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5.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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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대우차 노조의 투쟁을 왜곡하는가- 노동사회 3월호 이성재 동지의 주장에 반대하며-

최석진 | 인천지부 정책실장, 대우차 공투본 상황실
<b><노동사회>의 해고조합원</b>

4월 10일, 정권의 강박관념이 이식된 듯한 전투경찰의 광기어린 폭력이 결국에는, 무방비 상태로 대로변에 누워있던 대우차 노조원들을 덮치고 말았다. 그동안 계엄상황이나 다름없던 부평일대의 인권침해 사례를 굳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그 날의 참상은 어찌보면 이미 예고된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연일 과격시위에 대한 우려만이 공권력의 무장을 강화해가던, 쟁점이 금기시되던 두 달간의 부평에 대해 조금만이라도 관심을 갖고 지켜본 이라면, 이내 치를 떨게 하는 일을 한두 가지쯤은 듣거나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가슴아픈 일은 폭행을 당해 병원에 누워있는 대우차 조합원들이 스스로가 당한 폭력에, 도리어 쟁점이 흐려질까봐 전전긍긍해 한다는 사실이다. 병원에서 만난 해고조합원 중의 한 명이 '정리해고만 철회된다면 또 맞더라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결의해서, 병문안 왔던 동료들의 가슴을 치게 했던 것도 아마 그런 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쉽사리 치유될 것 같지 않은 이 날의 상처가 보수야당의 정치공세 수단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던 차, 필자는 또 다른 해고자의 목소리를 지면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매월 발행하는 기관지<노동사회(2001.4)>에 실린 이성재 동지의 글이 그것인데, 12년 동안 해고자의 신분으로, 복직된지 1년 4개월만에 다시 해고통보를 받은 심정을 솔직하게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성재 동지의 글도 글이지만, 이와 무관하게 우리는 이 글이 실린 <노동사회>과월호를 뒤져보면서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지난 반년 동안 <노동사회>에는 3번에 걸쳐 대우차 투쟁과 관련한 글이 실렸고, 그리고 이 글들은 약간의 차이를 두고는 있지만 주로 '대우차 노조'에 대해 비판하거나 '전투적 조합주의'를 우려하는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정권의 구조조정 정책에 대한 비판이 전혀 다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님에도 그 어떤 '의도'를 의심케하는, 최근 <노동사회>의 대우차 투쟁에 대한 태도는 지난 과월호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b>대우차 부도와 대량해고의 책임이 왜 노조에게 있는가</b>

<font color="##003366"> 당시 '동의서'라는 올가미에 걸려 결국 부도라는 사태를 초래했고, 그 결과 정리해고 폭이 더 커진 결과를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b>노조는 '동의서를 썼더라도 부도는 났을 거'라며, 부도를 정부와 채권단 그리고 GM의 음모 탓으로 돌리고 있다.</b>
- '대우차 투쟁, 반성과 전망', 이성재(대우자동차 노조 조합원·해고자), 월간<노동사회>2001년 4월호 中에서 (강조는 인용자, 이하 동일)</font>


작년 10월 31일 3,500명에 대한 감원계획이 포함된 자구계획이 발표되면서 불거진 동의서 국면은 정확히 27일만에 종료되었다. 1차 노사협의회가 개최되고 불과 일주일만에 대우차가 최종부도 처리되는, 긴박한 상황전개에서 대개의 사람들은 부도 책임이 노조로 전가되는 '효과'가 발생하였다는 데에 이견을 달지 않는다. 당시 일간지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오히려 부도로 인한 대우차 처리의 '이점'이 강조되기도 했던 이 시기에 대해, 이성재 동지는 '동의서 거부'로 인해 오히려 책임만 노조에 덧씌워진 채 인원감축규모만 확대시켰다고 질타하고 있다. 무지한 '원칙'과 무능한 '전술'로 벼랑 끝에서 조합원들을 밀어내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 근거를 보면, 동의서에는 정리해고가 명시되지 않았고 다만 '3,500명에 대한 인원감축'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들고 있다.

또한, 동의서 파동 이후 합의한 2000년 11월 27일 노사합의서에 대해서도, 1999년 16대 집행부에서 워크아웃동의서 격으로 합의한 '기업개선작업의 성공적 이행을 위한 노사합의 및 확약서'보다 못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정리해 보면, 노조의 동의서 제출을 늦춘 것이 문제이고 그러다보니 직후 합의서의 내용도 별로 형편없는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결론부터 이야기해 보면 이는 현실을 지극히 왜곡하고 있는 주장일 뿐이다.

우선 동의서와 실제 맺어진 노사합의서의 차이점만을 보자. '동의서'에서 요구하고 있던 인력감축 규모조차도 합의서에는 '사업구조, 부품 및 제품가격, 인력 등을 포함한 전 분야에 걸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데 대한 인식을 같이하고'라는 전문 서술만이 있었을 뿐이다. 게다가 1999년의 확약서에서와 같은 '워크아웃 진행과 생산에 차질을 주는 행위 자제' 같은 합의사항도 없었다. 또한, 확약서를 제출한 이후에 노조활동이 제약받지 않았다고 높이 평가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확약서 제출에 걸린 석달이라는 기간과, 동의서 국면 당시의 부도까지 가는데 걸린 일주일이라는 시간 차이는 단순한 차이가 아니다. 42.195km를 뛰는데, 걸어서 가는 것과 100m 달리기를 하듯 전속력으로 가야만 하는 그런 차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는 임원선거가 끝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따지고 본다면 확약서 제출로 인해 제약을 받지 않은 만큼, 작년 단체협상에서 합의한 '5년 고용보장'도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건 마찬가지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전술적인 문제보다도 더 근원적인 것은 실제 대우차 부도의 책임과 대량 정리해고 사태가 현 노조지도부의 오류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데 있다. 사측이나 보수언론에서 떠드는 것이라면 그나마 이해라도 할텐데, 굳이 부도 책임을 노조에 덧씌우는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대우차 이종대 회장이 동의서와 부도결정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음을 밝혔는데도 말이다.


<font color="##003366"> 대우자동차 이종대(李鍾大) 회장은 10일 '대우차부도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날 오후 부평 본사에서 열린 협력업체 비상총회에서 협력업체 대표들에 대한 인사말을 통해 (중략)<b> "정부는 노조 동의서가 있으면 지원하겠다고 말했지만 설령 그렇게 됐어도 얼마나 갔겠느냐"</b>고 말했다.
- 2000. 11. 10 (인천/연합뉴스) </font>


<b>희망퇴직을 수용하면 정리해고는 막을 수 있었는가?</b>

<font color="##003366">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노사가 심한 충돌 없이 인력구조조정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노조 집행부는 '회사가 정리해고 하려는 수작이다'라고 떠들어대며 조합원들의 불안감을 고조시켰고, 이를 통해 자신들이 '동의서'를 쓰지 않는 행위를 '원칙'이라고 정당화하는 선전을 해댔을 뿐이다.' (이성재, 같은 글)</font>


"동의서가 정리해고하려는 수작이라고 노조가 떠들어 댈" 당시쯤 되는 11월 3일, 실제로 채권단은 회사측에 정리해고를 명시할 것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이성재 동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10월 31일 사측이 발표한 구조조정 계획안을 무시하고 왜곡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이성재 동지는 사측이 정리해고보다는 희망퇴직을 원했기 때문에, 이를 수용하고 받아들였다면 대량해고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즉,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11월 3일자 연합뉴스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font color="##003366"> 채권단은 사측에 대해 ‘희망퇴직 등에 들어가는 재원 추가지원은 곤란하다’며 인원감축 방안으로 희망퇴직 등 여타방안 대신 정리해고제를 적용, 시행할 것을 사실상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2000. 11. 3(인천, 연합뉴스)</font>


이처럼 채권단은 사측에 대해 인원감축방안으로 정리해고제를 수용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또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측이 “대우차 발표 자구안이 채권단내 타 은행을 납득시키기에 미흡하다고 판단, 대우차측과 포괄적인 논의를 갖고있는 단계”라고 밝혔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전후맥락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종대 회장이 왜 '부도가 불가피하다'고 역설했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무난한 인력구조조정에 대한 합의가 얼마나 순진한 기대에 불과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이성재 동지는 합의서가 제출되고 경영혁신위를 통해 노사협상이 시작되고, 농성장이 침탈되는 시점까지의 과정에서도 여전히 정리해고 반대가 전술적 수단임을 강조하면서 '희망퇴직 등'으로 정리해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font color="##003366"> 그러면 집행부의 주장처럼 정리해고는 부평공장을 폐쇄하기 위한 GM의 음모였으며, 결코 막아낼 수 없는 불가항력이었던가? 그렇지 않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미 부도가 나고 그에 따른 구조조정 폭이 커져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지만, 전환배치의 폭을 확대하고 노사분담으로 퇴직위로금과 리콜제를 전제로 한 '희망퇴직'을 시행해 사측에 의한 일방적인 정리해고를 막고 노조의 핵심 역량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성재, 같은 글)</font>


아더앤더슨컨설팅 보고서가 공개된 작년 12월 12일 이후, 사측도 희망퇴직·급여삭감 등으로 강제적 정리해고를 가능한 한 피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희망퇴직 인원을 늘리는데 필요한 위로금재원이 확보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던 데다, 2월말 채권자집회 이전에 7천명에 가까운 인원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측은 합의서 제출 후 한 달만에 열린 경영혁신위에서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안을 통보하고 의원퇴직 접수를 강행하는 등 애초부터 인력감축에 대해, 제한된 수준에서의 방안논의 외에는 논의자체를 거부해 왔었다. 게다가 사무노위측의 '직원봉급 갹출을 통한 퇴직위로금 지급' 방안에 대한 찬반투표에 조직적으로 개입하는 등 불신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드는 작태를 거듭해왔었다.

사실상 정리해고에 다름 아닌 '의원퇴직'이 퇴직금이라도 받기 위한 조합원의 불안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때, 이에 대해 노조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면 그리고 이로 인해 천여 명이 공장을 떠나게 되었다면 그 책임은 일차적으로 노조에 있다. 그러나 이성재 동지의 비판은 노조가 회사측의 의원퇴직 강요를 막아내지 못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당시 '사무노위'와 회사가 합의한 인력감축 방안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면서 의원퇴직과 정리해고를 희망퇴직으로 전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질책하고 있다.

<font color="##003366"> 전환배치의 폭을 확대하고 노사분담으로 퇴직위로금과 리콜제를 전제로 한 '희망퇴직'을 시행해 사측에 의한 일방적인 정리해고를 막고 노조의 핵심역량을 지켜낼 수 있었다. - 생략 - 이러한 노력은 현장조직 차원에서 1월 설날 전후로 해서 현장에 뿌려진 유인물에서 최초로 공론화되었다. (이성재, 같은 글)</font>


'최초로 공론화된 유인물'이 필자의 기억과 같다면, 그 유인물은 사측에 대한 비판은 일언반구조차 없고, 노조에 대한 비판으로 전면을 채운 이해할 수 없는 현장조직의 유인물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애석한 사실은 2월 16일 12차 경영혁신위가 회사측에 의해 결렬되는 상황까지 노조측에서 제시한 경영정상화 방안이, 이성재 동지의 글에서는 제대로 평가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회사측 방안의 세배에 가까운 비용절감효과를 거둘 수 있는 이 방안은 어찌보면 지나친 양보였을 수도 있다.

이 안은 마지막 경영혁신위에서 "정리해고를 회피하기 위해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대신, 노조와 회사가 5대5의 비율로 위로금을 지급하고, 쌍용차 전보인원의 고용을 유지하며 나머지 인원에 대해서는 4개월간 무급순환휴직을 실시하자"는 최종안으로 다시 한번 후퇴한 채 제안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안이 회사측에 의해 즉시 거부되었고 최종협상은 결렬되었다.

이에 대해서도 이성재 동지는 <b>'그나마 타협의 여지가 있었던 희망퇴직안도 사측과 교섭해 볼 여지가 거의 없었던 2월16일 오후 4시에 나왔' </b>기 때문에 어쨌든 결과적으로 사상 최대의 정리해고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그나마 <b>'거점투쟁은 3일만에 몰려드는 경찰력을 10분도 못 버틴 채 거리로 쫓겨나고 만'</b>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성재 동지의 주장이 갖는 문제점은 지난 투쟁과정에서 나타난 오류를 과장하고, 당시의 비상투쟁위원회 결정을 왜곡하고 있으며 사측의 탄압에 대해서는 눈감고 있는데서 이미 평가의 냉정한 자세를 잃어버렸다는 점에 있다. 이런 식의 비판은 언제어디서나 가능한 것이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투쟁방향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합의서를 작성하고 한달만에 처음으로 열린 경영혁신위 이전에, 이미 사측은 인원감축 규모가 포함된 자구안을 언론을 통해 유포시켰다. 이 과정에서도 노조와의 합의를 사실상 거부했던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고, 합의서에 명시된 '4자 협의기구' 구성에 대한 어떠한 노력도 시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1월 16일 2,794명에 대한 정리해고 계획서를 제출하면서 '경영혁신위'의 위상을 '해고 회피노력의 수단'으로 이용했었다.


<b>자구계획을 철저히 이행하여 기업가치를 제고시킨다?</b>

결론적으로 이성재 동지는 대우차의 해법에 대해서 지금까지 제시된 방안과는 다른 아주 독특한 하지만, 사측과 결론이 동일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철저한 자구계획 이행과 기업가치의 제고"이다. 그는 GM인수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font color="##003366"> 따라서 DJ정권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고 이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미국경제의 불황과 주가하락으로 기업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GM내부의 상황과 DJ정권의 정치적 한계를 바로 보면서 노조가 앞장서서 DJ가 헐값에 팔아먹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성재, 같은 글)</font>


어찌보면 아무 내용 없는 것에 불과한 이 방안에서 특이할 만한 점은 '(노조가 앞장서서) 공장정상화를 달성하고 이를 통해 제고된 기업가치는 GM의 헐값 인수기도를 철회시킬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공장정상화 방안을 별도로 제출하고 있지 않은 채 사측의 계획을 언급하는 데에 그치고 있고, 사측 생산계획조차 목표달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자칫 사측 요구보다 더 많은 노조의 양보를 추가로 결의하자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어찌되었든, 정상화시키는 방안의 구체적인 계획을 누락시킨 채 '회사 살리기'를 주장하고 있다는 건 차치해두고, '해외매각이냐 독자생존이냐' 하는 논란에 우선하는 경영정상화 주장은 상식적으로도 성립되지 않는다는 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다.
경상수지를 '0'으로 맞추겠다고 하는 회사측 자구안의 핵심도 '해외매각'이 무위로 돌아가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것이며, '신차 개발 없는' 독자생존이 허구임은 기아차의 예까지 들어가면서 설명한 이성재 동지가 스스로 주장한 부분이다. 이러한 회사측 자구안으로 기업가치를 제고시키고, 결국에는 GM이 헐값으로 인수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소설속에서나 있을 법한 헛된 기대들에 다름아닌데, 노조측 자구안에 대해서는 의도적 무시로 일관하면서도 정상화의 구체적인 계획조차 없이 무조건적인 공장정상화를 외치는 이성재 동지는, 애초부터 공장정상화보다 다른 무엇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었을까?


<b>사회적 합의주의를 경계한다</b>

<font color="##003366"> 따라서 '공장 정상화'가 그 어떤 요구보다도 앞서야 한다. - 생략 - 따라서 다른 과제들은 여기에 복무해야 한다. '공장 정상화'를 목표로 사업과 투쟁을 배치해야 하며, <b>비현실적인 요구나 과도한 전제를 달아서 정상화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b>(이성재, 같은 글)</font>

마치 사측에서 발행한 '한마음회보'를 읽는 듯하다. '공장 정상화'를 목표로 노조사업과 투쟁을 배치해서, 다시 말해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 노조의 투쟁까지 복무해야 한다는 망발을 서슴치 않고 있다. 왜 이런 이야기까지 하면서 공장 정상화를 외치고 있는 것일까? 이성재 동지는 글의 뒷부분에서 '국공합작'을 거론하면서 자신의 솔직한 입장을 본의 아니게 드러내고 만다.

<font color="##003366"> 노조와 사측은 대우자동차의 고사를 통해 부평공장을 폐쇄하여 입맛에 맞는 공장을 자신들이 요구하는 가격과 조건으로 거저먹으려 드는 GM(초국적 자본)과 이를 방조하는 DJ정권·채권단에 맞서 공동으로 싸울 수 있을 것이다. <b>1930년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에 맞서 모택동과 장개석이 국공합작을 했던 것처럼 부평공장 사수와 공장 정상화를 위해 회사와 협력하는 것을 '노사협조주의'로 매도할 수는 없다.'</b> (이성재, 같은 글)</font>

현재 대우차 투쟁의 해법에서 한 축으로 제시한 '사측과의 대화재개'에 대한 필요성은 '산곡성당 노조지도부'도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제는 회사에 대한 태도이다. 이성재 동지는 노조를 '모택동'으로, 회사를 '장개석'(혹은 손문)으로 비유하면서 공동의 적을 향한 합작을 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여기서 역사적 사실과 인식에 대한 차이를 언급하는 것은 흠집내기 이상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착각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법정관리인에 불과한 경영진과 공동행보를 준비하라고 주문하면서 이를 국공합작이라 표현하기 때문이다.

'국공합작'을 비유한 것 자체를 가지고 '협조주의'로 매도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합작을 권유하는 대상이 회사측이라면, 지금의 사측이 '국공합작' 당시의 장개석이라기보다 일본 제국주의의 괴뢰정권 즉, '만주국'에 가깝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장개석이 혹은 모택동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임명된 괴뢰정권의 수장들이 아닌 바에야, 정부와 채권단에 의해 지명되고 그로 인해 권한이 제한된 사측과의 합작을 종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사협조주의'로 매도하지 말라고 애써 부인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나아간 '투항'을 권고하고 있음을 스스로 자백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투항은 이성재 동지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노동사회>에 몇 달째 연속해서 실리고 있는 대우차 투쟁에 대한 평가는 이성재 동지와 같은 입장의 글로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와 노동사회 편집진의 시각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font color="##003366"> 일정한 희생을 감수하면서 다시 태어나게 될 대우차의 주인으로 당당히 설 것인가, 아니면 <b>'전투적 조합주의'의 유산에 갇혀 은행노동자들과 국민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맞을 것인가</b>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대우자동차의 활로와 노조의 선택 - 조성재(한국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노동사회 12월호'

그러나 노조는 대중조직이다. 대중의 요구와 이익에 기반하여 활동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노조투쟁이 전체운동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은 주체역량에 괴리된 꼴이 아니라, 그에 기반하여 다양하게 고민할 문제이다. <b>역량도 안되면서 전체운동의 요구를 받아안고 산화(散花)하는게 미덕도 아니고, 그를 부추기는 게 올바른 노조운동이라고도 볼 수 없다.</b>
'대우차 사태, 평가와 노조운동의 과제 - 김영두(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노동사회 3월호'

이런 점에서 이번 대우차 투쟁은 입만 열면 '현장성'을 부르짖는 이른바 '현장파'들의 '현장성'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준 좋은 기회였다. (이성재, 같은 글)</font>


전투적 조합주의의 유산에 갇힌 채, 전체운동의 요구를 받아안고 산화(散花)하는 '현장파'라는 지금의 대우차 노조를 향한 지칭과 혐의는, 지난 반년간의 <노동사회>에 실린 대우차 관련 입장 글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무어라 해석해야 좋을지 모르겠으나 일단 대중조직에서 나타날 수 있는 편향인 '모험주의'를 경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해당 대중조직의 대중적 언명이나 슬로건만으로 '모험주의'적 경향에 대해 판단하거나 핵심 구성원의 조직적 분포에 의해 재단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비판은 오히려 '기회주의'를 자처하는 태도에 다름 아니며 현재 대우차 투쟁기조에 대한 못마땅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 파업찬반 투표에서 진행된 사측의 방해공작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조차 없이, 찬성비율 자체만 가지고 '조합원과 노조지도부와의 괴리'로 굳이(!) 해석해버리는 태도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주체적 역량을 과대평가하고 정세를 과도하게 인식하는 것은 분명 '좌익 모험주의'적 경향의 전형이다. 그러나 2년여의 기간동안 협상을 위한 과시적 군중집회 투쟁으로, 조직력이 지속적으로 이완되어온 것이나 파업농성대오의 확산을 막기 위해 단행된 휴업조치, 그리고 공권력이 겹겹이 부평공장을 둘러싸고 농성합류를 봉쇄했던 전후 사정을 제외하고 단지 농성참가 조합원이 '400-500명에 그쳤다'는 식으로 분석하는 것도 주체역량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대우자동차의 정리해고 문제가 애초부터 정권에 의해 구조조정의 '의지관철'에서 초래한 결과임에도, 노조가 대의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원칙을 지키기 위해 무모한 투쟁전술만을 고집한 결과라는 주장도 비약에 불과하다. 정리해고 문제가 대우차에 국한된 일시적 비용절감효과에서 그치는 게 아니었다는 것은, 이번 대우차 처리과정에서 노조측이 제안한 정상화방안을 회사측이 먼저 거부했던 것에서 이미 확연히 드러난 바 있다. 그리고 그 의미를 해석할 때도 노조에게 정리해고 문제가 그 수의 많고적음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지난 현재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통해 경험한 바 있다.

무엇보다도 <노동사회>에 실린 이성재 동지의 글이 갖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지나간 경과에 대해서는 과장과 은폐를 통해 그럴 듯하게 윤색할 수 있었지만, 과거가 아닌 '현실인식과 전망'에 이르러서는 스스로 그 황당한 논리의 실체를 드러내고 만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본인의 짧은 필력으로 정신분열적인 주의주장을 다 담아 비판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일 듯 싶다. '부평여론이 의외로 차분하다'거나 '부평공장 폐쇄논란이 도리어 현장이탈을 조장한다'는 주장은 반박하는 것 자체로 피차 더욱 초라해지기만 하고 이러한 횡설수설의 의도가 고작 '현장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동원된 수사에 불가하다는 것을 밝혀 내는 것, 그리고 그 '의도'를 비판하는 것 자체도 더 이상 의미부여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b>마치며</b>

대우차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투쟁을 함께 하면서 현장의 어려움은 물론, 경제적 생활조차 어려운 노동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들의 투쟁으로 그나마 이만큼의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었다. 비록 그 과정에서 비투위와 노조 지도부의 이런저런 전술적인 오류들이 있을 수 있고 또한 그것은 당연히 평가되어야 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의 투쟁지도부에 대해 희망퇴직을 수용하고 사측의 자구계획을 철저히 이행하라고 주문하면서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평가의 결론으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3년간 구조조정 대응투쟁은 소위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사회적 합의주의' 등 노사협조주의적 노선과 싸우고 이를 극복하면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대응투쟁을 전개해온 역사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들이 비록 공장정상화를 이야기하고 현실을 운운하면서 내세우는 전략들은 단순히 타협적이라거나 협조적이라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타협하고 협조하면 더 많은 노동자들이 은혜(!)를 입을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우리의 노동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우차 노조와 조합원들의 헌신적인 투쟁이 더 이상 폄하되어서는 안된다. 그들이 흘린 피와 땀에 대한 보상은 희망퇴직과 사측 자구계획의 철저한 이행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대우차노조의 투쟁은 해당 사업장만의 투쟁으로 고립되지 않고 연대투쟁을 통한 전국적인 구조조정 반대투쟁 전선의 회복으로, 그리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철폐로 귀결될 때만이 그 피와 땀이 씻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몫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주제어
노동
태그
대안세계화 사회운동 87항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