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4.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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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에 유린되는 민중건강과 의료의 사회화

최근의 의료보험 재정위기 신문보도

이승철 | 회원, 전국언론노조 편집국
<b>의보통합사태, 분리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b>

한국사회에 과연 지금처럼 격렬한 이익집단의 저항과 반발이 있었을까? 최근 의료보험 재정 파탄을 보면 이런 생각부터 떠오른다.
김재정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과의 인터뷰에서 "진료비를 내리면 가만있지 않겠다. 튼튼한 직장의보와 빈약한 지역의보를 합해 결국 재정적자를 불러왔다. 국민이 의료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야말로 의료보험 재정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의사들이 '국민건강권을 지켜야 한다'며 집단폐업에 나설 때부터, 정부가 이를 무마하기 위해 의사들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방안을 거침없이 토해낸 바로 그 때부터 이번 사태는 이미 예고된 바 있었다. 결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 "내 탓이오"를 외치는 지경에 이르렀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경질됐으며 여당인 민주당은 '우리가 정부에 속았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뒤늦게 대처방안을 내놓기에 급급했다.

한나라당은 한술 더 뜬다. 원내 최대파인 한나라당은 '의약분업과 의보통합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정부정책을 비난, '국정에서 물러날 것'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강도가 좀 더 심해지고 사태가 좀 더 악화되었을 뿐, 여느 때와 같은 형국이다. 사태 악화를 둘러싼 정쟁 속에 해결은 요원해지고, 민중들의 고통만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보여온 언론의 태도에 더 주목한다. 이 꼭지와 글이 가지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의 의료보험 재정파탄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지경까지 치달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메이저신문이라 불리는 몇몇 일간지들이 보이는 건강보험 재정파탄 관련논조는 놀라우리만큼 천편일률적이다. '원인이 잘못 되어 전체가 잘못된 것인 만큼, 원인 자체를 무효화해야 한다'는 따뜻한 충고다. '의약분업이 잘못된 제도니 다시 과거로 회귀하자'는 주장에서부터 '지역의보와 직장의보 통합이 사태의 근본뿌리이니, 이를 다시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에 여념이 없다.


<b>천편일률적인 언론의 태도</b>

<b>▶사설에 도배된 "의보체계 재검토"</b>

이러한 각 신문들의 보도태도를 가장 잘 보여준 것은 무엇보다 사설이다. 조선일보는 3월 16일자 사설 <의보체계 전면 재검토해야>에서 '직장의보와 지역의보를 강제통합한 것이 과연 타당했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정부의 의보통합 문제를 들고 나왔다. 조선일보는 이어 '의보 통합과정에서의 적자폭 증가는 노사 등과 이로 인한 관리부실 탓으로 지적되고 있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책임을 사회보험 노조파업으로 돌리는 등 악의적 왜곡보도와 본질호도를 일삼았다. 조선일보의 독설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조선은 이어 같은 달 30일자 사설 <의약실정 대통령 시인으로 그만인가>를 통해 수가인하와 처방료·진료비통합, 허위·과잉진료에 대한 의사제재 등 정부의 해결방안에 대해 '이해당사자들의 반발도 클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들어 우려의 뜻을 펼쳤다. 사설은 문제의 해법으로 '의약분업을 수요자의 선택에 맡기는 미국식 선택분업' 등 실질적인 의약분업정책 포기와 함께 '의보 역시 지역과 직장으로 다시 분리'할 것을 강하게 요청했다.

중앙일보도 3월 20일 <의약분업 원점에서 재검토하라> 제하의 사설에서 '의약분업을 원점에서 전면적으로 새롭게 검토하기를 제안'했다. 사설은 이어 의약분업 시행의 기본취지인 의약품 오남용 약화에서도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한 상태에서 과연 의약분업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따져물으며 '백지상태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즉 '의보재정 문제뿐만이 아니라 의약분업 전부를 포기할 경우의 비용과 장단점까지' 면밀히 검토하라는 주문이다. 중앙일보는 나아가 의약분업에 대해 '명분에 얽매여 현실을 왜곡하는 정책'이라고 폄하했다. 이에 앞선 10일자 사설에서 중앙은 '의보통합이라는 명분에 쫓겨 의보재정 전체를 거덜내는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된다'면서 '의보파산을 막기 위해서는 내년 1월로 예정된 지역의보와 직장의보의 재정통합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도 19일자 사설 <국민은 정책실험 대상이 아니다>를 통해 사태의 해결방안보다는 정부의 책임을 강하게 묻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나마 내놓은 대안이라는 것도 '의보의 기본틀부터 다시 검토해 근본적이고 안정적인 종합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묘한 여운 뿐이다. 다른 일간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b>▶결국 말하는 바는 '의약분업 돌려놔!'</b>

경향신문은 <의료체계 전면 재검토하라(2001.3.19)>에서 '지역의보 직장의보 통합 연기 및 의약분업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고, 국민일보도 <의약분업 근본적 보완을(2001.3.20)>을 통해 의료서비스의 공공적 성격을 무시해 부르주아정당마저도 등을 돌린 '본인부담제, 의료저축제도'의 전향적 검토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세계일보 역시 2001년 3월 15일자 사설 <의료보험료 또 인상인가>에서 '행위별 수가제 등 방만한 의료서비스제도 개혁' 등 일견 올바른 입장을 취하다가도 마지막에 가서는 '의보통합 연기' 주장을 슬그머니 꺼내놓았다. 세계일보는 나아가 '의료보험공단 인력감축'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대안을 내놓기까지 했다.

한국일보는 15일자 사설에서 의료보험 재정파탄의 한 이유로 의보통합을 지적했으며, 보험료의 일부를 개인명의계좌에 예치했다가 소액진료비를 여기서 결제하는 방식인 '의료저축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즉, 각 신문사들이 따르고 있는 논리의 흐름은 일견 간단하다. 1999년 시작된 직장·지역 의료보험 통합이 의보공단 구성원들의 도덕적 해이는 물론, 지난해 여름 벌어졌던 사회보험 노사갈등 등과 맞물려 재정악화의 1차적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상황에서 추진된 의약분업이 사태에 쐐기를 박았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좀 더 나간다 해도 수가인상을 지적하는 '심정적 불만'의 수준이며, 급기야는 의약분업 정책의 백지화와 통합 무효화를 주장하기까지 한다.


<b>의료보험 통합의 원칙적 의미를 되짚어보자</b>


<b>▶노동유연화에 따른 필수조치</b>

그러나 사태의 추이를 살펴보면 이 역시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의료보험 통합은 사회보험 원칙에 충실한 소득재분배와 위험분산 효과를 불러오는 제도로, 특히 오늘날과 같이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과 함께 나타난 높은 실업률과 평생직장 개념의 소멸현상에 따라 직장과 지역간 이동이 빈번해진 상태에서는 필수적인 조치이다.
사회보험노동조합이 지난 23일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해동안 지역과 직장의료보험 변경대상자는 전체 18.8%에 이른다. 특히 오는 7월 반복실업으로 상징되는 열악한 고용구조를 안고있는 '5인미만 영세 소규모사업장 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 등이 직장가입자로 편입됨에 따라 이러한 교차이동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양대 보험간의 재정·조직통합은 사회적 책임의 시각에서 당위적인 수준에까지 오른다.


<b>▶재정악화는 의보통합이 원인 아니다 </b>

통합에 따라 직장의료보험 재정이 고갈되었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 일단 현재 재정통합은 유보되어있는 상태. 따라서 지금 발생하는 재정파탄의 책임을 통합에 묻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직장의보 재정의 당기적자는 1997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평균 보험료인상률은 8.5%로, 같은 시기 평균 급여비상승률 19.1%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또 지난해 7월 의료보험통합을 앞두고 통합에 반대하는 직장의보노조 등의 '보험료 인상거부'로 보험료 적기인상에 실패,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았던 재정상황에 찬물을 끼얹었다.

여기에 보건복지부는 의약분업에 거세게 저항하는 의사들에게 퍼주기식 협상을 펼치며 5차례에 걸쳐 총45.1%의 수가인상을 허용, 사태악화에 결정타를 날렸다. 정부는 1999년 11월 15일을 시작으로 2000년 1월, 4월, 7월, 9월 연달아 수가를 인상했다. 이 중 2000년 4월부터 9월까지의 인상조치는 의료계 집단폐업을 달래기 위한 선심성 행정조치였다. 최근 의보재정 파탄상태를 맞아 일부 의사들은 표정관리가 힘들 정도라고 하니 그 수가인상의 효과를 가히 짐작할만하다.


<b>▶제도적 한계와 초기혼란도 구분 못 하는 언론</b>

의보통합으로 도덕적 해이를 만연시켜 징수율이 저하돼 재정파탄을 가져왔다는 언론의 주장 역시 근거가 빈약하긴 마찬가지다. 먼저 납부자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는 '통합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더 발생한다'는 아무런 학문적·경험적 근거가 없다. 1998년 1차 통합시점을 기해 통합초기 혼란과 전산장애로 보험료를 적기에 고지하지 못해 나타난 7% 가량의 징수율 하락 현상이 있었지만, 이는 '제도적 한계'라기보다는 '제도변경에 따른 초기 혼란'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며, 1998년 이후에는 계속해서 징수율 상승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만의 경우에도 1995년 전국민의료보험을 통합, 높은 징수율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지만 언론은 이러한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b>▶문제 생기면 무조건 인력감축인가?</b>

재정 정상화를 위해 건강보함관리공단의 인력감축이 필수적이라는 대목에 가서는 기가 찰 지경이다. 보험공단은 지난해 이미 1,175명의 인력을 감축했음에도 올해 일부 언론의 장단에 맞춰 또다시 같은 규모의 인력을 정리해고할 방침이라고 한다. 특히 동아일보는 3월 24일자 사설에서 통합과정에서 발생한 임금인상과 퇴직금 재정산 등 도덕적 해이를 비난하며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해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구조조정은 이미 30% 이상의 감원이 시행되어 있는 상태다. 관리운영비의 비중도 선진국 수준으로 접근하는 과정에 있으므로 과다지출에 의해 재정문제가 생겼다는 주장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정리해고정책의 일방추진은 또다시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과 저항을 불러올 것이 명약관화하다. 내년 완전통합을 앞둔 상황에서 정부와 보험공단이 이러한 무리수를 강행한다면 준비부족으로 인한 제2·제3의 '재정파산'을 불러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밖에도 '의약분업과 의보통합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났다'며 의료보험을 민간사보험에 맡기거나 일정부분을 개인부담화 하자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의료의 공공성과 민중의 건강권을 망각한 이러한 발언들이 여과 없이 지면에 반영되고 있는 현실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나, 족벌언론과 의료자본의 끝간데 없는 탐욕은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b>▶의심할 수밖에 없는 언론의 행태</b>

관련 기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의보재정 적자 중 90%가 분업이후 발생(2001.3.17. 국민 사회면)>, <의보재정 파탄…집착한 공약 거덜난 분업(2001.3.20 국민 3면)>, <'의약분업 국민돈만 축내고 효과적어(2001.3.16 동아 7면)>, <의약분업 시행하고보니 '으악'분업(2001.3.17. 조선 3면)>, <직장·지역의보 동반 파산위기(2001.3.9. 조선 사회면)>, <돈은 돈대로 든 의약분업 성과없어(2001.3.17. 중앙 5면)>, <의보통합·의약분업 연타맞고 곳간 거덜(2001.3.14. 중앙 사회면)>, <누굴 위한 의약분업인가(2001.3.19. 한국 사회면)> 등 대부분의 기사들은 이번 의보재정 파탄상태에 대한 책임을 의약분업 제도 자체에 돌리는가 하면, 더 나아가 직장·지역 의료보험 통합과정에서 나타난 몇가지 지표들을 주원인으로 찾고 있다. 또 17일자 조선과 세계 기사들 역시 한나라당의 입장만을 보도하여 마치 재정파탄의 직접적인 원인이 통합인 것처럼 편파적 시각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보도들 역시 위의 근거들을 볼 때 신뢰할 만한 수준에 있는지는 의심해 볼만하다.


<b>▶언론이 내놓는 대안을 보면</b>

언론이 내놓고 있는 대안들 역시 만족스럽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의약분업 자체의 백지화나 보험 민영화를 주장하는 몇몇 언론사들의 어처구니없는 해법은 일단 논외로 하자) 한국일보는 건강보험 시리즈 하(下)편 <재정파탄 해법은(3.16. 사회면)>에서 '수진율 비례 보험료 부과' 체계를 제시한다. 이는 가계별 수진율과 연계해 소득비례 보험료로 전체 진료비의 80%, 수진율 비례 보험료로 나머지 20%를 부담토록 하는 제도로, 이른바 '수혜자 부담 원칙에 부합한다'는 것이 대안제시의 근거라고 말한다. 한국일보는 이 밖에도 만연한 부당청구를 가능하게 하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를 극복할 수 있는 '포괄적 수가제도'도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중앙일보도 3월 16일자 보도를 통해 '▲고가약 처방 ▲의사·약사간 담합 ▲허위·부당·과다청구 등에 대한 감시대책 마련' 등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조선일보는 3월 19일자 3면 <의보적자 어떻게 메우나>에서 보험료 인상, 국고지원, 주사제의 처방·조제료 삭감, 진찰료와 처방료 통합 등을 제안했고, 그 밖의 많은 일간지들도 ▲보험료 징수율 제고 ▲수가 조절 ▲공단관리비 절감 ▲급여 청구 심사 강화 등을 대책으로 제출했다.


<b>▶의료정책이 임시미봉책 일색이어서야 </b>

물론, 위의 대안들이 전혀 실효성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포괄수가제의 경우, 한국 의료공급의 양적 팽창이 진료비지불제도에 대한 전면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타당하고 실현가능한 대안이다. 의사들에게 지급하는 의료수가 인하도(앞서 밝힌 바와 같이) 그 인상절차부터가 부당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상통하는 지점이다. 허위·부당·과다청구 등에 대한 감시대책도 물론 시급하다. 보험공단과 별개기구인 심사평가원에서 행사하고 있는 실사권(현지조사권)을 보험공단에 돌려주어야 한다.

현재 만연된 부당청구로 낭비되는 금액만도 연간 1조5천억원 수준. 하지만 부당청구를 조사할 권한이 없는 보험공단으로서는 속수무책이다. 현재 진료비 심사가 주업무인 심사평가원의 심사횟수는 연간 평균 9만개의 요양기관 중 500여개에 불과해 이 수치대로라면 하나의 요양기관이 실사를 받기 위해서는 180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런 점을 볼 때, 이 권한의 보험공단 귀속은 치밀한 단속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사실 이는 보건복지부의 위임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의 반발로 이를 시행하지 못해 심사평가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위의 대안이 100% 철저하게 입안되고 추진되며 지켜진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왜냐하면 제시된 대안들 모두가 의료제도 자체의 의미와 역할을 도외시한 채, 현재 드러나고 있는 재정파탄 사태에 둘러싸여 서둘러 내놓은 단어들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핵심은 의료제도 자체가 가지는 공공성의 회복과 강화 - 즉 의료의 사회화 - 이지만, 이를 다루는 언론을 찾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b>문제는 다시 의료의 공공성이다</b>


<b>▶국민부담 의료비가 적다니!</b>

모든 국민에게 납세의 의무와 집회·결사의 자유가 있듯이, 국가는 국민들에게 건강한 생활을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언론과 정부, 몇몇 부르주아학자들이 주장하는 '국민들이 의료이용은 많이 하면서 의료보험료는 적게 내기 때문에 현재의 의보재정 파탄이 도래했다'는 '수혜자 부담주의'에 입각한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민중이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몸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돈과 시간이 남아서, 쉴 공간이 없어서 병원을 찾는 경우는 없다(물론, 일부정치인과 재벌총수들이 재판이나 소환을 면하기 위해 입원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문제가 되는 '과잉의료'는 오히려 의료공급자로부터 기인한 경우가 더 많다. 의료의 공공성보다는 상업성이 더 설득력을 얻고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더 많은 진료, 더 많은 수입'을 잘 알고 있는 의료기관이 행하는 과잉진료는 이미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이다. '(국민이) 의료비용을 적게 내고 있다'는 주장도 마찬가지.

모든 의료행위에 보험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민중이 부담해야 할 의료비용은 보험료를 훨씬 웃돈다. 또 우리나라 직장의료보험의 경우에도 본인부담률은 50% 수준으로, 세계보건기구가 상한선으로 정한 50%에 이미 다달아있다. 민중의 의료보험 부담이 적다는 논리는 그야말로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b>▶의료부문에까지 시장논리에 찌들어서야</b>

즉 핵심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상업적 속성이며, 의료의 상품화 경향이다. 지금처럼 병원이 자본축적의 경쟁지가 되고, 의사가 되는 것이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첩경으로 이해되는 이상, 그리고 국가가 이러한 경향을 억제하고 통제하기는커녕 더욱 부추기고 조장하는 이상 공공정책으로서의 의료행정은 이미 저 멀리 물 건너간 일이다. 어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도 결국 보험재정은 열악한 상황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국민의 기본권은 공염불이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 신문지면에서 외치고 있는 '재정파탄 사태'는 오히려 당연한 현상이며, 거시정책의 뒤틀린 현상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반영할 뿐이다.
따라서 올바른 대안적 방향은 국가보조금 대폭 확대와 자본의 부담 확대, 보험혜택과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 중앙집중화·사유화되어있는 의료체계를 지역별로 분산시키고 국가가 운영하는 보건소를 확충(양과 질 모두의 측면에서)하는 등 공공의료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또 민중건강권을 재벌들의 돈놀이 수단으로 격하시키는 민영보험사 도입을 저지하고 지역·직장 의보통합을 시급히 이뤄내야 한다. 지금과 같이 드러나는 문제점에 대한 단기처방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며 그 대가는 뼈아플 것이 분명하다.


<b>의보재정파산은 국가가 책임져야</b>

물론, 무엇보다 앞서 정부가 허술하게 추진한 의료정책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이런 측면에서 언론의 지적은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의약분업 제도가 오늘의 위기를 불렀다'고 근거 없는 호들갑을 떠는 언론의 보도태도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의보통합 저지'를 외쳐대는 논조의 비겁함이다. 본질은 외면한 채 4칙연산 이상의 분석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추가비용이 원인'이라고 설복하는 데 여념이 없는 사설과 기사, 시론의 저급함이다.

사실, 돌려서 생각해 보면 문제는 간단하다. 감기에 들어 병원에 갔을 때, 이전에는 의사에게 진단을 받고 앉은자리에서 주사처방 받은 후 집에 돌아오면 됐던 것을, 이제는 약국에 들려 투약받을 약제를 사온 뒤 맞아야 한다는 점에서만 달라진 것이다. 그 '경유 의료행위'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일면 당연하다. 귀찮다고 해서 그만둘 일도 아니다. 다만 증가된 의료비용을 누가 책임지느냐의 문제이다. 당연히 국가의 몫이다. 의료수혜자의 부담은 그리 크게 늘지 않은 대신, 국가의 부담부분이 증가해 문제가 발생했다. 여기까지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의보재정의 파산' 시나리오 일부다.

그런데, 여기에서 자칫 잘못해 재정파산을 책임을 국민부담으로 귀속시킬 경우, 이 당연히 도래한 위기는 다시 '민중건강의 파산'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문득 궁금해진다. 막다른 골목을 마주쳐서야 지도를 꺼내보는 정부의 무사안일함과 지도 없이 눈을 감은 채 자기 말만 듣고 길을 나설 것을 강요하는 의료자본의 탐욕, 지금까지 어렵게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라고 큰소리치는 우리 언론의 억지를 진단하고 처방할 방법은 없을까? 고삐를 늦출 때, 의보재정의 파산은 탐욕과 억지에 밀려 민중건강의 파산으로 내몰린다.
주제어
보건의료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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