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6.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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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 민주집행부 출범의 의미

이종규 | 김재길 민주후보 선거운동본부 대외협력국장
<b>철도노조 선거, 민주후보 당선의 원인</b>

노동운동과 민중민주운동 진영은 물론 전사회적인 관심 속에 노조창립 54년만에 최초로 24,884명 조합원의 직선제로 실시된 철도노조 위원장 선거에서 드디어 민주후보가 당선되었다. 5월 21일 오후 1시 투표를 마감하고 전국 700여개 투표구에서 동시에 진행된 개표결과 김재길 민주후보가 63% 정도를 득표하여 37% 득표에 그친 구 집행부측 오금묵 후보를 압도적인 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된 것이다. 개표결과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김재길 후보는 전통적으로 민주세력의 기반인 운전(기관사)과 차량(정비)에서 평균 90%이상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고, 운수, 시설, 전기 등의 직종에서도 고른 지지를 받았다. 지역적으로는 오금묵 후보의 기반인 호남지역에서만 역 1000표 대 1400표로 뒤졌을 뿐 전 지역에서 고르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참고로 우연히 김재길 후보의 고향도 호남이었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망국적인 지역대결이 쟁점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개표시간 용산에 위치한 철도노조 사무실 마당에는 수백 명의 철도노조 조합원들과 노동자, 시민사회단체회원들이 개표를 기다리다가 민주후보의 당선을 축하해 줌으로써 이번 선거에 대한 높은 사회적 관심을 반영했다.


이번 철도노조 위원장 선거에서 민주파가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다음의 세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노동조합내 민주세력의 일사분란한 총단결이었다. 88년 기관사파업과 94년 전지협 파업의 투쟁정신을 계승한 철도노조 내 민주노조운동 활동가들은 노민추(철도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 운수마을(운수직종 단체), 철도발전연구회(노민추에서 사업방식에 대한 이견으로 분화)로 나뉘어 활동하다가 99년 5월 철민추(철도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로 통합하여 일사분란하게 현장활동을 강화해왔다. 그러던 중 2000. 1. 14 대법원의 '철도노조에서 대의원을 간선제로 선출하는 것은 노동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은 절호의 기회로 다가왔다. 철도노조 현장의 민주적인 간부들은 즉각 철도공투본(전면적 직선제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을 결성하여 노조민주화투쟁에 돌입했고, 철민추는 전 조직역량을 동원해서 이 투쟁을 철저히 지원, 지도했다.

2000년 철도공투본 투쟁은 7명의 해고자와 50여명의 징계, 전출자를 양산했지만 그 투쟁의 성과로 위원장 직선제를 쟁취하고 전국의 조합원들에게 민주노조의 열망과 가능성을 심어주었다.
철도공투본 지도부의 무더기 해고 후 반년이 지나고 당시 철도노조 집행부가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사실상 정부의 철도청 민영화 방침에 동의한 2001년 초 상황에서 현장간부들은 다시 민주철도투쟁본부(생존권사수와 민주노조 건설을 위한 철도노동자 투쟁본부)를 결성했고 김재길 후보가 상임대표를 맡았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진영은 투쟁본부의 조직적 결의로 김재길 후보를 민주진영 단일후보로 추대했고 투쟁본부를 그대로 선거운동본부로 전환했다. 결과적으로 김재길 후보는 철도 민주노조운동의 성과와 과제를 한 몸에 안은 단일후보로서 조합원들에게 받아들여졌고 민주진영은 분란 없이 선거운동 과정에 최선을 다 할 수 있었다.


둘째, 상대후보의 너무나 취약한 경쟁력이다. 오금묵 후보는 순천지방본부위원장 출신으로 정년퇴직을 불과 3년밖에 남기지 않은 구시대 인물이며 과거 철도노조 어용집행부의 죄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나마 철도노조 어용집행부는 선거가 공고된 5월 6일이 지나도록 후보를 단일화하지도 못했다. 정년도 못 채울 당시 김기영 위원장은 계속 한번 더 하겠다고 버티고 있었고, 이에 오후보와 대전지방본부위원장은 조합의 방침에 반해 지방본부위원장 선거를 독자적으로 공고하며 반발했다. 최종적으로 김기영 위원장이 포기한 후에는 오금묵 후보와 당시 노조 기획실장 김현중씨가 서로 후보가 되겠다고 나서서 조합원들에게 각자 추천서를 받다가 최종적으로 후배인 김현중씨가 양보해서 오금묵 후보로 단일화 된 것이다.

결국 김재길 민주후보는 선거공고 전에 조직을 정비하고 선거운동 준비를 갖춘 상태에서 공고 직후 본격적인 전국순회를 비롯한 선거운동에 돌입한 반면, 오금묵 후보는 후보단일화 논의로 소중한 며칠을 앉아서 허송함으로써 어용-보수-기득권 세력의 집결에 실패한 것이다.
더구나 오금묵 후보는 개인적인 자질면에서 민주후보의 경쟁상대가 전혀 되지 못했다. 김재길 후보가 전국의 모든 사업장을 순회하고 조합원을 만나면서 힘있는 연설과 친근감 있는 대화와 정책대안 제시로 지지를 모으는 동안 오금묵 후보는 조합원의 질문과 항의가 두려워 가는 곳마다 홍보물만 던져놓고 도망가기 바빴으며 기껏해야 소장 등 관리자들이 각종 교육 등의 형태로 조합원을 모아준 곳에서나 '폼 나게' 한마디 할 수 있는 지경이었다.

행여 개인적인 자질이 좀 나은 후보가 출마했더라도 어용집행부의 과오는 용서할 수 없는 심각한 것이어서 집행부측 후보는 조합원의 지지를 얻는데 한계가 있었다. 오랫동안 집행부측 간부를 해 온 누구도 조합비를 함부로 탕진하고, 사용자와 유착하고, 민주적인 간부를 무더기로 제명하는 등의 악행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셋째, 공정선거 쟁취투쟁의 승리이다. 철도투쟁본부는 처음부터 이번 직선제 위원장 선거의 승리조건은 힘있는 후보추대와 공정선거 쟁취에 달려있다고 판단했고, 선거운동 역량의 많은 부분을 공정선거 쟁취투쟁으로 배치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내부적으로는 어용집행부의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선거제도와 선거관리방식에 대항해서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고 조합원의 여론을 동원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점거농성 등 직접 물리력을 동원해서 압박했다. 외부적으로는 시민사회단체와 언론기관의 감시활동을 통해 어용집행부의 몰상식한 불공정 선거관리를 저지하고 결정적인 관건인 철도청 사용자의 선거개입을 차단하는 활동에 주력했다.

그 활동의 성과로 작년 철도공투본 투쟁당시 결성되었던 '철도공대위'가 재가동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37개 시민사회단체는 '철도노조 공정선거를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일동' 명의로 기자회견과 공정선거감시단 모집등 구체적인 지원활동에 착수했다. 5월 8일 서울에서의 기자회견 이후 대전, 부산, 광주 등 전국적으로 철도노조 공정선거를 촉구하고 지원하는 시민사회단체가 구성되고 활동했다.
공정선거감시단의 활동은 이번 선거승리의 숨은 공신이다. 철도노조의 부정선거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부정선거가 벌어지는 것은 기본이고, 결정적인 부정선거는 분산투개표에 의한 사실상 공개투표와 여기에 사용자가 개입하는 방법이다.

분산개표란 한 개 지부가(전국에 143개의 지부가 있다)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는 사업장별로 투표소를 설치한 후 투표함을 이송하지 않고 투표소별로 개표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렇게 하면 평균 10~20명 단위로 개표결과가 공개됨으로써 한 지부(사무소)의 특정 투표구(사업장)의 지지성향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고 여기에 사용자가 개입하여 '우리 투표구에서 민주후보 지지표가 많이 나오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각오하라' 식으로 개입하는 것이 먹혀들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실제로 4명의 조합원이 투표하고 스스로 개표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민사회단체는 지속적으로 철도청에 노조선거에 개입하지 말도록 경고했고, 투표당일인 21일에는 전국적으로 수백 명의 공정선거감시단원을 직접 투표소에 투입하여 김재길 후보 참관인과 함께 부정투개표를 예방하는 활동을 했다.

철도청은 주말과 휴일인 19,20일에 모든 소속 장들을 비상출근시켜 선거운동을 했는데 만일 21일에 참관인과 공정선거감시단을 투입하지 않았다면 부정투표와 개표조작도 우려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결국 공감단원의 광범위한 밀착감시에 의해 터무니없이 악질적인 부정투표와 개표조작은 방지되었다. 공정선거감시단에 회원들을 파견해 준 민중연대, 민주노동당, 전국연합, 전농, 전해투 등 시민사회단체에 이 자리를 빌어 깊이 감사드린다.


이상의 요인으로 민주후보 김재길은 승리했다. 개표결과는 63% 득표이지만 선거운동과정에서의 분위기와 조직점검에 의하면 80% 이상의 조합원이 지지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앞에서 이야기 한 대로 분산투개표와 사용자의 개입에 의해 민주후보를 지지하면서도 마음대로 투표하지 못한 조합원들이 있어서 63%의 득표율로 결과가 나왔을 뿐이다.


<b>철도 노조 선거 결과와 한국 노동운동의 지형변화</b>

철도노조는 54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조합원수가 2만 5천명인 대형노조다. 주요도시 지하철을 제외한 전국 철도산업을 독점하고 있는 철도청의 사업은 국가기간산업으로서 사회적 비중이 막대하다. (서울지하철노조의 파업때마다 파업의 이유보다도 파업으로 인한 사회적 파장만으로도 대대적인 보도의 이유가 되어 왔던 상황을 돌이켜 보라)
철도노조는 한국노총에 가입되어있는 산별노조의 맏형이다.(실제는 단위노조이지만 한국노총에서는 선별노조 대접을 받고 있다) 철도노조가 해방 후 전평 등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태동했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노총이 결성되었음을 상기하면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철도노조는 한국노총 소속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상급단체 가입이 현재의 조합원의 선택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이미 퇴직한 선배 조합원들이 선택(진정 조합원의 자유로운 선택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지만)해서 한국노총에 가입한 후 수십년 동안 단 한번도 상급단체 문제를 노조 주요회의에서 안건으로 다루거나 현장에서 토론에 부쳐진 일이 없다. 이 점만으로도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된 최초의 민주집행부 임기동안에 상급단체 문제를 대중적으로 토론하고 주요회의에 안건으로 부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두 번째는 불행한 일이었고 한국노총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작년 공투본 투쟁과정에서 한국노총이 무리한 방법으로 일방적으로 어용집행부를 비호했고 조합원들이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찬성만 가능하고 반대는 불가능한 투표용지를 사용하는 등 어용집행부의 행태를 보고하고 시정지도를 건의해도 요지부동이었으며, 공투본이 조합회관을 40여일 점거하고 있는 동안 한국노총은 공문으로 가입 산별에 인원까지 할당하여 공격조를 동원했다가 언론의 취재로 철회한 사실이 있고, 2000. 3. 7. 경북 울진에서 열린 대의원대회에는 실제로 100여명의 가입조합원을 동원해서 공투본 조합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게 했고(결국 당시 김광남 직무대행은 공투본 조합원들에게 멱살을 잡히고 해명을 하는 등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후에 이를 정중히 항의하러 노총회관을 방문했을 때 기습적인 각목공격으로 환영(?)했다. 이러한 불미스런 추억들을 수많은 조합원들이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는 점은 아주 현실적인 문제다.

이런 이유로 철도노조 신임 집행부는 상급단체 변경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다만 어용노조를 민주화하자는 낮은 수준의 민주노조운동 과정에 배치된 선거에서 이를 공약으로 검토해보지 않았고, 많은 간부들이나 조합원들의 정확한 의사분포를 확인한 바 없다는 점에서 어느 쪽으로든 집행부가 일방적으로 방침을 정하고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현 김재길 민주후보를 둘러싼 간부활동가들의 많은 수가 각각 개인적으로는 한국노총 탈퇴와 민주노총 가입의 지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문제는 향후 연대투쟁을 필수적 전제로 하는 민영화 저지투쟁과정에서 상급단체가 어떠한 역할을 하느냐 또 그에 대한 조합원들의 정서와 판단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와 맞물려서 갈피를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결과가 상급단체 변경 또는 최소한 탈퇴라면 이는 한국노동운동의 지형을 바꾸는 일임에 틀림없다.


<b>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공세에 대항하는 새로운 투쟁의 시작</b>

우리나라 철도산업은 현재 민영화의 위기에 처해 있다. 과거 정권에서부터 여러차례 철도청 민영화(또는 공사화)방안이 검토되고 심지어 입법까지 되었다가 철회되기도 했는데 이번 정권 하에서도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철도산업 민영화가 추진되어 현재 '철도산업구조개혁기본법'이 입법예고 되어 있고 올 하반기 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철도산업 민영화는 명분 없는 반민족적, 반민중적 정책이다. 현 정권이 철도청 민영화방침을 결정할 때만 해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공기업을 해외매각이라도 해야한다'는 정부의 논리에 국민들이 억지로라도 수긍할 수밖에 없어 반론이 적었으나, 이제 철도산업을 반드시 민영화(사실은 해외매각의 가능성도 열어놓은 사유화)해야할 이유에 대해서 조목조목 따져볼 일이다.

우리 철도민주노조운동세력과 진보진영의 연구에 의하면 철도산업의 낙후와 철도청의 적자는 모두 철도산업에 투자를 게을리 한 정부에 책임이 있고, 철도노동자의 낮은 생산성 주장 등은 거짓말이며, 정부기구의 비능률과 관료주의는 툭하면 낙하산 인사를 하고, 공무원을 상명하복과 출세주의로 묶어놓은 정부의 책임일 뿐이다. 국유체제에서도 필요한 만큼의 투자와 민주노조와 시민사회단체의 철도정책에의 제도적인 개입보장 등으로 철도산업을 발전시키고 국민에 봉사하는 복지기간산업으로서의 철도를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현 정권이 민영화를 고집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에의 무조건적인 신봉에 의한 것이거나, 공공기업의 민영화에 대해서 국민들이 그 내용보다도 실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해 줄 것이라는 그릇된 기대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철도산업의 민영화는 위와 같은 이유로 잘못된 정책일 뿐만 아니라 가깝게는 그 과정에서 우리 철도노동자의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철도청 민영화에 반대하고 저지투쟁을 하는 것은 정당하고도 당연하다. 그런데 그동안 철도노조 어용집행부는 입으로만 민영화에 반대하다가 결국 합의도장을 찍어주었다. 이제 새 집행부는 제대로 된 민영화 반대투쟁에 나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런 약속을 했고 각오를 다지고 준비해나가고 있다.

한편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투쟁은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열풍과 정부의 총체적인 공격이라는 점에서 철도노조가 아무리 민주노조고 강고한 투쟁을 한다고 해도 혼자 힘으로는 이기기 어려운 싸움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당연히 민중민주운동 세력과의 연대가 불가피하다. 그 과정에서 철도노동자는 새롭게 각성하고 훈련될 것이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민중민주운동진영은 승리 가능한 투쟁의 소중한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주제어
노동
태그
비정규직 노동탄압 열사 노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