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7.4.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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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회포럼을 통해 살펴본 노동운동의 흐름

정영섭 | 노동국장
2차 대전 후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에 고용과 임금을 보장하는 사회적 타협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노동을 포섭하여 반체제 운동을 예방하는 전략을 취하였다. 그러나 이윤율 하락에 직면한 자본은 위기 극복 대책으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노동의 불안정화를 추진하였고, 이로 인해 전후의 역사적 타협체제는 해체되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도 서구의 주류 노동운동은 과거 국제적, 일국적 수준에서 누려온 타협의 이득을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예컨대 WTO 협상이 진행될 때에는 노동환경 등의 기준을 포함하는 '사회적 조항(Social Clauses)'을 넣자는 캠페인을 벌였고, 최근에 와서는 '양질의 일자리(Decent Work)'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를 위해 국제적 수준에서는 국제연합(UN), 국제노동기구(IL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등에 대해서, 일국적 수준에서는 의회나 정부에, 로비를 하거나 소위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화'가 상징하듯이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들보다는 계약직, 파견직, 파트타임, 임시직, 비공식부문 노동자가 날로 급증하고 있고, 전통적인 노조 조직들이 이들을 조직하고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타협체제를 구축하려는 노력은 기존 노동자들의 이해를 방어하는 것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노동자를 해체하고 분열시키며 권리를 박탈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근본적인 문제제기 없이 위로부터의 대화와 타협 추진은 의도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자본의 위기관리 전략에 파트너가 될 위험도 크다.
한편 이러한 주류 노동운동의 흐름과는 달리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노동운동의 초민족적 연대, 광범위한 사회운동과의 결합을 통한 운동성 강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과 투쟁,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등을 강조하는 흐름이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노동운동의 전략을 다양한 수준에서 제기하고 연대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이는 대안세계화를 위한 노동운동의 전략을 모색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대안세계화를 지향하는 사회운동은 1998년의 다자간투자협정(MAI) 반대투쟁, 1999년 시애틀 WTO 각료회의 반대투쟁 등을 거치면서 성장하여 2001년 시작된 '세계사회포럼'을 통해 결집과 소통, 연대를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지구적 차원에서 세계화에 저항하고 정의와 연대를 실현하여 '다른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사회운동이 추진하는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에 노동운동이 어떻게 결합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현 시기 노동운동의 전략을 이해하는데 하나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 이하에서는 2007년 세계사회포럼을 통해 드러난 두 가지 흐름에 대해서 검토하고 그 함의를 살펴본다.


국제노총(ITUC)의 '양질의 일자리(Decent Work)' 캠페인

2001년 1회 세계사회포럼이 브라질에서 열린 이래 노동조합, 특히 노조운동의 국제적 연합체의 참여는 미미했다. 세계사회포럼이 사회운동의 결집의 장이고 반전운동, 농민운동, 여성운동, 외채거부운동, 환경생태운동, 원주민운동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여 민중의 투쟁과 대안을 세계화하려는 대안세계화 운동을 지향한다고 할 때, 노동운동 역시 이러한 '지구적 정의와 연대운동'의 일부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이 세계사회포럼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존 노동운동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런데 올해 1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 국제노총(ITUC)은 '양질의 일자리, 양질의 삶'을 슬로건으로 여러 행사를 벌였고 국제노총은 유럽노총과 국제 NGO들과 함께 이 캠페인을 출범시켰다. 국제노총은 작년 11월에 국제자유노련(ICFTU)과 세계노동총동맹(WCL)이 통합하여 만들어졌으므로 세계사회포럼 참가는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그 이전에 국제자유노련은 세계사회포럼에서 몇몇 이벤트를 개최하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조직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다. 이는 국제노총이 앞으로 세계사회포럼에 적극적 개입하거나 적어도 세계사회포럼을 충분히 활용하겠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세계사회포럼의 아홉 개 주제 가운데 여섯 번째에 '양질의 일자리'가 포함된 것은 국제노총과 그 아프리카 지역조직의 로비와 압력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양질의 일자리' 캠페인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ILO가 지원하는 것이다. ILO는 전후 타협체제의 산물로서 정부, 자본, 노동의 3자 협의테이블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와서는 그 영향력이 추락했다. 따라서 이 캠페인은 ILO의 위상 회복 혹은 노사정 3자 협력 강화, 나아가 타협체제의 복구 시도로 볼 수 있다. ILO는 WTO, IMF, IBRD(세계은행) 등의 정책에 이를 포함시키기 위해 그들과 협력관계를 강화하고자 한다. 작년 부산에서 열린 ILO 아시아-태평양 지역총회의 제목도 '아시아에서 양질의 일자리'였다.
ILO는 '양질의 일자리'를 '자유, 공평, 안전,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조건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 사회적 기준에 맞는 생산적 노동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용기회, 적절한 임금과 노동시간, 고용안정과 보장, 노동과 가족생활의 결합, 사회적 보호, 사회적 타협 등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은 '공정한 세계화' 혹은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와 관련된다. 이러한 전략은 광폭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면죄부를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세계화는 부를 노동계급에서 자산계급으로, 주변부에서 중심부 국가로 더욱 집중시키고 있다. 이런 세계적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는 구조를 문제삼지 않고는 '양질'의 세계화를 이룰 수는 없다. 또한 세계화의 결과로 노동계급은 민족, 성별, 계층에 따라 더욱 분할되었는데, 이러한 전략 하에서는 노동계급의 초민족적 연대에 대한 방향을 모색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 전략에는 기존의 조직노동자를 넘어 광범위한 비정규, 여성, 이주, 비공식 부문 노동자 조직화와 운동도 생략되어 있다.
결국 이러한 흐름은 주류 공식적 노동조합 운동이 과거의 타협체제를 신자유주의 시대에 새롭게 재구축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조직통합을 통해 규모를 키우고 국제적, 일국적 차원에서 국제기구 및 정부기구, 자본과 협력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기존 사민주의 코포러티즘의 연장선이며 위로부터의 캠페인 전략이다. 따라서 이는 해방을 지향하는 운동전략으로 볼 수 없다.


새로운 노동네트워크 제안

이번 세계사회포럼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도전하고자 하는 노동운동의 흐름으로, 두 가지 기획에 주목할 수 있다. 하나는 '세계 노동계급 프로젝트(Global Working Class Project)'로서 스웨덴 조직들이 지원하고 마르크스주의 사회과학자인 사미르 아민(Samir Amin)이 주도하는 기획이다. 이 기획의 목적은 세계 노동계급의 현 상황에 대한 분석,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노조운동의 대응 분석, 초민족적 연대에 기반한 노동자 국제주의 부활을 위한 전략 탐색이다. 이는 특히 공식 부문 바깥의 주변부 노동자, 즉 불안정, 임시, 자영업, 실업 노동자 등을 주목한다. 이 기획은 다분히 연구 성격이 강하므로 그 결과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노동운동: 세계화의 도전에 맞서기(Labor in Movement: Facing the Challenge of Globalisation)'이다. 이는 주로 이탈리아의 좌파 네트워크인 '변화(Transform)'와 이탈리아 노총의 일부가 발의했고, 미주사회동맹, 세계여성행진, 비아캄페시나, 브라질노총 등이 동참했다. 여기는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 내의 '노동네트워크'를 제안했다. 이 네트워크는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 내에서 노동 이슈와 노동자 권리를 더욱 강조하는 것 ▲생산노동과 재생산노동, 공식부문과 비공식부문 등 노동에 대한 새롭고 넓은 토론 ▲노동조합, 사회운동, 지식인, 시민 사이의 동맹 강화 ▲방어적이고 고립된 투쟁을 넘어 새로운 초민족적 행동 역량을 찾는 것 ▲그러한 행동의 국제적인 공통 목표를 찾는 것 등을 제안하고 있다. 또 이 제안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가혹한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조, 사회운동, 지식인들을 포함하는 새로운 세력동맹이 필요하다는 것, 젠더분할에 맞서야 하고 비공식 부문을 조직할 수 있도록 노조 구조가 더 개방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 초국적자본과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항해야 한다는 것, 재생산 영역까지 착취를 확장하는 세계화의 새로운 동학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 등의 주장도 포함한다. 이러한 제안은 그 자리에 참가한 세계여성행진, 국제노점상연합(StreetNet), 인도 새노조운동(New Trade Union Initiative), 브라질노총(CUT), 아르헨티나노총(CTA), 프랑스 Solidaire(연대)노조 등의 지지를 받았다.
피터 워터만은 이러한 흐름을 양질의 일자리 캠페인과 대비되는 '노동해방 지향'이라고 지칭한다. 그는 전자는 자본주의나 국가의 소유와 통제에 대해 문제제기 하지 않고 노동자의 역량과 자율성을 증대시키지도 않는 반면 후자는 자기변혁을 포함하여 집단적인 힘으로 표출된다고 보고 '노동해방 국제주의'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흐름은 이념적 차원에서는 좌파적, 급진적 성향이고, 실천적 차원에서는 사회적 타협이 아닌 노동자 조직화와 투쟁, 연대 차원에서는 NGO가 아닌 사회운동 세력과의 연대를 표방한다. 특히 이들은 세계사회포럼으로 상징되는 대안세계화를 지향하는 광범위한 사회운동과의 결합 속에서 노동운동을 급진화시키고 보편화시키고자 한다. 즉 '지구적 정의와 연대운동'이라 불리는 세계 사회운동의 에너지와 비전을 받아들이고 함께하면서 기존 노동운동의 내용과 구조를 변화시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국내 운동에의 시사점

국제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민주노총은 국제노총 내에서 대표적인 진보적 노동조합에 속한다. 또한 민주노총은 브라질노총, 남아공노총 등과 함께 남반구노조연대회의(SIGTUR)를 통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흐름을 만들어왔다. 남반구노조연대회의는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4차 세계사회포럼에서 남반구노조 연대포럼을 조직하여, 초국적기업에 맞서는 공동행동, 자유무역에 대한 반대, WTO 각료회의 반대투쟁, FTA 반대 투쟁, 전쟁과 제국주의 반대 등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 작년 국제노총이 결성될 시 비공식 부문 노동자 조직인 인도의 SEWA(Self-Employed Women's Association, 자가고용여성연합), 네팔노총, 프랑스노동총동맹 등 기존 노조연합체와는 독립적이었던 흐름이 국제노총이 가입해서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남반구노조연대회의는 현재 활동이 거의 없고, 국제노총 내의 몇몇 진보적 노조가 전체 조직을 변화시키리란 요원한 일이다. 따라서 그러한 공식조직 바깥에서의 세계 사회운동을 통한 자극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국내에서 '양질의 일자리' 담론이 적극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은 아니나, 한국노동연구원이나 일부 복지, 노동관련 단위 등에서 언급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도 2002년 11월에 노동정책의 기조로 '보람있는 일자리 창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 삶의 질 향상' 등을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노동운동 전략에서 볼 때 사회적 대화 혹은 사회적 타협 전략은 추진되어 온 지 오래 되었고 이를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사태를 겪기도 했다. 또한 최근에도 그러한 흐름은 민주노총의 노정대화 복원 등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운동이 지난 10여 년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격에 노출되어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고,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한 전면적인 대항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중심으로 타협체제를 추진하는 것은 한계가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비정규직 법안 통과로 인해 대다수 노동자의 비정규직화가 예견되고 있고, 노사관계 로드맵 법안으로 인해 노동권을 심각하게 침해받게 될 조건을 감안한다면, 노동운동은 저항전략을 새로이 세워야 한다. 그것을 대안세계화를 지향하는 노동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대안세계화를 진향하는 노동운동의 실내용은 사회운동과의 결합에 대한 강조, 노동조합 구조를 좀 더 개방적인 구조로 개편하는 것, 미조직 노동자를 노조운동 전체가 적극적으로 조직하는 것, 민족, 성별에 따른 분할이 아니라 국제주의와 페미니즘으로 연대를 실현하는 것,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교육과 행동을 촉발시키는 것 등이다. 이러한 내용은 세계사회포럼에서 대안적인 노동전략을 추구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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