었다.
부르키나 파소의 폐막식에서, 헌장은 군사화에 반대해 싸울 것을 선언한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 대표자와 식량 주권을 위해 싸울 것을 호소한 <비아 캄페시나> 여성에게 전달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운동과 사회운동 단체들이 각각의 문제의식과 투쟁을 공유하고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세계여성행진은 지난 해 릴레이 행진을 평가하고 세계여성행진의 향후 진로를 모색하는 논의를 진행 하고 있다. 2006년 7월 경 개최될 총회에서는 탈중심화와 책임력 강화를 위한 네트워크 운영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세계여성행진 내부에는 북반구 여성들이 주로 택하고 있는 국제기구 등에 대한 압력 행사를 중심에 두는 활동방식과 각 국 정부나 국제기구에 대한 입장, 성노동1)에 관한 입장 등을 둘러싼 여러 쟁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 때문에 세계여성행진의 성과를 과소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우리는 국제적인 여성운동체로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라는 여성 억압의 원인을 분석하고, 공동계획과 행동을 통해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와 더 나아가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이뤄나가기 위한 시도를 주목하고자 한다. 세계여성행진은 결성된 때부터, 전 세계 여성들의 네트워크이자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투쟁을 조직하는 이미 거역할 수 없는 운동으로서 지속될 것이다.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한국의 새로운 여성운동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는 2005년 세계여성행진이라는 일정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세계여성행진 일정에 결합하면서 한국 여성의 권리와 요구를 조직하고 발언하자는 취지에서 여성행진 사업단위를 구성하게 되었다. 여성행진은 7.3 헌장과 퀼트가 한국에 도착한 날 진행된 집회와 10.17 정오 여성가족부 앞 기자회견과 문화제를 진행했으며, 아펙정상회의에 맞춰 여성의 이름으로 이에 반대하는 투쟁을 진행했다. 지난해 진행된 여성행진 사업내용은 본 기관지를 통해 몇 차례 소개되었으므로 이 글에서는 성과와 남겨진 과제를 짚어보도록 하겠다.
1)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를 표방한 여성운동, 노무현 정부의 여성정책 비판
여성행진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야기하는 여성에 대한 빈곤과 폭력의 문제를 정세적으로 제기하고자 했다. 저출산 고령화를 문제 삼으며 여성 인력 활용을 운운하는 정부의 모습은 여성의 출산, 육아, 가사노동 등의 이중부담, 노동의 불안정화를 더욱 강화할 뿐이다. 정부의 정책은 기층 여성들의 권리 쟁취와는 하등 무관한 그야말로 여성 착취 방안일 뿐이다. 자본의 위기를 지연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과 여성에 관한 제 정책들의 연관성을 보지 못한 채 여성정책만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여성운동의 성과일 수 없다. 여성행진은 정부의 여성정책에 부응하는 주류 여성단체와 여성가족부를 비판했고, 신자유주의에 신음하는 여성노동자들과 연대투쟁을 진행하였다. 또한 투자와 무역의 자유화, 전쟁을 강화하려는 아펙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여성의제가 여성 일반의 권리신장과는 무관한 것들임을 폭로하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반대, 노무현 정부의 여성정책 비판 등이 적절한 기획이나 사업들로 입안되지 못한 것은 한계로 남는다.
2) 권리선언문 작성 및 논의
7월 3일 집회와 10월 17일 24시간 연대행동을 준비하면서 여성행진은 한국에서 여성이 처한 상황을 폭로하고 여성의 권리를 천명하기 위한 권리선언문을 작성했다. 이 권리선언은 단지 여성들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서술하는 것을 넘어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구조, 제도 등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장애여성, 이주여성, 여성농민 등 여성 주체마다의 특화된 권리 등을 제기하고 있다. 여성행진은 권리선언문 작성 논의를 통해 참가단위들의 문제인식의 같고 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권리선언에 기반을 둔 다양한 여성운동의 의제와 과제들은 이후 각 단위에서 쟁점을 형성하고 고민해야 한다.
3) 다양한 여성주체와의 연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에 반대하며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여 투쟁하는 여성노동자, 여성빈민, 여성농민, 성노동자, 장애여성, 이주여성 등 투쟁주체들을 조직화하고 이들의 요구를 여성 전체의 요구로 제기하고자 노력했다. 일례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 투쟁에 결합하면서 고발대회를 기획하여 여성노동자의 투쟁을 환기시키고, 노동의 불안정화를 폭로할 수 있었다. 7.3 여성행진 집회에 많은 단위 및 여성주체들이 참가하여 여성의 이름으로 연대하고 서로의 요구와 문제의식을 나눌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지역에 존재하는 여성 활동가들과도 여성행진의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간담회 등을 진행하였다. 광주 지역에서는 광주민중행동이 주축이 되어 타 단위들과 여성행진의 문제의식에 기반을 둔 선전전 등의 사업 또한 진행하였다. 그러나 연대사업이 여성대중운동단위들과의 공동사업 등을 진행하지 못한 채 투쟁하는 단위사업장 별로, 혹은 논의 등으로 제한적으로 진행된 점은 아쉬운 지점으로 남는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출현한 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자리로서 여성행진의 공간은 열려있었다. 토론회와 집회 등을 통해 그녀들과 우리의 입장을 논의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여성행진 참가 단위 일부와 성노동자 조직이 성노동자 운동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들을 진행 중이다. 여성행진을 통해 촉발된 성노동자운동에 관한 논의를 지속, 심화해가는 것 또한 남겨진 과제이다.
4) 공동사업 및 연대 경험 축적
여성행진에 참여한 여러 단위들이 여성행진을 통해 제기된 여성운동의 의제를 논의하는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비록 각 단위에서 여성 쟁점이 부차화되거나 여성활동가들의 업무로 치부되기도 하였지만 여성운동의 경험을 통해 각 단위에서의 상황과 과제 또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단위가 공동으로 사업을 기획, 집행한 것 또한 여성행진의 성과라 할 것이다. 여성행진을 진행한 각 단위가 서로를 연대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는 만큼 이후 지속적인 연대활동을 통해 소중한 성과가 유실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5) 세계여성운동에의 결합 및 국제연대의 싸이클 구축
세계여성행진이라는 전 세계 여성들의 네트워크를 한국사회에 소개하고, 전지구적 릴레이 행진에 결합하는 경험을 통해 국제연대의 경험과 싸이클 또한 구축할 수 있었다.
나아가며
앞서의 평가지점들은 성과와 동시에 미숙했던 지점들 또한 드러내준다. 그러나 이는 여성행진 독자적인 노력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 또한 아니다. 여성행진이 애초에 기획했던 여성 대중단위 등을 포괄하지 못한 채 몇몇 단위에 한정되었던 지점, 성매매방지법 찬/반을 넘어 성노동자의 권리투쟁을 지지하는 입장이 여성행진 조직화에 걸림돌이 되었던 지점 등은 타 단위들의 경직성 내지 폐쇄성에도 부분적인 원인이 존재한다.
이른바 주류 여성단체들은 여성운동의 자율성을 상실한 채, 정부, 의회를 대상으로 여성 이슈를 제도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개입 운동을 시도하며 지방의회에 직접 진출하거나 압력활동 등을 벌이고 있다. 또한 대학 내 페미니스트 그룹 등의 영페미니스트 진영은 성폭력 등과 같은 단일 사안에 치중하거나 문화주의적 경향으로 매몰되고 있다. 노조 등의 단위에서는 할당제나 정치세력화 등의 의제만이 제기되고 여성활동가를 재생산하는 데도 급급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사회에서 여성대중운동이라 불릴 만한 것은 부재한 상황이다. 여성운동은 독자적인 여성해방의 이론과 체계를 갖추는 것과 함께,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들을 기울어야 한다.
현재 여성행진은 아펙투쟁까지 진행한 후 평가와 전망 논의를 진행했다. 2005년 세계여성행진이라는 운동의 사업단의 역할을 마감한 여성행진은 이를 통해 제기된 여성 의제들을 각 단위에서 논의, 심화해가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것이 여성행진의 소중한 성과를 책임감 있게 계승해가는 것이라는 제안을 공유하면서 해소를 결정했다. 그러나 여성행진 참가단위들이 연대 파트너쉽을 형성하였기에 이후 각 단위에서 쟁점 토론 및 공동사업 등의 다양한 사업 제안을 위한 회의를 소집할 수 있을 것이다.
발전적 해소에 걸맞게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또한 여성행진의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여성운동의 비판적 현실에 입각한 '새로운 여성운동'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풍부한 논의와 다양한 실험들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정책이자 이데올로기가 강화하는 노동의 불안정화, 여성 의무 강화 등의 양태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법, 제도로 환원되지 않는 여성억압의 구조로서 역사적 가족 형태의 문제나 여성의 성적 대상화, 상품화 문제를 비판하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와 여성 억압 구조에 대한 심화된 논의를 정세적인 쟁점에 개입하고 대중운동적인 의제로 만드는 다양한 시도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분석에 그치지 않는 다양한 여성 주체와의 공동투쟁을 통해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상호 발전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노동운동과의 상호 결합을 위해, 노조는 여성이슈에 제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을 증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사회운동의 의제에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 사회운동 또한 현장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여야 한다.
여성행진 사업을 진행하면서 여성행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곤 했다. 주류 여성단체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고 영페미니스트와는 조금 다른 이슈를 제기하는 여성행진이 현재의 여성운동 지형에서 적절한 표상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드러난 지점인 것 같다. 그러나 당분간 이러한 지형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우리의 계획이 여성운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다. 여성운동이 부차화되지 않는 민중운동의 혁신과 함께, 여성운동의 이념이 민중운동과의 그것과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여성운동'을 현실화하기 위해, 여성행진의 소중한 시도와 성과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들은 계속 되어야 한다.
1) 세계여성행진 내에서의 성노동을 둘러싼 논쟁은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2005년 여성캠프에 수록된 첨부자료를 참고하시오. http://www.pssp.org/bbs/view.php?board=document&id=810&page=1&category1=5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