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7.5.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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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_갈월동기행_정영찬.hwp

내 기억의 습작

정영찬 | 노동부장
2005년 11월 10일
나는 맨 처음 운동을 어떻게 시작했었는가? 대학교에 들어와 정치외교학과에 몸담기 시작하면서 인 것 같다. 단순한 열정으로 시작한 것이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고 인생의 전환기를 가져왔다. 97학번 선배들. 늘 함께 했던 ○○형. ○○이형. 멋있게 보이기만 했던 96학번들. ○○형. ○○누나. ○○형. 95학번의 넉살 좋은 ○○형 까지. 아마도 이들이 내 운동에 동기를 부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각자의 삶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당시만 해도 언제나 운동의 한복판에서 얼굴을 맞대고 있을 것만 같았던 사람들. ○○누나의 유학과 뒤이은 ○○이 형의 유학, ○○형의 대학원 진학, 생업으로 돌아가 버린 ○○이형, 군복무에 들어간 ○○형, 누구보다 멋진 인생을 살 것 같았던 ○○형은 일찌감치 직장인이 되었다. 내 운동에 있어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자 누구 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이다. 아쉽기도 하지만 이런 상황이 나를 어디론가 자꾸 떠미는 것 같다. 나도 무엇인가 해야 하는데 말이다. 어떠한 삶이 진정한 삶인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곳이 나에게 있어 안식처인가?
이 시점의 현실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목마르다. 무언가를 갈망하는 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운동을 했을 당시에도 이러한 목마름은 여전했다. 1학년 때 별동대를 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 나와는 다른 곳에 있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고민했던 친구들, 2학년 때 별동대장을 하면서 느꼈던, 알 수 없었던 갈증과 3학년 Mayday 때 터져버린 나의 구속까지, 나의 운동은 갈증이다. 한 순간의 열망으로 시작한 운동이 아직도 풀지 못한 갈증으로 남아 있다. 어머니의 권유 반으로, 검사의 강요 반으로 입대하게 된 군대와 출감 후 느꼈던 공허함과 텅 빈 머릿속이 떠오른다. 내가 한 것이 내가 스스로 했던 것인가, 아니면 나의 열정이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인가? 모든 것이 내가 인지 못하는 가운데 진행 된 것만 같다. 누구보다 이상을 생각하던 나지만, 세속에 찌든 군대 생활 속에서 모든 것이 잊어졌다. 무엇을 정리하기 보다는 덮어 두었기에, 더 큰 충격 속으로 나를 묻어 버린 것이다.
내가 사랑하던 누나와 더 이상 함께 지낼 기회도 박탈당한 채, 나의 인생과 나의 사랑이 이렇게 저물어 버렸다. 아직도 그 한마디를 잊을 수 없다. "너도 이렇게 가는 구나……."
그렇게 대학교에서의 운동을 정리하고,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구나. 슬플 뿐이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난 그런 힘이 없었나보다. 인생의 흐름 속에 나를 맡겨 버리고 싶었던 것이 그 당시의 나의 심정이었다.
나의 모든 것의 시작이었고 나의 중요한 것들을 가로채버린 학생 운동의 기억들. 사회에 나가서의 운동을 준비한다는 나의 말들을 과연 지켜낼 수 있을까? 이런 나의 마음만은 변치말자.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곳에 있고 싶다. 나 자신이 누구보다 진실한 마음의 소유자임을 알기에 말이다. 그래, 다시 만나는 그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내가 되도록 해보자.

사랑했노라고…….

인생의 작은 조각배 중.

사람에게 제 2의 사춘기가 있다면 나는 대학교 생활 10여 년 동안이었다고 고백하고 싶다. 지금은 학교를 턱걸이 하듯이 졸업을 하고 갈월동에서 보금자리를 잡고서 생활하고 있지만 가끔씩 홍역을 앓듯이 지냈던 그 당시의 기억들을 종종 떠올려 보곤 한다. 군대를 막 전역했던 시절, 나는 삶의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무기력감에 휩싸여 방황했었다. 마치 이상의 「날개」의 작은 골방안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학교와 떨어져 지낸 3년이라는 시간은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한 채, 아무것도 결정짓지 못한 채 지나갔다. 결국 3년이 지난 뒤 학교는 단지 나의 옛 추억만을 간직하고 있을 뿐 이제 내게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그 당시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날의 나의 기억의 조각들을 꿰어 맞추는 것이었다. 지난날의 사랑도 함께 말이다.


2006년 7월 18일
문득 문득 드는 생각의 조각을 쫓아 헤매고 다닌 것이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렸다. '과연 난 지금까지 무엇을 배웠으며, 만약 신이 있다면 신은 무엇을 나에게 시험하려 했던 것인가?' 라는 짤막한 질문에 이제는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어쩌면 지금까지 ‘버리는 것’을 배운 것 같다. 모든 것을 비우기 위해 이렇게 힘들었던 것 같다. 이것을 정화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젊은 날의 나를 찾는 과정은 심히 괴로울 정도였다. 모든 것을 게워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 몸부림이 날 결코 편안하게 해주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다시 공허함이 밀려 왔다. 모래사장의 모래를 파는 느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느낌이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나를 찾는 여행.
모든 것에 대한 버림이라…….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배우는 과정이고, 내안의 것을 버림으로써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이 남는 정화의 과정이며, 자신의 철저함을 지켜나가는 인내를 배우는 과정이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서 내가 배웠던 것이며, 신이 내게 시험하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 앞으로의 여행은 여기에 무엇을 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대답 속에 찾아온 다른 생각으로의 이어짐이라고 할까??
‘버림‘이라……. 이러한 대답을 찾기 위해 난 몇 년 동안을 고민한 것일까? 어쩌면 싯다르타도 보리수 아래서 이러한 생각의 실마리를 얻은 것일까? 아무튼 오늘 이러한 생각이 나를 발견하는 생활 속의 책갈피가 되길 바라며.

나를 찾는 여행 중.


나를 찾는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손에서 책을 놓아 버렸다. 어떠한 이론과 지식도 나에게는 필요 없었고 그저 허공 속의 메아리에 불과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술을 먹고 한차례 게워내기라도 한다면 붉게 충혈이 된 눈이 따갑게 나의 존재를 말해 주었다. 이렇듯 나는 나를 표현해 주는 외피가 아닌 나의 내면의 본질을 알고 싶었다. 사회 구조와 공권력이라는 폭력 속에서 찢겨진 날개를 부둥켜안고 문득 먼 하늘을 쳐다보기라도 할 땐, “그래 날자, 날자 다시 한 번 날자꾸나.”라는 독백을 불현듯 던지면서, 지내온 내 과거의 의미를 알고자 했다.
잊었던 생각의 조각들을 차츰차츰 모으는 과정 속에서 나는 어느 때보다도 정신이 또렷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예전에 철거촌 활동과 농활에서 보았던 모든 것을 버린 이의 해맑은 웃음과 아이들의 눈망울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난 후에야 나는 죽을 때까지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사람과 추억들이 나를 이루는 것임을 알았다. 또한 그것이 가슴속에 남아 따사로움으로 다시금 나를 살아가게 해주는 것임을 이해 할 수 있었다. 또한, 이것은 어디까지나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 속에서 묻어 나와야만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나의 모든 것이 비워졌을 때 밀려오는 공허함은, 상실의 공허함이 아닌 무엇인가 소중한 것으로 다시금 채워져야 한다는 소명으로, 삶의 의욕으로 다가왔다. 햄릿이 느꼈을 존재하는 것(to be)이 아닌 살아있는 것(to live)의 의미를 찾는 과정으로 한 걸음 나아가야하는 결단의 의미와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의미를 못 찾는 부분에 대해 거부하거나 등한시 하는 모습을 보고 “지독하다.” 혹은 “한량이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의 나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말이었던 것 같다. 요즘은 다시금 손에 책을 쥐게 되었다.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서 기존에 내가 생각하던 의미들에 대해 추적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들이 나 스스로 형성된 것이 아니기에 다시 재정립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사회진보연대 구성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활동 할 수 있는 공간을 묵묵히 그 자리에서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습집행위원으로서 처음 글을 갈월동 기행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배려해줌으로써 다시금 나를 반추해볼 시간을 준 것 같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특히 자신이 느끼는 아픔을 스스럼없이 나에게 이야기 해줌으로써 운동의 방향성과 동기를 부여해준 월산 누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는 어찌 보면 지금까지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투쟁해온 열사와 선배님들의 노력과 땀의 결실을 느끼며 살아가는 한명이라 생각한다.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고 허세욱 열사님의 뜻을 기리며 이글을 마칠까한다.

2007년 4월 20일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 Bigbird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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