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6.6.65호

대추리, 도두리, 황새울 이야기

정지영 | 정책편집부장
<정리> 정지영 | 정책편집부장
<사진> 권회승 | 참세상 기자
용 오 | 회원
정지영

* 사진 옆의 글들은 <올해에도 농사짓자> 카페(cafe.naver.com/allnong)의 여러 글에서 인용했다.

우리는 대추리로 갑니다




이 지역은 군사보호시설이므로 무단침입을 금지함

지금 대추리 도두리 논에서는 날마다 포클레인의 작업소리가 들리고 마을 곳곳의 진입로가 차단되었습니다. 경찰은 다리를 부수고 비닐하우스를 철거하고 사람들을 통제합니다. 도두리로 들어오는 15번 버스가 며칠째 못 들어오고 아이들의 학교차량도 출입이 어렵습니다.


군부대는 논 한가운데에 철조망을 치고 숙영지를 만들었습니다. 경찰은 작은 충돌에도 연행지침을 내려 지킴이들을 잡아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경찰과 군대가 주단하며 버리는 쓰레기로 논은 쓰레기장이 되어가고 있고 그들이 수도물을 끌어다 써 마을주민들의 집에는 물이 나오지 않기도 합니다.



대추국민학교 제3회 졸업생 일동

"울어도 울어도 눈물이 나와. 너무 분해서. 옛날에 없이 살아서 고생할 때 학교를 장만할 때 쌀 걷고 한 걸 생각하면 나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모아서 힘을 모아서 한 걸 생각하면 너무 분하잖아. 그러니까 한 없이 눈물이 나와서 울었어. 우리 3남매를 그 학교에서 졸업을 시켰어. 우리 딸도 그 장면 보면서 서울서 울었대"



포클레인이 대추초교 부수던 날

부수기 전에 들어가서 한 번 보고 나온다는데 왜 못 들어가게 혀. 사람이 그래도 인정이 있으면 내가 잠깐 들어가서 보고 나온다는데 뵈어줄 수도 있는 거 아니여? 건물 부수기 전에 내 너무 아까우니께 얼굴이라도, 건물이라도 잠깐 보고 나온다고 했어. 그런데 이 염병할 새끼들이 못 들어가게 하는겨. 그러니 내가 얼마나 분통 터져. 아이고. 너무너무 억울혀. 아이구 이놈들아. 너희 사는 집을 때려부수면 좋겠냐. 이게 무슨 일이여. 청천벽력이지. 너희놈들은 눈물도 없냐. 내가 저 건물을 한 번 쳐다본다는데 왜 못 보게 혀. 왜 못 보게 혀. 왜.
나는 지금 80살이 다 됐어도 이런 꼴은 생전 처음이야. 내 정신으로 6·25사변을 겪었어도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여. 학교 짓는 것도 냈지, 노인정 짓는 것도 냈지. 다 대추리 사람들이 돈 내 가지고 지은 겨. 대추리 사람들이 얼마나 성실하게 살았는디. 그런데 지금 이 지랄을 하니.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어머니. 우리 시어머니가 맨날 우리 며느리 같은 것도 없다고 그랬는데. 내가 점심도 거르고 일해서 모았는데. 한 끼라도 아껴가며 땅 사려고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디. 너무 아까워서 어떡해. 이놈들아. 자식들 파릇파릇 자랄 적에 목숨 자르는 거랑 똑같은 거여. 저 나무에서 가을에 은행이 얼마나 많이 쏟아지는데. 왜 나무를 저놈들이 죄 자르고 지랄이여. 가슴이 뛰어서 못 살겠어. 경철 할아버지가 옛날 이 학교 소사 볼 적에 나무 다 심은 겨. 얼매나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는디. 저 나무들 다 심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는디. 말도 못해. 세상에 대추리가 이렇게 될 줄은 누가 알았어.
- 황필순(76),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69



방승률 할아버지 -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10

이제는
돌덩어리 하나 없는
우리 손주의 말랑말랑한 머리에다가
저 38선 같은 철책만은
둘러치지 말아야 되는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조차
통 모르겠는
저 미군기지 같은
머릿속은 만들지 말아야 하는데
손주를 데리고
일부러 들판에 나갈 때도
잠자리 메뚜기 개구리
솔부엉이 기러기 냉이
순전히 들판을 떠나서는 살지 못하는 이름들로
모를 심듯 정성 들여
손주 머리에 심어 보는 것인데
내 죽어 묻힐 곳도
말랑말랑한 손주의 머릿속이어야 하는데
우리 손주의 머릿속이
온통 폭탄으로 가득 차 버린다면
남을 죽이는 음모로 철책 속에 숨어 버린다면
그건 내가 이 땅에서 평생 배운 언어가
아니다
나는 땅에서 배운 언어 이외에는
절대 손주에게 가르칠 수 없다.



1980년 5월 광주, 그리고 2006년 5월 평택

노무현 정권. 그가 유명해진 계기 중 하나가
청문회 때 학살자 전두환에게 명패를 던져서였지요.
26년 만에 처음으로 시민들에게 군대를 투입한 지금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그가 민주화를 더욱 확고히 했는지는 곱씹어 봐도 잘 모르겠지만
박정희 이후 처음으로 전투병 파병을 했고
경찰폭력으로 두 농민을 때려죽였으며
현대 하이스코에 전기총을 투입했다는 것은 똑똑히 알겠습니다.
열린우리당은 보상금 문제를 운운하며 대추리 주민들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후 빨갱이로 몰아 그들을 두번 죽이던 장면과
어쩌면 이렇게까지 똑같을 수 있을까요.
신자유주의, 이 타락한 민주화 세력들.
계엄령 없는 계엄 세력들.
우리는 이 사건을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해야 합니다.
문정현 신부님 말씀대로
1980년 5월 광주, 그곳에 가지 못하고 그곳을 말하지 못했던 모든 사람들은
2006년 5월 평택, 그곳에 가고 그곳을 말해야 합니다.
저 분칠한 독재자들, 타락한 민주화 세력들이 죽여 버린 민주주의는
오직 이로부터만 다시 부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광주의 벗, 평택의 투쟁

80년 광주를 역사와 기억의 저 편으로 보내려는 자, 그 정신이 오늘날의 투쟁과 결합하지 못하게 획책하는 자, 그들이 바로 광주의 적이다. 그들에 맞서 투쟁하는 모든 이들이 바로 광주의 벗이다. 황새울에서 저들이 쳐 놓은 철조망을 뚫고 군인과 경찰이라는 조직된 폭력에 두려움 없이 맞서는 이들이 바로 광주의 벗이다. 오키나와에서 평화와 미군 없는 세상을 외치는 일본의 민중들이 바로 광주의 벗이다. 독재에 맞서 투쟁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흥얼거리는 동아시아 민중들이 바로 광주의 벗이다. 반동적 질서재편에 맞서 ‘또다른 세계는 가능하다’고 외치고 투쟁하는 세계 민중들이 바로 광주의 벗이다.



내가 생각하는 평택 투쟁의 세 가지 의미

하나, 평택투쟁은 인민의 평화적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것.
하나, 평택투쟁은 미국의 군사주의, 전략적 유연성을 반대하기 위한 것.
하나, 평택투쟁은 제국의 법이나 지배자의 법이 아니라 농민의 법, 민중의 법을 실현하기 위한 것.
- 어느 서울 시민
주제어
평화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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