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2.5-6.1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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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현장] 핵안보정상회의를 맞이한 인천공항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풍경

김민혁 | 인천지부 회원
공항의 낯선 풍경

이른 아침 인천공항으로 들어선다. 매일 이용하던 출입구가 폐쇄되어있다. ‘핵안보정상회의’때문이다. 인천공항 여객터미널로 들어오는 일반적인 출입구는 1층 출국장의 14개 그리고 3층 입국장의 14개를 합쳐 총 28개로 되어있고, 평상시에는 28개의 출입구가 모두 개방되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그러나 ‘핵안보정상회의’ 며칠 전부터 28개의 출입구 중 14개의 출입구가 폐쇄되고 나머지 14개의 출입구만 개방되었다. 혹시나 있을 테러의 위협에 대비하여 감시와 관리가 쉽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찌되었든 출입구가 반으로 줄어든 탓에 평소보다 혼잡하다. 이동카트와 여행용 카트, 단체여행객, 그리고 공항노동자들의 출근시간이 각각의 출입구에서 만나 혼란과 무질서가 가득하다.
출입구에 들어서자 각 출입구마다 두 명의 경찰과 한명의 보안검색대 제복을 입은 노동자가 서있다. 이들은 14개의 출입구마다 배치되어 오가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주시하며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수상한 인물을 찾아내고 말겠다는 경찰의 표정과, 다소 피곤한 모습으로 지루하게 서있는 보안노동자의 표정은 대조적이다. 그런 그들과 함께 총을 메고 공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경비대원들은 공항노동자들을 비롯해서 공항을 이용하는 이용객들에게 위화감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들을 뒤로하고 걷다보면 두 개의 커다란 플래카드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편에는 “핵안보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합니다”라고 쓰여 있고 다른 편에는 ‘ASQ(세계공항서비스평가) 7년 연속 1위 인천국제공항’이라고 적혀있다. 이 외에도 ‘핵안보정상회의’를 상징하는 조형물이나 조그마한 현수막, 핵무기와 관련한 어린이들의 그림전시 등 각종 선전물들이 공항곳곳에 가득하다. 대부분의 공항노동자들이 그것들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지나쳐간다.
보안구역 출입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공항에는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없는 보안구역이 있다. 따라서 보안구역 내에서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소지품을 모두 꺼내놓고 검색대를 통과해서 보안검색 노동자에게 확인을 받은 후 보안구역으로 들어가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보안단계 등급이 상향조정되어 보안구역 출입절차가 까다로워졌다. 우선 평소 3명이 지키던 검색대에 5명이 배치되었다. 그리고 소지품은 물론 외투와 신발까지 벗도록 요구받았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검색대를 통과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보안단계의 등급이 상향된 탓인지 금속탐지센서도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허리띠나 지퍼류의 금속류가 탐지되어 알람이 울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그것을 직접 확인해주어야 하는 곤혹스러운 장면도 연출된다. 이러다보니 검색대를 통과하는 것조차 스트레스다.


한번 높아진 노동 강도는 정상회의가 끝난다고 줄지 않을 듯

간신히 검색대를 통과한 후 사무실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업무지시를 받는다. 간단한 업무지시 이후 ‘핵안보정상회의를 대비한 특별교육’을 실시한다. 가만히 들어보니 교육이 아니라 지시사항에 가깝다. 1) 국격 및 공항 이미지 제고를 위한 각종 행사 및 캠페인 활동 적극 협조, 2) 시설 개/보수, 정리정돈, 복장단정, 적극적 고객안내 등 주인의식 함양, 3) 오해를 사지 않도록 이상하거나 불필요한 행동주의, 4) 공항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각자 임무 및 역할 적극적으로 수행, 5) 수상한 물건을 방치하거나 불안정한 행동을 하는 사람 적극 신고 등의 내용이다.
다들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현장으로 나간다. 일의 양이 확실히 많아졌다. 나와 동료들뿐만 아니라 다른 업체 다른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공항공사에서 핵안보정상회의를 맞아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 Airport Service Quality) 7년 연속 1위에 걸 맞는 인천공항을 자랑하고 홍보하기 위해서 각종 업무지시를 터무니없이 남발했기 때문이다. ‘특별교육’에서 알 수 있듯 공항공사는 공항노동자 개개인의 복장 및 서비스의식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한편 늘 하던 자신의 업무 외에 별도의 업무도 추가적으로 지시했다. 이들은 각 업체에 직접적으로 지시를 하는데, 업체는 공항공사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노동자들에 대한 관리와 감독의 수준을 더욱 높이려 한다. 또한 공항공사에서 지시하는 것 이외에도 주로 각 업체가 공항공사에게 잘 보이거나, 혹은 밉보이지 않게 하기위한 노동 역시 인천공항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몫이다. 이것이 핵안보정상회의와 맞물려 노동자들은 평소에 하던 일 외에 공항공사에서 요구하는 것과 업체에서 지시하는 업무 등에 의해 일이 가중되었다. 지난 늦은 새벽 야간근무 중 점검을 위해 현장에 나가 보니 핵안보정상회의 기간 얼마나 무분별한 업무지시가 있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자신하건데 인천공항에서 승객들이 이용하는 모든 시설물이나 쉽게 눈에 띄는 대부분의 것들은 실제 다가가서 보아도 먼지하나 없을 정도로 깨끗하다. 이는 평소 인천공항의 청소용역노동자들의 강도 높은 노동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야간근무 때 보았던 그들의 모습은 과하다 싶을 정도였다. 이를테면 한쪽에는 여객들이 이용하는 긴 의자 수십 개를 뒤집어 놓고 의자의 밑 부분을 닦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그 의자는 예전에 나를 포함한 장정 4명이 정말 힘들게 들어 움직였던 그것보다 조금 더 컸다. 그들은 대부분 나이를 많이 드신 청소용역노동자들이다. 그 무거운 걸 어떻게 들어서 뒤집고 닦으시는지 걱정이 들었다. 다른 쪽에서는 모든 바닥에 왁스칠을 하고 그 위에 비닐을 깔아두었는데 그 작업을 어디서부터 진행했는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외에도 조명작업을 위해 10m 고소장비위에서 한 노동자가 아슬아슬하게 몸을 기울여 무언가를 정비하고 있는 모습, 배관작업을 끝내고 더러운 물과 먼지를 흠뻑 뒤집어 쓴 노동자의 모습, 용접과 페인트칠을 하던 어느 나이든 노동자의 모습, 끊임없이 공항 내부를 돌아다니는 지치고 피로한 기색이 한눈에 느껴지던 보안노동자들까지, 그들은 그들 자신의 개별적인 노동 이외에 추가적인 노동에 시달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공항노동자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핵안보정상회의의 참석으로 인해 인천공항을 찾게 되는 각국의 정상들이나 보좌관들이 항공기에서 내려 탑승교를 거쳐 VIP전용 출입문을 이용하여 귀빈실을 통해 주차장으로 이동하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5분 정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5분을 위해 한 달 동안 이뤄졌던 강화된 노동강도가 핵안보정상회의가 지나간다고 해서 느슨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공항공사 측은 핵안보정상회의를 통해 업무의 강도와 양을 늘리면서 계획되어있던 업무를 미리 진행하여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한편 노동자들은 공항공사 측의 대규모 컨벤션 산업 유치가 인천공항을 세계에 알리고 국격 또한 높일 수 있다는 논리에 따른 노동강도 강화에 허덕였다. 7년 연속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 1위를 자축하며 공항공사 사장의 연봉은 전년에 비해 20%가 오른 2억8천만 원 이상으로 책정되었고, 직원들의 연봉은 경영평가성과급이 지급되지 않아 자세하지는 않지만 8,000만 원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계공항서비스평가는 물론 핵안보정상회의 등과 같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강화되는 각종 행사 이후 비정규직의 임금수준이나 복지수준은 변화가 없었다. 이는 G20정상회의기간에도 경험했던 것이었다. 그때 당시에도 공항공사에서는 위와 같은 방법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거두는 한편 노동강도를 강화시켰다. 노동자들은 G20정상회의가 지나가면 좀 편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 기간 중 특별히 강조했던 서비스 정신은 일상적으로 제공해야 할 것이 되어버렸고, 그 기간 중 문제점이 발견되었던 규정이나 시설은 더 엄격하게 바뀌어 노동자들을 괴롭히게 되었다. 따라서 공항노동자들은 핵안보정상회의가 지나간다고 한들 크게 달라지는 점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강화된 노동강도는 공항노동자들에게 있어 육체적, 정신적 피로 외에 관계의 파괴라는 결과를 낳았다. 공항노동자들은 서로 다른 업체에서 각기 다른 일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공항이라는 작업장을 공유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공항노동자들은 다른 업체, 다른 업무의 노동자들이라 하더라도 배타적이지 않고 서로의 업무를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핵안보정상회의 기간 강화된 노동강도에 따라 늘어난 업무의 양, 더욱더 철저한 서비스정신을 요구받는 공항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이 다른 노동자들에 의해 간섭되는 것에 예민해져 갔다. 예를 들면 보안노동자들의 검색강화로 허가되지 않은 도구 및 공구가 통과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서로 언쟁을 벌이는 모습은 바로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평소 같았으면 “다음엔 주의해주세요”,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로 웃으며 넘어갔을 일이었다. 또한 시설의 정비 등으로 인해 지저분해진 공간을 두고 시설관리노동자들과 청소용역노동자들의 갈등이 있었다. 역시 평소엔 시설관리노동자들은 자신의 정비로 인해 어질러진 부분은 자신이 치우고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그들의 기준에 맞게 다시 청소를 하며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육체적, 정신적인 피곤으로 신경이 날카롭게 된 노동자들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보다는 상대방을 일하는데 방해가 되는 존재로 여기기 일쑤였다. 이 역시 노동강도 강화에 따른 하나의 폐해였다.


핵안보정상회의, 손대지 마시오!

일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런지 힘든 하루였다. 그러나 퇴근시간을 앞두고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한다. 시설관리노동자들과 보안노동자들이 한데 섞여있다. 그 주위를 청소하다 합류한 청소용역노동자와 심지어는 항공기에 수하물을 탑재하는 지상조업 노동자들까지 함께 어우러져 있다. 누가 먼저 시작했을까, 핵안보정상회의 이야기가 한창이다. 가만히 들어보니 핵도 없는 나라에서 그런 정상회의를 한다는 것에 대한 불평부터 시작한다. 이어지는 내용은 공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만 죽어난다는 자조 섞인 대화다. 공감이 확산되며 다들 각기 자신의 노동이 핵안보정상회의로 인해 얼마나 가중되었는지를 토로한다. 그러더니 이번엔 핵안보정상회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시작된다. “핵 있는 것들이 모여서 핵 없는 것들 감시하고 못 만들게 하려는 수작이지, 지들 것은 모셔두고 말이야”, 가장 나이 많은 노동자가 내뱉듯 중얼거린다. 다른 노동자들도 핵안보정상회의에 대해 각기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지만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핵무기를 보유한 주요 국가들이 ‘핵 테러 방지’를 주장하며 자신들의 패권을 유지하고 북한 같은 나라를 위협하며 군사적 긴장을 높여 인류의 평화적 생존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노동자들은 멋지게 이야기 할 순 없지만 의식적으로는 다들 알고 있다. 또한 이것에 따른 과도한 위화감 조성과 각종 경호조치가 애꿎은 노동자들에게 미친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퇴근 시간이다. 야간출근 조에게 인수인계를 끝내고 밖으로 나온다. 버스를 기다리다 문득 바닥에 눈길이 머무른다. 바닥에 있는 맨홀뚜껑에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핵안보정상회의, 손대지마시오 -경찰->, 검지손가락 정도의 크기에 검은색으로 된 스티커였다. 그러고보니 계류장에 있는 맨홀에도 이것이 붙여져 있었던 기억이 난다. 방금 전 다녀온 화장실에도 있었고 곳곳에 위치한 소화전이나 분전반에도 이것이 붙여져 있었다. 심지어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던 점원이 개인물품 보관함으로 쓰는 캐비넷에 이것이 붙여져 열 수 없다고 하소연했던 것을 지나가며 얼핏 들은 기억도 있다. 듣기로는 경찰이 폭탄테러를 대비하여 폭탄을 설치할 수 있을만한 모든 공간에는 이것을 부착하라고 지시했던 것이라 한다. 공항에 그러한 곳이 수천 곳은 족히 될 텐데, 그러한 곳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이것을 붙이러 다녔던 노동자들은 또 얼마나 애를 먹었을까. 화려한 수사어로 치장했던 핵안보정상회의 이면의 인천공항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현실이다. 다시 스티커를 바라본다. <핵안보정상회의, 손대지 마시오> 위압적이다. 엊그제 보았던 공항내부에 위치한 출입국사무소 앞에서 울먹이는 이주노동자의 모습과 공항비정규직노동자들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핵안보정상회의는 무엇을 남겼는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다만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할 뿐이다. <손대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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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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