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7.11-12.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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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투자국가론 비판

신진선 | 편집부장, 빈곤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빈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본격화된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빈곤율(빈곤인구의 비중)은 감소했지만 빈곤인구가 급증해온 것은 사실이다. 절대빈곤, 상대빈곤 등 빈곤을 측정하는 기준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그 수치는 달라지지만,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극단적 빈곤층이 2001년 약 11억 명에 달하며, 2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사람의 수는 27억 명을 넘는 수준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핵심은 자본이동의 자유, 그에 적응하는 형태로 개별 국가들의 정책과 제도를 변형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빈곤에 미치는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자본 이동의 자유가 고용창출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각 국가 복지정책의 변모가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실증적인 분석들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아래서의 자본 이동은 1960~70년대 초창기를 제외하고는 중심부 국가 간에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생산의 이동에 따른 저발전 국가에서의 고용창출 등의 효과는 매우 일시적이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하청기지, 단순 조립 기지 등의 경우에 한해서만 저임금의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저임금은 빈곤의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자본이동은 금융화 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1960~70년대 이윤율의 저하국면을 맞아 실물적 확장보다는 금융적 확장을 통해 이윤창출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자본의 운동이 전화한 것이다. 이러한 세계 유동 자본 역시 몇몇 중심부 국가를 중심으로 순환하며 막대한 투자이익(자본 소득, 수수료, 대부 이자 등)을 안기고 있다. 이로써 국가 간 부와 소득의 격차가 확대되고, 주변부 국가들의 경우 금융화 된 세계경제에의 종속성이 심해짐으로써 자국의 부를 수탈당하는 한편, 국가의 재정․정책 수단은 취약해 진다. 개별 국가 차원에서는 중심부 국가, 일부 반주변부 국가들의 경우 소득에서 금융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의 확대로 인해 소득불평등이 확대되고(소득의 흐름과 분배구조의 변화), 주변부 국가들은 생산기반의 붕괴, 부의 수탈 등으로 인해 빈곤의 확대가 나타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아래서의 빈곤의 증감 문제는 개별 국가들의 빈곤정책, 복지정책, 경제성장을 통한 빈곤감축 효과로 설명될 수 없다. 일자리 감축, 장기실업, 불안정노동의 일반화 경향이 핵심적이며, 이를 보충하고 관리하기 위한 복지개혁(국가의 빈곤층 지원 예산의 감축, 수급기준의 엄격화 등)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국의 빈곤양상

1980년대 이후 비교적 감소 추세에 있던 한국 사회의 빈곤율은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급격히 증가해 왔다. 보건복지부의 2005년 발표 자료에 따르면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당시 4인 가구 기준 113만 6,000원) 이하인 기초법 수급자(138만 명)와 최저생계비 120% 미만인 차상위계층, 소득이 없지만 재산기준이나 부양자 기준에 의해 기초법 수급자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합친 빈곤 인구는 약 716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는 한국 사회 인구 여섯 명 중 한 명 꼴이다. 죽지 않을 정도의 바닥생존 기준선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했을 때도 이러한 수치인데, 상대적인 빈곤선의 기준을 도입해 보면 한국사회 빈곤의 실상은 실로 심각하다.
이른바 극단적 빈곤층, 절대적 빈곤층 이외에도 상대적 빈곤층, 중간 빈곤층의 증가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다. 이는 통상 소비, 소득의 중간 값의 3~50% 수준을 기준선으로 잡는데, 이러한 층에서의 빈곤율의 증가는 아프리카 등의 극도의 저발전 국가보다는 중심부-주변부 국가들에서 확대되는 추세이다. 동아시아, 남아시아처럼 특정한 조건 아래서 절대빈곤율을 감축한 일부 지역-국가들의 경우도, 장기적 시각에서 본다면 절대빈곤층에서 탈출하여 중간빈곤층을 광범하게 형성하는 것에 불과하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도 이러한 빈곤계층을 포함하면 빈곤인구는 천만 명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와 같은 상대적 빈곤층, 중간 빈곤층의 증가는 실업과 반실업을 오고가는 빈곤과 저임금의 반복현상으로 드러나는 노동의 불안정화의 결과이다. 이른바 일을 해도 가난한 ‘노동빈곤’층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빈곤의 고착화는 정부가 추진하는 조세지원정책(EITC, 근로장려세제)이나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한 노동유인을 강화하는 근로연계복지(workfare) 정책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복지개혁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많은 오해 중의 하나가 그것이 사회정책, 복지정책과 대립적이며 복지예산의 감축이 일반적인 추세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 아래서 복지개혁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핵심적 요소를 차지하고 있으며, 개별 국가의 복지예산은 일반적인 인식과는 상반되게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각 국가의 복지개혁은 대체로 복지예산의 현상유지, 또는 일정한 확대를 목표하며 정책내용에 있어서는 노동유인과 저출산․고령화의 정책기조의 강화, 사회보험 민영화의 확대 등을 공통요소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가 복지개혁을 핵심적 요소로 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본의 금융적 팽창과 생산부문에서의 비용절감을 목적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 이래서 불안정노동은 일반화된다. 이는 산업구조(금융과 연계된 부문과 다양한 서비스 부문의 확대), 노동시장 구조의 변형과 같은 경제적 측면과 이를 상시화 할 수 있는 각종 법․제도의 수립을 통해 기본적으로 관철되지만, 이로 인해 나타날 만성적인 실업, 빈곤, 사회적 불안정성에 대한 대응책 역시 필수적이다. 즉 구조적인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사회적 관리전략을 필요로 하며 이는 기본적으로 배제와 포섭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이에 따라 노동시장에 진입해 있는 기존 취업자들 일부에 대해서는 기업복지, (주식, 스톱옥션, 우리사주제 등을 통한) 금융적 배분의 확장 등을 통한 포섭이 이루어지고, 실업, 불안정노동, 빈곤의 확산에 대한 사회적 관리 전략으로서 이른바 생산적 복지가 등장한다. 따라서 생산적 복지는 극도의 빈곤을 적정수준에서 지원, 관리하는 한편, 이러한 지원은 노동유인을 훼손하지 않는 것을 핵심 전제로 삼는다.
한편, 이러한 관리전략은 신자유주의 지배계급과 그들이 주도하는 정책, 제도 등을 통해 일방적인 방식으로 관철되지는 않는다. 위기관리 전략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서는 그에 적합한 통치성의 구축이 과제가 되며,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제 계급, 세력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이루어지며, 이는 새로운 대중동원 이데올로기를 동반한다. 특히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에 대한 정치적 관리주의 확산 전략은 노동자 대중의 불만을 잠재우고 이들을 관리전략의 실행주체로 동원해 내는데 있어 핵심적이다. 노사정위원회, 빈곤을 비롯한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대응을 명분으로 민간의 참여를 동원하는 각종 위원회 등의 활용이 중요해 진다. 이러한 대중동원은 사회통합, 참여 등의 이름으로 뒷받침, 정당화된다.


한국의 복지개혁

김대중 정부의 집권 시기는 한국의 복지개혁에 있어 매우 절묘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금융위기로 인한 대량실업과 빈곤 확대에 대응하는 한편, IMF가 강제하는 신자유주의 복지개혁을 단행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부여받은 것이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제1차 사회보장 장기발전계획'을 수립, 이른반 생산적 복지를 전면화하였다. 가족 해체, 대량실업, 소득분배의 악화에 대한 대응을 중심 기조로 삼고, '국민복지 기본선'의 보장과 '생산적 복지'를 기본 이념으로 제시했다. 구체적인 정책과제로 사회보험 적용확대를 통해 1차적 사회안전망을 완비하며, 이로부터 배제되는 계층에 대해서는 공공부조를 확대하는 방향을 지향하되, 생산적 복지의 이념에 따라 노동능력자에 대한 노동의무를 강화하겠다는 지향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정책기조는 유래 없이 매우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었는데, 전 국민 국민연금 시대, 의료보험의 통합, 산재․고용보험 사업장확대 등 4개 사회보험 전반에 걸친 개혁이 수행되었다. 또한 그로부터 배제되는 계층에 대한 지원책인 공적 부조의 개혁 역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으로 나타났다. 노동능력자에 대한 의무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은 기초법과 연계된 자활사업(초창기 공공근로)의 실행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를 실행하기위한 인프라 구축을 위해 지방분권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업무 분담 합리화, 행정 효율성 제고 등의 이름으로 각종 개혁조치들이 이루어졌다.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는 한국판 근로연계복지의 시작점으로, 구조조정의 상시화, 불안정노동의 일반화와 짝을 이루는 사회적 관리정책의 기초를 닦는 과정으로 파악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 집권 기간을 거치며, 경제위기 어느 정도 안정화되었지만(사실상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통해 위기관리가 전면화된 것), 빈곤은 축소되지 않았고, 범죄의 증가, 가족해체, 양극화 등의 사회위기가 심화되었다. 이 시점에서 노무현 정부는 ‘동반 성장론’, ‘사회통합론’을 주창한다. 선진국의 세계화 대응전략을 수용하는 가운데 성장이냐 분배냐 라는 이분법적 선택지를 넘어서 지속가능한 ‘성장모델’을 수립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의 연계,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의 연계, 노동정책과 복지정책의 연계와 관련한 주요 정책 수립으로 이어졌으며, 만성화된 사회위기 상황(노동의 불안정화, 빈곤의 확산)을 타개하기 위한 일자리 창출(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 일을 통한 빈곤탈출) 및 노동시장 재편안(비정규 보호법안), 재생산과 연관된 사회정책분야의 개혁(일과 가정 양립 정책)으로 현상화됐다. 또 ‘참여복지’라는 이름으로 지역 단위에서부터 시민사회단체를 동원한다.(저출산고령화대책연석회의,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지속성장가능위원회 등)
이러한 정책들은 김대중 정부가 주창한 ‘생산적 복지’의 기본 기조와 핵심 요소를 거의 그대로 계승하며, 보다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한편, 최근 적극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이른바 사회투자국가로 그 외형이 변화하는 데 있어서 일종의 가교를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평가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집권 초기 사회투자론이 거론되기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사회투자국가라는 이름으로 더욱 확대되어 제안되고 있다.

사회투자국가 발생배경과 핵심 내용

1994년 영국 노동당의 사회정의위원회(the commision on Social Justice)는 새로운 국가전략의 하나로 사회투자론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사회투자에 대한 사고는 이후 OECD와 EU에서도 발견되었다. 한국에 주로 소개되고 있는 사회투자 개념은 1998년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슨(Giddens)이 발표한 『제 3의 길』을 의미하며 이를 수렴하여 사회투자국가론으로 정식화한 것은 블레어 정부이다.
사회투자론이 발생한 배경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응과 서구 사민주의 정당의 재집권을 위한 정치적 방안이었다.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으로 전통적인 서구 복지국가는 위기를 맞이한다. 경제 위기 속에서 실업과 불평등이 확산되지만 서구 복지국가는 이를 해결할 능력을 상실한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개혁이 본격화 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빠른 유동성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완전 고용과 높은 수준의 고용보호, 그리고 소득평등이라는 전통적인 복지국가의 목표와 근본적으로 불일치하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의 유연화를 필수적인 과제로 삼으며 고용보호 수준을 낮춘다. 또 제조업이 위축되고 서비스업 부문의 증대로 생산성 하락(임금 격차 벌어짐)과 경제성장 둔화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편 지식기반경제의 도래로 고용위기는 심화 되며 공공부문 팽창의 한계로 일부 계층의 만성적 빈곤이 발생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소위 ‘구 사회적 위험’(실업, 노령, 질병, 산업재해)의 심화와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발생한다. 새로운 사회적 위험은 구체적으로 1>서비스업의 팽창으로 여성노동력이 늘어나고, 세계화 등으로 노동시장유연화로 인한 고용불안정 증가(특정계층의 사회적 배제의 구조화) 2>여성 단독가구의 증가로 인한 빈곤위험 증가, 아동 빈곤 증가 3>고령화로 인한 연금재정 악화(재생산 비용의 증가. 일-가정 양립의 불안정성) 4>공적연금, 의료보험 등의 민영화(복지 감축, 민영화에 따른 사회보장의 후퇴, 계층별 차별화 문제)를 의미한다.
한편 1970년대 경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서구 사민주의 정당들 영향력을 상실하고 1980년대 전유럽적으로 신자유주의 보수세력이 집권한다.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시장력의 회복, 노동시장의 유연화, 민영화, 규제 완환, 통화주의에 입각한 보수적 재정운영과 완전고용포기, 복지삭감 등을 추진한다. 이 속에서 서구 사민주의 정당은 전통적인 복지국가의 실패와 신자유주의 개혁이 가져오는 파괴적인 결과를 넘어 새로운 대안을 제안함으로써 재집권을 도모한다. 그것이 바로 ‘제3의 길’이다. 하지만 서구 사민주의 정당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도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해 신자유주의를 대폭 수용하여 복지국가를 개혁해야만 했다.
사회투자국가론은 기본적으로 시장경제를 사회적 번영의 필수적 여건으로 인식하며, 시장의 역동성이 보장되어야 장기적인 부의 재분배가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때문에 경제성장(경제정책)과 복지(사회정책)사이의 선순환구조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통적인 복지국가는 소득 보장을 제도화 하여 시장의 수요를 자극함으로써 경제성장을 도모하지만 사회투자국가론은 사회정책을 시장의 공급측면과 연계하여 경제성장을 이루고자 하는 전략을 채택한다. 복지의 투자적 성격․생산주의적 성격을 강조하고 개인의 발전을 결정짓는 자체를 직접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필요와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고 차단하여 사후에 발생할 비용을 줄이려는 접근(적극적 사회정책)을 한다. 때문에 인적자본과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며, 이러한 투자가 경제에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간주한다. 또 결과의 평등(소득의 재분배)이 아닌 기회의 평등(사회통합)을 강조하고, 권리를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연계시킨다. 주요한 프로그램으로는 1>근로연계복지(workfare)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직업훈련, 평생교육, 노동시장의 탈규제, 저임금직종에의 취업 장려 등) 2>아동과 여성친화적 정책 등의 사회복지서비스 프로그램: 영국의 Sure-stare 프로그램, 캐나다의 Campaign 2000 등의 아동빈곤해소 프로그램, 여성친화적인 프로그램으로는 적절한 가격의 보육제공, 유급출산휴가, 유급아동양육휴가, 아동이 아플 경우 결근 인정 3>자산 형성(asset-building) 접근법 : 미국에서 시작. 영국․싱가폴․캐나다 등으로 확산. 한국에서 최근 아동발달지원계좌(Children Development)가 시행 중에 있다.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에게 공공부조를 통해 현금을 지원하는 대신 ‘저축’으로 상징되는 물적 자산 형성을 지원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또 공공부조 수혜자의 근로의욕 감소를 줄이고 저소득층이 노동시장에 적응할 수 있는 물적 기반(주거비, 교육비)을 형성시킨다는 것도 주요 계획이다. 이러한 담론과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증가, 빈곤층의 중산층으로의 이동, 사회적 통합, 빈곤세습 방지, 조세원의 확대와 연금재정 안정화 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사회투자 국가론

한국사회에서의 논의는 노동시장양극화와 빈곤층의 사회적 배제, 급속한 저출산․고령화, 가족구조 및 여성경제활동의 변화 등의 사회구조 변화에 조응하는 사회정책의 필요성으로서 제기되고 있다. 주요하게는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하여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며 사회안전망 내실화, 건강투자, 인적자본 투자확대 및 사회서비스 확충, 보건의료산업의 육성이라는 네 가지 정책아젠다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외부적으로는 선진통상국가, 내부적으로는 사회투자국가’라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말은 이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사회투자국가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은 1>아동․청소년 정책으로 아동발달계좌, 저소득가정 아동지원, 이주민 2세포용정책, preschool, 방과후 교육활성화 2>근로세대정책으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내실화, 평생학습체제 구축, 이주노동자정책, 학자금융자제도 활성화, 양성평등에 입각한 모성보호, 예방적 건강서비스 3>노인정책으로 장기요양제도 구축, 기초노령연금도입, 고령자직업훈련 및 고용촉진, 공적연금개혁 등이 주요한 내용들이다. 이를 통해 여성 및 중고령 인력의 노동시장 참여제고, 출산율 제고를 통한 미래의 노동력 확충, 교육 및 인적자원 투자강화를 통한 노동의 질 제고, 사회적 보험 기능 강화를 통한 위험 담지적 혁신활동 제고, 경쟁촉진적/성장친화적 개혁에 대한 사회적 수용역량 제고, 사회통합 및 사회자본 축적에 기여함으로써 안정적 성장을 지지, 사회투자 중 사회서비스업 활성화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연계복지의 또 다른 판본

사회투자국가론은 전략적으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교호영역인 노동시장정책을 통해 실현된다. 노동연계복지(workfare)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직업훈련, 평생교육, 노동시장의 탈규제, 저임금직종에의 취업 장려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 이러한 내용은 자활정책과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 등으로 외화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 유연화의 지속적 확대로 인한 노동의 불안정성과 노동조건의 악화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선행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실제 현재의 불평등과 사회적 배제는 노동의 불안정화가 가장 큰 원인이며 이로 인해 노동빈곤층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노동유연화 전략’이라는 신자유주의의 정책기조를 전면적으로 수정하지 않고 위와 같은 전략을 채택하는 것인 노동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더욱 고착화 시킬 뿐이다. 덧붙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정책은 다양한 분야의 비정규 노동을 양산할 뿐이다.
사회투자국가론은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사회적 책임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수사에 불과하다. 이미 불평등이 만성화되고 고착화된 상태, 시장 내의 경쟁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온전한 기회의 평등은 실현되기 불가능할뿐더러, 또 설사 기회의 평등이 실현된다하더라도 위와 같은 조건으로 인해 불평등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또 사회투자국가론에서 주장하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것은 고작 불안정한 일자리, 직업훈련, 평생교육 등일 뿐이다.

여성 노동의 불안정화 심화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동시장에서의 성별분업을 해체하고, 여성의 노동시장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교육훈련, 보육 등의 사회적 부담, 사회서비스 강화)을 시행한다고 하지만 이는 여성 노동력 활용을 통해 노동의 불안정화를 성취하려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정확히 부합한다. 또 이러한 정책 기조로 인해 여성 저임금노동자화,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확대, 노동시장의 성별분리, 시간제 노동확대, 민영화 증대 등의 문제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한국의 비젼 2030뿐만 아니라 새로마지플랜, 새싹플랜, 가족정책기본 계획 등을 통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내놓고 있는 가족여성정책의 경우 정부의 역할보다 오히려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돌봄의 사회화, 성별분업구조의 타파와 같은 조치는 크게 미흡한 채 여성노동의 불안정화, 여성의 빈곤화 경향을 부추기는 시장화 전략이 주를 이루고 있음. 대표적인 것이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전략이며, 보육료 지원 등도 대부분 중간층(?)이상의 여성에게만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여 불평등을 오히려 강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복지의 시장화, 시장 형성 강조

한국의 복지체제는 시장과 가족, 개인책임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 IMF 이후 양적으로 성장하긴 하였지만 이와 같은 기본적인 복지체제의 변화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복지․사회 정책으로는 현재 심화되는 빈곤을 해결하기 어렵다. 서구 복지국가모델을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도 비판적 검토의 대상이지만 어찌되었든, 복지의 부재라는 조건 하에서 투자 담론의 제기는 결국 ‘시장’을 강화시켜주는, 기존 잔여적․선별적 복지체제의 유지와 존속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또한, ‘유연안정성’이란 개념의 도입은 매우 위험한데 이는 불안정노동을 양산할 뿐 아니라, 노동빈곤층이 확산되어 사회보험제도의 적용률을 낮추고 공공부조 대상자를 늘려 선별적 복지정책의 강화를 초래할 것이다.
이들은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상호보완한다고 강조하지만, 상호보완적 관계가 아니라 경제정책에 종속된 방향 하에서 사회정책을 논의하고 있다. 성장동력확충, 능동적 세계화, 민간시장활성화를 위한 수단과 정책으로서 사회정책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건복지부의 사회투자전략 4대 목표 중 ‘건강투자 확대’와 ‘보건의료산업육성’이라는 상호 모순된 목표가 동시에 제시되고 있다.

결론

사회투자국가를 주장하는 이들은 신자유주의와 ‘복지국가’의 대안이라는 주장을 하지만 이는 시장과 경쟁, 개방과 성장 즉 시장의 역동성을 전제조건으로 한다는 점에서 터무니없는 수사에 불과하다. 탈규제, 민영화, 자유화, 노동시장의 유연성 등 신자유주의 핵심 의제를 대폭 수용하고 있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사회투자전략의 필요성에서 강조하고 있는 ‘새로운 위험’은 대부분 신자유주의 전략의 결과이다. 때문에 사회투자국가전략은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의 폐해를 보완하거나 관리하는 것을 넘어서지 못한다. 혹은 신자유주의 축적체제를 가능케 하기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
진정으로 빈곤과 불평등을 해결하기위해는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이 전제 되지 않은 사회투자국가론은 오히려 빈곤과 불평등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투자 정책들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반대를 조직해야한다.

주제어
경제 노동 여성 빈민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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