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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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행동-저항운동의 정보화

장여경 |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책실장
'정보화'라는 이름의 감시시스템

집회와 시위에 대한 권력의 탄압이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다. 어쩌면 예상되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법과 제도를 이용한, 소위 '합의'와 '합리'에 기반한 탄압이야말로 '국민의 정부'가 추진해 온 일관된 추세가 아니던가. 그리고 전세계 신자유주의적 정부·자본이 시도하는 수많은 '합리화' 가운데 단연 으뜸은 소위 '정보화'이다.
작업장에 도입되는 감시 - 소위 '생산과정의 정보화'는 이런 본질을 분명히 보여준다. CCTV나 ICCARD와 같은 첨단 전자기술을 이용한 감시는 디지털 기술의 객관성을 빙자한 '합리적 통제'라는 명분을 들이민다.

감시 기술은 작업장 뿐 아니라 탈의실, 휴게실과 같은 생활공간까지 포괄하는, 보다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통제를 관철하는 수단이지만, 곧잘 '근로 시간의 합리적 산출', '생산목표 성취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위한 공정한 기준으로 여겨진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이런 감시기술이 도입되는 명분에는 언제나 '삥땅 방지'(시내버스 CCTV도입 당시)와 같은 '범죄 예방'의 논리가 따라붙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사실 작업장을 벗어나 전사회적인 감시가 도입될 때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논리이다. 주민등록제도는 '간첩을 잡기 위해서', 지문날인은 '범죄자를 잡기 위해서', 최근 일본이나 영국에서 유행하는 감시나 도청에 대한 법률은 '조직 범죄 방지'와 같은 제목을 달고 도입된다. 작년에 보호관찰 대상자의 손목이나 발목에 발신장치를 채워 동태를 파악하는 '전자감시제'가 입법화되었는데도 사회적으로 전혀 논란을 빚지 않은 것은 이런 논리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은 소위 '범죄자'와 '건전한 시민'을 구분하면서 "거리낄 것이 없으면 투명해져라"는 말로써 정당화된다. 그러나 갈수록 투명해지는 개인 뒤에는 불투명해지는 권력과 기술 시스템이 있고 이것이야말로 정보화의 본질이다. 이런 맥락을 밝혀내고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저항운동의 정보화라고 할 것이다.

핵티비즘(hacktivism)을 비롯한 온라인 행동들은 이런 불투명성을 분쇄하고 권력을 투명하게 만드는 역감시(anti-surveillance)를 추구한다. 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매체가 폭발력을 발휘한 것은 기존의 매체와는 달리 '편집권'이나 '편성권'의 영역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권력이 대중매체에 대하여 발휘해 왔던 통제권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인터넷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각국의 정부들이 뒤늦게 '사이버 국경'이니 '인터넷 등급제'와 같은 통제 장치들을 만들어 내느라 부산한 것도 유실된 통제권을 회복하기 위해서이다.(물론 명분은 언제나 음란물과 같은 '불법적'인 내용물을 걸러내기 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권력의 입을 통하지 않고 직접 말하는 자유를 맛본 대중들은 끊임없이 저항한다. 인터넷 통제의 틈새를 뚫고 집단적으로, 그리고 지구적으로 행동한다. 이런 온라인 행동은 크게 안티/패러디 운동, 대안/독립 미디어 운동, 이슈파이팅, 그리고 핵티비즘으로 유형화할 수 있다.


안티/패러디 운동에서 독립적인 대안언론으로

1999∼2000년에는 특히 '딴지일보'로 대표되는 각종 안티/패러디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디지털화하여 네트워크에 올려진 정보가 복제와 배포가 손쉽다는 점을 십분 활용하여 원대상을 패러디하고 '안티' 사이트를 구축하는 것이 용이했다. 또한 '딴지일보 한달 만에 접속횟수 백만 돌파'라는 신화가 보여주듯 최근 인터넷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형성된 두터운 '인터넷 여론층'이 안티/패러디 운동의 사회적 영향력을 가능하게 했다.

최근에는 안티/패러디 운동에서 더 나아가 인터넷의 특성을 적극 활용하는 대안/독립 미디어적 흐름이 눈에 띈다. 딴지일보는 더 이상 조선일보의 패러디가 아니라 이미 하나의 독립 언론이다. 인터넷 신문과 인터넷 방송의 '난립'은 '제5의 권력'이라 불리어 왔던 제도 언론의 권력에 균열을 냈다. 게다가 인터넷 언론의 미덕은 직접적인 쌍방향적 커뮤니케이션과 아래로부터 생산되는 정보로 '게릴라적'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도 미디어 게릴라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 특히 제3세계에서 라디오는 오랫동안 대표적인 독립 미디어의 자리를 차지해 왔다 - 인터넷으로 인하여 이들의 목소리가 제도 언론과 대등하게 겨루게 되었다. 인터넷에서는 딴지일보라고, 조선일보보다 덜 노출되거나 유통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직접 미디어의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온라인 이슈파이팅도 상당한 대중력을 바탕으로 사회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그 기원은 1996년 꾸려진 '노동악법/안기부법 전면 철회를 위한 총파업 통신지원단'에서 찾을 수 있겠다. 당시 PC통신용 말머리 달기, 텍스트 로고 달기, 온라인 토론방, 온라인 서명운동 뿐 아니라 인터넷 메일링리스트를 이용한 여론 조직화, 매일 업데이트되는 국·영문 홈페이지 운영 등의 행동을 하였는데 이는 당시 시점에서 최대한 동원된 온라인 이슈파이팅이었고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성과도 남겼다. 특히 국내 언론이 노동계의 입장에 대해서 철저하게 통제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러한 온라인 행동은 총파업을 지지하는 노동자 시민들의 입장을 국내외에 직접 전달하여 집권세력을 당황하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행동은 대안 미디어의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을 불러 일으켜 이후 진보네트워크·노동네트워크의 창립으로 이어진다.


인터넷을 통한 국제연대의 힘을 보라

인터넷은 국제 연대의 영역에서 단순한 기능상의 효율성을 넘어선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지구적 자본에 맞서는 지구적 행동이 네트워크로 인해 실질적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1999년 11월 전세계를 놀라게 했던 시애틀 시위는 사실 전세계 활동가들이 몇 년 동안 광범위하게 참여한 온라인 토론의 결과였다. 메일링리스트와 홈페이지 등의 온라인 행동과 수 차례의 국제 회의를 통해 이들은 6.18 등 몇 차례 공동 행동을 성공적으로 조직해 오며 시애틀을 준비해 왔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온라인-지구적 연대의 시초는 멕시코 사빠띠스타의 온라인 행동과 이를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여러 온라인 행동들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저항적 성격을 띠고 있는 온라인 이슈파이팅들은 곧잘 국가 권력의 통제 위협에 직면하기도 한다. 스페인의 진보네트워크 노도50에서 운영하던 반고문 사이트는 2000년 3월 고문 공무원들의 명단을 게재하였다는 이유로 폐쇄당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국경을 초월한 온라인 연대는 이러한 위협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왔다. 실제로 노도50이 소속했던 국제 진보통신연합(Association for Progressive Communications)을 비롯한 다른나라 활동가들은 전세계 곳곳에 이 문제의 사이트를 복제한 여러 개의 미러링 사이트를 만들어 폐쇄 위협을 무력화시킨다.(http://www.apc.org/english/rights/alerts/act/050400.htm) 위협의 당사자 스페인 정보보호국으로 전세계로부터의 항의 메시지가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마찬가지로,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의 입장을 호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안티포스코 홈페이지(http://antiposco.nodong.net)

또한 포항제철의 '저작권'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도안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당하였지만, 단기간 내에 전세계에 개설된 열 개의 미러링 사이트는 포항제철의 폐쇄 시도를 오히려 전세계적인 이슈 거리로 만들어 버렸고 오히려 안티포스코 운동을 홍보하는 효과를 낳았다. 이제 국제 연대는 온라인 이슈파이팅의 중요하고 든든한 전략이 되고 있음이 분명해 졌다.

<안티포스코 미러링 사이트 개설 현황>
☞ JCA-Net, 일본 : http://antiposco.jca.apc.org
☞ LabourNet/GreenNet, 영국 : http://www.labournet.org/anti-posco
☞ Nodo50, 스페인 : http://www2.nodo50.org/mirrors/antiposco.nodong.net
☞ LabourNet, 독일 : http://www.labournet.de/anti-posco
☞ Crypto.yashy.com, 캐나다 : http://crypto.yashy.com/anti-posco
☞ Institute for Global Communications, 미국 : http://igc.mirrors.apc.org/anti-posco
☞ WEB, 캐나다 : http://web.mirrors.apc.org/anti-posco
☞ GlasNet, 우크라이나 : http://gluk.mirrors.apc.org/anti-posco
☞ Community Communication Online, 호주 : http://mirrors.c2o.org/anti-posco
☞ Association for Progressive Communications : http://mirrors.apc.org/anti-posco


불투명한 권력을 깨는 핵티비즘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는 핵티비즘이다. 해커(hacker)와 행동(activism)을 결합시킨 조어인 핵티비즘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먼저 몇가지 터부 의식을 극복해야 한다. 언론에 의해 조장되고 있는 해킹 행위에 대한 공포심은 과장되어 있으며 그들의 익명성은 오히려 미덕이다. 공포심과 익명성이라는 '불투명성'이야말로 그들이 두려워하는 본질이며 '그들의 정보화'에 역행하는 해악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핵티비즘은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다.
해킹은 원래 정치적이면서 집단적인 행위로부터 출발하였다. 정보의 개방과 공유에 대한 윤리를 주장했던 1세대 해커로부터 베트남 참전 반대 행동의 하나로 전화사용료 거부 운동을 벌였던 폰프리커(phone phreaker), 그리고 최근의 핵티비즘을 공공연히 선언하고 나선 cDc나 일렉트로히피스 등과 같은 해커 공동체는 정치적인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하고 있다.

1998년 9월 동티모르에 대한 탄압에 반대하는 포르투갈 해커들의 인도네시아 정부웹사이트 해킹, 1998년 10월 카슈미르 해방을 지지하는 해커들에 의한 인도 정부 웹사이트 해킹, 멕시코 해커들의 미국기업에 대한 인터넷 비즈니스 방해 선언, 1999년 6월 신자유주의 반대 618 행동을 지지하는 좌파 해커들의 공격설, 그리고 11월로 이어진 WTO회의 주최위원회 웹사이트 공격, 2000년 4월 유전자조작 농산물(GMO)을 사용하는 기업에 대한 공격 선언 등 핵티비즘의 사례가 계속 늘고 있다.

핵티비즘은 행동이다. 당연히 온라인에서도 집회·결사·언론의 자유가 인정되어야 한다. "잠시 길을 막고 시위를 벌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위험한 것은 핵티비즘이 아니라 오히려 해킹에 대하여 실제보다 과장된 공포심을 가지는 것, 그리고 그렇게 '조장된' 공포심을 기반으로 하여 일체의 온라인 통제권을 권력에 위임하려는 움직임이라고 할 것이다.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권력과의 전쟁

처음에는 '정보 공유'의 공간이었던 인터넷은 점점 더 자본과 권력의 이해 관계에 따라 식민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많은 온라인 행동들이 시도되고 있다. 저항운동의 정보화라 할 만하다.
물론 모든 인터넷 미디어가 인터넷 미디어라는 이유로 독립적이며 대안적인 것은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인터넷 미디어를 독립적이며 대안적인 미디어로 만드는 것은 그것에 대한 계속적인 저항 뿐이다. 감시를 통해 개인을 투명하게 하려는 그들의 시도에 계속 맞서고, 오히려 불투명한 권력을 투명하게 발가벗기우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인터넷을 통제하려는 각종 법과 제도가 새로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때로는 기존의 법과 제도가 인터넷을 통제하려는 빌미로 총동원되기도 한다.(안티포스코 홈페이지에 씌워진 저작권 침해 혐의를 보라!) 우리는 이제 국제 연대를 포함한 광범위한 연대와 저항으로 이를 돌파하는 수 밖에 없다.

즉, 행동의 정당성은 인터넷을 활용하는 '행위'로서만이 아니라 인터넷 공간 그 자체의 문제를 둘러싼 개입과 참여로 획득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터부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활용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인터넷과 정보화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전쟁과 그 사회적 맥락에 대하여 눈을 감아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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