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6.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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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세계화운동과 한미FTA 반대투쟁

류미경 | 정책편집국장


지난 2월 3일 한․미 양국 정부는 한․미 FTA 협상 개시를 선언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FTA에 정권의 명운을 건 듯, 어떠한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임기 내에 체결을 완료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앞서 한․미 양국은 전 세계 주둔 미군을 새로운 유형의 전쟁 및 분쟁에 신속하게 투입될 수 있도록 재편하는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에 조응하도록 주한미군을 재편하고 한․미․일 삼각동맹을 공고히 하여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초민족 금융자본의 이윤창출에 안전성을 꾀하는 한 편, 한․미 FTA를 체결함으로써 한국의 경제․사회 전반에 미국식 기준을 확산하여 초민족 자본의 권한을 극대화하고, ‘서비스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첨단화함으로써 금융세계화에 더욱 깊숙하게 편입하겠다는 것이 바로 노무현 정부의 ‘비전’이다. 벌써부터 노무현 정부는 주한미군 재편 계획의 일환인 평택 미군기지 확장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역주민의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 군대를 투입하는 등 무자비한 폭력을 동원하여 민중의 생존권과 주권을 짓밟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비전’이 몰고 올 파괴적인 효과는 이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의 전쟁기지화, 농업․농촌의 붕괴, 빈곤의 심화, 노동권․여성권․건강권․교육권 등 민중의 권리의 파괴로 민중의 삶의 위기는 더욱 증폭될 것이다. 이에,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를 위한 투쟁이 전국적인 투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한․미 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가 결성되는 등 한․미 FTA 협상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 또한 본격화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세계적인 민중 삶의 위기를 야기하는 ‘금융․군사세계화’에 맞서 강력하게 분출하고 있는 ‘대안세계화운동’의 관점에서 한․미 FTA 반대투쟁의 의미와 방향을 짚어보고자 한다.

‘금융․군사세계화’ Vs. '대안세계화‘

1970년대부터 전 세계를 휩쓴 경제위기에 대한 해법으로 등장한 ‘금융세계화’는 자본의 위기를 민중에게 전가하는 과정이다. IMF, 세계은행, WTO와 같은 국제적인 금융․무역기구들은 금융자본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한편, 국경을 초월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각 국에서 폭발한 외채․외환위기를 매개로 도입된 IMF․세계은행의 구조조정 프로그램, 2001년 개시되어 현재까지 협상이 진행 중인 ‘도하개발의제’가 그것이다. 최근에는 신자유주의적 경제통합을 꾀하는 양자간․지역별 자유무역협정(FTA)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정확하게 민중의 권리를 공격하며 세계의 부와 자원을 자본주의 중심부로 집중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어서, 이에 대한 불만과 저항은 점차 커지고 있다. 또한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은 세계화의 이익을 방어하고 저항을 무력화하는 바탕이 된다. 즉, 현재의 금융세계화는 군사력에 의해 뒷받침되며 전쟁과 폭력을 동반한다.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각 국의 노동자, 농민, 여성, 원주민, 이주노동자들은 이러한 위기에 대한 국가들의 무기력을 넘어 인민의 권리를 자율적으로 실현하고 공동체와 사회를 재건하며, 사회․경제적인 변혁을 추동하는 운동을 조직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들은 퇴행적인 ‘국수주의’, 코퍼러티즘에 기반을 둔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와 구별되는 ‘대안세계화’라는 이념을 형성하고 있다. 1999년, 우루과이 라운드의 뒤를 잇는 새로운 무역라운드가 출범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사회운동들이 시애틀에 결집했을 때, 지배계급과 주류언론은 이를 두고 ‘세계화라는 대세를 거스르는 시대착오적인 세력들’이라며 ‘목표와 지향이 불분명하여 곧 사그라질 흐름’이라고 폄하했다. 하지만 시애틀 투쟁 이후 이러한 사회운동들의 국제적인 연대는 더욱 강력해지고 있으며, 2001년 등장한 ‘세계사회포럼(WSF)’을 매개로 하여 약탈과 파괴를 획책하는 ‘금융․군사세계화’를 거부하고, 민중의 권리에 바탕을 둔 대안적인 전망을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싸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의 무장봉기에서 세계사회포럼까지: 대안세계화운동의 흐름 개괄

대안세계화운동이 세계적인 흐름으로 성장하게 된 과정을 주요한 계기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1994년 1월 1일 개시된 멕시코 싸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의 무장봉기를 그 발단으로 볼 수 있다. 이 날은 미국, 멕시코, 캐나다 사이에 체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날로, 싸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은 이 날을 기점으로 멕시코의 뿌리 깊은 사회 구조적 모순과 NAFTA로 가시화 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폭력에 대한 저항을 선언했다. NAFTA를 체결하기 위해 멕시코 정부는 1917년부터 지속해온 토지공유제인 ‘에히도(Ejido)'를 폐지했다.1) 이는 곧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과 자치권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싸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의 봉기는 이에 연원한다. 이들은 투쟁의 과정에서 멕시코 정부의 언론 통제를 통한 고립작전에 맞서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투쟁을 세계에 알려냈으며, 1996년 7월에는 자신들의 근거지 정글에서 국제적인 회합을 개최했다. 이 회합은 싸빠띠스따의 투쟁을 국제적인 쟁점으로 만들어내고, 또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연결시키는 데 기여했다.2)
199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추진된 다자간투자협정(MAI)은 싸빠띠스따 무장봉기 이후 다시 한 번 세계적인 공동행동을 촉발했다. 이 협정이 사회운동들의 타깃이 된 이유는, ‘단기성 투기자본’까지 투자로 간주하는 등 투자의 범위를 넓게 정의하고, 투자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사회운동들은 이를 ‘초국적 자본을 위한 권리 헌장’으로 규정하고, 이 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했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투쟁을 비롯하여, 호주, 미국, 유럽 곳곳에서 이 협정에 반대하는 투쟁이 진행되었다. 사회운동들은 이러한 흐름을 모아 1998년 10월 파리에서 ‘MAI 반대 국제민중정상회담’을 개최하고, 국제상공회의소를 점거하는 투쟁을 전개했다. 이러한 투쟁의 성과로 프랑스와 캐나다가 이 협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혀 결국 OECD 내에서 ‘투자자유화 협정’을 체결하려던 시도는 좌초되었다.3) 이 투쟁을 계기로 ‘초국적 투기자본에 대한 통제’는 사회운동의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MAI 반대투쟁의 경험은 1999년 시애틀 투쟁으로 이어진다. 시애틀 3차 WTO 각료회의는 우루과이라운드의 뒤를 잇는 WTO 뉴라운드의 출범을 목표로 했다. 우루과이 라운드가 공산품뿐만 아니라 농업과 서비스를 WTO 내의 이슈로 포괄해 내었다면, 뉴라운드에서는 이 두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무역자유화 방안과 투자자유화, 지적재산권 강화 등 새로운 의제를 포함시켜 WTO의 활동범위를 확대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이른바 ‘시애틀 전투’로 인해 보기 좋게 무산되었고, 이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의 굵직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북반구 NGO를 중심으로 하는 회담장 내 로비전략(장내전략)’과 ‘사회운동․대중조직들의 대중투쟁(장외전략)’ 중 어느 쪽이 중심인지 분명하지 않았고, 제기된 요구도 너무 다양해서 어느 한 쪽으로 수렴되기도 힘들었다. 미국노총(AFL-CIO)은 중국의 WTO 가입으로 미국보다 노동기준이 낮은 중국노동자들과 미국노동자들이 ‘밑바닥을 향한 경쟁’을 하게 되어, 미국의 노동조건이 ‘하향평준화’할 것이라며 ‘중국의 WTO 가입 반대’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또한 WTO 협정 안에 ‘무역기준’과 관련된 조항을 포함시키자는 주장을 내걸었다. ‘밑바닥을 향한 경쟁’을 일정정도 완화하여 ‘일자리’를 보호하려는 의도였다. 또한 환경단체들은 마찬가지로 WTO 협정 안에 ‘환경기준’을 포함시키자는 주장을 하였다. 여기에다 ‘자유무역’을 통한 개발의 혜택이 전 세계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개도국 및 최빈국’ 정부의 주장까지 더해져, 시애틀 투쟁은 ‘지향이 불분명한 투쟁’으로 묘사되었으며, 다양한 운동들의 ‘무지개 동맹’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각 국 각료들의 발을 묶어 회의에 참가하지 못하게 해 결국 ‘각료회의 무산’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던 직접행동은 그 뒤 프라하, 제노바에서도 재현되었다. 또한 ‘자유무역이 빈국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선동에 대한 세계 민중의 의심은 더욱 커졌다.
2001년 1월에는 세계사회포럼이 시작되었다. 시애틀, 워싱턴 등지에서 일어난 국제적인 시위의 성과를 모아내고, 이를 계기로 새롭게 형성된 사회운동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공유하여 이를 뛰어넘는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 것이다. 1차 세계사회포럼 당시 ‘시애틀 3차 WTO 각료회의 반대투쟁 이후 성장해 온 운동들’이라고 밝힌 여러 조직들이 주축이 되어 ‘세계사회운동총회’가 개최되었는데, 이 회의는 매년 개최되어 세계 사회운동이 집중해야 할 시급한 과제들을 밝히고, 국제적인 공동 행동을 조정하고 이에 대한 결의를 모으는 역할을 해왔다. 2003년 3회 세계사회포럼에서는 세계 사회운동들의 교류와 소통을 상시적으로 이루어내자는 취지에서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를 건설하게 된다.4) 그 이후에 벌어진 2001년 6월 제노바 G8 정상회의 반대투쟁, 2002년 이라크 침공 직전에 열렸던 2․15 국제반전공동행동 등은 바로 ‘세계사회운동총회’를 매개로 조직되고 조정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조직된 2003년 칸쿤 5차 WTO 각료회의 저지투쟁, 2005년 홍콩 6차 WTO 각료회의 저지투쟁은 시애틀 투쟁과 몇 가지 점에서 다른 양상을 보였다. 우선, 회담장 안에서 개도국․최빈국 정부를 지렛대 삼아 협상의 방향을 트는 전술보다는 장외에서 대중적인 직접행동을 펼치는 전술이 더욱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무역협정 내 노동․환경 기준 마련’보다 ‘WTO 도하개발의제 협상 중단’이 중심적인 주장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초국적 자본의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처들이 공격하는 민중의 제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투쟁의 목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에, 식량주권, 토지․종자․농업지식에 대한 농민의 권리 확대, 물, 에너지, 교육, 보건의료, 문화에 대한 상품화/사유화 반대, 지적재산권 확대 반대 - 의약품 접근성 확대, 이주자 상품화 반대 -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시민권 확대 등의 요구가 제기되었다.
시애틀 투쟁을 계기로 사회운동이 다시금 활발해지고, '도하개발의제‘라는 새로운 무역협상라운드에 반대하는 투쟁이 거세짐에 따라, WTO 도하개발의제 협상은 커다란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중심부 국가들은 WTO를 통한 협상을 계속해서 추진하는 한편, 이러한 다자간 협상보다 훨씬 체결이 용이한 양자간, 지역별 협정을 병행하여 추진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미국은 NAFTA의 범위를 미주대륙 전체로 확장하는 ‘전미자유무역협정(FTAA)' 체결을 시도하고 있으며, 에콰도르, 볼리비아, 콜롬비아, 태국, 한국 등 개별 국가와의 양자간 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양자간․지역별 자유무역협정 또한 사회운동들의 의제가 되었으며, 대륙을 아우르는 ’지역 연대‘가 이러한 협정을 매개로 하여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지역 연대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미주대륙이다. 이 지역의 사회운동들은 <미주사회동맹>(Hemisperic Social Alliance), (Continental Campaign against FTAA)등 전 대륙을 아우르는 네트워크를 결성하여 2001년 퀘벡, 2003년 마이애미, 2005년 마르델플라타에서 열린 FTAA 체결을 위한 미주지역정상회담에 대항하는 투쟁을 벌여왔다. 또한, 유럽에서는 유럽사회포럼을 매개로 하여 ’유럽의 신자유주의적 통합‘과 민족이라는 범위로 제한하여 시민권을 부여하는 유럽연합의 원칙을 거부하고 ’아래로부터의 통합을 기반으로 또 다른 유럽을 건설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NAFTA 발효, WTO의 새로운 무역협상 라운드의 개시와 함께 분출한 새로운 사회운동들은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슬로건을 내건 세계사회포럼, 그리고 이를 계기로 형성된 ‘세계사회운동총회’ 및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를 경과하며 ‘대안세계화’라는 이념과 결합하고 있다. 또한 ‘군사세계화’가 ‘금융세계화’를 뒷받침한다는 분석에 따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계기로 활성화된 국제반전운동과의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사회운동의 대안

WTO를 중심으로 추진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 그리고 양자간․지역별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는 사회운동들은 이러한 협정이 초국적 자본의 금융적 팽창을 위한 활동의 영역을 넓히고, 자본 이동의 자유화를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비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협상 과정이 세계적인 무역질서 내에서 각 국가가 취할 수 있는 이득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강탈과 착취의 메커니즘을 새롭게 구축하고 민중의 권리를 파괴하는 과정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투쟁을 세계화하자, 희망을 세계화하자”라는 국제소농조직 비아캄페시나의 구호처럼, 국제금융․무역기구와 초민족 자본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위로부터의 세계화)가 아닌 인민들의 운동의 국제주의(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옹호한다는 지향을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사회운동의 대안은 국제적인 교류를 단절하는 “쇄국”이 아니다.
<미주사회동맹>은 대륙차원의 공동행동의 경험과 ‘아메리카사회포럼’ 등을 계기로 한 토론을 통해 『미주대륙을 위한 대안』(Alternatives for the Americas)5)을 발전시켰다. 이 문서에서 <미주사회동맹>은 “우리는 세계화라는 형태로 추진되는 신자유주의를 거스를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우리는 이것의 부정적인 효과를 감축하는데 그치지 말고 긍정적인 대안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 지배적인, 그리고 외적으로 강요되는 형태의 세계화에 대한 우리의 비판은 경제를 폐쇄하고 보호주의적인 장벽을 세워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고립주의적인 무역 정책을 도입하자는 것도 아니다. …… 우리는 다른 경제적 논리를 바탕으로 세계적, 그리고 대륙적 경제를 규제하기 위한 대안적인 규범을 제시하고자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한 '세계사회포럼' 및 대안세계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금융거래과세를 위한 시민연합>(ATTAC France) 역시 국제적인 교환에 대해 “국제적 교환들은 그 자체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것은 수단들에 불과하다. 그 수단들은 각각의 상황들에 맞게 민주적으로 정의된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목표에 봉사하는 방향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6)
<미주사회동맹>과 <금융거래과세를 위한 시민연합>은 국제적인 교환이 실질적인 발전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다음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첫째, 민중의 사회․경제적 요구를 실현하는 것은 각 국 정부의 권리로 인식되어야 한다. 각 국 정부는 공공서비스가 시장화 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사적 부문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유치산업(Infant Industry) 및 취약인구의 보호, 식량주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조처들이 균등한 발전을 보장할 수 있다. 외채를 매개로 한 국제금융기구의 구조조정은 중단되어야 하고 각 국 정부는 독자적인 금융․재정 정책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국제적인 무역과 투자는 통제되어야 한다. 무역과 투자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또한 초민족 자본의 이해에 일차적으로 봉사해서는 안 된다. 민족적 발전전략은 ‘외국인 직접투자’에 종속되지 말아야 하며, 투자는 높은 질의 일자리, 지속가능한 생산, 경제 안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각 국 정부는 발전에 기여하지 않는 투자, 특히 투기성 자본의 이동에 대해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이웃 국가들, 유사한 국가들 사이의 지역적 토대에 기초한 교환이 선호되어야 한다. 이러한 국경의 개방은 사회적, 환경적, 재정적 조화를 요구한다. 또한 개발도상국 사이의 연대가 조직되는 것이 본질적이다. 북이 획득 불가능한 자원을 남으로부터 이전하기 위해 활용되는 북-남 간 교환은 새로운 토대 위에서 조직되어야 한다. 일차원자재의 가격안정화 체계의 구축, 환율의 안정성과 균등성을 보장하는 국제적 화폐 체계의 개혁이 시급하다.
넷째, 노동권, 여성권, 식량주권을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 교육, 의료, 에너지, 물, 의약품 등에 대한 전 민중의 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공서비스는 사유화되어서는 안 되며 시장의 규칙이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사회적 권리는 국가의 책임에 의해 보장되어야 한다.
다섯째, 각 국 정부는 특정한 사회, 문화, 경제적 맥락에서 지적재산권에 관한 정책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하며, 필수의약품에 대한 접근성, 생명다양성의 보장, 원주민의 지식, 전통적인 농업 지식 등은 보호되어야 한다. 또한 생명특허는 거부되어야 한다.
특히, <미주사회동맹>이 제출한 『미주대륙을 위한 대안』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제시한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및 최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발의한 인민무역협정(Tratado de Comercio de los Pueblos)에도 참조되었다.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들은 ALBA 협정이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다는 취지와 다르게 각 국 정상들이 주도하는 협정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적하지만,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미국 주도의 FTAA를 저지하는 투쟁을 조직하는데 이를 활용하기도 한다.

한․미 FTA 반대투쟁의 의미와 방향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로 개시된 ‘농산물수입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투쟁은 1998년부터 김대중 정부의 ‘외국인투자의 대폭 유치’에 바탕을 둔 경제위기 극복전략의 일환으로 시도되기 시작한 ‘한․일 투자협정(BIT)’, ‘한․미 투자협정(BIT)’, ‘한․칠레 FTA’ 등 양자간 투자 및 무역 자유화 협정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각각의 협정을 반대하기 위한 투쟁은 그 주체가 특정한 부문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한․미 FTA 반대투쟁은 스크린쿼터를 지키기 위한 영화인들의 투쟁’, ‘한․칠레 FTA는 농산물 수입개방을 저지하기 위한 농민들의 투쟁’, ‘한․일 FTA는 자동차 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이라는 상징이 형성되었다. 다시 말해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에 종사하는 부문의 방어투쟁의 성격으로 조직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투쟁이 조직되었을 때, 그 한계는 분명하다. 국내에서 점유하고 있는 시장을 지키고 개방의 속도와 일정을 조절하기 위해 피해 산업에 대한 지원을 우선 시행하고 FTA를 신중하게 체결하자고 주장했던 자본의 요구와 차별적인 전망을 제출하기 힘들뿐더러, 부문을 넘나드는 연대를 조직하기도 어렵다. 또한 정부는 한․칠레 FTA, 한․일 FTA 협상 과정에서 ‘피해가 두드러지는 계층’의 반발로 협상이 더디게 진행되었던 선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향후 10년 간 119조원을 쏟아 부어 ‘농업․농촌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5년 간 4000억 원 규모의 ‘한국영화발전기금’을 조성하는 등의 FTA 체결로 인한 피해 계층을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FTA 반대투쟁이 피해산업에 종사하는 부문의 방어투쟁에 머무른다면 힘을 갖기가 어렵다.
이제 막 본격화하고 있는 한․미 FTA 반대투쟁은 대안세계화 운동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직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 FTA가 제기되는 배경과 노무현 정부의 추진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한․미 FTA를 ‘미국판 내선일체’라거나 ‘제 2의 을사늑약’으로 묘사하는 등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식의 비판은 이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다. 한․미 FTA 반대투쟁은 금융․군사세계화를 동아시아에서 완성하려는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전략에 맞서는 투쟁이다. 또한 민중의 삶의 위기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더욱 확대할 금융․군사세계화에 적극적으로 편입하는 것을 한국사회의 비전으로 제시하는 노무현 정부에 정면으로 맞서는 투쟁이다. 한․미 FTA 반대투쟁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또한 한․미 FTA 반대투쟁은 민족적 이익을 방어하는 투쟁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민중의 국제적인 연대를 실현하는 투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그리고 금융․군사세계화에 맞서는 민중적 대안을 형성하는 논의를 발전시키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FTA를 둘러싼 대립은 ‘무역’을 둘러싼 ‘국가 대 국가’의 대립이 아닌 ‘더 많은 자유화를 얻으려는 초국적 금융자본 대 민중의 권리’의 대립이다. 또한 한․미․일 동맹을 공고히 하고 한국 사회․경제 전반에 미국식 기준을 확산하여 초민족 금융자본의 활동에 안전성을 더하고 이를 통해 얻게 될 이익을 철저히 보장하는 체계가 완성될 때, 동아시아 지역 민중의 권리는 더욱 후퇴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미 FTA 반대투쟁은 피해산업에 대한 몇 가지 지원조치를 확보하는 것으로 중단될 수 있는 투쟁이 아니며, 세계 곳곳에서 형성되고 있는 대안세계화 운동과 결합하여 동아시아 민중, 세계 민중의 권리를 확장하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1) 이는 1910년 멕시코 혁명 당시 농민혁명군에 의해 제기되어, 1917년 제정된 헌법에 명시된 후 이어져오던 제도였다. 이 제도에 따라 토지를 가지지 않은 농민가족, 혹은 마을주민들은 토지를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었고, 이 토지는 집단 소유를 원칙으로 하여 분할할 수도, 매매할 수도 없었다. NAFTA 체결을 앞두고 멕시코 정부는 에히도를 폐지하여 초국적 자본이 이 토지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자 한 것이다. 본문으로
2) 싸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의 투쟁은 지속되고 있다. 이들은 2006년 7월에 열릴 대선을 앞두고 지난해 ‘민주혁명당(PDR)을 비롯한 모든 정당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과 함께, 전 민중이 함께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국가 프로젝트를 만들어내자’는 제안을 담은 6차 라깐돈 선언을 발표한 후, 2006년 1월 1일부터 전국을 횡단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본문으로
3) 그러나 MAI는 WTO 및 각종 양자간․지역별 자유무역협정 내 ‘투자’에 관한 조항의 원형이 되고 있다. 본문으로
4) 세계사회운동네트워크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전통적인 사회운동[노동조합운동]’과 ‘[북반구의] 정당’들이 새로운 전략을 세우거나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상황에 대처하는 데 곤란을 겪으면서 위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군사주의의 확산으로 민중들의 기본적인 정치적․시민적 권리가 침해되고, 공포가 확산되고 인종주의가 강화되고, ▷ 신자유주의가 인민의 삶의 위기를 더욱 가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롭게 분출하는 사회운동들의 동맹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결성 취지로 밝혔다. 본문으로
5) 미주지역 민중의 입장에 근거하여 FTAA에 대항하는 대안을 제시한 문서로, 전문은 www.asc.hsa.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문으로
6) ATTAC France, "Las trampas del libre cambio", http://www.france.attac.org/article.php3?id_article=5580 본문으로

한․미 FTA가 노동에 미치는 영향

이른바 한․미 FTA의 ‘동태적 효과’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무역자유화를 지지하는 경제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의 긍정적 효과를 ‘정태적(단기) 효과’와 ‘동태적(장기) 효과’로 나누어 설명한다. 정태적 효과란 관세철폐와 비관세 무역장벽 해소로 인해 발생하는 직접적인 산업적 효과를 의미한다. 동태적 효과란 장기 효과를 의미하는데, 역내시장의 확대로 인한 규모의 경제 실현과 기업간 경쟁 촉진 및 외국인직접투자 증가로 인한 경제의 효율화 등이 주요하게 언급된다. 정부와 자본은 한․미 FTA의 가장 큰 매력요인으로 이 동태적 효과를 꼽는다. ‘한․미 FTA라는 외부충격이 산업과 기업의 재편을 가속화하고 그 과정에서 투자환경, 노동시장 등의 분야에서 글로벌 스탠다드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한다.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제도와 관행의 국제화 촉진, 경쟁력 없는 부문의 도태, 선진 경영기법 도입, 불필요한 기업규제 철폐, 전근대적인 노사관계 선진화,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등이 그 구체적인 내용이다. 이 같은 이른바 한․미 FTA의 동태적 효과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다른 이름이다.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 상시적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확대, 노동환경 악화 등을 낳았다. 정부와 자본은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외자유치를 가로막는 경제발전의 적’으로 몰아세우며 탄압하고 무력화했다. 한․미 FTA는 정부와 자본이 기대하듯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추진에 있어 최적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미 FTA가 노동에 미치는 영향은 전방위적이다.

노동유연화 확대
자유무역협정의 목표는 초민족자본의 자유로운 기업활동과 이윤 확대를 보장하는 것이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매년 발간하는 무역장벽보고서(NTE)를 통해 오래 전부터 한국의 핵심적 투자장벽 중 하나로 ‘노동시장 경직성’을 지적해왔다. 또한 주한미국상공회의소도 ‘2005 정책보고서’를 통해 “경영진이 사업의 필요에 따라 근로자를 고용, 해고, 이전하는 방법으로 글로벌 시장과 현지시장의 수요변동과 경쟁압력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도록 해야”한다며 한국 정부에 노동시장 유연성 증대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한국에 진출해있는 미국 자본들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최근 정부가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비정규직 보호법안’과 ‘노사관계선진화방안’ 등은 현 정부가 선진 경제권과의 자유무역협정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신속한 FTA 체결을 위해 대외적으로 한국 정부의 투자환경 개선의 의지를 확인시키고, 개방에 대비해 국내 기업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조치라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또한 한․미 FTA는 농업을 비롯해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부문들의 도태를 유도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대량실업 사태가 예상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무역조정지원법’을 제정했고, 이를 통해 실업자들의 전직과 재취업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여 대량실업의 충격을 완화시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으나 그 실효성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한․미 FTA로 인한 대량실업의 충격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고, 외환위기 때도 그랬듯이 그 충격은 노동자 일반의 고용불안과 임금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노동권에 대한 공격
2004년 한일 FTA가 추진될 당시 일본은 노동쟁의 억제, 무노동무임금 관철, 퇴직금 유연화, 불법노동쟁의 신속조치 등 노동운동 억제조항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조차 무역 및 투자장벽 차원에서 논의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미국은 양자투자협정(BIT) 모델을 모든 FTA를 체결할 때 표준안으로 사용한다. 한․미 FTA의 미국 측 표준안으로 사용될 BIT 2004에는 이행의무 부과 금지조항이 있다. 노동분야의 경우 이 조항에 따르면 미국계 자본이 국내기업을 인수․합병할 경우 FTA 체약국은 고용승계, 단체협약 승계, 내국인 일정비율 고용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협정문 초안도 ‘양국간 투자 및 투자자에 대해 내국민대우를 부여하고, 투자 관련 이행의무 부과를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는 ‘2005 정책보고서’를 통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형법규제에서 민법규제로 전환, 쟁위행위 중 대체 인력 투입 허용, 파업 찬반투표의 절차적 규제 강화, 다년임금계약을 도입하고 단체협약의 효력을 2년 이상으로 연장 등과 같은 노동권 무력화 조치들을 구체적으로 한국정부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대부분의 내용이 다음 달부터 입법논의에 들어갈 정부의 ‘노사관계선진화방안’에 포함되어 있다.


한․미 FTA와 농업 문제

초민족자본의 세계 농업지배와 ‘녹색혁명’의 모순
20세기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녹색혁명’은 농업의 기계화를 단행하고 화학적 투입물을 도입함으로써 자연의 생산력을 자본의 생산력으로 대체한다. 그리고 식품산업의 발전으로 농업생산물은 최종생산물이 아닌 2차 가공을 위한 원료로 전환되고 농업은 자본주의적 산업의 구성요소가 된다. 이제 토지와 자연 대신 농기계와 화학적 투입물이 핵심적인 생산수단으로 등장하며, 자본은 이를 기반으로 노동을 통제한다. 이로 인해 농민은 투입물․산출물과 관련하여 농장 외부의 자원에 일방적으로 종속되기 때문에 농작과정에 대한 통제를 상실하고, 사실상 산업 프롤레타리아와 동일한 위치로 전락한다. 또 자연의 생산력과 유기적으로 결합된 농업노동이 자본에 실질적으로 포섭됨으로써 내부 유기적 투입물에 기초했던 전통적 농작체계는 파괴된다. 이에 따라 전통적 생계농업이 상업농업으로 전환되고 집약적인 단종경작(monoculture)이 발전한다. 토지, 가축, 농산물 사이의 지속적인 물질의 순환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투입물과 농산물 사이의 선형적 흐름으로 대체되고, 이제 농업의 지속가능성은 보증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토지․물 등 기초 자원의 오염․고갈이나 작물․가축․해충 등 자연적 통제 메커니즘의 파괴와 같은 ‘생태적 질병’이 발생한다.
미국은 압도적인 생산력의 우위를 앞세워 농산물 생산의 제한을 철폐하고 수출을 권장하는 농장법(Farm Bill)을 채택하면서 농산물의 상업적 수출을 본격화한다. 미국의 값싼 농산물이 세계 시장에 유입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고,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농업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해체되면서 세계의 농업위기는 심화된다. 국가의 농업관리체계가 해체되면서 주곡생산에 대한 국가 보조금 정책과 수매정책이 포기되고, 대신 국가의 농업정책은 수출용 가공식품만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 이 상황에서 초민족적 법인자본은 국가를 매개하지 않고 농민과 직접 결함함으로써 농업은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에 완전히 종속되며, 극소수 초민족적 농기업은 투입에서 산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장악함으로써 세계 농업을 지배한다. 또 농산물 시장의 완전 자유화는 농산물 수출 지역의 식량위기․생태위기를 심화하는 한편, 수입지역에서는 농업 토대의 붕괴와 식량을 수입하기 위한 산업부문의 구조조정이 가속화한다. 특히 자본은 지적재산권을 통해 씨앗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는데, 유전자 조작 씨앗의 도입은 단종경작의 모순을 더욱 심화하는 한편 유전자 조작 식품 등 환경적 재앙을 초래하기도 한다.

WTO, FTA 체제와 한국 농업의 위기
1994년 UR 협상을 통한 GATT 체제의 종결과 WTO 출범은 신자유주의적 농업재편을 전면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WTO 체제는 단순한 개방의 문제를 뛰어넘어 WTO가 모든 나라의 농업정책에 대해 간섭과 통제를 가능 하도록 하였으며 초민족적 농기업들의 농업 지배를 합법화 해주고 있다. 또한 WTO는 시장접근 장벽 철폐, 관세감축, 국내보조감축 등을 중심으로 전방위적인 압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런 기준에 따라 각국 농업에 대한 직접적 통제를 행사하고 있다.
한국 역시 WTO 체제 성립과 더불어 농산물 시장개방과 농업 구조조정이 최우선 과제로 대두되면서 규모화․고품질화․상업화 등 신자유주의 농업정책이 농정의 기본 골격으로 확립된다. 김대중 정부는 개방농정의 또 다른 형태인 자유무역협정(FTA)을 수용함으로서 사실상 농업 구조조정을 완성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러한 흐름은 노무현 정부의 ‘개방형 통상국가론’에서 더욱 노골화되는데, 현재 노무현 정부는 농업 포기를 대가로 국가경쟁력을 제고시키자며 맹목적으로 한․미 FTA 체결을 강행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FTA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농민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각종 농업농촌 관련 대책을 발표하지만 이들 법안은 위기에 처한 한국 농업에 대한 대안과는 턱없이 거리가 먼 것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추진 중인 한․미 FTA가 타결되면 한국 농업은 거의 괴멸 상황에 처할 것이 자명하다. 우선 한․미 FTA로 농산물 수입은 최대 3조 1,1719억원이 증가할 전망이다. 이로 인해 쌀을 제외했을 때 농축산물 생산액은 총 생산액의 3.7%인 2.3조원이 감소하고 쌀을 포함했을 때에는 8.8조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농업생산 감소는 농업고용 감소, 협동조합 기반 약화, 사료․농자재 등 농업 관련 부문의 연쇄적 위기로 드러날 것이다. 이미 농업 부문 수익성 저하에 따른 농가소득 감소와 농가부채 증가가 일반화된 상황, 게다가 농촌 인구가 고령화된 농촌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한․미 FTA 체결은 농촌․농민의 최종적 붕괴를 의미한다. 나아가 이는 환경 파괴와 과잉 노동 인구의 발생 등 사회 전체의 위기를 가중시킬 것이 분명하다.
결국 미국 및 초민족적 농기업의 농업 지배를 용이하게 할 뿐인 WTO 체제와 한․미 FTA에 맞서 세계 농민들과 함께 식량 주권, 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 농민의 기초 소득 보장, 생태․환경 보존 및 식품안전성을 주장해야 한다.


서비스산업 개방의 의미와 결과

현재 한․미 FTA 협상에서 서비스 부문 협상 대상으로 제기되는 분야는 법률, 회계, 세무, 방송광고, 교육, 보건의료, 영화, 뉴스제공, 통신, 금융서비스 등으로 예상된다. 이들 분야에 대해 정부는 ‘2006년 경제운용방향’, ‘국민경제자문위원회 보고서’ 등 각종 문서에서 구체적인 개방에 대한 입장까지 언급했다. 노무현 정부는 서비스산업을 ‘신성장동력화’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한편, 서비스 부문으로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 공공부문에 포함되는 가스 등 에너지 분야, 물 분야의 시장개방도 서비스 부문과 연관하여 비판할 필요가 있다. 관세 인하를 통한 제조업 상품시장 개방과는 달리, 서비스 부문의 개방은 국내의 제도를 변화시키고 내외국인 차별폐지 등 시장접근을 제한하는 규제의 완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국내의 제도변화와 관련된 쟁점이 첨예하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서비스시장 개방의 이유로 △ 시장개방을 통해 외국 기업의 고품질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 △ 국내 서비스산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점 △ 생산자 서비스 부문이 발전을 통해 제조업 등 생산성을 향상할 수 있다는 점 △ 이를 통해 해외 진출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한․미 FTA 협상을 통한 서비스시장 개방과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는 많이 언급되는 것처럼 공공서비스라는 개념 하에 제공되는 기본서비스들이 직접적으로 상품화됨으로서 공공성, 보편적 접근성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더해서 특히 강조해야할 두 번째 문제는 서비스 시장의 개방이 단순히 몇몇 업종을 개방하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성장전략’과 관련되어 있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금융세계화에 더 깊숙이 편입하려는 직접적인 시도라는 점이다.
공공서비스의 훼손은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특히 교육과 보건의료의 개방은 최소한 공적 부문으로 유지되었던 이 분야를 전면적으로 상품화하는 제도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이들 분야는 현재와 미래의 노동력 재생산과 관련된 분야기도 한데, 이러한 서비스를 구매할 능력이 없는 시민들은 노동시장에서도 손쉽게, 그리고 완전히 배제될 것임을 의미한다. 또한 공기업 형태이거나 국가가 직접 운영하던 에너지, 물 산업의 개방은 노동자민중의 기본권을 직접적인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만든다. 통신 산업 등 이미 사유화가 진행된 경우에도 외국인 보유한도를 철폐하거나 완화하여 금융투기에 노출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결국 가장 기본적인 생존에 필요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조차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하거나, 비용 지불 능력이 없으면 생존의 권리 자체가 박탈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한편 서비스산업 개방 목록 중에는 생산자 서비스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법률, 회계, 세무, 방송광고, 통신, 금융서비스 등이다. 생산자 서비스 부문의 팽창은 금융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초국적 도시를 중심으로 중심부 국가에서 나타나는 주요한 특징이다. 이러한 생산자 서비스는 금융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이를 보완하기 위해 발달해왔다. 이는 공간적으로도 국제적 투기자본 등 금융기관, 초민족 기업의 본사가 소재한 이른바 ‘초국적 도시’에 집중된다.
노무현 정권은 ‘선진통상국가’를 목표로, 생산자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육성하여 ‘일자리 창출과 동반성장’까지 이루어 내고, 이를 위해 남한을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번 한․미 FTA협상을 경과하면서 금융기관, 금융시장, 금융상품에 대한 개방을 완료하여 금융자유화를 완성하고 경제자유구역 등을 통해 동아시아의 금융허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생산자 서비스 산업을 확대하고 외국 기업 국내 진출을 통해 경쟁력을 키운다는 것, 이를 기반으로 해외시장까지 개척한다는 것이 노무현 정부의 원대한 목표다.
문제는 남한이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동아시아의 금융허브가 될 수 있는 조건도 아닐뿐더러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금융세계화의 파괴적 영향이 더욱 극대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러한 생산자 서비스 활성화와 맞물린 금융개방은, 국경간 금융거래, 신금융서비스 등의 개방을 포함한다. 이 경우 국내의 금융규제는 사실상 무의미하게 되고, 국내의 투자자들은 아무런 제한 없이 직접적으로 해외 금융시장에 투자할 수 있다. 최근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매각과정에서 4조원이 넘는 거액의 부당이득을 챙겨간 것과 같은 금융수탈도 제한할 수 없다. 국내의 모든 부는 금융화, 금융투기를 통해 전면적으로 수탈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생산자 서비스는 또한, 금융화의 또 한 측면인 기업 M&A나 이를 위한 회계, 법률 서비스, 초민족적 기업에 대한 인적자원 관리, 광고 등을 포함한다.
이렇게 금융화가 촉진된다고 하더라도, 생산자 서비스의 활성화는 금융수탈이 진행되는 동안 이들 금융기관들이 집중된 극히 제한된 공간에서만 가능하다. 이 과정은 해당 서비스에 종사하는 이른바 ‘전문직업인’들에게는 금융소득을 보장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일군의 전통적인 블루칼라, 핑크칼라 노동자들--비서, 전화교환원, 수위, 보육, 시설, 청소 노동자 등--에게는 극단적인 저임금과 고용불안만을 의미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금융화로 인한 서비스 산업의 팽창에서조차 배제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혁신도시, 기업도시, 경제자유구역 등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역시 해당 지역 내에서 매우 특수한 지구일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포섭되기 위한 바닥을 향한 지역간의 끝없는 경쟁을 활성화할 뿐이다.
이렇게 서비스산업의 개방은 금융시장의 개방을 핵심으로, 생산자 서비스를 새로운 성장동력이자 일자리 창출의 동력으로 삼고자하는 정권의 계획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금융화의 환상 속에서, 그 결과는 전면적인 금융수탈의 가속과 새로운 저임금 불안정노동자의 양산, 빈곤화, 그리고 이들 노동자에 대한 공공서비스의 완전한 배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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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노동 여성 생태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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